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의 행보는 수수께끼 같았다. 말은 꼬리를 물고 퍼지는데, 주인공은 코트에 없었다. 14억을 포기하고, 마침내 진짜 김승현이 나타났다.
어제(1월 7일) 복귀 후 가장 긴 35분 54초를 뛰었다. 체력엔 문제없나?
조금 힘들긴 했다. 그래도 내 체력이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는 건 없었다. 일이 주 더 연습하면 괜찮을 것 같다. 시간 조절은 감독님이 알아서 하시는 거니까. 나이도 있고, 다 뛰고 싶은 욕심도 없다. 한 25분에서 30분 정도 뛴다고 생각한다.
1쿼터에 득점도 많이 하고 몸이 가벼워 보였는데, 후반엔 좀 아쉬웠다.
상대팀에서 내 컨디션이 좋다는 걸 알았는지 적극적으로 수비했다. 후반엔 어시스트를 많이 하려 했다.
개막전 이후 홈경기 관중이 가장 많았다. 6812명. 당신을 보러 온 관중이 꽤 많았을까?
나를 보러 왔다기보다 삼성 썬더스가 다른 농구를 하는 걸 보러 왔겠지. 더 재미있고 신나고 화려한 농구. 관중도 즐겁고, 하는 사람도 즐겁고, 감독님도 즐거운 그런 농구.
덩크가 많고 속공도 7개나 나올 정도로 화려한 경기였지만, 팀은 연패 중이다.(1월 10일, 삼성 썬더스는 결국 홈 14연패를 끊었다.) 그래도 재미있는 농구를 포기할 생각이 없나?
어렸을 때부터 너무 승패에 연연하지 말고, 농구를 좀 즐기면서 하자고 배워왔다. 물론 지금 너무 지고 있어서 속은 굉장히 상하지만, 시합이란 게 뛰다 보면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어서 크게 연연하고 있지 않다.
경기하면서 자주 웃었다. 자신감일까?
버릇이다. 인상 쓰고 있는 것보다 낫지 않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짜증 안 내려고 노력한다.
팬들에 대한 예의일까, 혹은 승부의 요령일까?
승부의 요령 쪽에 좀 더 가깝다. 내가 웃어야 같이 뛰는 선수들 맘이 편해진다. 내가 마음의 안정을 찾아야 모든 선수가 자신감 있게 경기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표정이 나오는 것 같다.
삼성 썬더스에서 당신은 리더인가?
리더가 되려고 노력한다. 나이도 있고 모범이 돼야 하니까. 어린 선수들한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라든지, 움직임 같은 걸 가르쳐주려 한다.
오리온스엔 김병철이라는 훌륭한 리더가 있었다. 리더로서의 김승현은 어떤 선수인가?
농구 하면서 여지껏 한 번도 주장을 해본 적이 없다. 리더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단 말이다. 코트 밖에서는 잘 못하는데, 그래도 코트 안에선 리더십이 좀 있는 것 같다.
밖에선 왜?
엄하지 못하다. 화도 잘 못 내고.
어제 경기에서도 이승준이 심판 판정 때문에 흥분했을 때, 같이 항의하기보다 동료를 먼저 말렸다.
심판한테 뭐라 그래봤자 남는 거 하나도 없다. 그러려니 한다. 워낙 많이 그래왔기 때문에. 내가 피해를 입었다기보다, 내가 소속된 팀이 피해 입은 적이 많다. 시계가 안 가서 우승을 못하고, 그런 일들. 큰일이 있다 보면 작은 건 신경도 안 쓰게 된다.
이충희 감독은 지금 당신 허리 상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당신과 구단은 괜찮다고 한다. 정말 안 아픈가?
허리를 다친 지 햇수로 4년 됐는데 그때는 정말 아팠다. 디스크가 터져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수술을 안 시켰다. 수술을 못해서 재활하는 둥 마는 둥 하다 시합 뛰니까 당연히 아플 수밖에. 그런데 내가 안 좋은 일 때문에 2년 정도 쉬었다. 그때 치료를 잘 받았다.
당신 돈으로 병원 다닌 건가?
그렇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고, 당시 소속된 구단에서 치료비를 준 것도 아니고….
팀을 옮긴 후 지난 소속팀 오리온스는 오히려 성적이 좋아졌다. 씁쓸한가?
지금 우리 팀은 부상 선수와 어린 선수가 많다. 이기는 것보단 얼른 동료들이 성장했으면 한다. 나는 주로 도와주는 편이다. 나랑 같이 뛴 선수들이 내 장점을 캐치해서 공을 안 갖고 있을 때의 움직임이 좋아지면 분명히 좋은 플레이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승패에 아예 연연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지금 점점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만족하는 편이다.
내년 목표는 우승이라고 밝혔다. 올 시즌은 플레이오프 진출이 사실상 힘들다. 그래도 목표가 있나?
탈 꼴찌 해야 한다. 개인적으론 열아홉 게임인가 스무 게임 남은 걸로 알고 있는데 안 다치고 끝까지 시즌 잘 치렀으면 좋겠다. 몸도 빨리 끌어올리고.
