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픽사처럼 생각하기

2016.02.13GQ

픽사의 16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굿 다이노>가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픽사는 위기에 익숙했다. 픽사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CCO 존 라세터는 놀라는 연기를 잘했다.

존 라세터의 사무실. <토이 스토리>의 장난감으로 가득하다.

라세터가 캘리포니아의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 무대에서 환호하는 디즈니 팬 수천 명 앞에 섰다. 2015년 8월, D23 엑스포의 첫 날이고, 관중들은 미키 마우스의 귀, <겨울 왕국>의 공주, <스타워즈>의 광선검,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로 이루어진 바다다. 테 없는 둥근 안경을 쓴, 개방적이고 친근한 얼굴과 곰 인형 같은 체형을 지닌 58세의 라세터는 픽사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CCO다. 하지만 최초의 디즈니랜드와 아주 가까운 이곳에서 팬들의 반응을 보고 있자니 마치 월트 디즈니의 재림을 보는 것 같다.

관중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 디즈니는 74억 달러를 들여 픽사를 사들였고 픽사의 창의적인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라세터와 픽사 회장 에드 캣멀을 자리에 앉혔다. <언덕 위의 집>과 <브라더 베어> 같은 실패작을 만들던 디즈니는, 2006년 이후 <라푼젤>, <주먹왕 랄프> 그리고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번 애니메이션인 <겨울 왕국>을 내놓았다.

“지금 월트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놀랍습니다. 엄청난 스튜디오가 두 개나 있어요.” 라세터가 관중들에게 말한다. 이것은 앞자리를 메운 디즈니와 픽사의 동료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이곳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디즈니의 차기작들을 조금 보여 준 뒤 – 드웨인 존슨이 등장해 <모아나>를 홍보하자 관객들은 열광했다 – 라세터는 픽사로 넘어간다.

“올해 우리는 처음으로 오리지널 픽사 영화를 한 편이 아닌 두 편 내놓습니다. 그 뒤에는 사상 최고의 후보작들이 대기하고 있어요.” 라세터는 활기가 넘친다. 픽사의 엄청나게 높은 기준으로는 2011년 <카 2>와 2013년 <몬스터 대학교>의 평은 좋지 않은 편이었지만, 2015년 봄 <인사이드 아웃>은 큰 성공을 거뒀다. 박스 오피스에서 7억 7천만 달러를 벌었고(픽사 영화 중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2010년 <토이 스토리 3> 이후 가장 좋은 평을 받았다. 지난 11월 27일(북미 기준, 한국 개봉은 1월 7일) 개봉한 <굿 다이노>가 그와 비슷한 성공을 거둔다면, 올해 오스카에서 픽사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픽사 자신이 될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픽사의 성공률은 어마어마하다. 이 회사는 장편 영화를 고작 15편 만들었다. (<굿 다이노>가 열여섯 번째 작품이다.) 이 중 7편이 아카데미에서 최고 장편 애니메이션 상을 받았다. 두 번째로 많이 수상한 스튜디오는 드림웍스로, 2편이었다. 픽사는 오스카 12개를 받았으며 이를 제외해도 후보에 30회나 올랐다. 다 합치면 전 세계에서 90억 달러 이상을 벌었으며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월E> 등의 영화들은 최근 20년 동안 가장 견고한 문화적 상징이었다. 픽사엔 뭔가 비밀이 있는 게 분명하고, 그 비밀은 이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도 기적을 일궈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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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 프로듀서 데니스 림과 <굿 다이노>의 감독 피터 손. <굿 다이노> 콘셉추얼 아트 앞에서.

D23 무대에서 라세터는 <인사이드 아웃>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다음 픽사의 최신 영화 <굿 다이노>로 화제를 옮긴다. “난 이 영화를 사랑해요. 이 영화는 놀라운 변신을 거쳤습니다.” 라세터의 관중들 대부분은 5년에 걸친 개발 과정 중 이 영화가 어떻게 변했는지 잘 모른다. <굿 다이노>는 픽사 역사상 가장 어려운 영화였다. 픽사의 비밀이 뭔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굿 다이노>부터 시작해보는 게 좋겠다.

