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춤했던 수입 외식 브랜드 론칭이 다시 활발해졌다. 그런데 이전과는 다르다. 정통 나폴리식 이탤리언 요리를 표방하는 일본 브랜드, 프랑스 정통 빵집 체인 등이 문을 활짝 열었다.
2004년 도넛 브랜드 크리스피크림이 국내에 론칭할 때, 이례적으로 ‘도넛한 박스 샘플링’ 을 진행했다. 지나가는 아무에게나 도넛 12개가 든 큰 박스를 무차별 살포했다. 신촌 거리에 크리스피크림의 도넛 박스를 두세 개 포개서 들고 다니는 모습을 소개팅하는 남녀를 찾는 것만큼이나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브랜드의 ‘퍼주기’ 홍보는 1호점이 문을 여는 신촌, 이대 일대에서만 진행됐는데, 다 ‘입소문’ 효과를 철저하게 믿었기 때문이다.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많이 본 브랜드인데, 드디어 한국에도 들어오네” 라는 반응이나 “이거 미국에서 먹어봤는데 진짜 맛있어요” 라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하면, 브랜드를 알리는 폭풍 같은 입소문 효과가 시작된다. 수입 외식 브랜드를 알아보는 소수의 사람들을 타깃으로 1호점을 입점시키는 게 론칭 마케팅의 핵심이었다.
수입 외식 브랜드의 1호점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 수입 외식 브랜드가 론칭 하는 모습을 보면 유동인구와 해외여행 경험자가 넘실대는 좋은 ‘입지’ 가 더 이상 성공의 보증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기업들도 입소문 내서 소비자의 발길을 잡고, 물건을 많이 팔아 치우는 대형 수입 프랜차이즈보다, 괜찮은 공간을 하나 만든 뒤 손님들이 알아서 찾아올 수 있게 하는 프리미엄 외식 공간을 더 선호한다. 몇 년 전에는 대부분의 외식 브랜드가 커피 전문점이나 베이커리 전문점 위주였다면 최근엔 레스토랑 형태를 띤 외식 브랜드가 수입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작년 도산공원에 문을 연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이하 더 키친)’ 의 경우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문을 연 ‘페이야드’ 나 현대백화점 본점에 입점한 ‘크리스탈 제이드’ 도 마찬가지다.
와인 수입사가 수많은 와이너리를 검토하고 장고 끝에 한 병의 와인을 고르듯, 외식업체가 수많은 외식 브랜드 중 하나를 골라 수입하기까지는 고민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다. 그 고민을 푸는 간편하고 정확한 방안이 ‘일본’이다. 수입업체들은 괜찮은 외식 브랜드가 있을 법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시장조사를 하지만, 주로 일본과 유럽으로 압축되는 경향이 크다. 특히 일본은 우리나라와 입맛이 비슷하고 외식업의 사이클도 비슷한 데다, 외식산업이 우리나라보다 몇 년 앞선 경향이 있어 가장 먼저 고려하는 나라다.
일본의 외식 브랜드 도입은 최근 일이 아니다. 지난 20년간 꾸준하게 일본 외식 브랜드가 도입됐지만 모두가 성공한 것도 아니다. ‘스카이락’ 과 같은 일본 패밀리 레스토랑은 몇 년간 고전하다 2006년 결국 철수 수순을 밟았다. 그 밖에도 ‘요시노야’, ‘프론토’ 등이 들어왔지만 점포를 늘리지 못하고 모두 철수했다. ‘프레쉬니스 버거’ 와 같이 최근에 들어온 일본 브랜드도 기대만큼 폭발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더 과거로 가면 좀 더 비극적인 사례가 있다. 1990년대, 일본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패밀리 레스토랑이 검증도 없이 경쟁적으로 도입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IMF 금융 위기를 맞으면서 한꺼번에 철수했다. 이 경험은 더 이상 일본 브랜드도 ‘성공’ 을 담보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걸 매섭게 알려줬다.
하지만 최근 수입되는 일본의 외식 브랜드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잇따른 수입 외식 브랜드 론칭으로 외식업계의 기린아가 된 매일유업의 사례는 조금 다르다. 외식사업본부 마케팅팀 신효정 씨는 “작년 론칭한 ‘더 키친’ 이나 ‘폴 바셋’ 은 일본 브랜드지만, 퓨전 요리를 만드는 레스토랑이나 일본 음식점이 아니다. ‘더 키친’ 은 일본과 아시아 점포를 늘려가고 있는 정통 나폴리 레스토랑이고, ‘폴 바셋’ 은 세계 적인 바리스타가 관리하는 정통 에스프레소 전문점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한국적으로 변형되어 이도 저도 아닌 맛보다 ‘현지 그대로’ 를 훨씬 선호한다. 해외 경험이 많아지면서 정통 현지 요리에 대한 거부감도 전혀 없다” 고 말한다. 신세계 백화점 식품관 한희정 바이어도“갈수록 식음료 트렌드가 ‘에스닉 푸드’ 나 정통 일식, 정통 프랑스식 등으로 흐르고 있다. 그런 브랜드에 소비자가 더 유혹을 느끼다 보니 식품관 입점 브래드를 고를 때도 수입 외식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다” 고 했다.
