록 음악계의 '어둠의 왕자' 오지 오스본의 고백 | 지큐 코리아 (GQ Korea)

록 음악계의 ‘어둠의 왕자’ 오지 오스본의 고백

2021-03-16T16:35:25+00:00 |interview|

블랙 사바스가 메탈을 대중화시킨 지도 50년이 지났다. 그러나 블랙 사바스의 프론트맨 오지 오스본은 2022년 월드 투어까지 예정에 두며 솔로 활동에서 은퇴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도살장에서 일할 때의 추억과 실수로 목사를 마약에 취하게 한 일화, 살면서 후회되는 단 한 가지 일까지, 록 음악계의 ‘어둠의 왕자’가 직접 인생의 페이지를 넘겼다.

2020년 10월 10일, 오지 오스본의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2020년은 내 인생 최악의 해였어.” 특유의 버밍엄 억양으로 중얼거린다. 인사말 대신인 듯하다.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 어둠의 왕자께서 줌 화상을 타고 친히 <지큐> UK 안방까지 행차해주셨다. 2020년 할로윈을 하루 앞둔 날 밤의 이야기다. 당시 우리는 할로윈에 맞춰 사무실 내부를 나름 으스스하게 꾸몄는데, 오지 오스본이 신경 쓰는 건 플라스틱 해골이나 괴물 분장 따위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었다. “폐기종이 있어요. 그러니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완전히 망하는 거죠.” 정작 그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록 음악계에서 확고부동한 지위를 자랑하는 오지 오스본은 최근 건강이 그리 좋지 못했다. 2019년에 척추 수술을 받은 결과 만성 통증으로 매일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가 되었고, 같은 해 1월에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음을 공개하기도 했다. 드물게 발견되는 파킨슨병 2기의 일종이라고 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모습도 있다. 여전히 그는 방탕했던 일화를 천재적인 감각으로 풀어낸다. 일흔두 살인 오지 오스본은 로스앤젤레스 자택의 사무실에 앉아 블랙 사바스 멤버로서 헤비메탈의 태동에 기여하고 나쁜 짓들에 정신없이 빠져든 이야기부터 아내 겸 매니저인 샤론을 향한 사랑 이야기까지, 1시간에 걸쳐 우리를 쉼없이 사로잡았다.

목사를 마약에 취하게 만들고 코로 (아마도) 곤충을 흡입하기도 한 그의 인생은, 그러나 그저 고속도로 1차선으로만 내리 달린 건 아니었다. 오히려 중앙 분리대를 잘 지키는 삶이었다. 그리고 아직 시동을 멈출 생각은 없어 보인다. 지난해 블랙 사바스의 첫 앨범 발매 50주년을 기념하며 12번째 솔로 앨범 <Ordinary Man>을 공개한 오지는 이미 차기작 준비도 한창이다. 예정했던 월드 투어가 2022년으로 미뤄지면서 생긴 시간을 보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한다. 그렇게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그의 심기는 불편하다. “그동안 집에서만 지내느라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우리에 갇힌 동물 같아요. 하지만 락다운 기간 동안 과거를 많이 되돌아봤어요. 유년 시절을 떠올리기도 했고 내가 꽤나 멋진 삶을 살아왔구나 생각하기도 했죠.” 오지 오스본이 인생의 페이지를 열기 시작했다.

현재 건강 상태는 어떤가요? 수술 때문에 몸이 완전히 망가져버렸어요. (2003년에) 쿼드바이크 사고를 당해 목이 부러진 적이 있는데 뼈가 다시 붙는 과정에서 척추를 압박하게 된 거죠. 그때부터 내 몸에 온갖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무대에서 공연하는데 갑자기 몸 한쪽에 날카로운 통증이 생기는 식이었어요. 그러다 1년 반 전 어느 날 밤에, 깜깜한 상태에서 화장실에 가다가 그냥 쓰러져버렸죠. 아내를 향해 “샤론, 나 지금 바닥에 넘어져 있어” 하고 외쳤어요. 그러자 샤론이 그러더군요, “그럼 일어나!”. 그런데 몸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어요. 일흔 살이 되고 나면 둑이 터진 것처럼 모든 게 악화되기 시작해요. 뭐랄까, 지금껏 오래도 잘 피해왔다 싶네요.

