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대한민국에서 예능 PD로 살아간다는 것

2011.11.18GQ

KBS에 입사한 뒤, 잇달아<1박 2일> 조연출을 맡고 있는 류호진은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예능의 시대’ 를 관통하고 있다. 이 글은 지금 그가 예능 PD로서 하고 싶은, 혹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총합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웃음을 만들고 있는 걸까?

2010년 여름 KBS의 PD들은 새로운 노조 결성을 위한 파업에 참가하고 있었다. 한 달 가까이 염천의 방송국 앞마당에 주저앉아 미디어법의 통과와 종편 출범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을 때만 해도, KBS 경영진은 놀라울 정도로 태평하게 미디어법 통과를 관망했다.종편에 대한 KBS의 침묵은 차라리 우호적인 자세에 가까웠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인 2011년 여름. 종편 채널과 대형 케이블 사업자들은 KBS의 베테랑 예능 PD들을 한바탕 쓸어갔다. 다급해진 윗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낄낄대는 건 잠시였다. 분위기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당장 부서 운영이 휘청거릴 수준이었다.

당시, 예능국에‘ 종편’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었다. 몇 달 사이에 유능하다는 선배 열 명 이상이 회사를 떠났다. 간곡한 만류부터“ 어떻게 선배와 조직을 버리고” 등의 원망, “잘되나 보자” 풍의 저주까지 오가는 흉흉한 계절이었다. 촬영 후 말단 조연출들의 술자리에서 10억, 20억 같은 비현실적인 계약금이 화제로 오르고, 아침에 일어나 무심코 쳐다본 인터넷 뉴스에서, 같이 일하던 ‘형들’의 이름을 발견하며 긴 여름을 보냈다. 사무실에선 다들 표정이 씁쓸했는데 그래도 매일매일이 심심치는 않았다.

예능 PD가 언제부터 이런 관심과 대접을 받았을까? 나름대로 황금기가 없진 않았다. 8090년대 한창 방송국에서 열심히 일했던 선배PD들이 회고하는 ‘좋았던 시절’은 그야말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황금의 시대’를 떠올릴 만했다. ‘씨를 뿌리지 않아도 작물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사람들은 시와 철학을 논하며 박카스의 음료를 마시던’ 뭐 그런 시대. 두세 개의 방송국이 대한민국 모든 오락거리의 전부였던 시절. 인터넷도 케이블 텔레비전도 없었던 그때는 무슨 프로그램을 만들든 시청률을 염려할 필요가 없었고, 광고시간은 내놓기 무섭게 다 팔려나가 광고를 사기 위해 대기업 직원이 방송사 광고부 직원을 접대해야 했다고한다. 그런 놀라운 생태계가 있었다니 이게 무슨 쥐라기 공원도 아니고. 신입 PD들은 입을 헤 벌리고 그 이야기를 들었다. 방송이 끝나 스튜디오 복도에 나서면 당대의 연예인과 매니저들이 복도 양측에 도열해 파도를 이루며 허리를 꺾는 ‘장관’을 연출했다는 시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PD,라고 하면 상상하는 그런 이미지의 근원. “그러나 그 시대는 아주 오래전에 저물었지.” 여의도 어느 재즈바에서 한 선배가 위스키를 머금으며 말했을 때, ‘왜 형은 위스키고 저는 폭탄주란 말입니까. 그게 그 처지의 차이를 은유하는 것입니까?’ 라고 차마 묻진 않았다.

199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연예계의 권력은 방송국에서 연예인과 광고주 쪽으로 급격하게 이동했다. 경제 위기가 닥치며 광고수요가 감소했고, 그 무렵 등장한 인터넷과 케이블 텔레비전은 사람들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흩어진 시선을 붙들기 위해서는 흥행을 보장할 수 있는 강력한 출연자가 필요했고 이들을 놓고 방송사들이 벌인 치열한 경쟁의 결과, 배용준과 SM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유재석과 강호동이 태어나게 됐다.

