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을 쓴 하승진이 소리칠 때마다 천장이 움찔거렸다. 선입견 같은 건 다 격파할 수 있을 만큼.
우승하고 나서 “내 인생 최고의 우승”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많이 하지 않았나?
과거에 아무리 좋았어도 과거는 잊히기 마련이다. 옛날에 우승했을 당시엔 물론 그때가 최고였다. 다음에 우승하면 또 그때가 제일 좋을 것 같다.
오히려 한 번 정상을 찍고 나면 동기부여가 힘들기 마련인데.
우승하고 나서 쉬고, 트로피 들어 올리고 이런 거 다 떠나서 딱 경기 종료 버저 울렸을 때 모든 선수가 환호성 지르면서 막 코트로 뛰어나가는 거, 그거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서로 부둥켜안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고…. 작년엔 준우승 해서 상대팀이 그렇게 하는 모습을 벤치에 앉아서 봤다. 주눅 들어서. 그게 너무 씁쓸했다. 또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우승 후에도 매체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본인이 원하지 않았던 건가?
양날의 검이라고 해야 하나? 이 스포츠 처음 나왔을 때 임요환 선수가 계속 언론에 노출됐다. 그러다 보니 결국 연습할 시간이 없어서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만약 내가 언론에 자주 나와서 성적이 떨어지면 하승진 저 녀석 방송 나오고 어디 나오고 하더니 농구도 못하고 그런 소리가 분명 나온다. 그런데 또 너무 안 나오면 폐쇄적이 되는 것 같고. 어려운 숙제다.
어쨌든 당신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평생을 눈에 띄는 사람으로 사는 건 어떤가?
어릴 때부터 가정교육을 잘 받아서 누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일반 학생으로 살거나 해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도 코엑스도 가고 에버랜드도 가고 동물원도 가고 물놀이도 다니고 친구들끼리 술도 한잔 하고 시간 되면 클럽 가서 춤도 한번 추고…. 하고 싶은 거 다 한다. 남 눈치 안 보고 내가 할 거 다 하고 사는 것 같다.
그래도 다른 장신 선수들에 비하면 안티팬이 적은 편이다. 키 큰 빅맨들이 평생 짊어지고 가는 업보라 할 만한.
에? 많이 있는데. 많이 있다. 진짜 많이 있다.
신경 쓰이나?
그런 쪽으로 자신감이 있다. 날 아무리 싫어해도 내가 직접 만나서 딱 얘기하면, 날 정말 사랑하게 될 거다. 어느 누구든 대화하고 나면 다 내 편으로 만들 자신이 있다. 오늘 보니까 나 꽤 재미있지 않나?
생존의 본능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다. 바로 그거다. 멀리서 보거나 TV로 보면 덩치도 크고 인상도 험악한데 실제로 만나면 의외로 유머러스하니까. 어떻게 보면 장점이다. 옛날엔 잘 안 웃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거울 보면서 연습 많이 했다.
당신에 대한 비난이 극에 달했던 건 광저우 아시안게임 전후였던 것 같다. 아시안게임에서 많이 못 뛰었고, 아깝게 우승을 놓친 화살이 당신에게 향했다.
속상했다. 언론엔 내가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경기를 못 뛰었다고 나왔다. 사실 그 때 몸은 거의 완치된 상태였다. 그런데 내가 대표팀에 합류했을 땐 이미 팀 전술이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하승진 부상 때문에 뛰지도 못하는데 왜 엔트리 잡아먹냐 이런 소리가 또 나오는 거다. 사실 기회를 갖지도 못했는데. 얘기할 데도 없고 속상했다. 아시안게임 내내 경기를 많이 못 뛰니 감각이 떨어지고 그러다보니 팀에 복귀했을 때도 제 기량이 안 나왔다.
- 에디터
- 유지성
- 포토그래퍼
- 박세준
- 스탭
- 헤어 스타일링/ 조소희, 메이크업 / 이가빈, 캐스팅 디렉터 / 최진우 , 어시스턴트 / 문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