아까 2020년은 최악의 해라고 읊조렸죠. 또 무엇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어요? 나는 미국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람이에요. 하지만 이 나라가 완전히 미쳐 돌아가는 꼴을 보았어요. 트럼프는 강박적인 거짓말쟁이예요. 언젠가 한 번 만난 적 있는데 그가 제게 한 말이란 “오지이이이”가 전부였죠.

방역수칙은 잘 지키고 있어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외출할 일이 있다면 마스크를 쓰지만 나는 마스크가 싫어요. 그러니 밖에 거의 안 나가죠.

앨범 프로듀서(앤드류 와트)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어요. 매일 통화했는데 그는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잠에 들자마자 호흡이 멈추기 때문이래요. 사람이 변했어요…. 임사체험을 하고 돌아온 것처럼 자신의 목숨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대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죠. 내 손녀 둘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는데, 별로 잘못된 건 없어요. 그냥 바이러스가 머무르다 나가버렸어요.

수술에서 회복하는 동안 챙겨준 사람이 있나요? 엘튼 존이 아내에게 매주 전화를 걸어줬어요. 내가 여기저기 사람을 많이 사귀고 다니는 편은 아닌데 엘튼 존과는 가족끼리 친해졌어요.

엘튼 존이 어떻게 앨범에 참여하게 된 거예요? ‘Ordinary Man’ 곡을 만들 때 엘튼 존의 노래가 떠오른다고 앤드류에게 얘기했더니 “그럼 피처링을 부탁해보죠”라는 거예요. 그럼 정말 좋겠다 싶었죠. 피아노 연주만 해줬어도 좋았을 텐데 노래까지 불러줬죠. 엘튼은 완전히 일 중독자예요. 저번에 우리 집에 왔을 때 그간 뭐 하고 지냈냐고 물어보니 40일간 40회 공연을 마친 지 얼마 안 됐다고 하더군요! 대체 어떻게 하는 거죠? 나는 열아홉 살 이후로는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해본 적이 없어요!

90년대에는 공연이 너무 지겨워서 투어 제목을 <No More Tours>라고 짓기도 하셨죠? 그런데 이제는 2022년부터 투어를 재개한다고 하니,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어떻게 된 거냐면, 당시 내 걸음걸이가 조금 이상했어요. 의사가 샤론에게 내가 약간 다발성 경화증인 것 같다고 알렸죠. ‘약간 다발성 경화증’이라니 대체 뭘 어쩌자는 말이에요? 마치 약간 임신한 것 같다고 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는 말이에요. 병은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죠. 투어 계획은 이미 잡힌 상황이었고, 샤론은 ‘뭐, 이제 다발성 경화증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 하게 될 테니 이게 고별 투어가 되겠군’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러다가 결국 다발성 경화증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는데 투어 제목은 그대로였던 거죠. ‘이제 뭐 하지? 은퇴하고 싶은 기분은 아닌데’라는 생각이었죠. 어쨌든 나는 집에 있으면 투어를 돌고 싶고 막상 투어를 돌면 집에 가고 싶어요. 그게 나란 사람이에요. 만족할 줄을 몰라요.

락다운 기간 동안 정신적으로는 어땠나요? 미쳐가는 중이에요. 공기총을 사서 벽에 대고 매일 펠렛을 쏘며 지내요. 일주일에 1만 발씩 빵 빵 빵.

뭘 쏘는데요? 그냥 직접 만든 표적 같은 걸 쏴요. 예전에는 쏠 수 있는 거라면 아무거나 다 쏘긴 했어요. 소, 양, 송아지, 돼지, 개.

