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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2017.11.25GQ

히로시 이시구로는 무서울 정도로 인간과 닮은 안드로이드를 만든다. 하지만 그의 진짜 목표는 인간이 아닌 인간관계다.

1 2002년 여름, 일본 오사카 대학교의 연구실에서 어린아이 같은 통통한 볼, 어깨까지 오는 검은 머리, 눈썹 위까지 오는 앞머리를 한 두 소녀가 형광등 불빛 아래 마주 보고 서 있다. 그중 하나는 다섯 살 소녀, 다른 하나는 그 소녀의 몸과 똑같은 크기로 복제한 안드로이드다. 둘의 첫 만남이다. 소녀는 복제 안드로이드의 눈을 열심히 들여다본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뻣뻣해 보이는 안드로이드도 마치 소녀를 보는 것 같다. 이들을 촬영하는 남자가 있다. 소녀의 아버지이자 안드로이드의 제작자다.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그가 묻는다. “말 걸어보고 싶니?” 소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아버지 쪽을 보았다가 다시 안드로이드를 본다. “말 시켜봐! 안녕, 이라고 해보렴.” 소녀는 아버지의 말대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로봇에게 “안녕”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딸에게 다른 말을 시킨다.

“놀자.” 안드로이드는 고개를 움직인다. 카메라 뒤 아버지는 키득거리지만, 소녀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자신의 복제 안드로이드를 쳐다볼 뿐이다. 두 소녀 모두 살아 있는 생물 같은 동작은 별로 하지 않는다. 둘 다 일정한 빈도로 눈을 깜빡이고, 고개를 양옆으로 갸우뚱한다. 인간인 소녀는 풍부한 감각 기관을 통해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안드로이드는 실리콘으로 된 피부 안의 서보모터에 의해 움직인다. “같이 놀기 어렵니?” 아버지가 묻는다. 딸은 그를 보았다가 다시 안드로이드를 본다. 안드로이드의 입은 죽어가는 물고기처럼 조금 벌어졌다 닫힌다. 아버지는 웃는다. “그 아이가 뭐 먹고 있니?” 딸은 대답하지 않는다. “기분이 이상해?” 아버지가 묻는다. 기나긴 몇 분이 흐르고, 소녀의 호흡이 거칠어진다. 소녀는 울음을 터뜨린다. 그날 밤 교외에 있는 집에서 아버지는 후대를 위해 영상을 컴퓨터에 옮긴다. 그의 이름은 히로시 이시구로다. 그는 이것이 현대적인 안드로이드의 최초 기록이라고 믿는다.

2 그로부터 15년 동안 이시구로는 약 30개의 안드로이드를 만들었다. 거의 다 여성형이었다. 그중에는 뉴스 캐스터, 배우, 패션 모델의 복제 안드로이드도 있었다. 이것들은 대중에게 수없이 공개되었다. 카페와 백화점에서 선보였고, 쇼핑몰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극장에서 연기도 했다. 그러나 이시구로가 만든 ‘여성’은 주로 학문적인 연구에 사용된다. 나라에 있는 국제전기통신 기초기술연구소와 오사카 대학 지능로봇연구소(IRL)에서 실험이 이뤄진다.

IRA는 소박한 회색 대학 건물들 사이에 있다. 30명 정도의 학생과 조교수들이 컴퓨터 앞과 관찰실에서 일한다. 스웨터를 입은 젊은 남성들이 긴 복도를 걸어가고, 양말만 신고 열람실을 돌아다니고, 늘어선 랩톱 위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들의 주식은 레드불과 과자다. 엉망진창인 이곳을 이끄는 사람이 이시구로다. 그는 딱 보면 알아볼 수 있다. 몇 년 전에 찍은 홍보용 사진과 똑같은 모습이다. 모드족 같은 검은 슬림핏 옷과 검은 가죽 백팩, 육각형 선글라스를 쓰며, 새까만 머리를 귀를 덮을 정도로 길렀다. 쉰네 살의 이시구로는 지능로봇연구소의 소장이자 존경받는 교수다. 이곳엔 연구소가 두 개 있고, 일본 전역의 십여 개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로부터 1천6백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았다.(과학 및 공학 지원금 중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관리하는 비서만 7명이다.

인류에겐 인간과 외모가 비슷하고 인간처럼 움직이고 말하는 로봇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아직 없다. 인간의 존재감을 재현하기 위해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지금보다 더 깊어야 한다. 우리를 편하게 해주고, 신뢰를 주는 신호와 미세한 움직임을 알아야 한다. 인류는 언젠가 우리가 하는 일들을 직관적으로 해내는 기계 두뇌, 즉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아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 인공 지능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이시구로는 우리가 교류하고, 서로 믿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로봇의 외관을 인간과 비슷하게 만들수록 함께 살기 쉬울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시구로의 연구소에서는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한다.

인간-로봇 상호작용은 공학, AI, 사회 심리학, 인지 과학이 합쳐진 분야다. 우리와 로봇의 관계는 점점 진화할 것이다. 그것을 분석하고 이끄는 것이 목표다. 인간-로봇 상호작용은 우리가 기계와 언제 그리고 왜 교류하려 하는지, 심지어 왜 애정까지 느끼려 하는지 이해하려 한다. 그는 안드로이드를 새로 만들 때마다 목표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고 믿는다. 지능로봇연구소에서는 안드로이드를 따로 관리하고 있다. 빛을 차단하기 위한 커튼, 얇은 카펫, 케이블과 모니터와 가발이 잔뜩 놓인 선반이 있는 방에 이시구로가 만든 성인 여성 안드로이드들을 집합시켰다. ‘제미노이드 F 시리즈’다. 라틴어로 쌍둥이를 의미하는 제미너스 Geminus에서 힌트를 얻은 이름이다. 실존하는 인물을 모방해 만든 안드로이드이기 때문이다.

