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ing

헤어진 여자와 잤다

2009.09.23GQ

시작도 끝도 ‘어쩌다’ 그랬던 연애였다. 어린건 곧 권리였다. 오늘, 시작은 어렸지만 끝은 달랐다.

여자의 가슴을 둘러싸고 있던 비유와 상징이 한꺼번에 깨져나간 밤이었다. 우린 스물두 살이었고, 그녀는 최초의 가슴이자 입술이자 혀였다. 중요한 게 ‘장소’는 아니었다.자리마다 칸막이가 있던 대학가 카페, 분수대 앞에서도 니트 속으로 손을 넣었다. 거부보다 뜨거웠던 건 한숨이었다. 신음은 참았다. 침실은 아니었으니까, 최소한의 예의였다.

“계속해줘…”라고 말했던 건 서울이 아니었다. 런던이거나 프라하였다. 외박 한 번 안했던 순진한 대학생 커플 최초의 외유는 ‘배낭여행’이라는 이름으로 허락됐다. 한 달동안, 하루에 여덟 시간을 손잡고 걸었다. 배가 고프면 아무데나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 그렇게 피곤했는데, 새벽엔 잠도 안 잤다. 할리우드에서 통하는 동양여자, 루시리우 같은 얼굴, 낮아서 섹시했던 목소리, 날렵하지 않아서 지적이었던 하학, 운동으로 다진 배는 탄탄하기까지 했다. 쇄골과 가슴골, 배를 지나 그 아래까지 이어지는 완만한 곡선을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욕망했다. 결혼을 말하는 입은 섣불렀고, 이별을 말하는 혀는 무겁지 않았다. 약속 같은 건 베개 속 오리털처럼 흩날리는 침실이었다.

“그땐 술 같은 거 안 먹어도 좋았는데.”“지금은 취해서 좋지 않아?”8년 만에, 우린 같은 침대에 누워 있다. 그동안은 생각나면 전화하는 사이였다.‘친구로 지내자’고 헤어졌으니까, 안부를 묻는 것 또한 ‘친구’로서의 예의였다. 그나마 자주 생각하지도 않았다. 2년에 한 번 정도“, 네가 먼저 빨리 결혼해”라며 실없이 눙치면서 통화했다.그럼, 오늘의 섹스는 헤어진 연인으로서의 예의였을까? 취기를 빌린 진부한 일탈이었을까? ‘ 생각’이라는 걸 할 겨를이 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같은 침대에 누워 있기 전엔,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동창’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한꺼번에 만났던 건 또 몇 년 만이었을까? 캠퍼스에서 손잡고 다니던 몇몇은 부부가 돼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여자는 남자에게‘그만 마시라’고 핀잔이었다. 남자의 몸은 그새 거대해졌다. 허리띠 위로 지방이 비져 나왔다. 그걸 배배 꼬며‘오늘만 마시게 해달라’고 애교를 부렸다.‘ 동창회’라는 이름은 금요일밤 취기만큼 지리했다. 처음 보는 어린 여자친구를 데리고 온 어떤 애는 취한 척 흐느적거렸다. 몇 잔 마시지도 않았으면서, 여자애 어깨에 기대서 볼에 입술을 대고 있었다. 쉽게 읽히는 얕은 술수들이 먼지처럼 부유하는 밤이었다. 세 시간 전이었다.“오랜만에 이러니까 어때?”“여행 온 것 같네.”그보단 유원지 같았다. 어제 갔던 유원지에 오늘 또 가서 느리게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세 번 연이어 타면 이런 기분일까?