블랙 사바스의 50주년인 2020년 2월에 오지 오스본은 12번째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앨범에는 엘튼 존 경이 피처링한 트랙도 수록됐다.

개들한테 쐈다고요? 개들이 아니에요. 개 한 마리. 그것도 일부러 쏜 것도 아니에요. 고통에 허덕이는 개였고, 내가 그 고통에서 해방시켜준 거죠. 밤에 개를 사냥하러 다니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도살장에서 일한 적도 있죠? 그때의 경험이 블랙 사바스의 음악에 반영되기도 했나요? 아뇨, 전혀요. 도살장에서 일한 건 아침 일찍 시작했고 할 일을 다 마치면 집에 가도 됐기 때문이에요. 그날 주어진 일이 소 다섯 마리라면 그 다섯 마리만 끝내면 퇴근할 수 있었죠. 도살장에서 처음 맡은 일은 양의 뱃속 내용물을 비워내는 거였는데 첫 6주 정도는 매번 토하고 말았어요. 익숙해지기까지 좀 걸리는 냄새거든요. 하지만 일 자체는 나쁘지 않았어요. 다 같이 웃고 떠드는 즐거운 분위기였어요. 동물들은 우리가 왜 웃는지 몰랐겠지만….

잠깐 감옥에 다녀오기도 했죠? 그건 어떤 경험이었어요? 다녀오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절도죄로 잡혔는데) 벌금 낼 돈이 없었고, 아버지도 대신 내주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3~4주 옥살이를 했죠. 첫 며칠간 괜찮다가 나중에는 집에 가고 싶어지더라고요. TV에서 범죄물 같은 걸 보면 종신형을 선고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걸 어떻게 견뎌내나 모르겠어요. 뉴욕에서 일어난 엄청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 남자가 재판을 받는데 딱 봐도 징역이 길게 나올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땅콩버터를 항문에 가득 채운 채로 피고석에 앉아 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땅콩버터를 조금씩 꺼내 먹었대요. 정신 이상으로 판단돼 감옥에 가는 것을 피하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형량이 달라졌나요? 달라지기는 했어요. 5배나 늘어났대요.

당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집에 현재 사는 사람이 당신의 옛 침실을 유료로 대실해준다는 얘기가 있던데. 1박에 4백 파운드씩 받는다고 하더군요. 집 전체의 가치가 3백 파운드도 안 될 텐데! 엄청 비싼 돈을 들여 화장실을 증축하기라도 했나 보죠. 그보다 더 이상한 얘기를 해줄게요. 오랜만에 그 집을 다시 방문한 적이 있어요. 어렸을 때는 모든 게 거대해 보이잖아요? 그 집에서 저와 엄마, 아빠, 그리고 형제자매 5명까지 총 8명이 살았는데 다시 보니 집이 너무 작은 거예요. 속으로 ‘여기서 어떻게 다 같이 살았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릴 때 엄청난 비틀스 팬이었다고 들었어요. Helter Skelter가 최초의 헤비메탈 곡이라는 주장에 동의해요? 아뇨. 헤비하지는 않죠. 그냥 헬터 스켈터에 관한 빠른 곡일 뿐이에요. 어쩌면 킹크스의 ‘You Really Got Me’나 더 후의 곡들을 헤비메탈의 시초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 자신도 딱히 헤비메탈이라고 여기지 않으니까요. 헤비한 곡도 만들었지만 멜로딕한, 발라드 같은 노래도 만들었잖아요.

블랙 사바스가 첫 앨범을 발매한 지 50년이 지났어요. 획기적인 앨범이 될 거라는 것을 당시에도 알았나요? 우리는 그냥 모여서 놀았고, 뭔가 괜찮아 보이는 게 있으면 그걸 하는 식이었어요. 토니 아이오미는 엄청난 기타리스트예요. 그런 사악한 리프는 토니만 만들 수 있죠. 토니가 최고예요. 내가 “이것보다 더 나은 건 못 만들겠지?”라고 할 때마다 토니는 실제로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내곤 했죠.