학생과 연구원들은 안드로이드를 마주한 자원자의 반응을 시험하고 기록한다. 안드로이드의 행동이나 생김새, 얼굴 표정과 섬세한 움직임을 본 자원자들이 낯설게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것에 끌릴까? 연구를 하면 할수록 의문은 많아진다. 안드로이드는 그 답을 찾는 데 사용된다.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또 인간과 안드로이드 사이에서 신뢰를 확립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안드로이드를 어떤 상황에서 인간처럼 대하는지. 그래서 이 같은 문제를 푸는 방법을 인간 공학이라고 할 만하다.

3 이시구로의 가족은 비와 호수의 서쪽에 있는 마을인 아도가와에 살았다. 비와 호수의 물은 교토를 거쳐 오사카만으로 흘러갔다. 고분고분한 학생이 많았던 학교에서 이시구로는 교사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교사가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것같이 수업과는 상관없는 그림을 종일 그렸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걱정했다. 교사였던 그의 부모는 일 때문에 이시구로를 거의 보지 못했다. 그는 외조부모의 손에 자랐다. 외할아버지는 ‘일본 남성다운 행동’이라는 전통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독실한 불자이자 농부였다. 그는 어린 이시구로에게 젓가락 쓰는 법, 기도하는 법, 새해맞이를 준비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시구로는 학교에서와는 달리 참을성 있게 이런 가르침을 받았다. 외할아버지가 가르친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완벽을 추구하는 방법이었다.

이시구로와 외조부모는 히라산 아래 살았다. 그는 뱀과 곤충들을 보러 산에 오르는 걸 좋아했다. 아래턱이 튀어나오고 매끈하고 까만 등을 지닌 사슴벌레 같은 생물을 보기 위해서였다. 곤충의 몸에 면도날이나 주운 금속 조각 등을 붙이기도 했다. 그가 보기엔 생물학적인 개선이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 하나는 물가에 있는 더 가난한 동네에 살았다. 그 친구의 부모는 장의사였다. 그들의 직업 때문에 자기 가족보다 못한 사람들로 여겨진다는 걸 그땐 이해하지 못했다. 히로시의 어머니는 둘이 친하다는 걸 알게 되자 그 친구를 만나지 말라고 했다. 그 뒤로 40년 동안 그 순간을 기억한다.

이시구로는 섬세한 아이였다. 태어날 때부터 지독한 피부 알레르기가 있었다. 등, 가슴, 팔은 보기 흉한 발진으로 뒤덮여 있었고 늘 가려웠다. 외조부모는 매일 밤 돌아가며 그의 곁에 앉아 그가 잠들 때까지 등을 긁어주었다. 일주일에 세 번씩 병원에 가서 아픈 주사를 맞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열두 살이 되자 스테로이드가 효과를 보였다. 그는 지금도 늘 스테로이드를 가지고 다닌다.) 자신의 몸이었지만 늘 낯설었다.

4 대학에 갈 나이가 되자 이시구로는 세 가지 기준으로 학교를 골랐다. 특이한 학생을 받아줄 만한 곳,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는 곳, 집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 1981년 겨울, 그는 후지산 근처에 있는 야마나시 대학교에 갔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더 즐겼다. 요리사, 방과 후 어린이 프로그램 감독, 가정 방문 교과서 세일즈맨 등으로 일했고, 그중 가장 벌이가 좋았던 것은 파친코에서 한 아르바이트였다. 그는 일본의 주류 인생의 야망을 모두 거부하는 대학 생활을 보내면서 동시에 아웃사이더 중에서도 가장 로맨틱한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언제나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수업을 빼먹고, 메모장과 연필을 챙겨 모터사이클을 몰고 근처 시골로 가서 풍경을 스케치했다. 나무의 묘하고 유기적인 형태, 봄에 피는 복숭아꽃 등에 집중했다. 드로잉과 유화를 주로 그렸고, 몇 점은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3학년 때 갑자기 그림을 그만둔다. 성공을 거두지 못할 바에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색맹인 탓도 있었다고 한다. 풍경화를 좋아했지만 녹색 스펙트럼 전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삶의 지향성조차 잃어버렸다. 어두웠던 시절이 계속되는 것 같았다.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길을 쭉 달려가다가 벼랑 끝에서 날아오른다면 기분이 어떨까? 자살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길이 나타났다. 야마나시 대학교에는 신생 분야인 컴퓨터 공학 수업이 있었다. 이시구로는 컴퓨터 그래픽이 비주얼 아트와 어떤 관계를 갖게 될지 생각해보았다. 당시 PC는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프로그래밍은 창조적인 일처럼 보였다. 잃을 게 별로 없다는 생각에 그는 전공을 바꾸었는데, 그러자마자 자신이 원하던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아무 규제도 없는 이 영역에서 화가처럼 생각하며 다른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학생들은 거대한 컴퓨터들이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는 방에 모여 작업했다. 인간보다는 기계에 맞춘 조건이었다. 이시구로는 자신의 명령에 응답하는 시스템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익혔다. 인간과 인간의 대화는 아니었지만 분명 대화는 대화였다. 하루 종일 실험실에서 보내느라 모터사이클은 곧 그만둔다. 새로운 대화에 익숙해지고, 큰 기계와의 대화에 빠져들면서 판타지가 생겼다. ‘이 언어를 인간의 언어에 가깝게 만든다면 컴퓨터가 우리를 이해하는 날이 올까?’ 인간과 소통하는 기계는 곧 그의 꿈이 된다.

이시구로의 첫 안드로이드는 2002년에 등장했다. 자신의 어린 딸 리사를 복제한 것이었다.

이시구로의 첫 안드로이드는 2002년에 등장했다. 자신의 어린 딸 리사를 복제한 것이었다.

