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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빈 "야생마처럼 엇박으로 나가는 행동을 많이 했어요"

2021.03.25GQ

김옥빈의 페르소나는 김옥빈뿐.

블랙 재킷, 가니. 블랙 시폰 글러브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발음이 굉장히 정확하네요. 목소리도 또랑또랑하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시끄럽단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하하하하.

이달 <지큐> 주제가 얼굴이에요. 왜, 만화에서는 눈매가 가늘면 센 캐릭터라고도 하잖아요. 얼굴에는 성격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옥빈 씨는 어때요? 제게 그런 부분은 입인 것 같아요. 제가 웃을 때 입꼬리가 이쁘게 올라가는 웃음이 아니라 동그란 함박웃음이에요.

그 입 모양이 참 신기하다 생각했어요. 이렇게 웃는 사람을 저도 못 봤어요. 카트라이더 다오가 웃는 것처럼 동그랗게 위아래가 다 보여요. 윗니만 살짝 보이게 웃고 싶은데 죽어라 연습해도 안 되더라고요. 이쁘게 ‘호호호’가 안 돼. 으하하하하.

가족 내력이에요? 막내도 그래요. 맞아요. 유전인 것 같아요. 아빠 웃음을 줄줄이. 동생이 웃을 때 제가 개구리라고 놀리거든요. 개구리같이 웃어요.

웃을 때도 그렇지만, 옥빈 씨는 온 얼굴을 쓰는 데 아무 거부감이 없어 보인다는 점을 짚고 싶어요. 화면에 어떻게 나올지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달까. 같은 말을 영화 <악녀> 시사회 때 들었어요. 얼굴을 엄청 많이 찡그리는데 그게 불편하거나 스스로 두렵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지 어느 기자분이 묻더라고요.

<악녀>(2017)에서도 오만상을 쓰죠. 저는 그때 의외였어요. 왜냐면 난 그냥 아무렇지 않게 열심히 연기했는데 오만상으로 나왔다고 하니까. 그 질문을 받고 내가 연기할 때 많이 찡그린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 <악녀>를 보는데 진짜 오만상을 다 찌푸리더라고요. 으하하하.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연기를 연기한 게 아니라 정말 힘들어서 나오는 표정. 응. 저는 제가 그렇게까지 찡그리고 연기하는지 몰랐거든요? 그런데 그렇더라고요. 고통스러우니까 찡그리고, 힘드니까 찡그리고.

그린 드레스, MSGM. 그린 언밸런스 롱 부츠, 선우. 블랙 레더 글러브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블랙 재킷, 블랙 슬랙스, 모두 가니. 블랙 시폰 스커트, 치카 키사다 at 아데쿠베. 하운드 투스 슬링 백, 디올. 블랙 시폰 글러브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화이트 드레스, 마이클 코어스 컬렉션. 스카이블루 슬링 백, 펜디. 블루 스타킹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그런 작품들을 택해왔기도 하죠. <악녀>에서는 도끼를 휘두르고, <고지전>(2011)에선 스나이퍼이고. 면도날 든 소매치기 <유나의 거리>(2014)는 약과일 정도로 극한의 상황에 부딪히는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작품과 캐릭터를 해왔어요. 맞아요. 제가 워낙 그런 캐릭터를 좋아해요. 희한하게 심심한 캐릭터는 너무 지루해서 못 하겠는 거예요. 입체적이고 다양한 여성들 모습을 좋아하고, 극한까지 치닫는 걸 계속 선택하는 게 있어요. 사실 지금 촬영 중인 OCN 드라마 <다크홀>에서 맡은 캐릭터는 조금 심심해요.

심심해요? 거대한 싱크홀, 검은 연기, 변종 인간. 그 혼란 틈에서 고군분투하는 캐릭터라고 알고 있는데요? 작품 자체는 굉장히 다이내믹한데, 제가 굉장히 정의로운 형사 역할이거든요? 선하고 착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걸 계속 옳다고 행동하는 그런 형사 역할이에요.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사람의 입체적인 심리가 드러나 보이는 캐릭터를 좋아하는데, 이 형사는 너무 착해. 좀 못됐으면 좋겠는데. 그런 거 있잖아요. <워킹데드>에서 릭이 항상 도덕적 선택만 하지는 않잖아요. 고뇌하는 모습도 있고, 대의를 위해서 희생도 택하고, 그런 입체적인 모습을 원하는데 지금은 인간은 너무 소중하고, 그래야 옳고, 이런 느낌이 강해서 심심해.

그럼 어떡해요? 제가 다른 걸 좀 녹여본다든지 그렇게 해야 하는데, 다행히 어떤 목소리에 홀려서 넘어갈 뻔하는 상황들이 있어요. ‘죽여버리고 싶다’ 이렇게 (목소리에) 넘어가는 순간들이 있거든요. 그럴 땐 조금 덜 심심하고.

