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쇼 일정표에 정욱준의 이름은 없었다. 론 커스텀으로 다시 찾아봐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이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한 이름은 JUNN.J(준지)였다.
휴대폰 번호가 018로 시작하더라. 사람들이 왜 자꾸 전화번호를 바꾸는지 모르겠다. ‘018, 016, 011-2’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를 가진 사람에겐 돈을 빌려줘도 된다는 말이 있다. 주변에 빚쟁이가 없다는 말이란다.
전화번호도 안 바꾸면서, 더 오래된 이름은 왜 준지로 바꿨나? ‘정욱준’은 어렵다. 준을 넣고 싶었는데, 준정은 어감이 맘에 안 들어서 준제이로 정했다. 미국이나 일본인은 준제이, 프랑스나 이태리 사람은 준지라고 한다.
파리엔 언제부터 있었나? 모델 피팅 때문에 쇼 시작 일주일 전에 갔다. 먼저 시작한 밀란 쇼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정작 모델은 쇼 전날 도착했다. 갑자기 몰려든 모델 때문에 밤새 피팅하느라 잠을 못 잤다. 다행히 크게 고칠 건 없었지만, 시간이 많았으면 더 꼼꼼하게 준비했을 텐데 그게 제일 아쉽다.
그래도 반응이 좋았다. 내 뒤에 앉아있던 일본인은 쇼를 보면서 ‘스고이’라고 하더라. 쇼를 여러 번 해보니까 백스테이지에서도 반응을 알 수 있다. 처음엔 심드렁하게 앉아 있던 사람들이 세 번째 룩이 나올 때부터는 집중했다.
모델 피팅은 힘들지 않았나? 4월, 파리에 갔을 때 40명의 모델 프로필을 받았고 그걸로 통계를 냈다. 그게 큰 도움이 됐다. 다음 시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익혔다. 패턴에 들인 시간을 다른 곳에도 쓸 수 있게 됐다.
론 커스텀 쇼를 몇 차례 본 내게 이번 시즌은 좀 익숙했다. ‘새롭다’는 아니었다. 한국에 돌아와 블로그에 있는 글을 봤다. 한국에서 봤던 것들이 보여져서 아쉬웠다는 게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건 의도된 거였다. 난 파리에서 신인이니까,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40%는 예전의 것에 조금 변형을 한 거다.
토템과는 어떻게 계약했나? 한국에 돌아와 블로그에 있는 글을 봤다. 한국에서 봤던 것들이 보여져서 아쉬웠다는 게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건 의도된 거였다. 난 파리에서 신인이니까,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40%는 예전의 것에 조금 변형을 한 거다.
생크림을 두텁게 발라놓은 것 같은 흰색 벽, 천장과 창문으로 자연광이 들어오는 쇼 장이 맘에 들었다. 흰색과 자연광. 장소를 정하는 두 가지 조건이었다. 서울에서 하던 동굴 같은 지하나, 어두운 실내에서 하는 쇼가 정말 지겨웠다.
일본인 스태프도 많았다. 많은 일을 하는 것 같던데, 누군가? ‘드럼캔’을 말하는 것 같다. 쇼 디렉팅을 담당했다. 에이전시에서 소개해 줬는데, 그들을 만나러 일본까지 갔다. 옷의 밑그림을 보여줬더니 미니멀하고 동시에 남성적이라고 했고 비트 있는 음악을 추천했다. 특히, 피날레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블랙, 그레이, 화이트를 섞으려고 한다니까, 흰색으로 통일하자고 했다.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하자는 거였다. 그래서 피날레 음악은 G선상의 아리아였다.
쇼 룸엔 어떤 사람들이 다녀갔는가? 멀티숍과 셀렉트 숍의 바이어가 많았다. 파리 멀티숍 레소피네에선 주문도 받았다. 하비 니콜스 백화점과도 계약했다.
첫 쇼를 마치고 옷을 파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는데, 기분이 좋았겠다. 파리에서는 프레스들의 영향력이 크다. 보통의 경우, 쇼가 끝난 후 바이어가 프레스의 눈치를 보고 점만 찍어 두었다가, 다음 시즌에도 반응이 좋으면 주문을 한다. 근데 이렇게 첫 쇼를 끝내고 나서 바로 옷을 팔았으니 운이 좋다고 할 수밖에.
하지만 팔기엔 실용적이지 못한 옷이 많던데. 에이전시 바이어 담당자가 “다음 시즌부터는 바이어에게 쇼 옷 외에도 ‘팔릴 옷’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이번 시즌 바이어들이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진 하이 웨이스트 팬츠와, 팔릴 만한 로웨이스트 팬츠도 같이 준비했어야 했다는 거다. 결국 옷은 팔려야 하는 거니까.
인터뷰 내내 ‘다행히도’라는 말을 많이 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려운 일도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겼다. 여유까지.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박나나
- 포토그래퍼
- 강봉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