5 교토 대학교 부교수가 된 이시구로는 2000년 자신의 첫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든다. 바퀴로 움직이는 로봇으로 관절이 달린 금속 팔을 흔들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로봇에게 애착을 가질 수 있으려면 인간 같은 외형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내에게 앉아 있는 모습과 숨 쉬는 모습, 무작위적 자극에 반응하는 모습 등을 촬영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인간 행동의 특징을 파악하고,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인간답다’고 해독하는 육체적 신호를 알아내려는 시도였다. 곧 인간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시구로는 안드로이드에 대한 반감을 알고 있다.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로봇을 보고 대중이 느끼는 두려움과 혐오감이 너무 강해서 로봇 공학에 대한 지원이 끊기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있다. 일반적이지 않은 시도를 했다가 학계에서 커리어가 엉망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새로운 로봇을 만들기 위해 그와 파트너십을 맺은 기업이 ‘곤충’ 같이 생긴 로봇을 만드는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하라고 주장하자 그는 참을성을 잃었다. 다음 프로젝트는 자기 마음대로 해보겠다고 결심하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를 만들기로 한다.

그는 ‘곤충’ 같은 로봇과 비교해서 보여주려면 같은 크기, 즉 1미터를 조금 넘는 키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방법은 어린이를 본떠 만드는 것이었다. 정확한 외형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모델이 몇 시간 동안 석고 틀 속에 들어가 있는 등 엄청난 고생을 해야 한다. 그가 허락을 얻어낼 수 있는 어린이는 자기 아이밖에 없었다. 이시구로에겐 리사라는 이름의 딸이 있었고, 아내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아내는 동의했다. 2002년 초 그의 가족은 대학교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 특수효과 아티스트들과 함께 이틀에 걸쳐 리사의 복제품을 만들었다.

연구실에서 리사의 어머니가 딸의 옷을 벗기고 작은 나무 단 위에 서게 한다. 이시구로와 아티스트는 리사의 상체와 허벅지에 연두색 페이스트를 바른다. 그 위에 석고에 적신 천을 붙이고, 마르는 동안 가만히 서 있게 한다. 당시 다섯 살이었던 리사에게 핑크색 타월을 두르고, 머리에는 고무 모자를 씌우고, 귀에는 솜을 넣어 막았다. 테이블에 눕게 한 뒤 얼굴에 스티로폼을 대고 포장 테이프로 감았다. 아티스트가 리사의 귀까지 차오르도록 석고를 부었다. 마지막으로는 얼굴의 틀을 떴다.

이시구로는 비디오카메라를 통해 아티스트와 아내가 아이 얼굴에 두꺼운 페이스트를 바르는 동안 어린 딸의 굳은 표정을 본다. “다 끝나고 나면 먹고 싶은 것 뭐든지 먹게 해줄게!” 이시구로가 말했다. 이마, 턱 주위, 목에도 페이스트를 바른다. 뺨과 코 주위에도 두껍게 바르고, 입에도 바른다. 어머니는 분위기를 밝게 하려고 웃는다. “눈 감고 있어. 자러 갈 때 처럼….” 내내 리사는 움직이지도, 소리를 내지도 않는다. 그 나이 아이로서는 놀라운 일이다. 눈꺼풀에도 바르고, 곧 얼굴 전체가 페이스트로 뒤덮인다. 페이스트는 이미 마르기 시작했다. 숨을 쉴 수 있도록 콧구멍을 남겨놓은 것을 제외하면 얼굴 전체가 페이스트로 덮였다. 이시구로는 카메라 뒤에 서서 “리사,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머리가 무거우면 그냥 뒤로 기대. 졸리면 자도 좋아”라고 말한다. 이어서 석고에 적신 천을 얼굴에 붙인다. 천이 굳기 시작한다. 이시구로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는지 카메라를 벽 쪽으로 향하더니 리사에게 다가간다. “코로 숨 쉴 수 있으면 아빠 손을 잡아봐. 울지 마. 울면 코가 막혀.”

몇 달 뒤 완성품이 도착했다. 이시구로와 팀원들이 상자를 열어보니 리사의 전신 실리콘 피부가 들어 있다. 고무로 된 나체 피부다. 발포 고무를 댄 기계에 이 피부를 입히고 연구소에 세워 놓았다. 이시구로의 아내는 로봇에 입히도록 딸의 여름 드레스 중 하나를 주었다. 이시구로는 이 로봇에 리플리 R1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R은 리사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그렇다면 실험 결과는 성공적이었을까? 반반이었다. 이시구로는 쭈뼛쭈뼛하며 제한된 움직임만 할 수 있는 저예산 안드로이드는 인간보다 좀비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시구로는 프로젝트를 자신이 신뢰하는 일부 내부자들에게만 공개했다. 하지만 곧 ‘로봇 공학자와 안드로이드 딸’이라는 소문이 퍼져나가 기괴한 전설이 되었다. 어떤 로봇 공학자는 이 프로젝트를 이야기하며 “미쳤다”는 단어를 썼다. 다른 과학자는 “이상하고 좀 무서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리플리 R1 제작을 통해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딸에게는 상으로 헬로 키티 인형 몇 개를 사주었다. 그렇지만 리사는 결국 울음을 참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두 사람은 그때 일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6 3년 뒤인 2005년, 이시구로는 레플리 Q-1을 공개한다. 이번엔 자금도 보다 넉넉했고 성인 여성(뉴스 캐스터)을 모델로 했다. 이 로봇은 상체를 부드럽게 움직이고, 녹음된 말에 따라 립싱크도 했다. 이시구로의 연구소에서 이 로봇으로 진행한 몇 건의 연구 결과는 일본의 주요 로봇 공학 잡지에 실렸다. 방송사에서 촬영을 오기도 했다. 한국에서 이를 베낀 안드로이드를 만들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시구로의 창조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면서 그의 본능은 정당화되었다.

하지만 그는 더 많은 것을 원했다. 이시구로는 타인이 자신을 복제한 로봇을 마주했다. 혼란스러운 경험이었지만, 자신도 느껴보고 싶었다. 게다가 그의 딸은 너무 어리고, 뉴스 캐스터는 성인이긴 하지만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둘 다 자신을 복제한 안드로이드와의 만남을 훈련된 과학자처럼 분석할 수는 없었다. 자신을 복제한 안드로이드가 필요했다. 화가였던 시절을 떠올리며 자화상의 다른 형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에 자신의 이니셜을 붙였다. 제미노이드 HI-1. 기계로 된 그의 쌍둥이였다.