성선설과 성악설이 있다면 옥빈 씨는 후자일 것 같네요. 당연히 성악설이죠. 애기들 봐봐요. 안 가르치면 엄마 머리카락 막 잡아당기고 그래요. 키우면서 교육하니까 착해지는 거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같이 모여 살아 나가야 하기 때문에 교육과 학습으로 교화되는 거지.

궁금해지네요. 옥빈 씨의 길티 플레저는 뭐예요? 나쁘다는 걸 알지만 쾌락이 느껴지는 것. 음… 뭐가 있을까…. 생크림 퍼먹는 거?

너무 선하다. 으하하하. 몸에 들어가면 엄청난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포기는 못 하는 그 맛이 악하죠. 아, 술도 있다. 그런데 술은 끊었어요. 예전엔 ‘너어무’ 좋아해서 정말 많이 마셨는데 지금은 안 마신 지 2년 돼가요. 체력이 달리는 느낌이어서 일할 때는 절대 안 마시고 정말 기분 좋을 때 반주 곁들이는 정도예요. 아예 술자리를 끊어서 이제는 집에 더 틀어박혀 있죠.

레드 니트, MSGM. 플로럴 시스루 터틀넥, 잉크. 블랙 레더 팬츠, 오프화이트.

저는요, 세상이 다 재미없는 것 같아요. 12년 전 <여배우들> 속 김옥빈은 그랬어요. 지금은 어때요? 지금은 너무 좋고 편안해요. 맞아, 그때 되게 심심했어요. 쪼끄마한 게, 당시 윤여정 선생님 앞에서 “남자친구를 만나도 재미없고, 안 만나면 더 재미없고” 이랬죠. 그때는 제가 매너리즘에 막 빠져들고 있었던 시기 같아요.

<박쥐>(2009)로 빵 떴을 때잖아요. 그게 오히려 매너리즘으로 작용한 거예요? 그때문이라기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갇혀 있는 삶에 대한 느낌에 가까워요. 당시 제가 하이틴스런 이미지가 있어서 그걸 빨리 벗어 던져버리고 싶었거든요? 왜냐면, 당시 모르는 사람한테도 전화가 너무 많이 오고 어딜 가도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게 저와 너무 안 맞는 거예요. 너무 힘들어서 제 스스로가 대중이 나한테 바라는 어떤 기대를 망가뜨리고 싶다는 생각을 진짜 많이 했어요. 그래서 야생마처럼 엇박으로 나가는 행동을 되게 많이 했어요. 갑자기 록 밴드 하겠다고 그러고, 하여튼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모습에서 멀어지고 싶었어요.

컷아웃 재킷, 와이드 팬츠, 모두 YCH. 실버 링 이어링, 실버 뱅글 브레이슬릿, 모두 보테가 베네타. 옐로 롱 부츠, 지안비토 로시.

다크 브라운 셔링 드레스, 보테가 베네타. 핑크 레더 글러브, 핑크 스타킹, 블랙 롱 부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블랙 리나일론 베스트, 네이비 셔츠, 로고 이어링, 모두 프라다. 선글라스, 오프화이트.

과거형이네요. 지금은 그 중간 경계에 있는 상태? 어느 적정 단계? 시간이 제게 성숙함과 경험을 줘서 조금 편안한 상태가 됐어요. 그때는 어려서 다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아요. 두 가지가 양립이 안 되는 거예요. 나는 연기를 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주는 사랑은 버거워, 이런 느낌이었던 거예요. 그 두 개가 동시에 있는 게 힘들었어요. 배우는 하고 싶은데 많이 사랑받는 건 너무 힘들어.

그에 대해 얄밉게 말하자면…. 복에 겹다고 하죠.

배부른 소리라고도 생각할 수 있죠. 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연기를 하고 싶은 것과 다르게 인기를 얻는 걸 잘 관리하는 건 다른 성향이니까요. 그 두 가지가 매치가 안 되는 스타도 많겠다, 그런 생각을 해요. 잘하는 스타들도 있겠지만.

<여배우들> 말미 실제 인터뷰 장면에선 이런 대답을 하고 파안대소해요. 고집 센 여배우. 질문이 궁금해지더라고요.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갖는 오해? 아니면 되고 싶은 배우상? 두 번째였던 것 같아요, 응. “어떻게 자라고 싶어? 어떻게 성장하고 싶어?” 라고 해서 “고집 센 여배우”라고 답했던 것 같아요.

고집에도 여러 모양이 있잖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알고, 어떤 말에도 휘둘리지 않고 뚝심 있고, 자기 중심이 잡힌 사람. 타인의 말에 상처받을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저희 직업은 특히 그런 게 필요하고. 남의 말에 영향받기 시작하면 멘탈이 유리처럼 깨질 거예요. 좋은 비판은 받아 들이되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밀어붙일 줄도 알아야 한다 생각해서, 그래서 고집 센 여배우가 되고 싶다고 얘기했던 것 같아요.

레오퍼드 셔링 드레스, N°21. 네크리스, 보테가 베네타.

