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에서 영웅이니 뭐니 과장을 해도 이용대는 결국 스물 한 살 청년이었다. 그 나이답게 솔직하고 낯도 조금 가리고, 내일부턴 운동만 할 거예요, 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스타’로 살아보니 어떻던가요?
스타? 스타라고 해야 하나요? 운동하는 게 더 쉬운 것 같아요.
다시 운동 시작하면 집중이 되겠어요?
집중력으로 배드민턴을 해온 게 아니니까요. 너무 재밌고 좋아서 하는 거예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갑자기 화제를 바꿔서 미안한데 KBS와 SBS 사이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거죠? KBS 측에선 자신들은 잘못한 게 없다고 언론에 발표했던데요.
그건 제가 신경 쓸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KBS와 SBS가 알아서 할 문제죠. 그냥, 저희는 약속을 어기는 게 잘못됐다고 말한 거예요.
KBS에서 약속을 어겼어요?
KBS는 방송 나가기 전날 밤에 찍었어요.
다음 날 아침에 방송된단 얘긴 못 들었어요?
목요일 날 나간다고 했어요. 근데 수요일에 나간 거죠. 이젠 KBS에서 뭐 하자면 안 할 거예요.
지금의 이 관심이 그동안 당신이 들인 노력에 비하면 당연한 걸까요?
축구선수들은 국제 대회에서 별 성적을 못 거둬도 늘 ‘스타’ 대접을 받잖아요. 배드민턴이 워낙 비인기 종목이니까 이렇게 알려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그냥, 내가 잘 해서,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따면, 잠깐 방송에 몇 번 정도 나가게 되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죠. 근데 막상 금메달 따고 나니 하루아침에 제 인생이 달라진 거예요. 그리고 솔직히 아직 금메달 딴 게 실감이 안 나요.
축구선수들보다 보상을 못 받는 게 화나진 않나요?
솔직히 제가 뭐, 그 선수들에 비해 못 뛰는 것도 아니고, 랭킹이 뒤지는 것도 아니고. 얼굴이 못생긴 것도 아니고요. 네. 그런데도 연봉 차이가 크니까 배가 좀 아파요. 똑같이 운동하는데….
금메달과 인기 중에서 어떤 게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요?
금메달은 지금도 생각하면 소름 끼쳐요. 올림픽에 나가려고 스트레스를 정말 너무 많이 받았어요. 중압감을 다 이겨내고 승리했다는 게 뿌듯해요.
당신 때문에라도 배드민턴 경기장에 사람들이 많이 갈까요?
한 달 뒤에 전국 체전이 있거든요. 지금 생각엔 많이 안 오실 것 같아요.
결국 거품일 것이다?
배드민턴은 동호인 수가 많거든요. 그런데 다들 하는 건 좋은데, 보는 건 재미없다고 생각해요.
재미없어요?
솔직히… 재미없는 게임이 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임은 야구보다 더 재미있어요. 비슷한 사람이랑 붙었을 때. 격차가 큰 상대가 붙으면 지루해요. 올림픽은 다 박빙이니까 좋아하는 거예요.
TV에서 메달리스트들이 노래 부르는 거 봤어요. 꼭 노래를 시켰어야 할까요?
저도 노래를 시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왜냐면 그래도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인데 높이 평가해줘야 하는 거잖아요. 노래 부르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어야죠. 방송 나갈 때마다 부르니깐, 우리가 너무 쉬워지는 것 같아요. 방송도 참 어려운 일이에요.
결승 상대였던 인도네시아 팀은 세계 1위였고, 결승에 오르기까지도 상위 랭커들을 많이 꺾었는데, 대체로 운도 많이 작용한 편인가요?