H1-1은 이시구로와 똑같이 검은 바지를 입었다. 검은 양말과 검은 신발도 같다. 이시구로의 머리 모양과 같은 가발도 씌웠다. 한 단계 진전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인간과 똑같지는 않다. 다리 위에 얹은 손은 만져보면 고무 느낌이 난다. 눈빛은 이시구로처럼 강렬하지만, 딱딱한 밝은 색 플라스틱이다. 더 가까이 가면 숨겨진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딸깍거리는 소리가 난다. 인간 사이의 상호 작용을 재현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완벽하게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이시구로는 이 제미노이드로 인정받게 된다. 그는 자신의 복제품을 이용해 수십 건의 연구 논문을 냈다. 참여자들이 자신과 자신의 복제품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분석한 것이었다. 자신의 복제품과 함께 아시아와 유럽의 TV 쇼에 출연하고 세계를 돌며 강연도 했다. 그는 유명해졌다. 연구자에서 자신의 복제품을 만든 사람으로 변신했다. 컨퍼런스 초청이 줄을 이었다.

이시구로는 자신의 복제품이 세상에 존재하면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대학원 때부터 검은 옷을 입고 다녔다. 이제 검은 옷은 자신과 HI-1의 공식 유니폼이 되었다. 자신을 보다 명확하게 알게 되어 기뻤다. 하지만 이제 자연스럽게 변하고 늙어가는 자신의 인간 육체를 변함없는 안드로이드의 모습과 비슷하게 유지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자신과 안드로이드를 비교하고 그에 맞추게 되었다. 몸매를 안드로이드처럼 유지하고, 안드로이드에 의해 정의되고, 더불어 안드로이드에 의해 자신의 가치도 정해졌다. 안드로이드는 나이 들어가는 그의 몸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의식하게 만들었다.

학생들은 그와 제미노이드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교수님, 나이 드셨네요.” 몇 년 뒤, 마흔여섯 살의 그는 현재 자신의 나이를 반영하기 위해 얼굴을 새로 만들었다. HI의 두 번째 버전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몇 년마다 반복하려면 돈도 많이 들 테고, 점점 늙어가는 자신을 깨닫게 되어 자존심에 금이 갈 것 같았다. 이시구로는 논리적인 대안을 택했다. 자신을 아예 복제품에 맞추기로 한 것이다. 레이저 시술, 자신의 혈구를 얼굴에 주입하는 시술 등 성형 수술을 받았다.

식단을 조절하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시작했다. 이시구로의 머릿속엔 ‘안드로이드는 내 정체성이다. 나는 나의 안드로이드와 똑같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정체성을 잃어버린다’라는 생각이 가득 찼다. 대화를 하던 중 그가 말했다. “당신은 왜 여기 왔나요? 내가 복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진짜 이시구로에겐 관심이 없어요.”

이시구로는 인간의 감정이란 자극에 대한 반응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위적으로도 충분히 조정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시구로는 인간의 감정이란 자극에 대한 반응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위적으로도 충분히 조정할 수 있다고 여긴다.

7 2012년 겨울, 도쿄 백화점의 커다란 유리 진열장에 사람들이 모였다. 안에는 우아한 실크 옷을 입고 긴 갈색 머리를 커튼처럼 내린 제미노이드 F가 앉아 있다. 밸런타인데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누구를 기다리는 듯 장미 패턴 포장지로 싸인 선물 상자 더미 앞에 앉아 있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고 유리창 앞을 지나는 수천 명을 무시한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방금 받은 문자에 반응하는 것 같다. 구경꾼과 별로 교류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유지할 수 있다. 가까이 가면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예쁜 여자와 마주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우리는 스스로를 아주 복잡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인간관계의 기반은 아주 빈약할 때가 많다. 만약 문자를 주고받는 친구가 로봇으로 대체된다 해도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할 사람이 대부분이다. 인간이 타인이나 다른 생물, 심지어 사물과 공감하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2011년에 캘거리 대학교에서 진행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조이스틱으로 조작하는 나무 조각에도 금세 감정을 부여했다. 즉, 우리는 만물에 공감하도록 설계되어 나무 조각마저도 기꺼이 인간화한다는 것이다. 코미디처럼 웃긴 동물적 본능이자 무서울 정도의 취약함이다.

안드로이드의 외모가 인간과 가까워지면서 이야기가 훨씬 더 복잡해졌다. 인간과 비슷한 존재를 두려워하는 현상이 생기고, 익숙하지만 어쩐지 다른 존재를 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공감도가 크게 떨어진다. 제미노이드 F 첫 세대를 만든 이시구로와 샌디에이고의 캘리포니아 대학교는 공감과 관련된 뉴런에 대한 논문을 냈다. 이들은 20~30대 20명에게 영상을 보여주며 뇌를 fMRI로 스캔했다. 첫 번째는 이시구로가 만든 여성 안드로이드 영상, 두 번째는 같은 안드로이드지만 기계 장치가 몸 밖으로 드러난 안드로이드의 영상, 마지막은 안드로이드의 모델이 된 살아 있는 인간의 영상이었다. 참가자들은 손을 흔들거나 고개를 끄덕이고, 종이 한 장을 집어 올리기도 하고, 테이블을 천으로 닦는 안드로이드의 영상을 보았다. 세 영상 중 인간과 닮은 안드로이드의 움직임을 볼 때 두정엽 피질이 가장 활성화되었다. 이곳은 신체 움직임 감지와 공감 뉴런을 연결하는 곳이다.  실험을 마친 이시구로는 연구소로 돌아와 안드로이드의 사소한 움직임을 강화했다. 턱을 살짝 기울이는 동작, 고개를 돌리는 움직임, 웃음을 참는 표정 등 작지만 공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동작이다.

