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젊은 여자 젊은 남자 따로 있나

2017.06.09GQ

20대 여성이 말하는 페미니즘 어쩌면 휴머니즘.

이윤호 , 2017

이윤호 , 2017

‘세대론’을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 먼저 밝혀야 한다. 나를 설명하는 말은 95년생, 여성, 서울 사람, 서대문-마포에 주로 서식, 신촌의 모 여자대학 재학 중, 문과, 트위터부터 인스타그램까지 모든 종류의 SNS를 애용, 중산층 중에서도 아랫 부분에 속하는 경제 계층, 페미니스트 등이다. 이 각각의 특징은 ‘2010년대 후반을 살아가는 20대’를 바라보는 나 자신의 관점을 구성한다. 나의 문제의식은 특정한 사회적 관계망 안에 놓인 나의 관점과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부분적이고 편파적이다.

어느 세대든 그렇겠지만, 20대는 성별, 거주지, 경제적 위치, 최종 학력 등의 몇 가지 기준으로 나뉜다. 이 기준들 모두는 각각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를 살아가는 20대 여성으로서, 성별을 중심으로 요즘 20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는 한국의 20대 남성들에 대해 말할 것이다. 살면서 수없이 마주친 내 또래 한국 남성이 주요 소재다. 그들은 같은 반 친구였을 수도, 신촌에서 오며 가며 마주친 사람이었을 수도, 오버워치 게임에서 팀 보이스를 하다가 서로 쌍욕을 하며 싸운 사이일 수도, 심지어 연애하던 사이일 수도 있다.

한국의 20대 남성들은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없다. 한국 남자들의 여혐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 세계 모든 남성, 심지어 여성도 여혐을 한다. 여혐은 인류 문명을 떠받치고 있고, 여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페미니스트는 여혐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여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대책을 세우는 사람들이다. 문제를 인식하지 않으면 해결책도 나올 수 없다.

일전에 20대 남성과 이 주제로 토론한 적이 있다. 그가 나에게 토론하자고 먼저 제안했기 때문에 토론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여혐이 실재한다면 그 예시가 뭐냐고 물었다. 학창 시절에 흔히 일어나는, 같은 반 남자애들끼리 반 여자애들 중 누가 제일 예쁘고 성적 매력이 있는지 떠들어대는 것을 그 예시로 들었다. 놀라운 대답이 되돌아왔다. 예쁜 여성에게 예쁘다고 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냐는 것이었다. “이건 칭찬의 문제가 아니고요, 남성들끼리 낄낄거리면서 동료 여성들을 외모로 순위를 매기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요?” 찬찬히 설득하려고 시도했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내 얼굴의 어디가 예쁜지, 가슴이 큰지 작은지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이 여성에게 얼마나 불쾌하고 무례한 일인지 일일이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여자들은 예쁘다는 칭찬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눈앞에서 여자가 싫다고 말하고 있는데도!

다른 예시를 들었다. 학교에 대한 이야기였다. “오빠 제 학교 아시죠? 저 어디 가서 이화여대 다닌다고 얘기 잘 안 해요. 학교 밝히는 순간 뭘 잘하든 못하든 ‘이대생이라서~’ 이런 소리 듣거든요. 그거 진짜 부담스럽고 불편해요.”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응, 좀 불편할 것 같긴 해, 근데 이렇게 말하면 네가 좀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너네 학교 이미지가 좀 그렇잖아. 내가 여태까지 만나본 이대 애들도 좀 그랬어. 물론 네가 그런 이미지라는 건 아니고.”

네? 뭐라고요? 도대체 그 ‘좀 그렇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빠, 저희 학교 재학생 1만 9천 명이고 1백 년이 넘은 학교예요. 오빠가 만나본 그 몇 명으로 일반화 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닌데요?” 물론 그는 내 반박을 듣지 않았다. 이대 혐오는 여혐이 아니며, 아무튼 내가 든 여혐의 예시는 여혐이 아니라는 말을 반복할 뿐. 나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오빠 뒤에서 여자애들이 오빠 고추 크기 수군거리면 좋겠냐고요.” 역질문을 던지자 날아온 대답은 “그거랑 그거랑 같냐?”였다. 나는 아직도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그날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고 그와 더는 만나지 않는다.