겉으로 보기에 픽사의 역사는 유례 없는 성공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의 실패 속에서 어쩌다 한 번 히트작이 나왔다. 실패를 포용해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픽사는 창작 과정 내내 집요하게 실패를 추구하고 받아들여 결국 절대 실패하지 않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독자적인 방식을 가졌다. 1999년의 <토이 스토리 2>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픽사 영화의 배급을 맡고 있던 디즈니는 <토이 스토리 2>의 비디오 발매를 주문했으나, 라세터와 캣멀은 영화의 질에 대한 타협을 거부하고 극장 개봉을 밀어붙였다. 개봉 일자가 다가오는 가운데, <벅스 라이프>를 만드느라 바빴던 픽사의 고위급들은 <토이 스토리 2>가 엉망이라는 걸 깨달았다.

데드라인을 9개월 남겨두고, 픽사는 영화를 통째로 갈아엎기로 결정했다. 스태프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야근하며 영화를 다시 만들었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토이 스토리 2> 역시 히트작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픽사 안에서 전설이 되었고, 이와 비슷하게 갈아엎는 과정을 겪은 영화들이 잇따랐다.

픽사는 영화가 그들의 높은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면 다시 시작한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어마어마하게 힘들어요. 거의 언제나 재앙에 가깝죠.” 라세터가 프레젠테이션 다음 날 디즈니랜드의 그랜드 캘리포니안 호텔 로비에 앉아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이야기를 바꾸어야 해요. 하지만 우리는 패닉에 빠지지 않죠. 우리는 우리의 제작과정을 믿고, 우리 자신을 믿어요.”

2013년 여름, 픽사는 위기에 빠져 있었다. 다음 영화인 <굿 다이노>가 잘 진행되지 않았다. 픽사 영화 상당수는 단순히 ‘만약’이라는 전제로 시작한다. ‘만약 장난감들이 살아 있다면?’ <업>의 공동 감독이었던 픽사의 베테랑 밥 피터슨이 이끈 <굿 다이노> 역시 간단했다. ‘공룡들을 죽인 소행성이 지구에 맞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어린 아파토사우루스 알로와 스팟이라는 인간 소년의 이야기다. 영화 속의 공룡들은 진화해서 말을 할 수 있지만 인간들은 미개한 상태로 남아 있다.

“시작 단계의 비전은 ‘소년과 소년의 개’ 이야기를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나는 이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죠. 픽사가 공룡 영화를 만든다?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라세터는 밝혔다. 그러나 3년 동안의 개발을 거치고 예정된 개봉 시기인 2014년 5월을 몇 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이 영화는 길을 잃었다. “복잡해졌어요. 자주 있는 일이에요. 복잡한 생각에 빠져서 인격, 개성, 감정을 위한 시간을 잃어버려요.” 더욱 나쁜 건 제작자들이 이 영화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는 사실이었다.

라세터와 캣멀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개봉일을 2015년 11월로 미루고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픽사는 새 영화를 매년 한 편 내놓고, 2년마다 속편을 내는 식으로 운영한다. <굿 다이노>를 미룬다는 것은 2014년이 2005년 이후 처음으로 영화가 없는 해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캣멀은 픽사에게 연기는 아주 중요한 선언이라고 말한다. “회사 안팎의 사람들에게 우리가 아주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거죠. 그게 픽사의 남다른 점이에요.” 캣멀이 설명했다.

“픽사가 흥미로운 점은, 구성원들이 영화를 얼마나 창조적이라고 느끼는지가 스튜디오의 사기와 직결된다는 거예요. 그들이 본능적으로 아직 충분히 좋지 않다고 느낀다는 걸 알 수 있는 거죠. <굿 다이노>를 만들 때도 그랬어요. 우리 모두 <굿 다이노>를 보고 있었고, 정확히 뭐라고 지적할 수는 없었지만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았어요. 결단을 내렸죠.” 라세터가 부연했다.

