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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파트너가 되어주세요

2009.07.27GQ

하고는 싶은데 책임은 싫어서. 질척거리는 관계의 끝이 두려워서‘. 쿨’하게 즐기고만 싶어서, 누군가는 파트너를 찾는다. 혹은, 이미 찾았다.

모르는 여자를 만나서 술을 마셨다. 밥 때는 이미 지났다. 바는 1층에, 모텔은 3층에 있었다. 저녁은 둘 다 걸렀으니까, 취기는 오래된 약속 같았다. 빈속에 맥주 다섯 병을 나눠 마셨다. 안주는 반도 안 먹었다. 그렇게 세 시간을 같이 있었다. 마지막 한 시간을 보낸 곳이 1층일지, 3층일지, 아니면 차 안에서 몇 십 분을 더 있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이 여자와 간헐적으로 섹스하는 남자들의 숫자였고, 모호한 건 그들과의 관계였다.

“A씨와 마지막으로 섹스한 건 한 일주일 전이였어요.”

“그럼 B씨는요?”

“…어제.”

A와 B는 이 여자의 직장 동료들이었다. A가 상사, B가 부하직원이다. 서로에 대해서, 그 이상은 모른다. 말하자면, 둘이서 이따금씩 섹스를 하는 여자가 같은 직장에 있는 같은 여자라는 걸. A는 아내와 쌍둥이 자녀가 있고, B는 어린 여자 친구가 있으니까, 이런 건 굳이 알 필요도 없는 걸까? 여자와 남자 A, B사이의 중심축엔 섹스뿐이었다.혹은 술이었다. 주변엔 한 문장으론 정리할 수 없는 감정선들이 얽혀있었다. 나는 물었다.“ 시작은 언제였어요?” 상식적인 관계는 아니어서, 사실 관계부터 파악하고 싶었다.

“그게 좀 복잡해요.”

복잡하지 않은 게 이상하지. B와 여자는 3개월 정도 연인이었다.2008년 2월부터 5월까지였다. 섹스로 시작한 관계였고, 시작은 회사에서 으레 하는 회식날이었다.

“술 먹고 일어나보니 모텔이였어요. 한창 하고 있더라고요. 옷은 다 벗겨져 있고.”

“그거, 강간 아니에요?”

“그게… 제가 술 먹으면 남자한테 좀‘엥기는’것 같아요.”

헤퍼 보이는 여자는 아니었다. 눈은 희미하게 달무리가 어린 것같은 반달모양이었다. 그래서 단아했다. 피부도 달 같은 흰색이었다. 맥주를 두 병 정도 마셨을 때야 혈색이 좀 도는 것 같았다. 둥근 얼굴에 쌍꺼풀은 얇았다. 선덕여왕 같은 풍모를 하고 단옷날엔 뒤로 쪽진머리를 청포물에만 풀어 감을 것 같은 고전적인 얼굴이었다.

“엥긴’다고요?”

“네, 꺄하하하.” (하지만 이렇게 웃는 여자였다.)

“B와는 그렇게 첫 섹스를 하고, 자연스럽게 연인 같은 사이가 됐어요. 잘 될 것 같았는데, 3개월 후에 일방적으로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았죠. ‘넌 아닌 것 같아’라는 문자 한 통으로.”

하지만 문자 한 통으로 정리되는 관계는 없다. 하체가 얽혀있는사이니까, 문제는 더 어려워진다. 섹스는 헤어진 채 종종 이어졌다.그 때마다 회식이었고, 여섯시 반에 시작하는 회식은 머리 끝까지 취해서 모텔에 갔다 나와도 열두시면 끝났다. 그 새 생긴 B의 여자 친구한텐 “어, 지금 회식중이야, 나중에 전화할게”라는 한 마디로 들킬 일은 없었다. B와 하는 회식자리마다, A도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셋은 모두 같은 회사, 같은 부서에 근무하고 있었으니까.2008년 5월부턴, A와의 섹스도 시작됐다.

“A는, 제가 존경하는 상사에요. 집이 같은 방향이어서 같이 갔죠.5월이 맞을 거예요. 회식을 하고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제가 또 좀 그랬나봐요.”

“그랬다니요? 어떻게?”

취기를 빌려 몸으로만 대화를 시도하는 여자들은 종종 있다.‘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랄까. 이번에 술이 깼을 땐, A와 모텔에 있었다. 한창은 아니었다. 옷은 또 벗겨져 있었지만‘아직’이었다. 직전이었다. 그리고, 거부했다.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면서.

“술만 먹으면 왜 그러는 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A는 존경할 수 있는 남자예요. 마흔이면서 공부도 놓지 않고, 가정에도 충실하니까.”

“가정에 충실한 남자가….”

“그러니까, 원인은 저인 것 같아요. 술과 저죠, 아무래도.”

스물아홉 살 여자와 마흔 살 A 사이에 있었던 일은 에피소드로 접어 넘기기로 했었다. 퇴근길엔 동네에서 떡볶이를 나눠 먹고 헤어지곤 하는 담백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나마도 길지 않았다. 한 달이 한계였다. 회식이 잦은 회사였다. 한 달 후 회식이 끝나고 취기가 가셨을 땐, 또 A와 섹스 중이었다. 이날, A는 이미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여자에겐 거부할 명분이 없어 보였다.

“A는 나이에 비해 피부가 고운 남자예요. 그런 남자랑 살을 맞대고 있는 걸 좀 좋아해요, 제가. 그래서, 집에선 속옷도 안 입어요.”

“B도, 피부가 고와서 만나요?”

“그 사람은 그냥, 메신저 하다가 약속 정하고 만나는 사이?”