레스터 뱅스가 언젠가 블랙 사바스의 음악을 두고 나이브하고 단순하며 반복적이기만 한 엉터리라고 평하기도 했죠. 블랙 사바스는 늘 악평만 받았어요. 콘서트도 앨범도 모두 나쁜 얘기만 있었어요. 하지만 뭔가 펑크 같은 게 있었어요. 사람들이 우리를 싫어할수록 팬들은 우리를 더 좋아했죠.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저건 쓰레기야”라고 했지만, 우리 집 벽에 플래티넘 인증 디스크가 엄청 많거든요. 그러니 우리 음악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뜻이겠죠.

펑크가 막 도래한 시점에 밴드에서 나갔는데 펑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펑크는 블랙 사바스의 스핀오프 같은 거였죠. 체제에 반항적이었어요. 내 마음에 든 밴드는 섹스 피스톨즈가 유일한데, 그들은 정말 훌륭한 앨범 단 한 장만 남겼죠. 뭔가를 정확히 포착해서 담아낸 앨범이었어요. 하지만 존 라이든인가 뭔가 하는 그 친구는 그만 떠들고 음악을 좀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체제에 반항하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여왕과 만난 게 모순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나요? (버킹엄 궁전에서 열린 즉위 50주년 기념 파티에서) 여왕을 만났는데 나를 보더니 (상류층 억양을 흉내 내며) “안녕하세요. 당신이 흔히들 말하는 다양성이라는 것이군요?”라고 했죠.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요? 그냥 계속 쳐다봤어요. 여왕은 우표에도 있고 신문이랑 TV에서도 매일 보지만 막상 실물을 보면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거든요. 하지만 난 절대로 여왕의 자리에 앉고 싶지는 않아요. 인간이 아닌 것 같잖아요. 그렇죠?

(1982년 디모인 공연 무대에서) 박쥐 머리를 물어뜯은 얘기가 유명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 살아 있는 비둘기의 머리를 물어뜯은 적도 있죠? 오히려 그게 더 끔찍한 것 같은데. 그건 그냥 음반사 사무실에서 아침 7시에 취한 채로 벌인 소동 같은 거예요. 샤론이 나한테 “사무실에 들어가 이 비둘기들을 날려보냈으면 좋겠어”라고 했고, 그래서 나는 한 마리는 날려보내고 다른 한 마리의 머리를 물어뜯은 거죠. 그 뒤로 나는 건물 출입이 금지됐어요. 음반 계약이 취소될 뻔하기도 했죠.

피아노를 상대로 싸웠다는 건 어떻게 된 일인지…. 뉴욕의 르 파커 메르디앙 호텔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호텔 바 옆에 자동 피아노가 있었는데 그 피아노가 연주를 시작했어요. 10곡째마다 영화 <스팅> 주제곡을 연주하더군요. (‘The Entertainer’를 흥얼거린다.) 당시 나는 하루 종일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그래서 그 곡을 들은 지 50번째 정도 됐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 기계를 차버렸죠. 나중에는 ‘어떻게 감히 뮤지션이 아닌 기계가 연주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냐’고 연주자협회에 항의 편지까지 보냈어요. 왜냐하면 그냥 연주자를 한 명 고용하는 게 훨씬 싸게 먹히거든요. 내가 피아노 값을 물어줬기 때문에 잘 알고 있어요.

머틀리 크루의 전기 영화 <더 더트>에 나온 얘기 중 당신이 수영장 옆에서 지나가는 개미들을 코로 흡입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 같지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네요.

개인적으로 기억할 수도 없는 그런 어마어마한 일화들의 주인공이 된다는 게 이상한 느낌일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만 내 이미지에는 좋으니까요.