유럽에서, 우리는 하이네켄에 취해 있었다. 대학교 앞에서 어떤바에 갔을 땐 처음 보는 병맥주와 칵테일을 시켜 먹으면서 어른이 됐다고 생각하는 나이였다. 다른 애들이 코스모폴리탄이나 롱 아일랜드 아이스티 같은 걸 시킬 때 ‘마티니’를 시키면서 느꼈던 우월감은 섣불렀다. 섹스도 다르지 않았다. 이런 몸이라면 평생, 이런 쾌락이라면 매일, 이 얼굴이라면 영원을 생각했다. 굳이 사정을 향해 땀 흘리지 않아도 서로 만족했다. 혀가 지나간 자리에 돋은 소름까지 경이로웠다. 목이나 귀에 닿은 것만으로도, 거기가 끝이라고 여겼다. 눈에서저릿했던 어떤 자극은 정수리를 지나 뒷목까지 닿았다. 지금까진 있는지도 몰랐던 모든열과 에너지가 한 곳으로 모였다 터졌을 땐, 아침을 거부하고 싶었다. 우린, 어렸다.

“처음‘뽀뽀’했던 날, 기억해?”둘 다‘, 풉’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이 아니면 다시는 키스하지 못할 것처럼 애타게 굴었으니까. 100일 같은 걸 챙기고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게 연애의 관행이 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오전 9시,1교시 수업이 시작되기 전엔 꽃을 들고 그녀 집 앞에 서 있었다. 스스로‘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던 장미 스물두 송이. 저녁 땐 대학로 어디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케사디야와 샐러드를 먹고 CD와 시집을주고받았다. 에디트 피아프와 기형도였다. 바래다 주던 집 앞에서는 의향을 물었다. 정중했다. “키스, 하고 싶어.”지금, 옆에 누워서 서른이 된 여자는 그때 고개를 숙였었다. 그리고 말했다.“안경… 안 벗어도 될까?”처음 벗겼던 건, 그녀의 안경이었다. 스물둘이었던 그때 그 여자와, 지금 이 여자의 몸은 다르지 않았다.‘탄력을 잃었다’‘주름이 생겼다’‘근육이 사라진 자리엔 지방이처져 있었다’같은 문장의 조건들은 더 길고 위험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결혼과 출산, 갈등과 외유, 일탈 같은 단어들을 모두 거친 다음.하지만 8년은, 노화를 담보하기엔 이른 기간이었다. 달라진 건 몸짓이었다. 혹은 혀였다.“더 위에, 옆에, 그 주변, 계속, 좋아, 세게, 그만….” 확실히 말이 많아졌다. 남자의 손과 혀에 내리는 명령엔 신음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더 단호했다. 나는 자동판매기가 된 기분으로 움직였다. 5백원을 넣고, 기계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버튼을 누르고,기계손 끝에 살짝 걸린 인형은 결국 놓치고 마는. 같은 돈으로 사 먹는 캔커피 한 잔만큼의 효용도 없는 찰나였다. 교대로 등을 긁어주는금슬 좋은 육십대 부부를 생각하면서 나도 말했다. “입으로만 해봐, 끝까지.”

그녀가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는 얘기는 종종 들렸다. 어느 집단에나, 묻지도 않은 말을 ‘해대는’ 사람은 있다. 동창이란 결국 떠도는 말들로 가까스로 엮여 있는 사이니까. 들리는 상대는 대기업에 취직한 한 학번 위 선배이거나, 직장 동료인적도 있었다. 연애는 그런 식으로 오다가다 했다. 9월 1일 저녁이 되면 공기가 서늘해지고, 한 번 더 비가 오면 가을이 완연해지듯. ‘ 남자친구’라는 이름으론 몇 명을 더 사귀었어도 이상할 게 없는 시간이었다. 호기심은 있었지만 묻지 않았다. 다시 만날 생각도 없는데. 치졸해 보일까 봐. 그래도 ‘많이 변했다’는 말은 하고 싶었다. 어떤 의미로는 ‘성숙’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변화니까. 이렇게 말했다.