8 백화점에 제미노이드 F를 전시했을 무렵, 이시구로는 이혼한 지 얼마 안 된 도쿄의 게임 디자이너 텟짱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 미키와 연애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말을 했다. 이시구로는 두 사람을 나라에 있는 연구소에 초대했다. 학생들에게 여성 안드로이드를 원격 조종할 수 있게 해두라고 미리 부탁했다. 그는 텟짱을 원격 조정 자리에 앉히고 문을 닫았다. 미키는 다른 방에 데려가 제미노이드 F를 만나게 했다. 둘의 방은 붙어 있어서 서로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시구로는 텟짱에게 로봇을 통해 미키에게 말하게 했다. 그의 말은 컴퓨터 변환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제미노이드 F의 입술은 그의 말에 맞춰 움직였다. 텟짱의 움직임에 맞춰 고개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은 잡담을 나누며 놀았다. 텟짱은 여성이 된 자기 자신을 시험해 보았다. 미키와 이시구로는 크게 웃었다. 모니터로 미키의 얼굴을 살피던 이시구로는 그녀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미키에 대한 텟짱의 복잡한 감정을 아는 이시구로는 미키에게 “그녀에게 키스해보세요”라고 말했다. 미키는 주저하는 표정으로 텟짱이 조종하는 안드로이드의 볼에 뽀뽀했다. 텟짱은 그때의 느낌이 “천둥 같았다”고 한다. 둘 사이의 경계가 갑자기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했다. 텟짱은 지금도 이시구로의 기계가 둘의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덕택에 커플이 된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9 이시구로는 “사랑해”라는 말을 직접 녹음해서 안드로이드에 저장한 다음, 자신에게 여성의 목소리로 말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난스러운 말이었지만, 절반 정도만 농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런 대화가 필요하다고 믿으며 ‘진짜 대화’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다. “대화는 일종의 환상입니다. 나는 당신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라요.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내 생각뿐이죠.” 여러 해 동안 안드로이드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한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별 관심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늘 자신에 대해 생각합니다. 타인의 의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 그 이전에 나는 내 생각을 분명히 해야 하죠.” 달리 말하면 그는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밖에 볼 수 없으며,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는 것이다. “연결이란 무얼까요? 타인은 그저 거울일 뿐입니다.” 이시구로가 말했다.

그의 견해는 삭막하긴 해도 옳은 말이다. 우리 의식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우리가 결코 전부 공유하지 못할 정보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이 간극을 넘어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우리의 바람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욕구다. 이시구로는 이것을 언젠가는 인간을 닮은 기계가 충족시키리라 믿는다. 그는 공감이든 로맨틱한 사랑이든, 인간의 감정은 자극에 의한 반응과 다르지 않으며 조종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압축 공기 관절, 기계 눈썹의 곡선, 플라스틱 두개골의 기울임, 수년에 걸친 인간 견본 연구로 얻어낸 미묘한 움직임들을 통해 안드로이드는 그 간극을 메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교한 철학적 속임수일 수도 있겠지만, 필요를 충족한다면 그게 문제가 될까?

이시구로는 자살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두 번의 순간을 이야기한다. 처음은 서른여섯 살 때였다. 당시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빠져 있었는데, 수제자 하나가 컴퓨터 프로그래밍 시합에서 그를 이겼다. 10년 뒤엔 다른 학생이 논문을 더 날카롭게, 더 빨리 써서였다.(히로시는 논문을 쓰는 데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두 번의 위기 모두 자신의 일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찾아 극복했다. 하지만 이 두 번의 순간은 천천히 진행되는 두뇌의 노화를 막을 수 없을 거라는 공포를 키웠다. 그는 이미 집중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확신한다. 가장 두려운 것은 치매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없다면 아마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이유를 찾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이시구로는 대화란 일종의 환상이고, 자신은 상대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시구로는 대화란 일종의 환상이고, 자신은 상대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10 소르벨로는 매년 이시구로의 연구실을 순례하는 팔레르모 대학의 로봇 공학 교수다. 그가 안드로이드를 향한 성적 욕망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동안 많이 생각해본 주제임이 분명하다. “로봇과 키스하고 싶은 게 어떤 건지 상상할 수 있겠어요? 그런 걸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 간의 성적인 관계는 온갖 문제가 따르게 마련이라서 단순한 삶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고 그는 말한다. 그럴 경우 안드로이드와의 연애가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소르벨로는 그게 미래라고 말한다.

인간관계에서 궁극적인 육체적 행동은 아마 섹스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단순한 행동, 친근감을 확인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섹스가 순수히 육체적 교감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거의 대부분 육체적 경험일 때가 많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이론상으로 섹스는 안드로이드와의 그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소르벨로는 머지않아(그는 약 2050년이라고 예측했다) 로봇을 친구, 성적 파트너, 심지어 배우자로 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유자가 원하는 외모, 음색, 눈 색깔, 성격, 개인사와 사소한 농담을 기억하고 반응하는 능력을 갖춘 안드로이드를 만든다면 인간은 홀딱 반할 것이다.

<로봇과의 사랑과 섹스>의 저자 데이비드 레비는 저서에서 “매력적인 외모를 지닌 AI의 존재가 지성의 증명”이라는 앨런 튜링의 주장을 확장시킨다. “만약 로봇이 감정을 지닌 것처럼 행동한다면, 감정이 없다고 합리적으로 주장할 수 있겠는가? 만약 로봇의 인공 감정이 ‘사랑해’ 같은 말을 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그런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게 분명하다…. 만약 감성 지능을 갖춘 로봇이 ‘사랑해’, ‘너와 같이 자고 싶어’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의심해야 하는가?”

