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유니스는 어떤 브랜드인가?

2016.09.04강지영

유니스 리 유니스 파운더 & 디자이너

유니스는 매일 저녁 산책하듯 들르고 싶은 남자 옷 가게다. 깨끗하게 닦은 욕실처럼 청결한 공간에서 면 티셔츠와 치노, 안경과 백팩, 열쇠고리를 판다. 온갖 유행이 범람하는 뉴욕에서 면으로 만든 수수한 옷만으로 대담하게 문을 열었고, 그 후 옷을 잘 입고는 싶지만 남의 눈에 띄는 건 싫어하는 남자들 사이에서 주문처럼 은밀히 퍼진 이름이 되었다.

LOOK 1

일주일 전 엘리자베스 스트리트에 있는 가게에서 티셔츠를 샀다. 포켓이 없는 리 Lee로 두 장. 유니스 옷에는 각각 이름이 있다. 리, 제이크, 노아, 지오, 에밋…. 옛날 남자친구들 이름인가? 친구 이름도 있지만 어떤 건 그냥 내가 좋아하는 남자 이름이다. 옷을 만들 때 스타일을 생각하면서 어울리는 이름도 동시에 상상한다. 이런 경우도 있다. 친구 중에 지오란 애가 슬림한 치노를 열렬히 원했는데 미국 시장에선 도통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만들어 줬다. 그 바지 이름은 당연히 지오다.

오래전에 산 유니스 티셔츠를 요즘 아주 기분 좋게 입고 있다. 어느 날 옷장에서 엄청나게 쿨한 빈티지 티셔츠를 찾았는데 그게 유니스였다. 당신 옷은 참 예쁘게 낡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보기 좋은 티셔츠를 만들고 싶었다. 내가 쓰는 소재는 오래 입으면 조직이 끊기고 부드러워진다. 핏은 너무 붙지 않고 자연스러운 클래식 스타일을 유지한다. 그래서 질리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당신 가게에 있는 물건들은 다 손때가 타고 오래 쓸수록 예뻐지는 것들이다. 빈티지 아이템과 공들여 잘 만든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을 좋아한다. 마음과 솜씨가 제일 중요하다. 유행 따라 산 옷은 몇 번 입고 선뜻 남에게 주기 쉽다. 내가 만든 건 낡고 헤져도 아무에게도 주기 싫은 옷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돈이 더 들어도 품질이 좋은 이탈리아, 일본, 미국 천을 쓴다.

LOOK 2

2000년에 브랜드를 만들고 남성복 몇 가지로 조촐하게 시작한 후, 천천히 사업을 확장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요즘 당신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티셔츠와 치노 팬츠에만 집중한다. 브랜드를 만들고 처음 8년 정도는 풀 컬렉션이 있었고 여자 옷도 했다. 하지만 그게 돈 낭비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 남성복에만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내가 사랑하고 믿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사업을 크게 벌일 때보다 간소화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당신의 이름은 유니스 Eunice, 브랜드 이름은 유니스 UNIS다. 처음 브랜드를 만들 때 친구들은 모두 내 이름을 그대로 쓰라고 권했다. 하지만 유니스 Eunice란 글자의 모양이 마음에 안 들었다. 게다가 나는 거의 평생 내 이름을 싫어했다. 어느 날 문득 유니스 UNIS는 어떨까 생각했다. 유니스는 드문 이름이라, 스펠링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손님들이 우리 가게에 들어오면 다른 스펠링의 유니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유니스란 브랜드 뒤에 있다는 걸 모르고, 난 그게 너무 재미있고 좋다.

아무리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이어도 가게에 물건이 너무 많으면 패닉 상태에 빠진다. 그런 의미에서 유니스에 가면 안정감이 든다. 단출한 물건들 중 마음에 드는 걸 집으면 그만이다. 남자들은 여자보다 더 섬세한 면이 있다. 그래서 결정을 어려워한다. 유니스에선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좋은 품질의 바지와 티셔츠. 그게 전부다. 티셔츠의 최고 멋진 점은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냥 입고 나가면 된다!

LOOK 3

지난 < GQ STYLE KOREA > 인터뷰에서 아티스트 커티스 쿨리그 Curtis Kulig가 당신의 친구이자 팬임을 밝혔다. 그는 촬영 날 발렌시아가 코트며 아크네 점퍼며 옷을 잔뜩 가져왔는데 이너웨어라곤 오직 유니스 티셔츠 딱 두 벌이었다. 놀랍게도 그 티셔츠 두 장만으로 그는 아주 멋진 여섯 가지 룩을 만들어냈다. 커티스 외에 또 어떤 손님들이 오나? 조나 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크리스 파인, 토비 맥과이어, 스티븐 윤, 애덤 르바인, 더 위크엔드, 데이비드 프랑코, 야신 베이, 닉 조나스, 앙드레 사라이바, 찰리 허냄, 티오필러스 런던…. 아, 미셸 윌리엄스도 옷을 사갔다. 그건 아마도 대단히 운이 좋은 어떤 남자에게 갔겠지?

어떨 때 유니스의 옷은 잘 만든 유니폼 같아 보인다. 맞다! 남자들의 99퍼센트는 각자의 유니폼을 입는다. 스타일이 좋을수록 그렇다.

카페 알트로 파라디소의 유니폼이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당신이 만들었단 걸 알았다. 그 카페 주인과 친한 친구 사이다. 난 친구들과 일하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유니폼은 한 번도 안 만들어봤지만 친구 부탁이니 당연히 들어줘야지. 뉴욕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은 어딘가? 유니스 매장을 제일 좋아한다. 엘리자베스 스트리트가 좋아서 거기에 가게를 열고 좋아하는 것들로만 꾸몄으니까. 엘리자베스 스트리트 정원은 제일 아끼는 장소다. 누구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사회의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요즘 난 이 정원을 복구하는 일에 열심이다.

LOOK 4

평생 한 도시에서만 살아야 한다면 어디서 살고 싶나? 남편과 한동안 L.A에 살다가 얼마 전에 뉴욕으로 돌아왔다. L.A에서 마음에 안 드는 건 딱 하나 뿐이었는데, 그 도시엔 물이 부족하다. 이거야말로 큰 위기다. L.A 집엔 화장실이 2개여서 나는 내 화장실을 정해두고 소변을 3번 보고 나서야 물을 내렸다. 뉴욕엔 물이 충분해서 다행이다. 하지만 한 도시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면 뉴욕보다는 L.A.

매일 비슷한 일상을 즐겁게 살려면 뭐가 필요할까? 여행. 일이 많거나 어쩐지 뒤처지는 기분이 들 때, 운동을 더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때. 여행을 다녀오는 건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차를 L.A에 두고 왔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가져오기로 했다. 차를 타고 멀리 다녀오고 싶다.

LOOK 5

유니스 텀블러에서 < 형사 서피코 >의 알 파치노, 젊은 스티븐 도프, 루 리드 사진을 봤다.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스타일리시한 남자는 누군가? 무조건 스티브 맥퀸이다. 아, 요즘은 야신 베이 Yasiin Bey.

인터뷰 답변을 지금 어디서 하고 있나? 뉴욕 사무실. 내가 만든 빈티지 리바이스 스커트와 너덜너덜한 빈티지 칼 막스 티셔츠를 입었고 로린 힐을 듣고 있다. 조금 전 인텔리젠시아 커피와 함께 거대한 도넛을 먹어치웠다.

    에디터
    강지영
    포토그래퍼
    COURTESY OF UNIS
    일러스트레이터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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