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치맥’이 주식일까? 먹는 일이라면 늘 맨 앞에 나서는 식도락가 아홉 명에게 물었다. 치킨과 맥주를 신나게 마실 수 있는 곳 스무 군데.
신사동 꼴
맥주 케그는 하루에 한 통만 팔고, 손님은 예약으로만 받는 술집. 너무 빡빡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금세 스르르 풀린다. 한 손에 맥주, 한 손에 치킨을 들면 의심보단 질문이 많아진다. “와, 이거 진짜 국산 맥주예요? 양념 독특한데, 개발하신 건가요?”
서초동 태번38
말쑥한 레스토랑이지만 이곳 셰프의 생각만큼은 퇴근길에 치맥을 즐기는 회사원과 똑같다. 음식은 편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술도 꼭 곁들여야 한다는 것. 미국식 프렌치 요리를 만드는 이 집에선 허브 향이 솔솔 나는 프라이드치킨을 판다. 구수한 사무엘 아담스와 딱이다.
창천동 크리스터 치킨
신촌 먹자골목을 걸을 땐 좀 쭈뼛하다. ‘진상’과 후회의 기억이 골목마다 휴지처럼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름에 신촌을 찾는 이유는 오로지 이곳 치킨 맛 때문이다. 따뜻할 때 한 입 뜯으면 바삭한 맛이 이런 것이었구나, 새삼 놀란다.
장충동 신라호텔 야외수영장
‘치맥’에 하나를 더한다면 야경보다, 애인보다, 사실 물이다. 수영장에서 뭘 먹어본 적이 있다면 그 기분을 알 테다. 신라호텔 수영장엔 치킨 튀기는 냄새 반, 물 반이다. 촉촉하고 바삭한 순살 프라이드치킨 맛은 당연히 5성급이다.
광장동 W호텔 리퀴드바
호텔에서 먹는 ‘치맥’은 사치일까? W호텔 리퀴드바에선 행복한 호사다. 지금 가면 5만원에 세 종류의 생맥주와 새우칩이 무제한 나온다. 치킨 가라아게를 안주 삼아 직성이 풀릴 때까지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뜻이다. 생맥주 종류는 무려 기린, 삿포로, 산토리다.
청담동 새로나호프
반포동에 반포치킨이 있다면 청담동엔 새로나호프가 있다. 청담동 대로변에서 30년째 가로등처럼 빛나고 있는 이곳에선 묘한 카레치킨을 낸다. 노란 카레가루와 소금을 꼼수 없이 부슬부슬 흩뿌렸는데도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있다.
대림동 삼우치킨센타
좁은 문을 비집고 들어서면 치킨과 맥주만으로도 모든 걸 가진 듯한 표정의 손님들이 빼곡하다. 여름의 행복은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좀 싱거운 듯한 맥주도 그저 시원하기만 하다. 40년 전 그대로인 통닭 포장 봉투를 들고 가게를 나설 때는 보람마저 느낀다.
신사동 컬리너리아
잘 닦은 은쟁반 같은 프렌치 레스토랑에도 ‘치맥’이 있다. 컬리나리아 주말 ‘심야 프렌치’를 찾으면 허브와 함께 3일간 진공 포장해 놓았다가 30분 정도 오븐에 구운 로스트 치킨을 먹을 수 있다. 기네스 맥주까지 한 잔 곁들이면, 아무리 오랜 시간 공들인 요리라도 찰나의 속도로 먹게 된다.
신사동 시리얼고메
어딜 가나 여자들의 수다가 똬리를 틀고 있는 가로수길에, 시리얼고메는 남자의 마음도 편하게 해주는 몇 안 되는 식당 중 하나다. 풍성한 맥주 종류와 새로운 메뉴가 가득해서다. 그중 불 향이 풀풀 나는 멕시칸치킨과 맥주의 조합은 유달리 화통하다.
삼성동 시추안하우스
프랑스식, 멕시코식에 비해 사천식 치킨은 얻어맞은 것처럼 맛이 화끈화끈하다. 라즈지는 튀긴 닭을 사천 고추, 렌턴 고추, 태국 고추와 센 불에 한 번 더 볶은 요리다. 먹기도 전에 뜨거운 색깔에 놀라 칭타오 맥주가 꿀꺽꿀꺽 넘어간다.
- 에디터
- 손기은
- 포토그래퍼
- 김종현
- 스탭
- 어시스턴트/ 정혜원, 유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