처음엔 저희 대진표가 많이 안 좋았어요. 시드 아시죠? 저희는 그걸 못 받았어요. 시드를 못 받으면 시드 플레이어랑 한 번은 해야 하잖아요. 거기서도 제일 안 좋은 곳으로 들어간 거예요. 게다가 저희 실력은 사실 잘 해야 4강 정도였어요. 2번 시드 쪽으로 들어갔는데 1회전에서 재수 좋게 약 팀을 만났어요. 그 다음에 중국이랑 붙게 될 줄 알았는데, 그 팀은 저희가 절대 못 이기는 팀이에요. 그런데 영국이 그 중국 팀을 이겨준 거예요. 근데 또 웃기는 게, 그 영국 팀한텐 저희가 늘 이겼었거든요. 그래서 별 어려움 없이 준결승에 올라갔어요. 준결승 상대도 사실 저희보다 랭킹이 위거든요. 그런데 그 팀하고 붙으면 질 때보다 이길 때가 더 많았어요. 자신감이 있었죠. 그래서 그 팀도 이겼어요. 결승에서 붙은 인도네시아 조가 세계 1위긴 하지만 우리한텐 편안한 상대였어요.
그럼 그 인도네시아 팀과 다시 붙어도 이길 수 있겠어요?
예. 이겨본 경험이 선수들한텐 매우 커요. 상대는 부담감을 갖고 경기를 할 테니까요.
결승전에서, 스매싱의 강도를 조절하는 게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강하게 때릴 듯한 찰나에 약하게 때린다거나 하는 것 말이에요. 완급 조절의 기준이 있나요?
생각을 하지는 않아요. 그냥 이미 알고 있는 거예요. 이럴땐 이렇게 하는 게 좋고 저럴 때 저렇게 하는 게 좋다. 그리고 힘이 들면 살살 때려요. 계속 때리고 싶어도 그땐 어쩔 수가 없어요.
상대 선수의 위치를 보지 않고 공격할 때도 있겠네요?
상대가 어디 있는진 안 봐요. 여기로 치면 어디로 올 거라는, 선수들만이 아는 길이 있어요. 여기다 치면 저기로 90퍼센트 이상 오니까, 거기다 일부러 때려요. 그럼 이쪽으로 오니깐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겠다 생각하고.
남은 그 10퍼센트 위치로 공을 보낼 줄 아는 선수가 잘하는 거겠네요?
근데 그럴 수도 없는 게, 대부분의 경우 받아칠 수 있는 각이 안 나와요. 만약 그 10퍼센트로 각이 나와서 공을 보내도, 제가 뛰어서 칠 수있는 거죠.
결승전 때 금메달을 확신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나요? 보는 입장에선 끝까지 불안했거든요.
끝나기 직전까지 확신을 못 했어요. 하나님 생각도 나고, 이러다 진짜 금메달 따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마지막까지, 따라 잡혀서 지는 거 아닌가 걱정했어요.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복식이 강하잖아요. 이유가 뭐죠?
한국만의 스타일이 있어요. 중국은 파워가 세고, 인도네시아는 손목 힘이 좋아서 정교하고, 우리는 단순하지만 파워, 스피드, 정교함을 모두 갖고 있어요.
축구나 야구도 좋아해요?
예. 요즘 야구가 재미있더라고요.
응원하는 팀은요?
기아요.
기아의 4강 진출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못 올라 갈 것 같아 요. 지금 삼성이랑 롯데가 너무 잘하고 있어서.
앞으로도 단식은 출전 안 할 건가요?
제가 체력이 약하거든요. 복식도 체력을 필요로 하지만 단식만큼은 아니에요. 감독님들도 다들 복식이 낫겠다고 하시고. 그리고 제가 국제대회에서 남자 복식이랑 혼합 복식 성적이 좋았어요. 단식은 나갈 때마다 초반에 떨어졌는데.
어디로 어떻게 날아오는 공이 가장 받기 힘들어요?
몸 쪽으로 오는 공은 잘 칠 수 있어요. 약간 멀리 오는 공은 받기 어려워요.
본인의 약점과 강점을 스스로 분석해 볼래요?
강점은 아마 컨트롤이지 않을까요? 네트가 있잖아요. 거기에서 볼을 얼마나 안 뜨게 하느냐가 중요하거든요. 조금만 떠도 상대방에게 공격 기회가 생기니까요.
단점은 체력뿐인가요?
체력도 그렇지만 파워가 약한 게 큰 약점이죠.
왜요? 스매싱은 세게 잘만 때렸잖아요.
국가대표 중에서 제가 제일 약해요. 컨트롤은 괜찮으니까 파워까지 겸비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 좁은 배드민턴 코트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때도 있나요?
