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하우스에선 '무명'이 '무능'의 동의어? | 지큐 코리아 (GQ Korea)

클럽하우스에선 ‘무명’이 ‘무능’의 동의어?

2021-04-05T18:14:55+00:00 |culture|

선택받은 자만이 입성할 수 있는 클럽하우스 문 앞에 서서 묻는다. 무명이 무능으로 수렴되는 시대가 오고야 만 것일까.

올해 1월 1일 한 신문사가 주관하는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가 되었다. 평생 쓸 운을 ‘영끌’한 결과였다. 괜한 겸손이 아니다. 나는 정말로 내 작품이 당선될 거라고는 거의 기대하지 않았다. 내가 쓴 소설이 다수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그러니까 대중성이 좀 떨어지는, 개인적으로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요컨대 ‘인기 없는 고충’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선작인 <티니안에서>는 중학교 시절 ‘걸레’로 불리며 학우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두 여성의 우정을 그린다. 어느덧 성인이 된 ‘나’와 ‘수혜’가 티니안섬으로 여행을 떠나 남자들을 만나면서 겪는 감정의 엇갈림이 소설의 큰 줄기다. 밝히자면, 나는 어려서부터 ‘청소년기의 성욕’에 관심이 많았다. 어린 여성의 성욕은 왜 터부시되는지, 반대로 어린 남성의 성욕은 왜 늘 당연시되는지 궁금했다. 소설은 앞선 두 개의 물음을 주머니 속의 호두알처럼 이따금 궁굴린 결과였다.

당선 소감에서 나는 “여성의 성욕, 그중에서도 어린 여성의 성욕을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린 여성의 성욕은 페미니즘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내 손으로 작품을 제출하면서도 당선을 기대하지 않았던 건 그런 이유다. 주거, 정치, 교육, 노동, 범죄 등 우리 삶을 둘러싼 거의 모든 문제가 페미니즘 이슈와 직결되어 중요한 논의들을 생산하고 있는 시기에 ‘페미니즘의 구석’까지 조명받을 확률은 아무래도 희박해 보였던 것이다.

신춘문예는 신문이라는 매체 특성상 시의성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은 인류의 당면 과제인 코로나19를 비롯해 양극화, 기후 위기, 소수자 인권 등의 사회적 이슈가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시점이다. 아니다 다를까, 당선자 발표를 앞두고 각 신문사는 “올해 신춘문예 글감은 코로나19, AI 등 현실성 짙은 소재 많아 눈길” 등의 제목을 단 예심평을 쏟아냈다. “새해 1월 1일자 신문 게재작으로 밀기에는 부적절한 소재의 글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고 말하는 심사위원도 있었다.

이런 연유로 나는 당선 소식을 믿기 어려웠다. 그리고 실은 무척 기쁘기도 했다. 뭐랄까. 나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작게나마 증명한 기분이었다. 인기 없는 고충,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무수한 개인의 고충을 질문의 형태로 바꾸는 것이 곧 소설의 역할이라는 믿음 말이다.

각설하고, 최근 떠오른 음성 채팅 플랫폼 클럽하우스를 경험하면서 나는 또 한 번 ‘인기 없는 고충’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시대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박탈감 또한 사회의 시각지대에 놓인 ‘인기 없는 고충’이 아닐까 하고.