그 첫걸음은 밥 피터슨 대신 다른 감독을 구한 일이다. 할리우드에서 감독 교체는 드물지만(그리고 가끔은 아주 복잡하다) 픽사 영화는 제작 중에 인력 교체가 이뤄지는 일이 잦다. <토이 스토리 2>, <라따뚜이>, <메리다와 마법의 숲>도 비슷한 변화를 겪었다. “시간이 지나면 힘이 빠질 수 있고, 한복판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전체적인 시각을 잃거든요. 그 시점에서는 새로운 사람이 들어가서 새로운 판을 짜는 게 도움이 돼죠.” 캣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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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빌딩의 로비. 벽돌 색깔 하나하나까지 창의성을 키울 수 있도록 잡스가 직접 선택했다.

웨스트 버지니아 출신으로 부드러운 말투, 백발 머리가 눈에 띄는 캣멀은 픽사의 창립자일 뿐 아니라, 픽사 영화를 만드는 컴퓨터 그래픽의 선구자다. 그는 남다른 경영 접근 방식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에이미 월러스와 함께 쓴 2014년의 책 <창의성을 지휘하라>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마크 저커버그를 비롯한 여러 CEO가 이 책의 솔직함과 창의적 통찰에 찬사를 보냈다. (“에드는 모든 사람의 아빠 같은 사람이에요.” 라세터가 그의 동료를 보는 시각이다.)

그는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만 회사 전체의 창조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되는 덫에 빠질 수 있어요. 제일 중요한 건 이야기를 제대로 뽑아내는 일이에요.” 라세터는 피터슨 대신 피터 손을 골랐다. 손은 2009년 단편 <구름 조금>을 감독한, 픽사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뉴욕 출신의 손은 38세의 동안으로, 그의 외모를 따서 ‘업’의 보이스카우트 캐릭터 러셀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매우 골똘하며, 거의 언제나 야구 모자를 쓰고 있다.

손은 초안에 참여한 스토리 아티스트였다. 감독으로서는 첫 장편이었다. “우리는 감독을 영화에 배정하지 않아요. 우리는 훌륭한 스토리텔러인 사람들에게 모험을 걸고, 그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내기를 바라죠. 나는 그의 매력과 엄청난 유머를 알고 있었어요. “내 생각에 당신은 영화를 아주 잘 만들 것 같아”라고 했죠.” 라세터가 말했다.

손은 픽사의 베테랑 프로듀서 데니스 림, <인사이드 아웃>의 작가 멕 르포브, 새로 부임한 스토리 총책임자 켈시 만과 함께 초안으로 돌아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들은 작전실이라 불리는 작은 회의실에 틀어박혀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곁가지를 쳐내고, 이야기의 감정적인 핵심을 찾는 작업이었다.” 손이 설명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소년과 소년의 개’ 이야기를 만든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TV 쪽에서 일하다 <몬스터 대학교> 때 픽사에 합류한 만이 말했다. “작은 부분들은 유지했지만, 다른 것은 모두 새롭게 시작했어요.”

픽사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브리지에서 차로 15분 거리인 작은 산업 도시 에머리빌에 있다. 거대한 룩소 스탠드와 공 – 픽사의 첫 단편인 1986년작 <룩소 주니어>의 주인공 – 이 건물 밖에 자랑스럽게 서 있다. 픽사의 전 CEO인 스티브 잡스가 디자인했고, 2012년 그의 이름을 따 다시 이름 붙인 스티브 잡스 빌딩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뜻밖의 재미가 가득하다. 널찍한 중앙 아트리움에는 카페, 후반 작업실, 상영실 등이 있다. 동료들이 우연히 마주쳐 대화하게 하려는 목적이다. (처음에 잡스는 중앙 아트리움에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 한 개씩만 두고 싶어 했지만 좀 지나치다 싶어 포기했다.) “정말 언제나 우연히 마주쳐요.” 캣멀이 그의 사무실에서 말했다. (캣멀의 수수한 사무실은 옆에 있는 라세터의 사무실과 거의 흡사하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장난감과 기차 모형으로 가득하다.) “이 건물 구조의 또 하나의 장점은, 뭔가 좋은 일이 생기면 회사 전체에 그 에너지가 퍼진다는 거예요.”