수입사가 잘나가는 수입 외식 브랜드를 찾았다 하더라도, 당장 맞닥뜨리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로열티다. 보통 외식업계에선 해당 브랜드에 이익의 3~5퍼센트 정도를 로열티로 지급한다. 외식업계는 물론이고, 유통업계까지 통틀어 가장 수입하고 싶지만, 번번히 성공하지 못하는 단 하나의 브랜드가 뉴욕의 복합 공간 ‘딘 앤 델루카’ 다. 식품도 팔고 가벼운 델리도 파는 매력적인 브랜드가 국내에서 런칭하지 못하는 이유도 로열티에 있다. 여러 업체가 접촉하고 있지만 10퍼센트 이상의 로열티 요구와 인구 1억 미만의 지역에서는 출점하지 않겠다는 본사 방침에 번번히 계약이 무산됐다. 수입 외식 브랜드 론칭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비공식적인 요인도 있다. 대기업 ‘회장님’. 최근엔 외식업계가 아닌 대기업에서 수입 외식 브랜드를 론칭하는 일이 잦은데, 기업의 ‘회장님’ 이 해외에서 괜찮은 외식 브랜드를 자주 발견하기 때문이다. 매일유업의 김정완 부회장은 소문난 미식가로 유럽과 일본을 돌면서 수입할 브랜드를 정확히 골라 사업에 반영한다. 코오롱의 이웅렬 회장도 외식업에 대한 의지를 보이며 일본 슈크림 빵 브랜드 ‘비어드 파파’ 를 론칭했다.
어렵사리 외식 브랜드의 수입이 결정되고 나면 진짜 산고가 시작된다. 하나부터 백까지 본사에서 ‘조항’ 이 떨어진다. 국경을 넘어도 동일한 분위기, 땅이 달라져도 같은 맛을 내기 위한 노하우겠지만 까다로운 조건들로 인해 어쩔 땐 계획했던 론칭 시점보다 1년 넘게 준비기간이 길어지기도한다. ‘더 키친’ 도 원래 계획했던 론칭 시점은 2007년이었고, 프랑스의 베이커리 업체 ‘PAUL’ 도 론칭 시기를 몇 차례 미룬 적이 있다. 모든 장사가 그렇겠지만, 외식사업의 경우 ‘식재료’ 때문에 난항을 겪는다.
정통 이탈리아의 맛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로 론칭 준비를 시작한 ‘더 치킨’ 의 경우 재료 공수 과정이 험난했다. 식재료 전담팀을 따로 꾸린 ‘더 키친’ 은 이탈리아식 허브가 맞는 게 없어 결국 경기도의 한 농장에 품종에 맞는 허브를 기르기로 본사와 약속한 뒤 론칭을 진행할 수 있었다. 토마토도 국산의 경우 수분이 높고 당도가 낮아 이탈리아 요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통보를 받고 전국을 뒤져 옥녀봉 토마토를 구했다. ‘PAUL’ 도 샐러드에 쓰이는 채소 하나까지도 본사의 확인을 받아야 요리 재료로 쓸 수 있다. ‘PAUL’ 의 기획팀 안태양 팀장은 “프랑스의 맛과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려면 깐깐함이 필요하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세계적으로 성공한 브랜드의 노하우를 믿고 따라가는 것” 이라 했다. 본사에서 입지 선정에 관여하는 경우도 있는데 광동요리 전문점 ‘크리스탈 제이드’ 가 그랬다. 홍콩 여행을 해본 사람은 알지만 ‘크리스탈 제이드’ 는 현지에서 로드숍 형태가 아닌, 유동인구가 넘치는 대형 쇼핑몰에 자리하고 있다. 같은 요건을 국내에서도 요구해 수입사에서 곤혹을 치뤘다. 결국 수입 외식 브랜드로선 이례적으로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식당가에 입점했고, 작년 10월 명동 눈스퀘어에 입점했다.
반대로, 본사에선 요구하지 않았지만 한국 실정에 맞게 변형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PAUL’ 의 경우, 인테리어나 레시피는 깐깐하고 명확했던 것과 달리 서비스 측면에서는 내부적인 보완이 필요했다. 특히 국내 소비자들은 서비스에 대해 세계적으로도 깐깐한 편이어서 ‘PAUL’ 의 전 직원은 아시아나 항공사의 친절 서비스 연수 프로그램을 한 번 더 거치기도 했다.
어렵게 문을 연 외식 브랜드는 ‘해외 유명 레스토랑’ 이라는 콘셉트를 달고 대대적인 홍보 활동을 한다. 초기 홍보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해외에서 쌓아놓은 인지도와 성과를 알리는 것이다. 그러면 ‘이미 브랜드를 알고 있는 사람들’ 이 움직이고, 점포가 어디에 있든 일부러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래서 외식 브랜드 입점을 다른 마음으로 반기는 곳이 백화점 식품관이다. 신세계백화점 식품관의 한희정 바이어는 “백화점의 고급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수입 외식 브랜드인 영국의 유기농 레스토랑 데일스포드오가닉을 입점시켰다. 매출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기대하긴 이르지만 새로운 형태의 공간에 대한 소비자들의 만족도와 매출시너지 효과가 높다” 고 설명했다.
미식의 세계화, 고급화 시대라 누구든 정통 일식을 만들 수 있고 누구든 정통 프랑스식 레스토랑을 차릴 수 있다. 외국으로 ‘요리 유학’ 을 다녀온 젊은 셰프가 지천에 널렸는데 맛 또한 ‘정통’ 으로 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수입 외식 브랜드’ 자체에서 ‘정통’ 을 느낀다. 외식업체들의 수입 전쟁에 휴전은 없다.
- 에디터
- 손기은
- 포토그래퍼
- 김종현
- 아트 디자이너
- 아트 에디터/ 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