올 시즌 안에 당신이 원하는 대로 코트를 휘저어볼 수 있을까?
있다. 점점 좋아지고 있다. 일단 올 시즌이 끝나도 예전처럼 안 쉬고 여기 훈련장에 남아서 운동할 거다. 집에 가봐야 할 것도 없다. 여기 있는 게 맘이 더 편하다. 모든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한국 프로 농구는 왜 이렇게 인기가 없을까?
내 생각엔, 밑에서부터 잘 가꿔놓아야 한다. 대학생 선수들 보면 얼굴도 잘생기고 농구도 잘하는 선수가 많다. 그걸 빨리 부각시켜야 한다. 그런 선수들이 프로에 온 뒤에도 정말 잘하고 스타성이 있으면 연맹에서 자꾸 언론에 알려야 하는데 그런 게 부족한 것 같다.
당신이야말로 정반대의 경우 아닌가? 대학 시절엔 무명에 가까웠지만, 프로 첫 해에 신인왕과 MVP를 수상했다.
난 좀 특별한 경우다.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그래도 미리 스타성 있는 선수를 발굴해서 잘 홍보하는 게 프로 농구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대학교 다닐 때부터 스타성이 있다고 생각했나?
농구 명문이라 하기 어려운 동국대를 졸업한 탓에 손해를 좀 봤다. 전혀, 전혀 안 했다.
잘생겼다고도?
어우, 한 번도 그렇게 생각 안 했다.
그렇다면 팬들은 왜 아직까지도 김승현을 찾나?
그냥 내가 하는 농구가 남들하고 다르니까. 독특하고 창의적이고 그러다 보니까….
당신이 코트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전태풍이나 이승준처럼 미국 농구를 경험한 선수들이 큰 호의를 표했다.
재미있어서. 나랑 농구하면 승부욕도 생기고, 경쟁심도 유발하고.
당신의 농구는 한국 농구와 어떻게 다른가?
틀에 박힌 걸 싫어한다. 상황에 맞춰 순간순간 나오는 플레이를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NBA급’ 같은 말을 들은 선수는 허재 이후로 당신이 처음인 것 같다. 왜 전력을 다해 진출하려 하지 않았나?
다 지난 일이다. 지금 농구 하는 걸로 만족한다. 갔어도 벤치에 앉아 있었겠지. 내가 한국에 남은 건, 고등학교 때 동국대학교를 선택한 것과 같은 이치다. 시합을 더 많이 뛸 수 있는 곳. 한 달 동안 나가 있었는데, 못 있겠어서 들어왔다.
당신과 라이벌로 불리던 다부세 유타는 결국 NBA에 진출해, 최초의 동양인 가드로 이름을 올렸다.
조금 뛰면 뭐 하나? 뛰려면 20분 이상 뛰어야지. 그렇지 못할 바에는 한국에서 30~40분 뛰는 게 낫다. 나가면 큰 명예를 얻겠지만, 누울 자리 보고 발 뻗어야지.
당신의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2002년에서 2007년까지. 다치기 전엔 아무 문제없었다.
우승을 이끈 마르커스 힉스, 피트 마이클, 네이트 존슨 등 언제나 용병과의 궁합이 아주 좋았다. 누구와 제일 잘 맞았나?
힉스, 네이트 존슨, 리 벤슨, 피트 마이클, 네 명을 꼽고 싶다. 특히 리 벤슨 선수는 골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재미있었다. 총으로 사람 쏘고 이래서 이미지가 안 좋은데, 이상하게 내 말은 잘 들었다. 날 굉장히 좋아했다.
악동이 악동을 알아본 건가?
하하. 내가 공을 잘 주니까 좋아했다. 그때가 제일 재미있었다. 미국에서 한 달 동안 웨이트 트레이닝도 열심히 하고 NBA 선수들이랑 게임하고 딱 들어왔을 땐데, 몸이 너무 가벼웠다.
지금 삼성 썬더스는 어떤가?
아직 눈을 못 떴다. 내 몸이 아직 완성아 안 됐지만, 같이 뛰는 선수들이 잘 움직여주면 난 분명히 패스를 할 줄 안다. 선수들이 얼른 깨우쳤으면 좋겠다.
왜 그렇게 오래 아팠나?
운동 많이 하고 하다 보니 무리가 허리로 온 것 같다. 그때 휴식을 취했으면 이렇게 안 됐을 것 같은데 팀이 너무 다급했다. 07~08시즌으로 기억한다. 개막전에서 40분을 다 뛰었다. 무리했구나 하는 생각이 딱 들었다.
몸 관리는 오롯이 선수의 몫일까?
맞는 말이다. 그래도 좀 억울하다. 내가 몸 관리를 소홀히 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아픈데도 시키니 어쩔 수가 없었다. 후회는 안하지만, 아픈데 시합을 많이 뛰었던 게 독이 된 것 같다.
- 에디터
- 유지성
- 포토그래퍼
- 유영규
- 스탭
- 스타일리스트 / 박지석, 어시스턴트 / 문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