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아는 놈 모르는 놈 헷갈리는 놈

2009.04.22GQ

흥행은 며느리도 모른다? 거짓말이다. 영화는 모르고 드라마는 헷갈리지만 음악은 안다

JYP의 정욱 사장은 MP3로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주로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한다. 스피커는 1만 원이나 할까 싶은 컴퓨터 부속품이다. 정욱 사장은 알아주는 메탈 마니아다. 덴마크까지 가서 북해 피오르드 절벽에서 열리는 메탈 페스티벌에 참여할 만큼 열심이다.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란 얘기다. 그런데도 그는 음질이 떨어지는 인터넷 스트리밍을 고집한다.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의 음악 소비자들이 딱 그렇게 음악을 듣기 때문이다. 지직거리는 스피 커에 때론 툭툭 끊기는 스트리밍으로 원더걸스와 2PM을 즐긴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은 귀가 예민하다. 자연히 완전 무결한 소리를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그건 대다수 대중의 취향과는 무관하다. 자칫하면 만드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괴 리될 수도 있다. 정욱 사장은 그걸 알고 있다. 늘 대중의 귀높이에 스스로를 맞추려고 애쓴다. 정욱 사장은 말했다.“내겐 대중의 흐름이 눈에 보인다.” 정욱 사장은 PC통신 세대다.“난 내게 필요한 거의 모든 정 보를 컴퓨터를 통해서 얻어왔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오가다 보면 대중의 흐름이 읽힌다. 지금도 밤을 새워가며 커뮤니티 를 돌아다닌다. 이종격투기나 MLB파크 같은 특정 취향을 지 닌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 자주 접속하면 그들의 취향과 생각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많은 집단과 접속하다 보 면 전체 대중의 흐름도 알 수 있게 된다.”정욱 사장은 말했 다.“동시대에서 뒤처지면 죽음뿐이다.”‘노바디’는 컴퓨터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20대 대중들과 소통하고 동시대의 음악 흐름을 끊임없이 따라잡은 결과 였다. 세계적인 1980년대 복고 흐름에 짧은 시간에 귀를 간 지럽히는 중독성을 가미했다. 정욱 사장은 말했다.“어떤 음 악을 놓고 대중에게 어떤 행동을 하면 대중이 어떻게 움직이 겠구나를 알 수 있다.”대한민국에서‘노바디’를 모르는 사 람은 노바디다. 음악은, 대중을 안다. 송병준 그룹에이트 대표는 <꽃보다 남자>로 대박을 터 뜨렸다.‘F4’는 벼락 스타가 됐다. 하지만 <꽃보다 남자>는 시작조차 못하고 좌초될 뻔했다. 처음엔 MBC한테 거절당했 다. 신데렐라 스토리는 진부하단 이유였다. SBS한테도 외면 당했다. 다른 경쟁작한테 밀렸다. KBS의 반응도 미지근했 다. 그래도 KBS와는 계약이 되는 듯했다. 문제가 생겼다. 감 독과 작가가 호흡이 안 맞았다. 송병준 대표는 말했다.“작가 들과 난 만화 원작 그대로 만들자고 했다. 감독은 너무 진부 하다면서 인물 설정만 가져오고 처음부터 다시 짜자고 했 다.”결국 감독이 떠났다. KBS도 손을 뗐다. 3주 동안 <꽃보 다 남자>는 방송사도 정해지지 않은 채 촬영을 해야 했다. 송병준 대표는 알았다. KBS는 모를 뻔했다. MBC와 SBS는 몰랐다. <꽃보다 남자>가 이렇게 잘 될 거 라곤 아는 사람만 알았다. 송병준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구준표 역할로 이민호를 데려왔더니 방송사들이 다들 고개를 저었다. 더 유명한 배우를 데려오란 거였지. 그 래도 난 이민호한테 그랬다. <꽃보다 남자>로 네 인생이 달 라질 거라고. 이젠 실감하고 있겠지.”하지만 송병준 대표도 몰랐던 적이 있다. 그는 주진모와 함께 <비천무>를 만들었 다. 송병준 대표는 <비천무>가 완전히 된다고 믿었다. 그러 나 아무도 믿어주질 않았다. 여기까진 <꽃보다 남자>와 같 았다. 결말이 달랐다.“ 그때 포기했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고집을 부렸다. 내 돈으로 만들어서 보란 듯이 보여주면 다 사갈 거라고 생각했다.”방송3사는 완성된 <비천무> 마저도 철저히 외면했다. <비천무>는 2005년에 완성됐지만 2008년이 돼서야 SBS를 통해서 겨우 전파를 탔다. 그나마도 시청률은 단자리 수였다. <꽃보다 남자>와 달리 그땐 방송 사들이 옳았다. 드라마는, 대중을 알다가도 모르고 모르다 가도 안다. 영화 흥행은 가장 종잡을 수 없는 대중문화 종목 가운데 하나다. 드림 캐스팅에 화려한 볼거리에 재미난 이야기를 붙여놓아도 이상하게 외면 받는게 영화다. 공포 영화나 조 폭 장르 말고는 이렇다 할 흥행 장르도 없다. 장르가 없다는 건 관객과 영화 사이에 약속된 게 없단 뜻이다. 한국 관객은 변덕스럽다. 영화는 관객을 길들이는 데 실패했다. 