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 작품 속의 얼굴들 | 지큐 코리아 (GQ Korea)

고미술 작품 속의 얼굴들

2021-04-12T16:18:05+00:00 |culture|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다.

1837년? 그림이 그려진 시기를 재차 확인했다. 현시대가 늘 정점이리라 여기는 어리석은 현대인에게 184년 전에 그린 이 ‘그린 틴트 선글라스’는 어딘가에 젠틀몬스터라 적힌 2021년 광고는 아닐까 눈 비비게 만드는 놀라움이다. 그림을 소장한 미국 클리브랜드 뮤지엄의 전 큐레이터 마크 콜에 따르면 초상화의 주인공인 나다니엘 올즈는 그 이름만 남아 있을 뿐 어떤 사람인지 기록에 없다. 다만 마크 콜이 독특한 안경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었다. “1800년대 초반에 아르간 램프 Argand Lamp가 등장했어요. 고래기름을 태워서 기존 실내등보다 불꽃이 밝고 강했죠. 올즈가 착용한 안경은 그 불빛으로부터 시력을 보호하려는 용도로 보입니다. 이 시대 그림에 아르간 램프가 등장한 적은 종종 있지만 이런 시력 보호 안경을 낀 인물이 나온 경우는 매우 드물어요.” 보호 안경을 써야 할 만큼 밤낮으로 아르간 램프를 가까이 두고 생활한 이라면 소설가였으려나. 혹은 깨알만 한 숫자를 들여다보던 회계사였을까. 1837년의 나다니엘 올즈가 무슨 일을 하던 이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밀레니얼적인 안경에 굴곡돼 더욱 커 보이는 눈동자에는 괴짜의 호기심이 비친다. 신문물에 기꺼이, 기쁘게 반응하고야 마는 담대함.

옅게 벌어진 입, 그림자 너머 풀려 있을 것만 같은 동공. 벌거벗은 남자의 얼굴에는 나른함이 흘러내린다. 그에게 매달린 여자와 이들을 어둠 속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형체까지 보고선 쾌락에 취한 그림이로구나 결론 지었다. 그러나 그림 제목에 언급된 남녀의 이름은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단테 <신곡> 지옥 편 제5곡의 등장인물이자 금지된 사랑을 나누다 살해당하고야 마는 이들 아닌가. 쾌락에 젖어 보이던 남자의 표정은 사실 죽음과 가까워지는 중인 것이다. 쾌락의 기쁨과 죽음의 고통. 그 극과 극의 감정이 한데 뒤섞일 수 있을까, 파올로의 아슬아슬한 표정을 바라보며 곱씹는다. 그가 고통의 경지에서 맞이한 감정은 무기력감이었을까, 바스라지기 전 반짝 타오르는 불꽃 같은 무엇이었을까. 문득 <뮤지엄 게이트>의 저자 조새미 작가가 추천한 어느 작품이 겹쳐졌다. “베르니니 대표작에 성 테레사가 꿈에서 천사가 쏜 뜨거운 황금 화살에 맞는 순간을 표현한 조각 ‘성 테레사의 환희’(1645~1652)가 있어요. 엄청난 고통과 함께 이루 말할 수 없는 엑스터시, 그 희열을 표현한 작품이거든요. 굉장해요.” 고통과 쾌락. 아픔과 희열. 사랑과 증오. 기쁨과 슬픔. 그러게, 끝과 끝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미 엮여 있는 것을.