데이비드 레비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도 이런 기계와 다름없이 프로그램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에겐 호르몬과 뉴런이 있다. 우리의 감정이 생겨나는 경로는 프로그램된 것과 마찬가지다.” 즉, 인간의 감정도 AI와 마찬가지로 알고리즘에 따른다는 것이다. 그는 수십 년 뒤에는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차이가 다른 나라, 심지어 같은 국가 안의 다른 지역 사람들과의 문화적 차이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안드로이드와의 섹스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뿐 아니라 모험적인 성생활을 즐기는 사람들, 파트너가 아프거나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 한다. 이는 인간 본성과 친밀감에 대한 급진적인 생각이지만, 성욕을 해소할 수 있다면 굳이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한때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얻던 것을 이미 테크놀로지를 통해 얻고 있는데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그리고 상대가 인간이란 게 꼭 중요한 일인지도 의문이다.

이시구로는 안드로이드를 사람들에게 처음 보여준 뒤 변화가 일어났다고 이야기한다. 안드로이드가 인간들의 가면을 벗기고, 그들이 조심스레 숨겨왔던 욕망을 드러냈다고 말한다. 인간은 연결과 접촉을 갈망한다는 것이다. 이시구로가 이미 예상했던 바다. 업계 쇼케이스에서 여성형 안드로이드를 흘끔거리던 남성들이 로봇에게 키스하거나 만지는 일이 없도록 잘 감시해야 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2002년에 자신의 딸의 안드로이드를 만든 직후, 이시구로는 교토 대학교의 학생들을 통해 기계 같은 모습의 로봇과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로봇에 대한 반응을 테스트했다. 안드로이드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연구실 한가운데 놔두었는데, 곧 그 앞에서 일하는 게 불편하다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안드로이드가 자신을 지켜보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 뒤로 안드로이드는 벽을 보고 앉아야 했다.)

학생 중 하나가 이시구로 딸의 복제품에 애정을 품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그 학생은 낮에는 복제품을 연구했지만, 밤에 연구실에 혼자 남으면 플루트를 불고 말을 걸며 자기 연주가 어땠는지 물었다. 마치 이런 비밀스러운 방법을 통해야만 우정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사건으로 이시구로는 안드로이드가 예상치 못한 감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딸의 복제품은 최초의 안드로이드였어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도무지 예상할 수 없었어요.” 그는 레플리 R1을 오사카 대학교로 옮기고 안드로이드 사용에 대한 기본 원칙을 몇 가지 정했다. “깊은 밤에 사용해선 안 된다, 혼자 사용해선 안 된다.”

성인 여성의 복제 안드로이드를 처음 만들 때는 학생들이 연구소에서 무슨 짓을 할지도 걱정됐다. 껴안고 자고 싶어 할까? 그는 제미노이드 제작에 깊이 관여한 한 팀원이 ‘그녀’ 앞에서 눈에 띄게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시구로는 친절한 인간 여성은 그저 ‘진짜 인간’일 뿐, 자신이 만든 안드로이드처럼 ‘우아’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우리는 이상적인 파트너를 원하고, 안드로이드는 당신의 생각을 보여주는 아주 강력한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시구로가 말했다. 이렇게 보면 안드로이드와의 연애는 자신의 연장선에 있는 상대와 사귀는 것일 수 있다.

여성형 안드로이드에 대한 여러 남성의 반응에 그는 불안해졌다. 하지만 그건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도 했다. 2014년에 그는 여성의 미모와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함을 하나의 신체에 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다시 말해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직접 오사카의 인기 성형외과 의사들을 만났다. 또한 미스 유니버스 결승전 출장자들의 이미지를 분석했고,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그는 자신이 다른 로봇 공학자들보다 ‘아티스트’ 같이 생각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이시구로는 이 안드로이드의 3D 렌더링 작업에서 기술자와 두 번에 걸쳐 12시간 동안 작업했다. 눈이나 코를 조금만 바꿔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내 딸은 아니지만 내게 특별한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이시구로에게 매력적인 외모의 여성 휴머노이드 만들기를 왜 그토록 중요시하는지 묻자 그는 “사람들이 로봇을 삶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여자를 좋아하겠어요, 못생긴 여자를 좋아하겠어요?”(이후 그는 한 기업에서 열린 강의에서 “예쁜 여자가 화장실에 가는 모습을 상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아름다움은 차라리 안드로이드가 보여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이시구로는 대화하던 도중 뭔가 영감을 얻은 듯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서랍을 뒤져 검은 지퍼 백을 꺼냈다. 손 크기의 휴머노이드 피겨 두 개를 꺼내더니 “실험을 해보죠. 이 둘을 키스하게 만들어봅시다”라고 말했다. 한 사람씩 피겨를 붙들고 두 얼굴을 점점 가까이 댔다. 움직이지 못하는 피겨의 두 얼굴이 닿았다. “이상하지 않나요?” 선을 살짝 넘지 않았나 하는 기분이 든다.

11 이시구로는 안드로이드를 만들겠다고 생각했을 때 적절한 실리콘을 찾아보았다. 그는 수천 달러짜리 하이엔드 ‘러브 돌’을 만드는 오리엔트 인더스트리에 문의했다. 함께 시제품을 만들었지만 이시구로가 곧 관계를 끊었다. 유명세가 높아지자 그는 이런 관계가 어떻게 보일지 걱정했다. 일본 정부는 러브 돌과 관련된 일에 자금을 지원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섹스 업계는 정부의 승인이 없어도 승승장구 중이다. 잠시 협업했던 기간 동안 오리엔트 인더스트리의 사무실은 겨우 방 한 칸이었다. 거의 이십 년이 지난 지금, 오리엔트 인더스트리는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며 포즈를 조절할 수 있는 인형들만 판다.

