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바보야, 문제는 입이야

2011.08.02정우영

그녀는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먹었다.

그녀의 머리를 누른 적은 없다. 우리는 예의를 믿기보다, 쾌락 이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방에 있으면, 욕실에 갈 때마다 그곳을 씻고 나왔다. 그녀는 “담배보다 맛있다”고 했다. ‘오버’할수록 더 흥분한다는 걸 알기에 소리도 더 크게 지르고, 엉덩이도 더 심하게 흔드는 것이 그녀의 배려고 믿음이었다.

“하지만 연기는 안 나지.”
“더 못생겼고.”
“냄새도 나잖아.”
“근데 어디서 읽었는데, 사실 거기가 입보다 깨끗하다던데?”
“설마.”
“봤다니까.”
“착한 몸매, 공항 패션 종결자, 그런 말 하는 입보단 깨끗하겠지.”
“웃기시네. 평생 홍어나 먹어라.”
“배불러.”

우리는 두 번째를 시도 중이었다. 아무리 배가 부를 만큼 먹고 나서도, 일에 치여 시간이 나를 앞질러갈 때도, 몸도 못 가눌 만큼 취해도, 여자를 안는 건 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항상 “하자”고 밀어붙이면서, 눈치 볼 틈까지 절약하곤 했다. 하지만 그녀의 ‘하자’를 ‘섹스’로 번역하는 건 몰가치적이었다. 그녀의 “하자”는 “빨자, 핥자, 누르자, 비틀자, 넣자, 만지자, 때리자”는 말로 바꿔 불러야 했다. 그녀에게 섹스는 시계 바늘처럼 왼쪽으로 도는 일정한 흐름이 아니었다. 매번 다른 방향과 다른 방법을 찾는 이 시계는 차라리 제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쪽을 택했다. 샅샅이 서로의 몸을 입으로 훑다 보면 달리가 왜 시계를 녹아내리는 것으로 그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서로의 몸에 침을 묻히는 일이 색칠 공부였다면 이 종이가 원래 흰색이었는지는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어제 잤다는 걸, 점잖게 침을 발랐다고 할 수 있을진 몰라도, 침으로 떡칠을 했으므로 더 사랑한다고 말할 순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사랑한다는 말보단 침을 더 많이 발라주는 쪽을 좋아했다. 운동하라고 닦달한 건 여전히 침 흘릴 만한 몸을 가진 남자이길 바라서였다. 이쪽저쪽에서 흘러나온 침으로 익사하는 것이 그녀의 바람인지도 몰랐다. 그 침이 다 마를 때까지, 그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여자는 결혼적령기부터 성욕이 점점 더 세지는 거 알아?”
“네가 그렇다는 거야?”
“나야 아직 아니지.”
“앞으로 만날 남자는 큰일 났네.”
“너 빼고 온 세상 남자랑 다 잘 거다!”

이런 사이라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었다. 사랑의 끝을 알고 있다는 쓸데없는 경험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 우리의 사랑한다는 말은 침대에서만 나왔지만, 그것이 사랑이란 말을 침대 시트처럼 쓴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사랑이란 말에 딱히 어긋나는 것 같지 않은 충만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란 단어를 다루는 데는 코에 난 여드름처럼 곤란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사랑이란 말은, 안 쓰려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도, 문득 새어나왔다. 고름처럼.

그녀의 연애관은 상식과 달랐다. 새로운 남자는 삽입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즐기기 위해선 친밀감이 필요하다고 했다. 입은 대화 말고도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써먹을 수 있었다. 다만, 대화하다가 숨이 넘어가는 경우는 없지만, 여기에선 숨이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녀의 편도선 가까이 밀어 넣어서 특별히 좋은 감각을 느끼진 않았다. 포르노는 시각의 충격으로부터 손의 공격으로 남는다. 손은 기억하고 나는 모르는 일이 가끔 벌어졌다. 그녀는 숨이 넘어가는 와중에도 ‘핥을 때’와 ‘빨 때’의 감각을 내게 물었다. 그리고 한 번씩, 물어보지 않은 일도 했다. 상처가 날 때도 있었다. 좋아하는 것 같으면 다음에도 했고, 별 반응이 없으면 다시 하지 않았다. 물어보고 시도하고 반영했다. 입으로 콘돔을 씌우려고 한 적도 있다. 콘돔 세 개를 찢고 나서야 그만뒀다. 그건 ‘특별한’ 여자만이 보여주는 기예 같았지만, 그녀는 기쁨을 주기만 하는 사람도, 받기만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불을 끄는 건 상대방의 반응이 안 보여서 싫다고 했다. 섹스야말로 드물게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들 수 있는 일 아니냐고 했다. 어머니가 배에 입바람만 불어넣어도 까르르 웃던 때가 언제까지였지? 이제는 간지럼을 태워도 웃지 않는다. 간지럼을 안 타는 어른을 위해 애무라는 기쁨이 있다.