애니메이션은 1층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서 만든다. (이 건물과 픽사 전체는 초창기부터 뉴욕의 지명을 따서 썼다.) 직원들에게 자신이 일하는 공간을 꾸미도록 장려한다. 극단적일 때도 있다. 구석과 복도에는 화려한 사원, 멕시코 타코 식당, 정글에 추락한 비행기 같은 모습의 사무실들이 있다. 사무실 사이 공간에는 숨어 있는 바, 담소를 나누는 공간, 직원 밴드 무대 등이 있다. 창조성의 천국이다.

픽사에는 다른 건물이 몇 채 더 있고, 축구장, 수영장, 농구장, 체육관도 있다. 직원들에게 그림부터 태극권까지 다양한 수업을 제공하는 픽사 대학교도 있다. 작전실은 어퍼 웨스트사이드에 있다. 포스트잇이 벽을 뒤덮고 있다. 갈겨 쓴 메모, 모든 장면의 스케치, 진척 상황 등이 담겼다.

Film Editor Stephen Schaffer works on a sequence from "The Good Dinosaur" in his office, as seen on July 31, 2015 at Pixar Animation Studios in Emeryville, Calif. (Photo by Deborah Coleman / Pixar) ?ƒ2015 Disney??¡ËPixar. All Rights Reserved.

편집자 스티븐 샤퍼가 최종 컷을 보고 있다.

<굿 다이노>의 새 이야기의 전제는 더 단순하다. 아버지를 잃은 알로는 강물에 떠밀려 집에서 먼 곳까지 간다. 거기서 알로는 스팟을 만나고, 스팟은 알로가 집에 돌아가는 것을 도와준다. 더 풍부한 감정적인 핵심을 담은, 더 명확한 이 이야기는 통과되었다.

진짜 스토리 작업이나 아트 작업이 시작되기 전, 모든 픽사 영화는 먼저 조사를 거친다. 라세터는 조사에 사로잡혀 있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모든 팀에 엄청난 양의 연구 조사를 시켜요. 그들을 세계 어디로든 보내죠.” 예를 들어 <카>의 영감이 되었던 가족 자동차 여행에서, 라세터는 66번 국도의 아스팔트가 갈라진 사진을 찍어두었다. (“길가에 앉아서 사진을 찍었죠. 미친 짓이었어요.”) <라따뚜이>를 찍을 때는 영화 제작자들이 미슐랭 별 3개 레스토랑에서 셰프 수련을 받았다. 여자아이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 <인사이드 아웃>을 찍을 때는 제작팀이 심리학과 신경과학을 공부했다. “연구 조사를 통해 이야기와 캐릭터, 중심 플롯, 세부 사항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죠.”

<굿 다이노>를 찍을 때는 황야로 나갔다. 다시 제작할 때 촬영 감독으로 합류한 섀넌 캘러헌은 적당한 곳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주말에 미국 북서부 산맥의 그림을 그리곤 했다. 특히 몬태나와 와이오밍의 그랜드 티턴 국립공원에 자주 갔다.

“‘길을 잃어버리자’고 계속 말했어요. 캐릭터에게 일어나는 일을 경험하면 어떨지 알고 싶었죠.” 프로듀서 데니스 림은 말했다. 손과 림을 포함한 촬영팀은 며칠 동안이나 그랜드 티턴 국립공원에서 지내며, 강 장면 연구를 위해 스네이크 강에서 래프팅을 하기도 했다. 소를 키우는 목장도 가보았는데, 촬영팀 대부분이 첫 경험이었다. 그로 인해 티라노사우루스 가족이 대본에 들어갔다.

손은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위험에 큰 인상을 받았다. “강 가이드들은 생존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어요. 그들은 ‘저기서 산사태가 일어났어요’ 라고 말했죠. 그들은 정말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있었지만 그곳에는 정말 위험한 것도 있었어요. 우리는 자연이 그저 배경에 불과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자연은 이야기의 캐릭터가 되었죠.” 아트룸의 벽은 영화의 콘셉트 아트 천지다. 연구 조사 출장에서 찍은 사진도 몇십 장 붙어 있다. 덤불, 나무, 폭포, 신기하게 생긴 바위 등이 모두 자세한 기록으로 남았다.