이시구로는 인간과 로봇 간의 섹스가 우리 미래의 일부가 될 것이 분명하며 그게 언제가 될 것이냐만이 문제라고 확신한다. 그는 자신의 연구가 이 분야에서 아주 유용할 것임을 알지만, 존경받는 학자로서 상업 목적이 아니라 사회 개선을 위한 목적을 추구하고 싶어 한다. “장애인을 위한 것이라면 어떨까요? 꽤 괜찮은 섹스 돌을 만들면 성생활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사용하고 싶어 할 겁니다. 섹스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예요.”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생각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언젠가 내 복제 인간을 갖고 싶어요. 모두 그렇지 않나요?” 나와 똑같이 생긴 복제 인간이 있다면 어떨까? 몸의 형태를 석고로 뜬다. 신체 여러 부위를 틀로 만든 다음 조립한다. 얼굴은 실리콘으로 똑같이 만들어 기계 두개골에 씌운다. 이렇게 만든 신체 부위는 이시구로의 연구소에 배달된다. 포장을 풀고 조립한 다음 옷을 입히고 가발을 씌운다. 진짜 눈은 아니지만 그럴듯한 눈이 연구자들을 바라본다. 혹시 연구실에서 사용되지 않은 채 세상에 나간다면? 새 연극이나 안드로이드 오페라에 출연한다면? 여러 나라의 공연장을 돌아다니다가 안드로이드 공연이 끝나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 옷과 머리카락을 빼앗기고 고개를 숙인 채 관찰실 벽에 기댄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학생들은 밤에 맥주를 마시면서 복제 인간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며 놀지도 모른다. 모두 자신의 복제물을 갖고 싶지 않냐던 이시구로의 확신 섞인 질문에 동의할 수 없었다.

제미노이드 F는 극장에서 연기하며 세계를 돌았다. 2015년 영화 에서는 로봇을 연기했다.

제미노이드 F는 극장에서 연기하며 세계를 돌았다. 2015년 영화 <사요나라>에서는 로봇을 연기했다.

12 창조하고자 하는 히로시의 욕망은 개인적인 집착이다. 이를 몰아가는 건 로맨스보다는 자아다.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 동안, 이시구로가 자신의 여성 안드로이드에 대한 페티시를 보인다고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그가 만든 로봇의 팬과 일부 동료와는 다른 점이다.) 그는 창조자로서 갖는 권력, 인간의 감정적 유대에 대한 비밀을 언젠가 알아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더 큰 관심이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해결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가장 헐벗고 최소한의 구조로 줄일 수 있다면 그는 그렇게 할 것이다. 인간과 똑같은 실리콘 형틀, 완벽한 눈썹과 큐티클 등 세세한 것들이 존재 자체에서 관심을 돌리기 위한 속임수였다면? 이런 요소를 빼고 보다 본질적인 접근을 통해 안드로이드를 만들어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시구로는 이미 시도해봤다. 꿈에서 본 모습이라고 한다. 잠에서 깬 그는 클레이 모델을 만들었다. 텔레노이드는 키가 1미터 정도에 유령처럼 하얗다. 외계인처럼 얼굴이 매끈하다. 팔은 짧고, 다리는 마치 잘린 것 같다. 성기는 없고 엉덩이 아래쪽이 쭉 이어져 두 개의 구체를 이룬다. 부드럽고 흰 스판덱스가 목덜미 구실을 하며 머리와 몸을 잇고 있는 것 외에는 부드러운 플라스틱이 끊임없이 이어진 몸을 구성한다. 텔레노이드가 가만히 있을 때의 표정은 불안할 정도로 평화롭다. 어쩌면 깊숙한 검은 눈, 굳게 다물었으면서도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 입술, 잘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눈썹 때문일지도 모른다. 섬세한 이목구비는 여성스러워 보이기도, 어린 남자아이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어린아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차분해 보인다.

13 이시구로의 팀은 덴마크에서 온 사람들에게 최신 모델을 보여준다. 낮게 설치한 삼각대 위에 텔레노이드를 놓고 켜자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주위를 둘러보고, 짧은 팔을 움직인다. 움직임이 매끄럽고 자연스럽다. 우리에게 여성의 목소리로 일본어를 하기 시작한다. 텔레노이드는 미리엄이라는 여자를 대화에 끌어들여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은 원격 조정 상태지만, 이시구로는 몇 년 안에 자동으로 작동할 수 있길 바란다.

텔레노이드의 얼굴은 인간 아기가 가질 수 없는 차분한 권위를 내비치지만, 몸과 작은 몸짓은 원하는 게 많은 어린아이의 그것이다. 미리엄이 아이 같은 텔레노이드를 들어 앉는다. 둘은 아기에게 하는 것 같은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대화를 계속한다. 알고 보니 연구소에 갔을 때 만난 사람들은 이시구로가 협업하고 싶어 하는 기업
사람들이었다. 텔레노이드를 덴마크 전체의 노인 의료 시설에 배치하려는 계획을 세운 벤처 캐피털 기업이다. 여러 해 동안 이시구로는 자주 덴마크에 갔다. 히로시의 팀과 덴마크 기업 측은 현장 테스트의 마지막 단계까지 와 있었다. 그들은 곧 사업을 시작할 수 있길 기대했다. 모두 낙관적이었다. 실험 대상들은 휴머노이드와 금세 가까워졌다. 덴마크에서 벌인 행사에는 일본 대사와 덴마크 왕자가 참여했다. 왕자가 휴머노이드와 포옹하는 장면이 촬영되기도 했다. 그는 자기 아이를 안은 기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치매를 앓고 있다는 노인들이 있는 양로원의 영상은 아주 흥미롭다. 교토의 시설에서 알록달록한 터틀넥을 입은 한 여성이 텔레노이드를 안고 소파에 앉아 있다. 그녀를 돌보는 사람들은 그녀가 자신들과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녀는 휴머노이드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눈다. 1백 살이 넘은 한 여성은 책상 앞에 앉아 두 팔로 자기 몸을 끌어안고 있다. “그녀는 우울증이 있고 남과 이야기하지 않는다.” 히로시의 연구자가 말한다. 하지만 그녀를 돌봐주는 사람이 옆에 앉아 텔레노이드를 건네자, 그녀는 웃음을 지으며 텔레노이드를 끌어안는다. 이 영상은 기계가 감정적 연결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다. 하지만 그 연결은 무엇에 대한 것일까? 1백 살이 넘은 여성의 얼굴은 오래전 느꼈던 행복이 기억나서 그랬을까? “아직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텔레노이드를 좋아하는 사람은 예전에 아기가 있었던 사람들인 경우가 많아요.” 이건 외로운 노년을 사는 사람이, 팔다리가 없는 로봇을 껴안음으로써 아이를 갖는 즐거움을 다시 느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시구로는 처음 자기 딸의 안드로이드를 만들고 십여 년 뒤 다시 아기 로봇을 만들었다. 그 누구의 아이가 될 수 있는 로봇이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끌려들 수밖에 없다. 인간은 종종 외모로 타인을 판단하지만, ‘중립적 외모’의 추상적인 몸 앞에 그 모든 것은 증발해버린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남는 것은 그가 정의하려 애써온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과 인간적 존재였다.