“미술사학자 E.H. 곰브리치가 쓴 <서양미술사> 440쪽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는 그때까지 미술의 영역에서 한 번도 시도된 일이 없는 얼굴 표정의 격렬함이 표현되어 있음을 알게될 것이다.’ 베르니니의 조각을 두고 한 말이죠.” <뮤지엄 게이트>의 저자 조새미 작가가 ‘Head of Proserpina’를 바라봤다. 베르니니가 저승의 왕 플루토가 아내로 삼고자 프로세르피나를 끌고 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 ‘Pluto and Proserpina’ (1621~1622)의 습작으로 추정된다. 분노와 슬픔과 애절함이 휘몰아친다. 그러나 이는 베르니니 제자들의 습작 혹은 모방품으로 추측된다. 매끈하게 표현해내는 베르니니의 테크닉과 달리 볼에 남은 지문과 결이 증거다. 조새미 작가가 베르니니의 조각과 마주했던 로마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조각 주위를 360도 돌면서 볼 때의 그 공감각이란 경외심이 들 정도죠. 디지털 미디어에 노출된 21세기 인간도 이런데 ‘복제’라는 경험이 없던 그 시대 사람들이 가졌을 경외심은 비교할 수 없겠죠.” 슬픔, 공포, 놀라움, 이루 말로 못 할 어떤 감정. 인간만의 것인 줄 알았던 영역을 대리석으로 옮겨 빚어낸 베르니니의 숨결 앞에서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아기동자일까. 단발 같은 머리 형상에 짙은 눈썹이 귀여워 머리칼이 흐트러지게 쓰다듬어주고 싶다가도, 희로애락이 쏟아지는 서양화 속 인물들에 비하면 통달한 듯 고요한 표정 앞에서 가만히 두 손 모으게 된다. “아주 희소한 경우예요.” 국립중앙박물관 이정인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이 신원 미상 인물은 특이 사례다. “유색으로 보아 제작 시기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경으로 보이는데 당시 백자는 반상기나 문방구처럼 생활용기 위주이지 이런 인물상은 희귀하거든요. 누군가 특별히 주문해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표정도 잘 보이고, 잘 만들었어요.” 단발머리가 아니라 두건을 쓴 것이라 추정되고, 짙고 두꺼운 눈썹은 잘 번지는 철화 안료가 만든 실수 혹은 필연에 가깝다. 누가, 무슨 용도로, 어떤 마음으로 이 얼굴을 빚었을까. 정각에 모시기 위한 오백 나한 중 한 명일 수도, 죽은 이를 위한 봉안용일 수도 있겠으나 이는 관례에 벗어난 예라서 단정하기 힘들다는 전문가의 말을 들으며 상상해본다. 친우를 위한 선물이었을까, 연인의 안녕을 바라는 기원이었을까. 추측성 발언을 삼가고자 단단하던 이정인 학예연구사의 목소리가 잠시 느슨해졌다. “보통 만든 사람 얼굴을 닮는다고도 하는데, 모르죠.”

하나님을 믿느냐는 질문과 마주치면 “아니오”라고 답하는 사람으로서 종교화가 근간을 이루는 중세 서양 미술을 볼 때면 탄성보다 의구심이 앞섰다. 왜 다들 난처한 표정일까. 왜 잘린 목을 쟁반에 올려둘까.(후에 안 사실로는 성인의 순교를 의미하거나, 죽음을 극복한 성인의 모습을 추상하는 것이라고 한다.) 불손하게도 신앙심이 얕디얕아 신과 성인의 세계를 다룬 종교화와는 요원했다. 눈물 맺힌 이 뺨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바느질하는 아이와 생각에 잠긴 어머니를 그린 그림이겠거니 여겼다. 그러나 아이의 무릎에 놓인 것은 가시덤불이었고 멀리 응시하는 어머니의 눈에 맺힌 것은 눈물이었다. 그림을 그린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은 관조적 정물화와 금욕적 종교화로 저명하다. 그는 성경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취하기보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그리하여 이 그림에는 훗날을 암시하는 듯 가시에 손가락이 찔려 한 방울 피를 흘리고 있는 아이(예수)와 그 아이의 앞날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 눈물을 떨구는 어머니(성모 마리아)가 담겨 있다. 묵묵히 눈물짓는 어머니를 보고서야 인간이 그토록 찾는 신의 존재를 더듬어본다. 막아서지 못할 만큼 굳게 고행길을 찾아 나선 어떤 존재에 대하여.

이제 막 방으로 들어와 창문을 열고 바람을 들인다. 외투도 벗기 전에 서둘러 편지 봉투를 뜯는다. 마주한 편지지 위에는 무어라 적혀 있을까. 멀리서 봐도 잔뜩 힘이 들어간 미간을 통해 그 내용의 무게를 가늠해본다. 제목에는 익명의 예술가처럼 묘사돼 있지만 이 그림은 작가 레옹 코그니에의 자화상이다. 프랑스 출신의 낭만주의 화가인 레옹 코그니에는 1817년에 역사 회화로 프랑스 예술원이 수여하는 ‘로마 대상 The Prix de Rome’ 을 수상해 로마에서 5년 동안 유학하는 기회를 얻는다. 타국에서 보내는 일상이 외롭지는 않았을까. 편지로밖에 소통할 수 없었던 그 시절, 이 얇은 종이 한 장이 얼마나 두툼한 안식처였을까. 개운하게도 그는 그림 뒷면에 메시지를 남겨두었다. “1817년 가족이 보낸 첫 편지를 받았을 때의 내 방.” 이제야 슬쩍 올라간 그의 입꼬리가 보인다. 미국 기반 디지털 도서관인 인터넷 아카이브 archive.org의 기록에 따르면 레옹은 곧이어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당신은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이 무엇인지, 고대 조각품, 거장의 그림, 로마인은 어떻게 생겼는지 물었지.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프랑스 국경을 넘어 지나온 이 모든 자연의 아름다움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