2008년 6월 이후부터 어제까지, 여자의 몸은 두 남자에게 열려 있었다. A와는 한 달을 못 넘기고 만나는 사이가 됐다. 잦을 땐 일주일에 세 번을 만났다. 만날 때마다 마무리는 모텔이었다. B와의 만남은 불규칙했다.“오늘, 한잔 할까?”B가 메신저로 걸어오는 대화의 끝도, 결국엔 모텔이었다. 어제는‘우리 섹스 하자’고 마음먹고 모텔에 갔다. 맥주와 먹거리를 사들고, 세 시간을 같이 있었다. 둘 다 야근 중이었던 어떤 날은 회사에서 속옷을 벗었다.

“들킬 염려는 없었어요. 평소엔 잠겨있는 회의실이니까. 남자들은 그런 거 좋아하죠? 제가 회사에선 유니폼을 입거든요.”

옆테이블엔 넥타이를 맨 남자 두 명이 불콰해진 얼굴로 앉아있었다. 맞은편엔 이십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들이 있었다. 한 명은 민소매 티셔츠를 입었다. 다른 한 명의치마는 짧았다. 엉덩이와 다리의 경계가 비져나와 보일만큼. 남자들은 이미 취했으니까, 이제 여자들이 취할 차례군. 그러곤 짝을 지어 3층으로 올라가겠지? 과한 상상은 아니었다. 매캐한 바 안에 있는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짝지었다.‘ 모텔 방 순환률’,‘ 한 타임에 세 시간’ 같은 짝짓기 언어들…. 남자와 여자는 골목마다 넘쳤고, 모자란 건 방일 수 있었다. 논현동 골목에서 한남대교를 건너 강북으로 이어지는, 빈 방을 찾아 2열 종대로 손잡고 나체로 걷는 남녀의 그림은 금요일밤 11시 서울이라서 그럴듯했다.

“A도 그런 말 한 적 있어요. 언젠간 회사에서 하고 싶다고.”

마흔 살 A에겐 아내가 있고, 서른세 살 B에겐 스물네 살 여자 친구가 있다. A와 B에게 이 여자는‘가끔 만나서 섹스하는 애’정도로정의할 수도 있었다. 여자에겐 몸을 섞는 두 남자가 있었지만, 동시에 아무도 없었다. 다만 두 남자와 번갈아 취해갔다. 에디터와 술을 마시는 동안, 문자 메시지도 두 남자에게서 번갈아 왔다. 여자는“몸이 안좋다고 하고 나왔더니”하고는 끝을 흐렸다.

이관계가, 지식검색에 올라오는 숱한 질문들에 대한 모범답안일 수도 있었다. 세 사람 사이에 일말의 감정이 없다면,‘섹스 파트너’라는 말은 합당했다. 여자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 붉어져 있었다. 묻지 않은 질문에 알아서 대답했다.

“A는, 생각하면 가슴이 좀 아파요.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래요? 아내도 있고 쌍둥이 자식도 있는 남자를? 그럼 B는?”

“3개월이라도 애인으로 지냈을 때의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말 못하겠어요. 저, 웃기지 않아요?”

웃기는 관계는 아니었다. 몇몇 친구들은 이 여자의 관계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넌 남자같이 섹스하는 구나.” 친구들은, 남자는 마음 없이도 할 수 있고 여자는 마음이 먼저라는 오래된 편견 속 어딘가에 있었다. 하지만 여자에겐 일말의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었다.‘ 마음이 헤퍼서 우유부단한 걸까’ 생각할 때, 여자는 또 한 번 묻지 않은 질문에 대답했다.

“제가 번외편 하나 들려드릴게요. 편의상 C와 D라고 부르기로 하죠. C는 스물두살 남자애, D랑은 친구. 저는 D를 먼저 만났고, 한두 달 뒤에 C를 만났어요.”

몸으로만 얽혔던 남자가 두 명 더 있었다. 이제, 네 명이 됐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언제’였다.

“2009년 1월부터 3월 정도까지 C랑은 잠깐 만났죠. 친구들 사이에서 C는‘일곱 번’이라고 불려요. 하루에 일곱 번 한 적이 있거든요.D는, 클럽에서 만나서 한 서너 번 했고.”

“피곤하셨겠네요, 두 분, 아니 세 분 다.”

빈속에 먹은 술이 뇌를 조여 왔다. 담배를 피웠을 땐 눈앞이 흐려졌다. 네 명의 남자와 얽힌 여자, 술을 마시면 알아서 열리는 여자, 이후엔 굳이 감정을 추슬러 담아줄 책임감도 필요 없는, 그래서 문란한여자…까지 생각이 닿질 않았다. 대신 갑옷처럼 완고해 보이는 출근용 정장 밑 속살을 생각했다. 아랫배는 반달 같이 소담하겠지, 가슴 어딘가엔 파란 핏줄이 보일 것 같았다.

“오늘은, 위험할 것 같지 않아요?”

여자는 취한 채 시선을 피했다. 오른쪽 팔에 얼굴을 괴고, 그 아래를 오랫동안 쳐다봤다. 그러다 말했다.

“이미 위험한 것 같아서, 뭐라고 말을 못하겠네요.”

말로 하는 얘기는 끝났다. 술값을 계산하고 나왔다. 모르는 여자를 만나서 술을 마셨고, 더 이상 알고 싶은 것도 없었다. 여자는 잠깐휘청거렸다. 그러다 허리에 손을 얹었다. 논현동 골목엔 마시고 잘 수 있는 숱한 간판들이 번쩍거렸다. 다양한 나체와 침대 위에서의 움직임에 대한 어떤 호기심들이, 골목마다 풍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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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정우성
    포토그래퍼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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