1980년대에 한 옛날 인터뷰를 찾아봤는데 규칙적으로 조깅한다는 얘기가 나와서 놀랐어요. 무모하고 정신없는 생활의 극치를 달리는 와중에도 건강을 챙겼던 것이군요. 나는 가만히 있지를 못 해요. 매일 땀을 흘리지 않으면 우울해져요. 하지만 가장 많이 뛰어본 거리는 9킬로미터 정도밖에 안 돼요. 그걸 뛰면서 죽을 것 같았죠. 42킬로미터씩 마라톤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멀리 갈 때 편하게 가라고 자동차를 발명한 거 아니었어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였던 리얼리티 TV 쇼 <오스본 패밀리>의 주인공은 오지 오스본과 그의 가족이었지만, 종종 반려견들이 그들을 뛰어넘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오지 오스본의 매니저 겸 아내인 샤론과 함께. 둘은 2020년 여름 38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았다.

<오스본 패밀리>를 찍으면서 본인의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 이미지가 훼손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나요? 직전에 찍은 <MTV 크립스>를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이었죠. 사람들이 뭘 보고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어요. <4차원 가족 카다시안 따라잡기>처럼 각본이 있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카다시안 쇼의 경우 각본이 없다는 건 믿기 어려워요. 여하튼 우리는 촬영팀이 집에 1년 내내 상주하며 하루 종일 찍어댔어요. 나중에는 정신이 나갈 것 같더라고요! 촬영을 잠깐 멈추는 것도 불가능했어요. 그렇게 3년간 계속되자 우리 아이들은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샤론은 암에 걸렸죠. 결국 가족들에게 “촬영을 계속하고 싶어?”라고 물어봤어요. 다들 싫다고 했고 그래서 프로그램도 중지하게 된 거죠.

<오스본 패밀리> 때문에 자녀들이 마약을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아직 애들이었는데 술집이나 클럽에 들여보내주고 마약 같은 것도 건네주고 그랬어요. 프로그램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잭은 약물을 끊으려 하고 있었죠. 나도 마찬가지였고요.

<오스본 패밀리>를 한 것을 후회하나요? 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차원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약간 비틀마니아 같았어요. 그다지 즐겁지는 않았다는 말이에요. 한번은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맥도날드에 들어갔는데 거기 있던 모두가 나를 쫓아와서 주차장을 뛰어다니기도 했어요. 완전히 질겁했죠.

사람들이 <오스본 패밀리>를 좋아한 건 등장인물이 모두 감정적으로 열려 있었기 때문이에요. 자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나는 문자로든 전화로든, 아니면 직접 얼굴을 보고서든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매일 들려주려고 해요.

어린 시절 가족 간의 감정 교류나 표현이 풍부한 편이었어요? 부모님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나요? 절대 아니에요. 우리 집에서는 들을 수 없는 말이었죠. 어렸을 때 내가 누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면 아마 두들겨 맞았을 거예요. 지금도 나는 누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누나는 내게 그러지 않아요. 어릴 때는 부모님에게 사랑한다고 하는 게 나약함의 표시였어요.

샤론의 결장암 판정을 어떻게 받아들였어요? “다시는 공연 안 할 거야”라고 내가 말했어요. 그랬더니 샤론이 제게 “꺼져버려”라고 했죠. 내가 옆에서 계속 귀찮게 굴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샤론이 완전히 지쳐버렸죠. 몸이 너무 안 좋아졌어요. 항암 치료의 효과가 암 자체보다 더 안 좋은 것 같아요.

샤론의 회복 과정에 당신이 많은 역할을 했나요?

아뇨. 대신 로빈 윌리엄스를 집으로 초대해 샤론의 기분이 좋아지게 했죠. 로빈 윌리엄스는 <패치 아담스>라는 영화에서 말기 암 환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역할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투어를 하는 동안 우리 집에 놀러와 샤론에게 웃음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샤론은 엄청 좋아했어요. 로빈이 자살했을 때는 많이 상심했고요.