배경은 <굿 다이노>의 큰 어려움 중 하나였다. 영화의 전반적인 모습을 만드는 데 제작진은 자연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와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 캐롤 발라드의 <블랙 스탤리언>, <울지 않는 늑대> 등이었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는 만들어진 적이 없어요. 대자연으로 나가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죠.” 라세터가 덧붙였다. 자연이 풍성하고 위험해 보이게 하기 위해, 픽사는 초현실적 스타일을 추구하기로 했다. “우리는 사진처럼 느껴지게 만들기로 했어요.” 라세터에 이어 캘러헌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의 충고는 ‘나는 실제와 똑같이 보이는 걸 원하지 않아요. 실제보다 더 좋아 보이길 원해요’였죠.”

픽사는 늘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를 밀어 붙여왔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되기 전 픽사는 테크놀로지 회사였고, 1986년 루카스필름의 컴퓨터 그래픽 그룹에서 생겨나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하드웨어 회사로서 구입한 곳이었다. 하드웨어 사업이 실패하자 픽사는 영화를 만드는 재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최초의 영화인 <토이 스토리> 이후, 픽사의 모든 영화는 기술적으로 이전 작품들을 넘어섰다. 그러나 <굿 다이노>의 광활한 자연 배경과 가속된 제작 스케줄은 애니메이션 부서에 지금껏 겪어본 중 가장 큰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이 영화의 광활한 느낌은 우리가 해본 적이 없는 것이었죠. 컴퓨터로 하기 쉬운 작업도 아니었고요.” 캘러헌이 설명했다. 광대한 풍경 렌더링은 컴퓨터로 작업하기 버거웠다. 보통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는 ‘세트 익스텐션’을 사용한다. 화면 내 주요 요소는 3D 애니메이션인 반면, 원경(예를 들어 하늘)은 평평한 그림이다.

 

<굿 다이노>에서 손과 캘러헌은 풍경 전체를 훑는 헬리콥터 샷을 원했는데, 그러려면 전체 풍경을 3D로 렌더링해야 했다. 제작진은 미국 지질연구소에서 그랜드 티턴 국립공원의 지질학 정보를 얻었다. 이를 사용해 260제곱킬로미터 넓이의 지형을 재현하고 그 땅에 야생 동물들을 채워 넣었다.

“실제 영화처럼 했어요. 현장을 방문해 배경을 찾아다녔죠.” 캘러헌이 부연했다. 이후 애니메이션 부서에서는 지형과 야생동물을 필요한 대로 바꿔 사용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굿 다이노>는 이제까지의 픽사 영화 중 시각적으로 가장 놀라운 작품이 되었다.

기술적 성취 중 하나는 부피가 느껴지는 구름이다. 구름이 실제 구름처럼 햇빛을 통과시키고 흩어진다. 물과 먼지 효과도 눈에 띈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숨을 헉 들이켰죠.” 라세터가 말했다.

<굿 다이노>의 새 스토리가 통과되고 난 다음 단계는 모든 픽사 영화가 그렇듯 ‘스토리 릴’이었다. 제작자들이 완성작처럼 볼 수 있는, 스케치와 임시 목소리를 사용한 시험판. 이 과정에서 모든 장면을 – 대화부터 가장 미세한 캐릭터 표정까지 – 문자 그대로 수천 번이나 반복해서 다시 본다. 대사 하나하나, 머리카락 한 올까지 다듬고 다듬어 완벽하게 만든다.

모든 영화 제작 과정을 이끄는 픽사 최고의 창의적인 인력들로 구성된 두뇌 위원회가 픽사의 중심이다. 위원회 멤버는 바뀌지만, <토이 스토리>를 만든, 현재 픽사의 가장 유명한 감독들로 구성된 핵심 인력들이다. 라세터, 앤드류 스탠튼(<니모를 찾아서>와 <월 E>의 감독), 피트 닥터(<몬스터 주식회사>, <업>, <인사이드 아웃>), 리 언크리치(<토이 스토리 3>) 등이다. (<카>의 감독이었던 원년 멤버 조 랜프트는 2005년에 사망했다.)

“두뇌 위원회는 그저 특정 사람들로 구성된 모임이 아니에요. 모여서 문제를 지적하는 집단을 가리켜요.” 캣멀이 설명했다. 그들은 12주마다 한 번씩 회의를 연다. 영화의 가장 최근 컷을 보고 회의를 시작한다. 점심 식사 후에는 뭐가 좋고 뭐가 개선될 수 있는지를 정리한다.

