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공감 개그가 불편해

2016.05.06GQ

남자가 말한다. “만약에라도 남자친구가 친구들 모이는 자리에 여자친구를 데리고 갔다. 그러면 남자친구 기를 살려줘야 됩니다. 기를 어떻게 살려주느냐? 예쁘면 돼.” 여자도 말한다. “남자들이 정말 남자친구랑 노는지, 아니면 여자를 만나는지 너무너무 궁금하잖아. 우리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드릴게요.” 이상하게 고요한 곳에서 전화를 받지는 않는지, ‘부킹 술집’ 라인에서 놀고 있지는 않은지, 카드 이용 금액이 의아할 정도로 높지는 않은지 확인해보라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이상준과 이국주가 만드는 tvN < 코미디 빅리그(이하 코빅) >의 ‘오지라퍼’에서는 매주 이런 장면이 연출된다. 이 코너에 따르면 여성은 무조건 얼굴이 예뻐야 하고, 스스로 구매할 능력은 없지만 명품 가방을 좋아하며, SNS에 허세 사진이나 올리면서 시간을 낭비한다. 반면 남성은 늘 바람피울 궁리만 하는 데다 스킨십에 집착하고, 정작 데이트 준비는 성의 없이 하는 존재다.

이쯤이면 오지랖이 아니라 모독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유쾌할 리 없는 말장난이지만, 희한하게도 객석에서는 끊임없이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상준과 이국주 그리고 방청객들은 이 치졸한 코미디의 공모자들이다. 이상준이 “여자친구가 전지현보다 예쁜 이유”를 물으면 누군가는 “만질 수 있어서”라 당당하게 외치고, 이국주가 “여자들이 남자친구의 모임에 따라가고 싶은 이유”를 물으면 짠 듯이 “헛짓거리 할까 봐”라는 대답이 튀어나온다. 심지어 이런 내용들은 ‘공감 개그’라는 태그를 달고 수많은 블로그에 포스팅된다. 오래전부터 지겹도록 반복되어온 남자들은 이렇다, 여자들은 저렇다, 하는 말들로.

질문. 남자는 정말 밝히기만 하나? 여자는 명품이면 오케이인가? 혹시나, 아주 혹시나 그런 사례가 있다 해도 인간 개별을 떠나 남자 혹은 여자라는 성별로 범주화할 수 있는 일인가? ‘오지라퍼’의 개그는 사실 남성과 여성에 관한 떠도는 편견을 적당히 짜깁기해서 일반화한 것이지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안영미의 유행어, “나만 쓰레기야?”야말로 공감 개그의 핵심을 요약하는 말이다. 나도 쓰레기, 너도 쓰레기, 즉 우리 모두 쓰레기이며, 우리 안의 못남을 솔직하게 언급하는 일만으로도 코미디가 성립된다는 착각이다.

웃어넘기는 사이 고정관념과 폭력성은 더욱 공고해진다. 코너가 방송되는 십여 분 동안 혐오 발언은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이상준은 매회 객석의 여성을 가리키며 얼굴이 박살났다느니, 너를 친구들 앞에서 자랑하느니 차라리 변신 로봇을 자랑하겠다느니, 식으로 뜬금 없이 외모를 비하한다. 살 빼려면 말만 하지 말고 배부를 때 그만 먹으라는 이상준의 멘트 뒤에 필요한 건 “남이야 그러든 말든 무슨 상관” 이냐는 면박이겠지만, 이국주는 행동으로 보는 여성들의 사이즈 감별법을 대단한 팁인 양 내 놓는다. 얼굴이나 체격으로 누군가를 평가하는 게 얼마나 비열한지 새삼 비틀어 고민해보자는 제스처조차 없다. 지금은 종영된 < 코빅 > 의 ‘사망토론’에서도 이상준은 예재형, 김기욱과 함께 이런 식의 코미디를 해왔다. 지갑에 손 대는 김태희와 용돈 주는 오나미, 혹은 김수현과 박휘순 등 비교할 필요가 없는 인물들을 오로지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도마에 올렸으며, 그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선택지를 관객들에게 함정처럼 던졌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잘생긴 남자가 아니면 데이트할 때 돈도 안 내는 소위 ‘김치녀’로 묘사되기도 했다. “막말로 김태희니까 내 지갑에 손대도 예뻐 보이는 거지, 오나미가 내 지갑에 손댔잖아요? 저 오나미 얼굴에 손대요.” 외모 비하와 여성 혐오, 폭력의 뉘앙스가 모두 포함된 이상준의 문제적 발언에도 객석은 ‘빵 터졌다’. 아니, 오나미와 박휘순이 언급되는 순간, 폭소는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다시 질문. 사람들은 공감 개그의 무엇에 공감하나? 어쩌면 뿌리 깊은 혐오와 편견에 기꺼이 동감한다는 뜻은 아닐까?

그중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여성 혐오다. SBS <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 >의 ‘러브 다이너마이트’에서는 맹승지가 섹시한 옷을 입고 등장해 깜찍한 표정과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한다. “오빠, 송혜교가 예뻐, 내가 예뻐?” < 웃찾사 >에는 아예 ‘남자끼리’ 코너도 있다. 거부감이 들 정도로 혀 짧은 소리를 내는 성인 여성이 매번 남자친구에게 무언가를 사달라고 떼쓰고, 사주지 않겠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한껏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화를 낸다. 여성을 한 방 먹이는 데 동조한 남성 연기자들은 어깨 동무를 하고 기쁨의 춤을 춘다. 일각에서는 이 코너를 속 시원한 ‘사이다’라고 평가한다.

똑같은 고정관념만 재생산되는 코미디 속에는 현실 반영도 자기비판도 없다. 그러니까 여기에 보내야 하는 것은, 공감의 웃음이 아니라 불쾌하다는 시선이다. 왜 나를 너와 똑같은 사람으로 몰아가냐고, 바닥을 드러내고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른 채 웃고 싶지는 않다고, 다같이 엉망이라는 이유로 안도하고 싶지는 않다고 정색해야 할 일이다. ‘사망토론’에서 이상준은 쌍둥이 동생을 아는 척해야 하는 순간은 “동생이 로또에 당첨됐을 때와 홍대 부킹 포차에서 여자 두 명을 꼬셨을 때, 내 여자친구가 실수로 내 쌍둥이 동생이랑 키스하고 있을 때”라고 했다. 그리고 방청객들을 향해 말했다. “여기서 이렇게 한 명도 안 웃으면 나만 쓰레기 같잖아.” 지금이 대답을 돌려줄 때다. 당신의 코미디는 틀렸으며, 당신만 쓰레기인 게 맞다고.

    에디터
    글 / 황효진(웹매거진 'ize' 기자)
    일러스트레이터
    김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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