그런데 도 할리우드 장르 영화들은 몇 백만 씩 든다. 한국 영화엔 스 타 파워도 거의 없다. 값비싼 개런티가 무색하기 일쑤다. 어 느 제작자가 푸념했다.“ 제작비도 적고 스타 파워도 없는 <워낭소리>나 <과속 스캔들>이 이렇게 잘 되면 도대체 이 젠 어떤 기준으로 상업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건가?”<추격 자>도 처음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주연 배우 하정우도 고 백했다.“ <추격자>보단 같은 시기에 촬영했던 <비스티 보 이즈>가 더 잘 될 줄 알았다.”신인이 만든 연쇄 살인 영화는 흥행 공식 안에서 답이 안 나오는 거였다. 하지만 <추격자> 는 터졌고 공식은 깨졌다. 공식이 성립이 안 되니까 이젠 다 들 헤매고 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망한다. 생각도 안 했는 데 터진다. 영화는 이제, 대중을 모른다. 어떤 영화 감독은 알 수도 있다. 어떤 드라마 제작자는 흥행의 연금술사일지도 모른다. 어떤 음악 프로듀서는 감조 차 없을 수도 있다. 분명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 다. 하지만 분명한 게 있다. 지금의 대중은 통속적인 대중문 화 장르를 사랑한다. 만드는 이의 자의식과 예술혼이 투사 된 건 오락물이 아니다. 대중은 대중문화를 보면서 일희일 비하길 원한다. 드라마에서도 <미워도 다시 한번>이나 <아 내의 유혹>은 되지만 <돌아온 일지매>는 안 된다. 영화에서 도 <조폭 마누라>는 터지지만 <고고 70>은 외면당한다. 음 악에서도 이를테면 소녀시대와 원더걸스만 된다. 영화는 현재 대한민국 대중문화에서 가장 다듬어진 장 르다. 칸과 베니스와 베를린이 한국 영화에 주목한다. 이탈 리아의 거장 감독 따비아니 형제는 한때“세계 영화의 흐름 이 한국에 있다”고까지 했었다. 한국 영화는 통속적이기를 거부한다. 1960년대엔 <미워도 다시 한 번> 같은 신파 영화 가 있었다. 지금 한국 영화는 신파를 부인한다. 촌스럽기 때 문이다. 한국 영화는 촌스러운 걸 가장 증오한다. 그럴 만큼 스스로 세련됐다. 박찬욱과 봉준호 같은 스타일리스트를 배 출했다. 웰메이드 영화에 대한 영화인들의 자긍심은 대단하 다. 흥행만큼 중요한 게 자존심이다. 흥행이 안 돼도 자존심 만으로도 버틸 수 있다. 그러나 관객은 만듦새엔 관심이 없 다. 영화가 자신에게 뭘 줄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이 있다. 재 미만 있다면 촌스러워도 상관 없다. <디워>가 그랬다. 대중 은 자존심을 세우는 영화 평단을 작정하고 비웃었다. 자본 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가당찮은 자존심을 말하는 것만큼 촌스러운 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아직 모른다. 드라마는 통속과 예술을 오간다. 드라마 감독들은 오랜 동안 영화를 부러워했다. <베토벤 바이러 스>를 만든 이재규 감독도 처음엔 영화 감독이 되고 싶어했다. 드라마 연출을 하게 된 건 오직 방송사 입사 시험에 붙을 만큼 공부를 잘했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감독 들도 자신의 영상 장르에서 양껏 욕심을 부려보려고 애쓴 다. 수준 높은 미국 드라마의 영향도 크다. <베토벤 바이러 스>도 미국 드라마 <닥터 하우스>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내 시청률에 휘둘린다. 매일 아침 나붙는 시청 률 등락 곡선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청률 에 반응한다는 건 그만큼 대중의 요구에 맞춰간다는 뜻이 다. 자의든 타의든 말이다. 드라마는 점점 통속적으로 변해 간다. 시청자는 드라마에서 드라마틱한 걸 원한다. 그래서 드라마다. 게다가 촬영 일정은 늘 빡빡하다. 나중엔 맞춰 찍 기에도 바쁘다. 예술 할 의지도 시간도 남아 나질 않는다. 드 라마는 대중한테서 자유롭고 싶어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대중의 볼모다. 음악은 1990년대의 전성기가 끝나고 극심한 침체기를 거치면서 가장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것들만 살아남았다. 1990년대 음악은 대한민국의 대중문화를 이끌었다. 음반 판 매량이 문제가 아니었다. 서태지 신승훈 김동률 이적 같은 가수의 가치는 음반 판매량만으로 따질 수 없었다. 지금 음 악의 화두는 생존이다. 어쩌면 그래서 음악은 다시금 이 시 대의 정신이다. 지금 대중이 원하는 것도 생존 그리고 생존 이다. 게다가 음악은 영상보단 즉물적이다. 생각하기보단 느끼게 된다. 지금 대중이 바라는 건 생각이나 비판이 아니 라 감정과 소비다. 그래서, JYP 정욱 사장이 고물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다는 건 비범한 일이다. 분명 그는 대중을 알고 있다. 영화는 모르고, 드라마는 헷갈리고, 음악은 안다.

    에디터
    신기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