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헌은 여러 번 고개를 흔들었다. “안 그래요.” “성격이 그렇지가 않아요.” “첫인상과는 전혀 달라요.” “사람들은 나를 잘 몰라요.”그리고 이렇게도 말했다. “전형적인 B형남자에요.” ’“황소고집에 억지도 잘 부려요.” “철없고, 눈치없단 얘기 많이 들어요.” <무적자> 개봉을 코앞에 둔 그는, 당구하다 얘기하듯 드문드문 느슨히 말했다.
흰색 면 러너 톱, 아메리칸 어패럴.
힘든가?
늘 하던 포즈나 느낌이 아니라서 좀 어려웠다. 보니까 새로운 사진이 나온 것 같다. 이런 느낌이 더 좋다고 하는 분들도 있고. 재밌게 찍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그런 말투 같다. <무적자>가 곧 개봉인데, 거기서도 당신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될까?
워낙 원작이 전설로 남아 있어서 그게 좀, 솔직히 걱정도 된다.
저 유명한 <영웅본색>이 원작이다. 하지만 정작 그 영화를 정확히 기억하는 대중은 많진 않을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대개는 장국영이 전화박스에서 죽으면서 와이프랑 얘기하는 장면을 떠올리는데, 그건 또 2탄이고…. 어쨌든 원작에 대한 인상이나 추억이 강한 작품이라서 망쳤다는 소리나 듣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서긴 했다. 잘해야 본전이니까.
본전을 넘어설 전략은 뭔가?
인물의 이야기와 관계에 충실했달까? 그래서 무엇보다 한국적인 드라마가 탄탄하지 않을까 한다.
차라리 원작을 모르고 보는 게 나으려나?
장단점이 있는 거 같다. 원작을 알고 보면 ‘아 저런 장면이 있었지, 맞아, 저런 음악이 있었지’하면서 뭔가 찡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원작을 모르고 보면 그저 새롭게 느낄 것이고, 글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주저하는 당신을 보니, 그저 ‘저는 좀 착합니다’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연기하는 입장에선 어땠나?
주윤발 선생님 연기를 따라하거나 그럴 생각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통쾌하다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숙명>이나 <에덴의 동쪽>처럼 인물이 짊어진 짐이 너무 많은,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 가족, 형제, 여자 같은 굴레나 족쇄가 없는 역할이라 뭔가 좀 훌훌 벗어나서 마음대로 뛰놀 수 있는 캐릭터였다. 잘 생긴 남자 배우 넷이 하니까 부담도 좀 줄었고.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일까?
군대 제대하고 나서 좀 거친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했다.<가을동화>나 <여름향기> 같은 소위 여자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피하려고 했다. 지금도 송승헌 하면 그런 이미지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고 본다. 달달하고 부드럽고 그런 거. 하지만 남자가 봤을 때 멋있는, 그런 거친 캐릭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런 시도를 계속 하는 것 같다.
<에덴의 동쪽>이 연장되는 느낌도 있다. 당신이 관객이라면 송승헌이라는 배우가 어떨 것 같나?
영화로는 소위 대박을 쳐보지 못해서 뭐라 말해야 할지. 그렇다고 작품성이 뛰어났느냐 하면 그것도 좀 그렇다. 매 작품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작품 보는 눈이 없을 수도 있고,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는 걸 수도 있다. 하려다가 안 한 작품이 잘되는 경우도 봤고.
안 해서 후회하는 작품이 있나?
예전에 <클래식>이란 작품도 있었고, <국가대표>도 그랬다. 근데 그 영화가 잘 된 건 그 배우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내가 했으면 또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거 아닌가. 후회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다만 영화를 선택하는데 좀 성급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영화에 적응을 좀 못했다고 해야 하나, 집중하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그런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만만하게 봤나?
너무 쉽게 봤던 것 같다. 드라마보다 영화를 찍을 때 집중하지 못했다.
<무적자>가 중요하겠다.
그렇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송승헌이라는 배우로서도 그렇다. 앞으로 영화만 한다거나 드라마만 한다거나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이제는 정말 좀 보여줘야 할 때이기 때문에.
결과에 따라서 뭔가 좌우되는 게 있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연기자란 직업에 회의를 느끼거나 포기하거나 그러진 않을 거다. 다만 욕심이 좀 난다는 얘기다.
감은 어떤가?
내가 부족하다고 한 게, 나는 매번 항상 감은 좋았다. 하하.
함께 기대하겠다. 음, 송승헌이라는 남자한테선 좀처럼 도발을 느낄 수 없다. 당신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증거를 거의 주지 않았달까? 송승헌이 어떤 사람일지 잘 모르겠는 채 당신을 봐왔다.
우선 혈액형이 B형이다. 근데 열에 아홉은 B형으로 안 본다. B형에 대해서 솔직히 막 좋다! 이러는 사람은 없지 않나? 굉장히 전형적인 B형이고, 소위 말하는 B형의 안 좋은 점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나를 B형으로 안 본다. 착한 이미지, 바른 이미지, 말도 없고…. 뭔가 나를 잘 드러내지 않았던 건, 사실 별로 보여줄 게 없어서였다. 나는 굉장히 고집이 세고 다혈질이다.