유재석과 강호동의 시대는 예능의 문법이 급속도로 변화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강호동을 MC로 데뷔시킨<캠퍼스 영상가요>나 유재석을 재발견하게 만든 <서세원쇼-토크박스>는 둘 다 90년대 후반에 방송됐다. 이 프로그램은 대본보다 사후 편집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택했고, 예능에 처음으로 자막을 등장시켰다. <일밤>의 숱한 명코너들이나 <동거동락>, <쿵쿵따>, <천생연분> 같은 새로운 예능을 통칭‘ 버라이어티쇼’라고 불렀다. 버라이어티쇼는 이전 시대를 풍미한 <유머일번지> 같은 콩트 코미디나 <가족오락관> 같은 전통적인 게임쇼에 비해 대본에 없는 변수가 훨씬 많다. 그만큼 진행도 더 까다로워서 MC는 쇼의 전체 구성을 숙지한 상태에서 세부의 웃음도 끌어내야 한다. 쉽게 말해 작가이면서 희극인이어야 하는데 이런 재능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기 때문에 버라이어티 쇼의 MC는 무척 희소한 자원이 되었다.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들이 주요 시간대에 대거 편성되면서 MC들의 몸값은 급격하게 치솟았다. 심야에는 토크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게스트들의 섭외가 어려워졌다. 가요 프로그램은 순위 제도가 폐지되었고, 음반시장의 침체로 인해 그나마 남아 있던 영향력도 더 약해졌다. 더 이상 PD들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히거나 하는 출연자는 없었다. 마침내 PD들의 ‘황금의 시대’가 저문 것이다.

하지만 ‘한때 나한테 머리 숙이던 것들이 이제는 아주 떵떵거리는구나’ 라는 선배들의 박탈감이 차라리 사치스러워 보이는 것은, 이러한 예능 트렌드의 변화가 제작 일선의 PD들에겐 어마어마한 업무 폭증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버라이어티쇼는 막대한 편집과 자막을 추가로 요구했다. 드라마나 음악 쇼에 비해 버라이어티는 오래 찍어서 짧게 내보낸다. 대본이 있긴 하지만 현장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예상하기는 어렵다.

버라이어티 촬영장에 왜 그렇게 카메라가 많이 놓여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말 그대로 누가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장을 모두 커버할 수 있도록 많은 카메라를 놓아야 한다. 심지어 한 사람을 여러 각도와 사이즈로 찍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다양한 샷 사이즈를 한 컷 한 컷 찍어나가지만, 예능에서는 카메라 세 대로 풀샷과 바스트샷과 클로즈업을 동시에 찍어놓고, 사후에 필요에 따라 사용한다. 이렇게 2차 세계대전 스타일로 테이프를 쏟아 넣는 물량 공세는, 촬영이 끝나고 편집기 앞에 앉은 사람을 ‘환장하게’ 만든다. 도대체 어디에 무슨 그림과 대사가 있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버라이어티쇼의 편집 과정을 장황하게나마 설명하자면, 먼저 메인 카메라의 테이프를 모두 보면서 주요 포인트를 체크한다. 체크한 내용을 토대로 스토리라인을 짜 붙인다. 스토리 작업이 완료되면 나머지 카메라에서 나온 테이프 수백 개를 찾아가며 그 스토리에 알맞은 샷을 한 컷 한 컷 붙여나간다. 게스트가 말하는 부분은 게스트 테이프에서, MC가 말하는 부분은 MC의 테이프에서, 중앙 무대로 뛰쳐나간 부분은 지미집 테이프에서. 한 컷 한 컷 다시 복사한다. 이건 자개농 한 짝을 짜는 것이나 다름없는 고난의 수작업이다. 20분짜리 방송을 만드는 데 짧게는 이틀, 길게는 사나흘을 꼬박 새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자막을 쓴다. 사전 각본대로 흐르지 않았던 일을 편집을 통해 만들어내면, 반드시 흐름이 불명확하거나 어색한 곳이 생겨난다. 이런 부분을 자막으로 보충해주면서 부족한 웃음 포인트도 짚어줘야 한다. 유치하다, 허접하다, 없느니만 못 하다 욕하는 사람도 많지만, 자막이 없는 영상을 보여줄 경우 대부분은 지금 방송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이 작업도 하루 밤낮이 꼬박 걸리는 일이다.