아, 그런 건 없는데, 코트 세 개가 나란히 있잖아요. 그중 한 코트에서만 경기가 있으면 관심이 그쪽 코트에 쏠릴 거 아니에요. 그게 만약 제가 뛰고 있을 때라면 저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옆 코트에서 누가 경기를 하고 있으면 흥이 잘 안 나요.
코트 위에서 두려웠던 적은 없어요?
이번 올림픽에선 준결승전이 제일 어려웠거든요. 세트 스코어가 1대1이었는데, 마지막 세트를 14대10으로 지고 있었어요. 3, 4위전으로 가면 저는 무조건 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병역 면제가 안 되잖아요.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군대 안가는 게 좋긴 좋죠?
운동선수로서 군대는 갈 데가 못 되는 것 같아요. 솔직히 2년 동안 제가 손해 보는 게 금전적으로 따지면 얼마겠어요. 군대를 안 가면 돈을 버는 거다, 이런 생각을 했던 거죠.
경제관이 투철하네요. 나이도 어린데. 저는 아직도 그런 게 없거든요.
선수촌에 있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올림픽 나가는 진짜 목표가 메달이 아니라, 병역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저도 그랬으니까.
이해해요. 은메달리스트들도 금메달을 못 따서 애석한 마음이 들겠지만, 한편으론 병역 면제된 것에 만족했을 거예요.
다들 그래요.
선수로서 혹은 인간으로서 당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뭐죠?
금메달은 땄지만 아직 목표가 있거든요. 이렇게 촬영도 하고 방송국에도 가보는 게 재미도 있고, 한 번쯤 경험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서 하고 있지만, 결국은 실력으로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그 다음엔 어떤 목표가 남을까요?
사실 너무 빨리 금메달을 따서 좀 무덤덤해요. 다음 목표는 세계 선수권,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하는 거예요. 그 다음은 런던 올림픽이죠. 그때 못하면 자만에 빠진 선수라는 비난을 받게 될지도 몰라요.
런던 올림픽이 가까워 오면 부담이 미치도록 커질 걸요.
그렇겠죠. 처음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 같은 마음을 가져야죠. 그래야 성공할 거예요.
운동선수한테, 성공이란 뭘까요?
저는 솔직히 다 했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꿈이 금메달이었고 너무 이른 나이에 꿈을 실현해 버렸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나를 부러워하겠죠? 그런데 질문이 뭐였죠?
성공이 도대체 뭐냐고 물었어요.
성공이 뭐냐면, 저는 금메달은 하늘이 주시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늘은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그걸 주실거라고 믿었고요. 물론 남들도 열심히 했겠지만, 저는 진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오로지 운동뿐이었어요.
금메달을 땄고, 아까 얘기했듯 어린 나이에 꿈을 이뤘죠. 그게 꼭 좋기만 한건 아닐 수도 있어요. 금메달은 실감이 안 난다고 했잖아요.
저한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내일부터 다시 배드민턴을 쳐야 한다는 거예요.
요즘같이 행복한 날 속에서도 외로울 때가 있나요?
예전에도 외롭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 걸 잘 못 느끼는 성격인가봐요. 그런데 이런 건 있어요.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남자 선수 중에선 저만 메달을 딴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깐 다른 선수들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그때 외롭다는 생각을 했어요.
눈치를 왜 봐요?
그 형들은 군 면제가 안됐잖아요.
기쁠 때는요?
금메달 땄다는 것, 군대 면제 받았다는 것을 생각할 때.
셀 수 없이 많은 여자들이 당신에게 열광하는 건 기쁘지 않아요?
지금도 그게 어마어마하다는 건 느끼지 못하거든요. 그냥 일부 국민들이…. 일부라고 하기엔 꽤 많죠. 사실 공항에선 그런가 보다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딜 가나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옆에 지나가면 혹시나 하는 생각에 돌아보다가 확신이 들면 그때부터 난리가 나는 거예요. 어머머, 이러면서 사인해 달라고.
다 해줘요?
바쁠 때 빼고요. 이 인기가 얼마나 가겠어요.
-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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