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란티스 그룹에 주어진 과제 | 지큐 코리아 (GQ Korea)

스텔란티스 그룹에 주어진 과제

2021-04-05T17:28:43+00:00 |car|

5개국, 14개의 브랜드. 다국적 자동차 회사 스텔란티스 그룹이 탄생했다. 이름의 어원대로 단연 빛날 수 있을까? 그러기엔 흐릿하고 어두워 보이는 게 많다.

피아트 크라이슬러 그룹(FCA)과 푸조 시트로엥 그룹(PSA)이 합병을 공식화했다. 그리고 15개월의 진통을 거쳐 지난 1월 16일, 다국적 자동차 회사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 이름은 스텔란티스 Stellantis. “별을 총총히 박다” 혹은 “빛나게 한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스텔로 Stello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별을 뜻하는 각 자동차 회사가 그룹 형태로 합쳐진다. 그리고 거대 그룹이 또 다른 그룹과 합병하며 전례가 없는 수준으로 덩치를 키운다. 마치 캄캄한 우주 속에서 빛나는 은하와 같은 원리다. 뭉치면 산다. 여러 브랜드가 모여 시너지를 낼 것이란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프랑스 회사인 DS 오토모빌과 시트로엥, 이탈리아의 알파로메오, 피아트, 란치아, 마세라티, 아바스, 미국의 닷지, 지프, 크라이슬러, 램, 그리고 영국의 복스홀과 독일 오펠까지 5개국, 14개의 브랜드가 속한 거대 집단이다. 그런데 본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다. 스텔란티스 그룹의 연간 자동차 생산량은 2019년 기준 8백70만 대다. 매출로 따지면 한화로 약 2백26조원. 제품 판매량 기준으론 세계 4위 자동차 그룹이다. 대단히 있어 보이는 스펙을 자랑한다. 반면 자동차 시장에서 제품 판매 점유율을 따지면 약 9퍼센트 수준에 그친다. 9퍼센트? 단순 숫자로 모든 가치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회의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거대 그룹이 합병한 배경이다. 스텔란티스 그룹에 속한 대부분의 브랜드는 과거에도 다양한 인수 합병을 통해 위기에서 벗어난 전례가 있다. FCA는 이탈리아 피아트, 미국의 크라이슬러를 중심으로 여러 브랜드가 합쳐진 집단이다. 1969년대에 란치아, 1980년대에 알파로메로, 1990년대에는 마세라티를 합병하며 덩치를 키웠다. 크라이슬러는 1920년대에 닷지를 인수했고 1980년대에는 지프, 램 트럭을 추가하며 산하 브랜드를 늘렸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건강한 과거였다고 평할 수 있다. 그러나 2014년 피아트와 크라이슬러가 합병할 당시에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두 회사는 재무 구조가 탄탄하지 않았다. 더불어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친환경 및 자율주행 기술에 투자할 여력이 없었다. 피아트 크라이슬러 그룹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PSA는 프랑스 푸조를 중심으로 여러 회사가 합병한 형태다. 1970년대에 시트로엥을 인수하며 꾸준히 발전을 이뤘으나 2012년에는 재정위기로 크게 흔들렸다. 당시 프랑스 정부와 중국 둥펑자동차의 수혈을 받아 겨우 살아남았다. 이어 2017년 GM으로부터 오펠과 복스홀 브랜드를 사들이며 공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하지만 결국 PSA도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다. 미래 먹거리를 준비할 여력이 부족했다. 자신들이 미래를 준비하도록 도와줄 누군가와 손을 잡아야 했다.

FCA와 PSA가 손을 잡은 이유. 전략적 인수 합병이라는 쓰디쓴 배경이다. 한편으론 서로가 힘을 합치는 아름다운 과정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결국 판매 부진으로 어렵고 힘없는 회사들이 기술과 인프라를 공유하기 위해 합친 셈이다. 그렇게 합치고, 합쳐서, 드디어 세계 자동차 판매량 4위 회사가 됐다. 기존 세계 자동차 판매 4위 자동차 회사가 현대기아자동차였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스텔란티스 그룹은 참 험난한 여정으로 여기까지 왔다.