‘클하 초보’들이 그렇듯 나 역시 처음에는 이 방 저 방 기웃대며 남의 대화를 엿듣는 리스너 역할에 머물렀다. 가장 먼저 눈이 간 것은 방을 개설한 사회자와 소수 운영진으로 구성된 모더레이터의 존재였다. 호기심에 그들의 프로필을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 다양한 분야의 석·박사, 스타트업 대표, VC(벤처 캐피털), 외국계 세일즈 총괄 등 고학력 고스펙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수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인플루언서도 적지 않았다. 그들이 발언할 때마다 사람들이 경청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발언권을 얻은 연사 Speaker들의 프로필도 다르지 않았다. 직함 아래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터, 패션 노마드 등 감각적인 타이틀을 몇 개씩 이어 붙인 사람도 눈에 띄었다. 링크드인 프로필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업무 이력 아래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계정을 링크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나 브런치 주소 등을 걸어 두는 것이 일반적인 양식인 듯했다. 저마다 프로필이라는 한정된 틀 안에서 매력적인 ‘부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가 하면 아직 자기만의 ‘부캐’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끼리 노하우를 공유하는 공간도 있었다. ‘브랜드 메이킹 전문가와 함께하는 퍼스널 브랜딩 컨설팅’이라는 이름의 방이었다. 접속했을 때는 마침 사용자들 사이에 퍼스널 브랜딩에 대한 유용한 팁이 오가는 중이었다. 누군가는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려는 강박을 버려야 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일단 프로필 사진부터 바꿔보라”고 충고했다. 그런 노하우조차 클럽하우스라는 플랫폼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머지않아 나는 이곳이 셀프 브랜딩에 능한 이른바 ‘선수’들의 세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을 브랜드화하는 것이 익숙한 인플루언서들, 말하는 것이 곧 직업인 ‘투 머치 토커’들에게 클럽하우스는 때마침 찾아온 흥미로운 놀이터일 터였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자신을 브랜드화하는 일에 익숙지 않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 나아가 시대의 흐름을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은 없을까?

누군가는 “싫으면 안 하면 될 일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21세기에 직업인으로 살면서 SNS의 영향력을 무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내가 속한 콘텐츠 업계만 해도 그렇다. 셀프 브랜딩에 능숙한 사람, 그래서 더 많은 팔로어를 확보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고 단가 높은 프로젝트를 받는다. 유명 연예인조차 자기만의 ‘부캐’를 만들지 않으면 무대에서 밀려나는 세상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방 하나를 개설했다. 방제는 다음과 같았다. ‘무명’이 곧 ‘무능’으로 수렴되는 시대 – ‘부캐 만들기’와 ‘셀프 브랜딩’의 피로감에 대하여. 예상과 달리 꽤 많은 인원이 모여들었다. “각각의 플랫폼에 맞는 ‘멀티 페르소나’를 설정하는 일이 피곤하다”, “우리 같은 사람들을 전문 용어로 포모 증후군(FOMO) 환자라고 한다” 등등 다양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자신을 브랜드 마케터라고 밝힌 한 남자가 손을 들었다. 그는 “어쩌면 ‘부캐 만들기’가 피로한 게 아니라 소통에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요?”라고 입을 뗐다. 방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디지털이 익숙한 세대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아닐까요?” 나는 소심하게 항변했다. “음… 요즘 같은 시대에 자기 브랜딩을 안 하는 건 좀 게으른 일 아닌가요? 나이를 떠나서요.”, “그렇지만 자기 브랜딩만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사짜’들이 자신이 속한 분야의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내가 발끈하자 그가 웃으며 대꾸했다. “프로필 보니 글 쓰시는 분 같은데요. 저는 이제 작가들도 자기 브랜딩을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시대가 올 거라고 봐요. 당장 클럽하우스만 해도 책보다 얻을 게 많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거든요. ‘오디오로 듣는 인문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요. 이대로라면 앞으로 아무도 책을 보지 않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나는 서둘러 말을 마무리하고 방을 닫았다. 충격에 손이 떨렸다.

그의 말처럼 셀프 브랜딩은 21세기 직업인들의 피할 수 없는 숙제다. 모두가 의자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가만히 있으면 밖으로 튕겨 나가는 것이 경쟁 사회의 룰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소수의 목소리가 ‘인기 없는 고충’이란 이유로 누락된다면…. 나는 그 물음을 주머니에 넣었다. 문득 아무도 책을 보지 않는 시대가 올 거라는 마케터의 물음이 머리에 스쳤다. 그 물음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두 개의 물음을 한 쌍의 호두알처럼 바드득 맞비볐다. 아직은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