안믿긴다.
황소고집이다. 억지도 잘 부린다. 성격이 급한데 일할 땐 더 급하다. 뭔가 빨리빨리 진행되어야 하고, 빨리 결과를 봐야 한다.
당신이 재미없는 남자일 것 같다는 생각은 오해인가?
성격이 급하긴 한데, 재미는 없다. 친구들과 있을 때만 잘 논다. 낯을 많이 가린다.
연예인이 낯을 가린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카메라 앞에서 뭔가 주어지거나, 짜여진 대본이 있거나, 그런 상황에서만 스태프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일한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 곳은 너무 힘들다. 성격이 대범하지가 않다.
어떻게 보이는가 하면, 보통의 엔터테인먼트 생리와는 애시당초 동떨어진 사람 같다.변하지도 않나?
조금은 적응을 해가는 거 같다.
적응 중이라고?
예전엔 어떤 사람이 내 욕을 하면, 아 몰라 나도 같이 욕해, 안 보면 그만이지,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 요즘은 포용하려고 하고, 오해를 풀려고 하고, 뭔가 인간관계를 따뜻하게 넓히려고 한다. 사업가나 정치가가 될 건 아니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왕이면 좋은 관계를 맺고 싶고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고,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서른 살 넘으면서부터 확실히 그렇게 됐다.
그래도 결국 싫은 건 싫은 거 아닌가?
맞다. 싫은 건 싫은 거다. 어떻게 보면 현실과 좀 타협한 게 아닌가 한다. 요즘 세상은 모든 게 이슈가 되지 않나? 별것도 아닌 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쉽다. 그냥 솔직히, 나를 안 건드렸으면 한다. 내 칭찬도 안 했으면 좋겠고 내 욕도 안 했으면 좋겠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자체가 별로다. 그렇다면 사실 내가 이 직업을 가지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뭔가 안 맞긴 하지만, 성격은 진짜 그렇다. 좀 수동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어디 나서기 싫어하고 그랬던 것 같다.
배우로서의 욕심도 자기만족을 위한 건가?
뭐랄까, 왜 배우가 됐냐는 질문을 받으면, 거기에 대해서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하고 싶었다거나 그런 게 전혀 아니다. 그냥 내 만족에 하던 연기인데 대중이나 또 나를 좋아하는 팬들은 그걸 굉장히 크게 느끼고 있었다. 아 몰라, 나 이렇게 살다가 죽을래, 막 그럴 수도 있겠지만, 쉽게 생각하고 쉽게 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 책임감 같은 거, 서른 넘어서 알게 됐다. 배우로서의 욕심이라면 나이가 들면서 그 나이에 맞는 멋있는 연기를 하는 거다. 하지만 사실 뒤돌아서 혼자 생각하면,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이런 내색은 지금 처음 하는 얘긴데,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건 여전히 의문이다. 연기 말고 해보고 싶은 일도 있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내색은 못했다.
나이 들어서도 멋진 배우이고 싶다는 얘기는 대개 그때도 자신이 주연일 거라는 전제가 있는 것 같다. 현실이 꼭 그렇진 않을 것이다.
글쎄, 거기에 대해서는…. 그걸 내가 용납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면 더 슬픈 거 아닌가? 주인공의 아빠 역할을 한다면, 솔직한 심정은 그럴 바엔 그냥 안 하고 은퇴해서 사랑하는 와이프와 애들과 평범하게 사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까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나?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솔직히 노력한 거 이상의 많은 걸 누렸다고 본다. 얼마 전에 홍보대사로 있는 한 뮤지컬 연습 현장에 갔는데, 거기 있는 분들의 그런 끼와 열정과 피나는 노력을 봤을 때, 굉장히 반성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런 일이 많다. 금방 돌아서서 까먹을지언정, 저 사람들 저렇게 잘하고 또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그분들 나름대로의 만족도 있겠지만, 그 중에는 텔레비전에서 스타가 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 아닌가. 그런 걸 볼 때마다 내가 과분한 걸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난 운이 좋은 거다.
그 운이 하필 영화 흥행에만 오지 않았군.
그게, 이번엔 와야 될 것 같다.
어떤 배우의 어떤 연기에 자극을 받나?
최민식 선배님을 좋아한다. <올드보이>를 보면서 굉장히 충격을 먹었는데, 저건 그저 연기력이 아니라 배우 자체의 힘이라는 걸 느꼈다. 영화 보고 몇 년 뒤에 사석에서 뵙고 그날의 충격에 대해 얘기를 드렸다. 나도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노력하겠다고.
카멜 코트, 구찌. 팬츠, 에르메스. 미키마우스 티셔츠는 에디터의 것.
- 에디터
- 장우철, 강지영
- 포토그래퍼
- 목나정
- 스탭
- 헤어/김현진, 메이크업/ 임해경, 어시스턴트 / 하연주, 어시스턴트 / 홍서진, 어시스턴스/양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