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가 권혁근이 한국에서 첫 전시를 연다. <바람이 손을 놓으면>은 욕심을 버리고 손으로만 그렸다.
갤러리에 들어서는데 사방에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좋았나? 고맙다. 계절을 잘 선택해야 하는 것 같다. 겨울이었으면…. 하하.
봄에 유독 어울리는 그림이 많다. 자연, 풍경 같은 말이 떠오른다.
내가 그게 있긴 있나 보다. 자연적인 거. 난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자꾸 발견한다.
<바람이 손을 놓으면> 연작은 완전히 손으로만 그리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작이 너무 많은 계획이 필요한 그림이어서 전부 계산해야 했다. 어느 색 위엔 어느 색을 올릴지, 농도는 어떻게 해야 할지…. 거기에 지쳤다. <바람이 손을 놓으면>을 계획하면서 글을 써놨다. ‘작가의 글’ 혹시 읽어봤나? 처음 스케치를 한 건 5년 전이다. 글을 쓴 건 2년 전. 작품은 작년 초에 시작했는데, 그림을 시작할 수 있는 순간을 기다렸다. 날 내려놓을 수 있는 어느 정점.
‘작가의 글’을 보면, <바람이 손을 놓으면>은 욕심을 버리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렇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욕심이 들어 있는 거다. 욕심을 버리고자 했는데 최소한의 욕심이 남아 있는 그 과정, 그게 지금의 나다. 지금의 나를 그린 거다.
남아 있는 최소한의 욕심은 뭘까?
알았으면 그릴까? 모르니까 노력해보는 거다. 그리면서 평생 알아가겠지.
10년간 작업한 전작 시리즈 <무제>는 섬세한 동그라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엔 어떻게 ‘손가락질’을 해야겠다는 계획도 없었나?
없었다. 무조건 물감과 나의 대화다. 그냥 나 자신에게 맡기는 거랄까?
그렇다면 <바람이 손을 놓으면>은 순간에 충실한 그림인가?
정말 순간에 충실했다. 시작하면 화장실에 못가니까. 하하. 다 그리고 나서는 어떤 생각을 했나? 생각 안 한다. 다음 캔버스를 잡는다. 비우는 건가? 대리운전해서 올 때도 많다. 에너지를 넘치게 쓰니까.
무엇보다 질감 때문인지, 각도에 따라 좀 다르게 보고 싶은 그림이다.
원하는 대로 보셨으면 한다. 난 그리면서 충실했다. 보는 사람도 감상에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감사한 거고 아니면 할 수 없는 거고. 시간을 줘야 한다.
바람이 손을 놓으면 어떻게 되나?
말 그대로, “쩜쩜쩜.” 바람이 손을 놓으면 어떻게 되는지, 누가 놓는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바람이 놓는 건가 내가 놓는 건가? 모르니까 그린다. 알면 싫증난다. 모르니까 재미있다.
권혁근의 개인전 <바람이 손을 놓으면…>은 3월 29일부터 4월 11일, 서화갤러리에서 열린다. 02-546-2103
- 에디터
- 유지성
- 포토그래퍼
- 손종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