이 과정을 따르는 전통적인 버라이어티쇼 PD의 일주일은 다음과 같다. 월요일 제작회의, 화요일 촬영, 수요일 테이프 다시 보기, 목요일 스토리 가편집 (이날부터 철야), 금요일 컷 편집과 시사 (철야), 토요일 자막 작업 시작. 그렇게 해서 일요일 아침에야 방송용 테이프가 겨우 나온다. 그러면 일요일 저녁에 방송이 나가고 다시 월요일에 회의가 시작된다. 이런 생활이 1년 내내 반복된다.

드라마 PD의 생활이 혹독한 것으로 악명 높지만, 드라마는 짧게는 두 달, 길게도 여섯 달이면 작품이 끝난다. 고통스러웠던 방송이 끝나면 긴 휴가에 들어간다. 그러나 예능 프로그램은 ‘종방’이라는 것이 없다. 망하지 않는 이상 몇 년이고 계속 이어지니까, 프로그램이 잘될수록 고난의 끝은 멀어져 가는 것이다.

‘황금의 시대’가 있었다고? “제우스는 다섯 번째 세대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지금 진정으로 철의 종족이어서 낮엔 노동과 슬픔으로부터 밤엔 죽음으로부터 쉴 수가 결코 없으며….” 그리스 신화의 예언대로, 과연 예능 PD에겐 황금의 시대가 끝나고 철의 시대가 열렸다. 저주받은 세대라는 탄식이 돌았다. 헤시오도스는 철의 종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차라리 그 다섯째 세대의 인간들과 있지 않고 그 전에 죽거나 이후에 났으면 하오.”

다행히도 최근의 예능 PD들은 위에서 설명한 무식한 컷 편집 – 일명 자개농 편집 – 에서 자유로워졌다. 요즘은 편집을 컴퓨터로 하기 때문이다. NLE(비선형 편집)라는 기술이 도입되면서 편집은 이전보다 훨씬 쉽고 빨라졌다. 예전에는 MC의 얼굴 다음에 게스트의 얼굴이 나타나는 한 장면을 편집하기 위해서 몇 번이나 테이프를 넣었다 뺐다 돌렸다 해야 했지만, 지금은 그냥 마우스 클릭 한 번이면 이 과정을 마칠 수 있다. 이 기계가 처음 방송국에 들어왔을 때 선배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괴성을 질러댔다. 그렇다면 예능 PD들은 지독한 과거의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물론 아니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인간은 “바늘 만드는 기계가 나타나 바늘을 10배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되면, 10개를 만들고 쉬는 게 아니라 100개를 만들어 90개를 팔 궁리를 하기” 때문이다. NLE 편집이 도입되면서 예능 PD들이 제일 처음 벌인 일은 ‘더 많이 찍는 것’이었다. 그것도 훨씬 더 많이. 바로 그것이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작이었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예능에 그나마 남아 있었던 대본의 기능을 완전히 부정하는 장르다. 오늘 어떤 일을 하겠다는 정도의 기본적인 계획만 있을 뿐, 방송 내용과 대사는 대본 단계에서 전혀 알 수가 없다. 일단 수많은 카메라를 밀착시키고 상황을 방대하게 기록한다. 편집실에서는 손쉽게 촬영 내용 전체를 검색할 수 있고, 컷 전환은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이미 이런 제작 방식은 쇼라기보다 시네마 베리테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에디터
    글 / 류호진(KBS 컨텐츠본부 예능제작국)
    일러스트레이터
    김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