“이 회의의 의견에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의무가 없다는 점이 중요하죠.” 라세터가 힘주어 말했다. 솔직하고 건설적인 반응을 줘야 한다는 근본 원칙은 라세터가 디즈니와 함께 일했던 초기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 당시의 디즈니는 ‘아직 중역들이 이끄는 스튜디오’였다. 애니메이터들은 상사들의 의견에 의무적으로 따라야 했다.

“내 의견은 애니메이터의 의견보다 더 중요하지 않아요. 아이디어를 소유한 개인은 없거든요. 누군가가 실마리를 제공하면 다른 사람이 그걸 기반으로 해서 쌓아 올리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함께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느낌을 갖고, 영화 전체에 대해 자부심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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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빌딩 앞에 영구히 놓여 있는 이 1.5미터 높이의 공은 5미터 높이의 룩소 주니어 스탠드 옆에 있다. 스탠드는 불도 켜진다.

권위를 배제한다는 것은 이론상으로는 쉽다. 그러나 첫 감독을 맡은 손은 오스카 수상자들이 가득한 방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우리가 일해야 하는 속도, 보여주는 속도는 정말 힘들었어요. 이렇게 빨리 발표해본 적이 없었죠. 하지만 이 감독들은 경험이 정말 많았고, 내 의도를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뭔가 보여주면 그들은 ‘아주 좋은 아이디어야’, ‘당신 생각만큼 명확하지는 않아’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죠. 하지만 그들은 다른 아이디어나 경험을 제시하기도 해요. 앤드류가 ‘<니모를 찾아서> 전에 그런 길을 갔던 적이 있지’ 같은 말을 하는 거죠. 언제나 ‘이건 해볼 만하겠다’는 결론이 나요.” 손이 기억을 되살렸다.

사소한 제안이 아이디어를 이끌어갈 때도 있다. <굿 다이노>의 초기 두뇌 위원회 회의에서, 손은 새 대본을 읽었다. “우린 그들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가 잘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처음 한두 장면에서 존이 자기 대본에 ‘재밌다’라고 쓰는 걸 봤죠. 우리는 ‘좋았어, 그들이 마음에 들어하는 군’ 했어요. 존이 손으로 쓴 ‘재밌다’를 도장으로 만들었어요. 영화를 만들 때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걸 상기하기 위해서요. 때로는 단 한 단어만으로 힘을 얻어 계속 나아갈 때도 있어요.” 만이 설명했다.

픽사는 작업 중인 영화들을 여러 부서에 보여준다. 조명, 개발, 애니메이션 부서 등에 보여주고 반응을 살핀다. “우리는 계속 영화를 보면서 좋은지 확인하고, 좋지 않으면 고쳐요.” 만이 덧붙였다.

“계속해서 뜯어 고쳐요. 훌륭한 장면들을 아주 많이 잘라내죠. 훌륭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영화에 맞지 않아서요.” 강한 마음가짐이 필요하고, 상당히 걱정스럽기도 하다. “사랑하는 것들을 버리려면 감독이 정말 강해야죠.” 제작자들에게 인내를 가르치기 위해, 픽사는 성공작의 초기 릴을 종종 보여준다. “지금은 고전이라고 생각하는 영화들이 한때는 별로였다는 걸 보면 큰 도움이 돼요. ‘아,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게 진행 과정이에요. 결국 우리도 저 영화처럼 훌륭한 영화를 만들 거라고 믿는 거예요.” 만이 말했다.

이 과정은 픽사의 성공에 숨어있는 단순하지만 깊은 비밀을 암시한다. 사랑스러운 괴물들과 말하는 자동차 뒤에 숨은 픽사의 모든 사람은 완벽주의자라는 것이다. “모든 것, 정말이지 모든 것이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영화를 만드는 데 맞춰져 있어요. 다른 스튜디오들은 그렇지 않죠. 다른 스튜디오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많아요. 픽사에서는 어떤 과정에서도 영화가 첫 번째예요. 모두에게 그렇죠.” 만은 확신에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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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아웃>의 ‘컬러 스크립트’ 앞에 선 픽사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대표 에드 캣멀.