14 지금 리사는 아버지의 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다. 몇 안 되는 여학생 중 하나다. 가족들은 기뻐하지만, 이시구로는 조금 당혹해한다. 부녀 사이에 이시구로의 일에 대한 대화는 없었다. “긍정적인 것 아니었어요?” 이시구로가 변명하듯 묻는다. “나는 리사의 안드로이드를 만든 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확신할 수 없어요. 그런데 리사가 내 연구실로 왔습니다. 이젠 사람들에게 변명을 할 수 있게 됐어요.”

히로시의 사무실과 가까운 회의실에서 리사를 처음 만났다. 리사는 아버지의 강의를 들은 적이 없고, 아버지의 책도 최근에야 처음 읽었다고 한다. 아직 전공을 정하지 않았지만 안드로이드 과학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야심의 깊이는 집안 내력이라고 한다. “인터넷 다음에 찾아올 혁신이 무엇이 될지는 몰라도, 난 그것에 참여하고 싶어요.” 아주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일에 끌려 들어간 것이(그녀는 긍정적이라고도, 부정적이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자신을 더 용감하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히로시가 자신의 복제 안드로이드를 만들었을 때 리사는 아홉 살이었다. 리사는 당시 대학교를 찾아가 아버지가 원격 조종하는 제미노이드를 만났다. “안드로이드보다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집중했어요.” 지금까지 리사의 기억에 가장 강하게 남은 것은 아버지의 존재였다. 보이지는 않지만, 벽 너머 다른 방에 있는 아버지.

15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연결은 무얼까? 우리를 지탱해주고, 외롭다는 느낌을 없애려면 인간 사이에 얼마나 연결이 있어야 할까? 몇 주 동안의 의미 없는 섹스 대신 텔레노이드의 육체적 위안을 선택하겠는가? 별로인 데이트 몇 번 대신 여자와 애정 어린 전화 통화 한 번을 하겠는가?(이 여성은 로봇이지만 당신은 그걸 모른다.) 춤을 추며 인간의 허리에 손을 얹은 느낌이 미래에 등장할 완벽한 실리콘 ‘피부’의 느낌과 같을까? 사람과 추는 춤이 제미노이드와의 춤과 의미가 같을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육체적 대용품으로는 목소리를 사용한다. 시간을 맞춰 통화를 하고, 문자를 보낸다. 모두 언어를 통해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깊고 음악 같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창문이 달린 구석 방에 있는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껴둔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로에게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 제목을 보낸다. 사진을 교환한다.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다고 상상하기 위해서다. 그가 전화기를 들고 고개를 기울이는 모습, 그의 목덜미에 살짝 들어간 곳을 떠올린다. 정말 사랑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다.

 

안드로이드 에볼루션 이시구로가 만든 복제품

2002 REPLIEE R-1 레플리 R-1

이시구로의 첫 안드로이드는 2002년에 등장했다. 자신의 딸을 복제한 것이었다. 겉모습은 인간 같았지만 덜컥거리는 움직임과 삐걱거리는 소리는 아직 기계적이었다. Photo / Osaka University

 

2005 REPLIEE Q-1 레플리 Q-1

공기를 주입해 인간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더 진짜처럼 보이도록 호흡이나 자세 바꾸기 등의 기능도 넣었다. 이 안드로이드는 2005년 일본 엑스포에서 첫선을 보였다. Osaka University and Kokoro Co., Ltd

 

2006 GEMINOID HI-1 제미노이드 HI-1

이시구로를 본뜬 첫 모델이다. 그의 연구소가 만든 로봇 중 원격 조정으로 걷는 첫 안드로이드이기도 하다. 이시구로는 마이크와 웹캠으로 자신의 복제품을 조종했다. Atr Hiroshi Ishiguro Laboratories

 

2010 GEMINOID F 제미노이드 F

연구소 밖에서 실험하기 위한 모델. 팔다리의 사용을 줄였다. 여러 국가에서 안드로이드를 위해 만든 연극에 출연했다. Osaka University / Atr Hiroshi / Ishiguro Laboratories

 

2010 TELENOID 텔레노이드

이시구로의 팀은 이 안드로이드를 보편적으로 만들기 위해 나이와 젠더 등의 요소를 제거했다고 한다. 양로원에 몇 개를 보내 벗으로 삼게 하기도 했다. Atr Hiroshi Ishiguro Laboratories

 

2011 ELFOID 엘포이드

텔레노이드를 작은 휴대전화 형태로 만들었다. 엘포이드는 통화하고 있는 상대가 20센티미터 길이의 이 장비에 들어 있다고 느끼도록 만들어졌다. Atr Hiroshi Ishiguro Laboratories

 

2015 ERICA 에리카

이시구로의 연구소가 만든 최초의 자율형 안드로이드다. 인간과 10분 동안 대화를 할 수 있고, 음성 인식, 적외선 인간 탐지 등을 할 수 있어 인간에 더욱 가깝다. Atr Hiroshi Ishiguro Laboratories

    에디터
    Alex Mar
    포토그래퍼
    Cait Opper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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