“너, 그땐 아무 말도 안 했어. 못했던 거였나?” “뭘 몰랐으니까, 그땐.”맞다. 모든 ‘처음’엔 여유도, 틈도 없었다. 목소리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숱한 느낌들에 함몰됐었다. 필요도 없었다. 날이 밝는게 아쉬워서 졸려도 안 잤다. 오래 달리기를 하고 나서 ‘하늘이 노랗다’는 말을 체험했던 체력장날 오후 2시처럼,‘머릿속이 하얗게 됐다’는 말을 몇 번이나 체험했던 희붐한 새벽이었다. 오늘은 달랐다.모든 게 끝나고도 맨숭맨숭하게 누워 있었다. 지금, 누가 먼저 일어나는 게 옳은 걸까?

동창회가 한창이었던 술집에서부터 여기까지는,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그녀와 난 몇 번이나 눈이 맞았다. 웃는 둥 마는 둥 했다. 여자 볼에 입술을 대고 있던 남자애가 여자를 데리고 나가고, 비져 나온 뱃살로 배배 꼬던 부부가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을 때, 그녀가 걸어왔다. 비틀거려서 손을 잡았다. 어깨를 내줬다. 볼을 만졌던 건 실수였다. 어쩌면 여기가 누가 먼저 일어날까를 고민하는 지금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그러다 다시, 눈이 맞았다. 얼굴이 가까웠다. 나는 물었다.“많이 마셨어?” “오랜만이다”라거나, “ 잘 지냈어?”라고 하지 않았다. 어제까지연애하다 오늘 다시 만난 사람들처럼 걱정부터 했다. 두 번째 실수였다. 여자의 눈이 충혈된 채 그렁그렁했다. 얼굴이 귀와 어깨 사이에 묻혔다. 여자의 입술이 목덜미에 닿았을 때 생각났던 건 몇 년 전의 숱한 새벽과, 대학교 분수대와, 칸막이가 있던 카페였다. 혀로 내 목을 핥던 여자 귀에 대고 말했다.“나가자. 취했어.”핸드백과 카디건을 챙기는 여자의 오래된 등을 보면서, 나가자마자 택시를 태워 보내겠다고 생각했다. 취한 여자를 대하는 건전한 관례로서. 과대표였던 친구에게 1만 원짜리 몇 장을 쥐어주고 나왔다.바람이 찼다. 도로는 식어 있었다. 빈 택시는 즐비했고, 8년 전에 헤어졌던 여자친구가 혼자 사는 집까지 가는 길엔 모텔이 줄지어 있었다. 서울의 밤은, 절반이 숙소다. “논현동요.” 나는 말했다. “집에 안 갈래.”취한 여자가 말했다.

6년 전에, 그녀가 헤어지자고 할 때 얼마나 울었더라? 칸막이가 있는 카페 재떨이에는 휴지가 수북했었다.‘ 꺼이꺼이’소리를 냈을 정도였다. 부끄럽고 뭐고 할 겨를도 없었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어떤 남자는 우릴 보고 다 안다는 듯이 웃었다. 우리는‘모골이 송연하다’는 표현이 공연한 수사가 아니라는 걸 몸으로 체험할 때까지 둘이 안고 그랬다. 기운은 정수리로 빠져나갔다. 나중엔 누가 누굴 위로하는 건지도 몰랐다. 헤어지는 주제들끼리, 위로는 가식이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모든 비유와 상징을 현실로 흩뜨렸던 몸도, 이젠 이런 식으로 다시 열리는 몸이 됐다. 새벽 2시여서 다행이었다. 네 시간 정도 잘 수 있으니까.“일어나자, 들어가야지.” 내가 말했다.“조심해서 들어가.”술기운이 가신 여자가 말했다. 폐장한 수영장 풀에 띄운 얼음조각 같은 밤이었다. 새 관계를 직조할 수 있는 어떤 조각들은 이미 없었다. 둘 다, 그걸 알았다.

    에디터
    정우성
    아트 디자이너
    Illustration/ Kim Eun 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