내 앞에서 여혐은 없다고 뻔뻔하게 주장한 남성의 사례는 이 ‘오빠’가 유일하다. 이 한명의 사례를 가지고 ‘한국 남성들 문제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넌 다른 여자들이랑 달라서 좋다”던 예전 남자친구에게서, 짧은 옷을 입고 거리를 걸어갈 때 나를 훑는 모르는 남자의 눈빛에서, 팀보이스 마이크를 켜고 오버워치를 할 때 “어, 여자다! 예뻐요? 애교 부려봐요!” 하는 또 다른 남자의 목소리에서, 여성신문 웹사이트에 집요하게 찾아와 “임금 격차는 없다”는 악플을 다는 한 무리의 남성 네티즌들에게서, “한국 페미니즘은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라는 나무위키 유저들에게서 이 ‘오빠’를 발견한다. 나는 남자니까 예쁜 여자를 무례하게 쳐다봐도 되고, 짖궂은 장난을 쳐도 되고, 그런 행동들 때문에 여자가 기분 나빠 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남자들.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논의가 불붙었다. 중동의 낙타를 타고 온 바이러스가 이런 결과를 낳을 줄 누가 알았을까. 여혐과 페미니즘은 지금 20대, 30대 여성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슈다. 여성, 페미니즘, 여혐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이야기할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킨 촛불의 시작점은 이화여대생의 본관 점거 투쟁이었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가장 유의미한 지지율을 보인 진보 정당의 후보 또한 여성이다. 그녀의 1호 공약은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엄마들의 고통을 국가가 분담하겠다는 ‘슈퍼우먼 방지법’이다.

페미니즘의 강세는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성평등과 차별 금지는 세계적 의제다. 패션 브랜드 디올의 작년 컬렉션에는 “We should all be feminists” 티셔츠가 등장했다. 유엔이 세계 여성의 해를 지정한 것은 1979년이다. 호주에서는 주민등록을 할 때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을 선택할 수 있으며, 동성혼이 법제화되는 나라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젊은 여성들은 이 변화의 가장 앞줄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탈조선’과 ‘갓양남’은 한국 사회도 이렇게 변해야 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여성들과 함께 한국 사회를 이루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슬프게도, 블랙넛의 성희롱 랩을 ‘리얼 힙합’이라고 찬양하는 한무리의 남성들과 지금은 없어진 소라넷에 가입했던 1백만 명의 남성과 대통령 후보 유승민씨의 예쁜 딸과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는 남성들이다.

나는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에 가져올 변화를 가장 갈망하는 사람들 중 한 명으로서, 20대 남성들에게 묻고 싶다. 왜 ‘검은 고환’이라는 랩네임을 쓰는, 외모도 별로고 내뱉는 가사는 온통 모욕뿐인 래퍼를 ‘리얼’하다고 찬양하는가? 어떤 여성도 그런 남성과 연애든 섹스든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기들끼리 모여서는 ‘여자’가 너무 좋다고 하루 종일 여자 얘기만 하면서, 왜 여성들이 원하는 사람이 될 생각은 하지 않는가? 돈이 없어서 데이트 비용을 혼자 부담 할 수 없다면서, 왜 여성들이 성별에 상관없이 공정한 임금을 요구할 때는 어깃장을 놓는가? 내가 한국의 20대 남성들을 관찰해서 생산한 ‘상황적 지식’의 결론은, 남성들의 언어가 너무 모순적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의 20대 남성이 자기가 하는 말의 모순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뭔지, 그것을 위해 뭘 할 수 있는지, 해야 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조금만 생각하면 답은 간단하다. 평등이 모두에게 좋다. ‘리얼 맨’은 원하지 않는다. ‘리얼 휴먼’에게 ‘리얼 휴먼’으로 대우받고 싶을 뿐이다.(그 역도 마찬가지다.)

세대론은 다만 함정일까? 그것에 대해 말하느니 결국 스스로 덫을 놓는 격일까? 의심하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다. 나와 내 세대는 무엇인가? 서로 다른 해에 태어난 12인의 칼럼과 서울에 사는 젊은 사진가 7명이 ‘세대’라는 테마로 자유로이 작업한 사진을 나란히 싣는다.

    에디터
    글 / 이규리(1995년생, 이화여대 철학과 학생)
    포토그래퍼
    이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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