고집 센 여배우가 된 것 같아요? 흐헤헤헤헤. 그렇게 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음, 어떤 배우든 간에 모든 역할을 다 잘할 순 없거든요. 그런데 저는 다 잘하고 싶다는 이상한 욕심도 있었던 것 같아요. <박쥐>를 그래서 선택한 면도 있어요. 대본은 재밌었어요. 그런데 진짜 어려운 거예요. 그런데 ‘이 어려운 걸 내가 해내면 다음엔 어떠한 연기를 해도 안 무섭겠다’ 이런 생각에 벌벌 떨면서 선택했어요. 진짜로. 그 전 작품이 <1724 기방난동사건>(2008)이었는데 그때 스스로 연기를 너무 못 한다고 생각해서 맨날 울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는데 그때 <박쥐> 대본이 들어온 거예요.

당시 스물두 살이던 옥빈 씨가 너무 어려서 캐스팅을 망설이는 제작진에게 노안이라 자신 있다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어필했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맞아요. 되게 어려운 역할이고 내 나이론 소화가 불가능한 역할이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런데 감독님께 “저 할 수 있어요” 그랬죠. 어렵지만 내가 좀 만들어봐야겠다, 그런 의지를 불태웠어요.

어렵지만, 할 수 있다. 네. 어렵지만 할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이 자신의 작품 중 <박쥐>가 가장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 꼽는 걸 보면 옥빈 씨가 잘 해냈나 봐요. 감독님이 저 되게 예뻐해주셨어요. <박쥐>가 끝나고도 우리는 매년 모임을 가졌어요. 제가 처음으로 ‘철이 든다’라는 느낌이 든 게 <박쥐> 촬영장이었어요. 다 대선배들이다 보니까 굉장히 어려워하면서 맨날 물어보고 그랬어요. 아마 저를 되게 특이하게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그때 철이 많이 들었죠. 정말 많이 예뻐해주셔서. 김해숙 선생님도, 송강호 선배도, 송영창 선생님도, 전부…. 근데 워낙 다이내믹한 캐릭터여서 그 이후로는 그런 캐릭터를 잘 못 만난 것 같아서 좀 심심한 감은 있어요. 그나마 제가 너무 좋았던 게 <유나의 거리>의 유나인데, 유나는 정말 다양했거든요. 그때 연기할 때 너무 재밌었고 다시 그런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어요.

유나야말로 아까 말한, 인간에게는 착한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을 텐데, 그 모든 면을 보여준 캐릭터 같아요. 옆방 사람이 자살한 사실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던 유나는 길 가다 남의 지갑을 아무렇지 않게 훔치죠. 정말, 유나는 제가 정말 너무너무 사랑하는 캐릭터예요. 그 대본이 돌 때부터 너무 욕심이 나서 나 이거 하고 싶다고 난리를 쳤어요. 그러니까 좀, 과거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여자 배우한테 기대하는 모습이 굉장히 남성적인 시선으로 그려진 게 많고 일률적이고 그렇잖아요. 근데 저는 어릴 때부터 그걸 너무나 깨부수고 싶었어요. 저한테 곱고 이쁜 말하는 걸 기대하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여자는 그래야 한다, 이런 모습을 강요하는 게 싫어서 그에 반항하다 보니까 저의 어떤 캐릭터를 구축해온 것 같아요.

걸어온 길에 신데렐라 스토리가 없죠. 어렸을 때는 멜로도 많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그것보다 다른 게 더 하고 싶었어요. 내가 쌓아온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 지금은 변주된 캐릭터가 많이 들어와요. 여자도 남자처럼, ‘남자처럼’이란 말은 좀 웃기다. 여자도 다양한 행동, 다양한 말을 할 수 있고 의외의 생각을 할 수 있는데, 물건처럼 보는 시선이 너무 싫었어요.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이런 생각을 공유하는 선배님들이 “요즘은 좀 살맛 나” 이렇게 얘기들 하세요. “요즘은 편해. 요즘은 나한테 곱고 인형 같은 모습 기대 안 하잖아.” 너무 좋아해요, 다들.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수용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죠.

예전에는 예쁘게 울라는 디렉션도 있었다던데, 그러든 말든 온 얼굴을 찡그리면서 울고 웃는 옥빈 씨 이목구비가 그래서 더 눈에 들어왔나 봐요.  너무 좋아요.

옥빈 씨는 어떤 사람을 사랑해요? 주변의 내 친구들이 어떤 유형인지 보면 되겠네요. 어릴 때부터 늘 같이 지내고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학창 시절 친구도 있고 20대 때 만난 사회 친구도 있어요. 저는 어떤 목적을 갖고 만나는 모임을 안 좋아해요. 진짜 유치하지만 시시콜콜한 농담을 하며 하루 종일 웃고 수다 떠는, 목적 없는 만남을 해도 편안한 사람들이 좋아요. 그게 그 친구들인데, 어느 날 친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를 쓱 보고 ‘내 친구들은 하나같이 앞이나 뒤나 다 똑같네’ 생각한 적이 있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겉모습, 속모습이 똑같은 사람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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