돌이켜보면 후회되는 것도 있나요? 아내를 두고 바람 피운 게 후회돼요. 이제는 그러지 않지만요.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게 되었고, 아내가 저를 떠나지 않은 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에게 화도 많이 났죠.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했어요.

오지 오스본 밴드의 기타리스트였던 랜디 로즈의 죽음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그 후로 우울증 약을 달고 살았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읽은 것도 같은데요.(1982년, 오지 오스본의 투어 버스 운전기사 앤드류 에이콕이 당시 스물다섯 살 된 랜디 로즈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레이첼 영블러드를 경비행기에 태우고 비행하다 투어 버스에 날개가 부딪쳐 추락하고 말았다.) 제 인생에서 굉장히 우울한 시기였던 것은 맞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그 사건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랜디가 죽던 날의 일들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되기 시작하죠. 최악이었어요. 질 나쁜 공포영화 같은 날이었어요. 집이 불타고 있었고 비행기는 버스에 부딪친 상황이었죠. 유리 파편과 휘발유가 사방에 가득했어요. 랜디는 정말 좋은 녀석이었어요. 순하고 착한 데다 체격도 작았지만 기타를 연주할 때는 너무나도 파워풀한 친구였어요.

종교를 믿나요? 성경을 읽어보려 하긴 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더군요. 누군가 내 방식으로 다시 써줬으면 좋겠어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들 꺼져버려라!’ 하시니 모두가 꺼졌다.”

목사를 마약에 취하게 만든 적도 있지 않아요? 제기랄…. 마리화나가 들어간 케이크를 만들었는데, 통에 담아두고 펍에 가기 전 내 전처(델마 라일리, 1971년 결혼)에게 “이거 아무도 못 먹게 해야 돼. 먹으면 큰일이 날 거야”라고 일러두었죠. 어쨌든, 그러고 나서 며칠 뒤 집으로 돌아왔는데….

며칠 뒤라고요? 너무 놀라서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집에 목사가 찾아와 주방에서 차를 마시며 바로 그 케이크를 같이 먹고 있었거든요. 나는 그때 운전면허도 없었지만 목사가 주방에서 완전히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질질 끌고 집 밖으로 나가 목사를 그의 차 뒷좌석에 밀어 넣은 후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나는 다시 집으로 걸어왔죠. 그러고 나서 2주간 안 보이길래 나 때문에 목사가 죽은 줄 알았어요. 그러다 어느 일요일 아침 펍에서 그를 만났는데 나한테 “저번에 댁에 갔다가 지독한 감기에 걸린 모양입니다. 3일간 환각 상태가 계속되어서 교회에도 못 나갔네요”라고 하는 거예요. 살아 있는 걸 보니 마음이 그저 놓이더군요. 빌어먹을, 그는 살아 있었던 거예요!

집에 목사를 초대한 게 더 놀라운데요. 시골로 이사 가면 교회 쪽 사람들이 접근해오거든요. 대화나 하자고 하면서 죄를 고해할 건 없는지 떠보는 거죠.

죄를 고해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내가 교회에 고해하러 갔으면 아마 아직까지도 못 나오고 계속 죄를 털어놓고 있을 거예요.

과학자들이 당신의 혈통을 알아내기 위해 유전자를 분석하기도 했다던데. 뭔가 엄청난 구멍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나는 내가 남들보다 딱히 뭘 많이 하거나 적게 하지는 않았다고 늘 얘기하지만, 사실은 정말 운이 좋았던 거예요. 매일 약물을 과다 복용하다시피 했거든요.

사람이 죽은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잠시 침묵했다.) 알게 되면 알려줄게요. 집 주소 알려주면 사후 세계에 가서 엽서라도 한 장 보내죠.

오지 오스본이 박쥐의 머리를 물어뜯은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똑같은 짓을 비둘기에게도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