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김보연, 이보희, 김혜옥, 금보라, 차화연에게 은닉된 치명적인 멜로드라마. 여기에 당신을 기다리는 엄마는 없다.
차화연 “어우, <사랑과 야망> 너무 우려먹었어.” 그리고 5분 뒤 이런 말도 했다. “어우, 난 지금까지도 미자야. 미자는 나의 삶이지.” 차화연은 20년 전과 지금의 간극을 개의치 않았다. 너무 먼 시간이라서, 혹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찰나라서. 호들갑을 떤 건 오히려 대중이다. “처음 복귀했을 때 날 실망스럽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었거든? 차라리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도 하고. 근데 난 상관없어. 그건 그쪽 사정이고, 난 이런 마인드야. 그동안 몰랐는데 사람들이 나한테 참 쿨하다더라?”
김보연 1974년부터 2011년까지 끊임없이 노출됐던 여자. 김보연의 필모그래피는 지난 37년 동안 어떤 여자의 이름, 누구의 아내를 거쳐 엄마에 이른다. 이건 모든 여자의 삶일까? 배역은 주연에서 조연으로, 단역과 특별출연으로, 그리고 다시 주연이다. 이건, 모든 여배우의 삶일까? “어떤 선배들은 소외감을 말하지만, 나는 요즘 굉장히 즐기면서 해요.”
금보라 “응? 엄마가 아니면 뭐야. 여자? 에이… 귀찮아. 여자는 남자도 있어야 되고 피곤해.” 깨진 거울 위에서 막 촬영을 마친 금보라가, 검정색 스판 바지에 검정색 힐을 신고 말했다. “너무 많은 걸 생각하게 해, 여자는. 나이 들수록 단순한 게 좋아요. 우리가 계속 여자라는 존재로 있어 봐. 그럼 다른 여자들은 언제 여자 되겠냐구. 다음 세대 젊은 여자들이 올라오고, 걔네들이 또 엄마가 되고. 그렇게 하는 거지. 나만 이기적으로 평생을 여자로 살 거라 그러면…. 그럼 남자들이 딴 여자들 괴롭히는 시간이 줄어들 거 아냐? 나는 받을 만큼 받아봤기 때문에, 이제 편안하게 살아.”
김혜옥 김혜옥이 랜드로버 레인지로버를 몰고 스튜디오로 왔다. “사람은 정말 모른다니까? 내 안에 이런 면도 있어.” 차뿐만이 아니라, 김혜옥은 정말 그랬다. “양파 껍질 요렇게 까는 것처럼, 내 안에 내가 너어무 많아”라고 말할 때의 목소리. “<전원일기> 서울댁 하기 전엔 나 연극 무대에서 잘나가는 배우였거든? 서울댁 안 하면 못 먹고 사냐고 하는 사람 많았어. 근데 정말 못 먹고 살았어”라며 쉼표 없이 쏟아낼 때의 눈초리.
이보희 스물여섯 살이었던 이보희가 가슴께부터 발가락 끝까지 맑은 술을 흘릴 때(<어우동>, 1985), 파란색 비키니를 입고 누운 무릎에 남자의 손가락이 닿을 때(<무릎과 무릎 사이>, 1984). 그럴 때마다 멈췄던 숨. 이보희는 어쩌면 가장 공고한 판타지의 주인공이었다. “오늘 재밌었어요. 막 옛날 생각도 나고. 근데… 난 엄만데, 엄마가 아니라고 하는 게 별로 와 닿지는 않았어. 아니 엄만데, 엄마가 아니라고 그러면 어떡해?” 그녀의 입술이, 버찌를 깨물 때처럼 뾰로통했다.
- 에디터
- 정우성, 손기은
- 포토그래퍼
- 박세준
- 스타일리스트
- 김봉법
- 헤어
- 조소희
- 메이크업
- 이가빈(포레스타)
- 어시스턴트
- 홍서진, 박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