픽사의 제작 과정에 흠이 없지는 않다. <굿 다이노>는 오스카상을 잔뜩 받은 스튜디오라도 예상하지 못한 큰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픽사는 그동안 수많은 성공을 거뒀지만 내외적으로 점점 더 큰 압력을 받고 있다. 캣밀이 <창의성을 지휘하라>에서 밝힌 제작비용 상승과 외부의 경제적 압력이 그 사례다. 모든 스튜디오가 DVD 매출 하락을 겪고 있다. 픽사의 솔직한 문화는 언제나 유지비용을 필요로 한다.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 중 하나는 매년 픽사의 모든 직원이 픽사의 일하는 방법 혁신을 제안하는 ‘노트 데이’다.

라세터와 캣멀은 이제 버뱅크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매주 이틀씩을 보내기 때문에 픽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전보다 줄었다. CCO인 라세터는 영화를 관리할 뿐만 아니라 디즈니의 거의 모든 일에 관여한다. 장난감부터 놀이공원까지. ‘존의 시간’은 귀중한 자재다. 게다가 그는 최근 <토이 스토리 4>를 공동 감독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다른 우려도 있다. D23 엑스포에서 픽사는 <토이 스토리>, <도리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II>, <카 3> 등의 속편 계획을 흘렸지만 신작은 하나밖에 이야기하지 않았다. 멕시코 망자의 날에 대한 영화 <코코>였다. (그러나 이것은 근거 없는 걱정일 수도 있다. 픽사에서는 늘 새로운 작품들을 작업 중이다. 개발 중인 작품이 언제나 몇 편씩 있다.)

“우리는 대략 속편 하나당 신작 하나씩의 비율로 준비해요. 속편은 재정적인 위험이 덜하죠. 하지만 속편만 만들다가는 창조적으로 파산할 수 있어요. <업>, <라따뚜이>, <월 E> 등은 위험이 아주 큰 아이디어였어요. 우리에겐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게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위험이 낮은 일들을 해요. 사업적으로도 영리하게 굴어야 하기 때문이죠.”

캣멀에게 더 시급한 문제는 – 그의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 일은 – 업계가 변하고 직원들이 바뀌는 가운데서도 픽사의 성공을 이끈 문화가 살아남도록 하는 것이다. 월트 디즈니처럼 캣멀과 라세터도 언젠가는 은퇴할 것이고, 픽사는 살아남아야 한다.

“우리가 처음에 했던 것들을 사람들이 그대로 따라 하기를 원하지 않고, 그럴 수도 없어요. 중요한 건 사고방식이에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우리가 만드는 영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자세요. 우리의 역사는 변화와 적응으로 점철되어 있어요. 만약 우리가 가졌던 아이디어가 잘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관리든 제작이든 기술이든, 모든 층위에서 다 바꿔요.”

라세터에게 <굿 다이노>의 제작은 픽사로 멋진 이야기를 하겠다는 결심을 더욱 강화시켜주었고, 새 힘을 불어넣었다. “픽사엔 힘들었지만,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우리는 ‘품질이 가장 좋은 사업’이라는 단순한 철학을 가지고 있어요.” 라세터가 말했다.

물론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굿 다이노>가 실패할 가능성이 적으나마 있고, 아예 픽사의 성공이 끝날 수도 있다. “꼬리를 무는 성공을 끝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다행히 나는 영화를 더 잘 만들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는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죠.” 림이 말했다.

지금은 긴 하루가 끝난 조용한 시간이다. 손과 림은 다시 영화를 만들러 갈 것이다. 렌더링 작업이 아직 50퍼센트밖에 안 되었다. 림은 픽사처럼 생각했다. “개봉 전에 할 일이 차고 넘쳐요. 결국 제가 할 일은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까?’ 하면서 영화를 보는 거예요. 제 생각엔 아마도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응’이라고 대답할 거예요.”

>> 픽사가 말하는 위기관리 10계명

    에디터
    글 / Oliver Frankin-Wallis
    포토그래퍼
    Chris Chrisman
    레터링
    Ruth Row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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