다시 판매랑 이야기로 돌아와서. 전 세계의 독립적 자동차 회사는 2백여 개다. 이 중 연간 10만 대 수준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자동차 회사는 60여 개에 달한다. 14개 브랜드가 속한 스텔란티스 그룹은 브랜드 규모 측면에서 시장의 20퍼센트가 넘는다. 그러니 이들이 내세운 자동차 시장에서 제품 판매 점유율 9퍼센트는 흥미를 끄는 수준은 아니다. 물론 판매량이 모든 브랜드 가치의 절대적 기준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마세라티와 같은 하이엔드 프리미엄 브랜드와 란치아처럼 대중 브랜드가 같은 기준에서 비교되기는 어려우니까.

그렇다면 기업의 가치를 나타내는 시가 총액으로 비교하면 어떨까? 스텔란티스 그룹은 출범 직후인 1월 18일 파리와 밀라노, 1월 19일 뉴욕에서 거래를 시작하며 3개 증권 시장에 상장됐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3월 11일)에는 시가 총액이 63조 8천7백53억원이다. 이는 현대기아, 포드, 길리 같은 회사보다는 근소하게 높으면서 BMW 그룹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 위로 제너럴모터스, 다임러, BYD, 폭스바겐이 있다. 여기서 큰 차이로 토요타(2백40조 5천6백40억 원), 그리고 엄청난 차이로 테슬라(7백26조 5천2백46억원)가 존재한다.

따지고 보면 고작 연간 50만 대의 자동차를 만드는 테슬라의 기업 가치가 토요타, 폭스바겐, 벤츠, BMW 등 스텔란티스 위에 있는 모든 자동차 회사의 기업 가치를 더한 것보다 크다. 시가 총액 비교가 아니라 주당 순이익으로 보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진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결국 이런 표면적 비교는 크게 의미가 없다. 하지만 짐작은 가능하다. 스텔란티스 그룹이 인수 합병으로 덩치를 키우는 것은 일시적인 성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결국 기업의 가치는 그 속에 담긴 철학이나 미래 지속 가능성을 통해 입증할 수밖에 없다. 탄탄한 제품 포트폴리오로 소비자를 사로잡고, 꾸준한 기술 투자로 미래 세상을 바꿔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스텔란티스 그룹은 당장의 합병보다 앞으로 운영이나 효율성 강화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당장 14개 브랜드에 속한 기술을 조합해보더라도 제품 라인업을 효과적으로 구성하는 데 문제가 있어 보인다. 자동차 하나를 만들어 여러 브랜드가 엠블럼만 바꿔 다는 전략은 이론적으론 효율적이지만 최근 시장 상황의 트렌드와 어울리지 않는다. 이미 실패한 전적도 여럿 있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전혀 다른 시장에 판매되는 제품은 공유도 어렵다. 미래를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 독자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에서 스텔란티스는 출범 후 전기차와 모빌리티 등의 미래 기술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계획에 따르면 2021년 새롭게 등장할 제품은 전기 구동 자동차 10종. 여기엔 순수 전기차뿐 아니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와 하이브리드 차(HEV)도 포함된다. 기존 FCA와 PSA가 보유한 전기 구동 모델까지 포함해 총 39개 제품이 전동화로 확대된다는 의미다. 게다가 2025년부터 출시할 신모델은 모두 전기차가 될 것이라고 한다.

믿기 어렵지만 그룹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인 지프도 전기 구동 기술로 서서히 전환된다. 실제로 오프로드의 강자 랭글러는 전기차 콘셉트 모델의 탄생을 예고하는 자료를 선보이며 향후 반자율 주행 기술이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랭글러처럼 오프로드 브랜드 가치가 핵심인 제품은 첨단 기술을 이용한 전동화를 늦추는 데 힘쓸 겁니다.” 불과 수년 전, 신형 랭글러를 개발한 엔지니어에게 물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행보다. 신속한 변화는 긍정적인 신호다. 스텔란티스 그룹의 운명은 전적으로 운영에 달렸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과 경영 상황에 맞춰 파편처럼 쪼개진 브랜드를 그룹 관점에서 일관성 있게 이끌어야 한다. 이 어려운 임무를 전 PSA그룹 CEO인 카를로스 타바레스가 맡는다. 추가적인 인수 합병이 해법은 될 수 없다. 자체적으로 브랜드를 강화하고, 소비자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 거대한 은하가 스스로 환하게 빛나야 하는 시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