“조이 디비전 알아?”
그녀가 물었다. 조이 디비전을 안다는 게 그보다 뿌듯했던 순간은 없었다.
“잘 안 서는데?”
“금세 서는 게 이상하지.”
“왜 내가 별로라서?”
“그게 무슨 소리야? 라는 말 듣고 싶어서 그런 거지?”
“체인지.”
“이렇게 끈기가 없나.”
“네 거 물고 빨다가 수염이 날 지경이거든?”

로프를 잡고 링에 오르듯이 여자의 골반을 잡는다. 이 바닥의 참가의사 표시다. 그녀를 엎드리게 하고 등부터 훑어 내려갔다. 이기 시릴 만큼 찬물을 마시고 등을 핥는 걸 좋아했다. 생수병이 냉동실에 들어 있다면, 우리의 사랑은 의심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녀는 귀고리를 빼지 않은 채 입에 넣기를 바랐다. 입이 그곳에 닿는 시기는 이왕이면 속옷을 벗기 전에, 속옷까지 입에 문 채인 것을 좋아했다. 그녀는 록페스티벌에서도, 굳이 진창으로 쫓아가 뒹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곳만큼은 혀가 직접 닿았으면 했다. 혀는 남자의 그것처럼, 길게 뻗으려고 하기 전까진 부드럽다. 말하자면, 그녀는 부드러운 것과 딱딱한 것을 동시에 가지길 원했다. 그리고 연필과 지폐를 동시에 집길 바라는, 돌잡이 아이의 욕심 많은 부모처럼, 나를 지켜봤다. 누워서 빤히 그 모습을 지켜볼수록 더 흥분된다고 했다. 하나 더 있는 베개가 쓸모 있어지는 때였다. 쌓아올린 베개가 그녀의 눈과 마주할 수 있는 높이를 만들었다. 웃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감전사할 것 같아.”
혀에 전기가 올랐다. 그녀가 손으로 입을 닦아주면서 말했다.
“침 흘린 것 좀 봐.”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몸 위로 올라갔다. 입 주변을 그녀의 가슴에 문질렀다. 이틀가량 안 깎은 수염이 꽤 따가웠을 것이다. 그녀가 거의 목을 조르다시피 하면서 나를 밀어냈다. 이번에는 내 위로 그녀가 올라왔다. 목에서 시작해, ‘끈끈한 자취’를 남기면서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그곳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거의 ‘먹을 것’을 취급하는 수준으로 격렬해졌다.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남자의 그곳을 입으로 해주는 건 군대에서 타는 트럭과 비슷해서, 속도 조절을 해가며 살살 몰지 않으면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퍼지는 수가 있다. 천천히 하라고 말하자, 그녀가 몸을 일으키더니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뭐라고 쓰는지 맞춰봐.”
“뭘 써?”
그녀는 다시 그것을 물더니, 혀로, 어떤 형태를 그렸다. ‘I’라는 명료한, 그러나 불안한 형태. 정말 글자를 쓰겠다는 건가. 아니면 이것도 쾌락에 상상력을 도입하는 그녀의 새로운 방법 중 하나인가?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조그만’ 캔버스에 쓰는 글자가 뭔지는, 알아먹기 어려웠다. 그녀는 다시 몸을 세우더니, 침대 위에서 뒹구는 조그만 머리끈을 찾았다. 고개를 갸우뚱하고, 양손을 머리 뒤로 올렸다.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모아 올리자 목부터 몸까지 드러나는 선이 환했다. 포로의 자세로 남자를 포로로 만드는 몸의 어떤 형태.

“뭐라고 썼게?”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답은 뒷전이었다.
“아이 러브 유 아니야? 아이 러브 유?”
“야, 가슴 보면서 답하지 말고.”
일어나서 그녀의 가슴을 물었다. 한쪽을 물자 그녀가 다른 한쪽을 내 얼굴로 끌어당겼다. 한 손으로 그 가슴을 잡았다.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입은 하나이고, 표현은 항상 부족했다. 참말보다 거짓말을 더 잘하는 우리에게, 입이 두 개이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짓말을 더 많이 하는 우리를 통탄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의 나이가 스물아홉이 아닌 걸 안다. 그녀에게 말한 것처럼, 나는 스리섬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다. 입만 열면 사랑이 쏟아진다.

    에디터
    정우영
    아트 디자이너
    Illustration/ Finger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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