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복을 경기장에서만 입는 시대는 끝났다. 하이패션의 흥미로운 소재가 되면서부터,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운동복을 입는다.
처음 미국이란 나라를 밟았을 때가 생각난다. 호기심 많은 열두살 남자애였고 랩 음악, 농구 그리고 스케이트보드를 알게 됐다. 나이키트레이너 SC2, 리바이스 501 청바지, 챔피언 스웨트 셔츠, 마이클 조던 포스터, 에릭 B & 라킴, 그리고 파웰 페랄타 티셔츠를 손에 넣었다. 그때 내겐 ‘스포츠웨어’가 전부였다. 그 영향으로 브랜드 로고를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고‘, 스타일’이란 걸 알게 됐다.
2012 런던 올림픽은 미국에서 2억1천9백40만 시청자 그리고 전세계적으로는 48억 시청자가 봤다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런던의 육상 트랙이나 경기장, 올림픽에 관한 짧은 SNS 문장들에는 이제 아무도 관심이 없다. 스포츠 팬들, 그리고 운동선수를 동경하는 모든 사람은 그들이 뭘 하고, 뭘 입고, 누구와 시간을 보내는지 알고 싶어 촉각을 곤두세운다.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들은 선수들에게 옷을 입혔고 폐막식마저 상당한 분량을 패션에 할애했다.
스포츠와 패션은 언제나 합이 잘 맞았다. 스케이트보더, 서퍼, 하이커를 위해 만든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운동화를 신은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닌데도, 지금 가장 많이 신는 신발은 아마도 운동화일 것이다. 스포츠웨어가, 세상을 정복하고 있다‘. 스포츠웨어’ 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모호해졌다. 요즘 그 단어가 뜻하는 것은, 활동적인 옷, 주문에 따라 만들지 않은 편안한 캐주얼웨어를 의미한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틀에 박힌 맞춤 의복과 예쁜 드레스를 작업복과 청바지로 대체했다. 이처럼 광범위한 스포츠웨어는 지구에서 가장크고 수익성도 가장 높은 시장이자 막강한 트렌드가 되었다. 근육이나 힘을 통한 성적 자극의 페티시는 패션에서 아주 중요한 모티브다. 거기에는 획일성이라는 아주 매력적인 기폭제도 있다. 1936년 하계 올림픽을 극적으로 묘사한 레니 리펜슈탈 감독의 영화 [올림피아]는 마치 미켈란젤로가 만든 조각상 같은 근육을 가진 운동선수들을 아름답게 보여줬다. 극도로 짧은 머리에 항공 점퍼를 입고 구호를 외치는 젊은 훌리건 무리와 디키즈의 옷으로 단장한 LA 불량배들은 많은 현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기호와 브랜드가 어떻게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고 결정하는지 분석했다. 소비하는 주체와 소비 당하는 목적물 사이의관계는 서로의 입장을 교환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기호로 함축된다”고 그는 단언했다. 우리는 기호의 대상이 아니라 기호의 대상이 나타내는 함축적인 의미들을 소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의미들은 거짓이고 무의미한 것들이다. 자본주의 논리 속에서 사회적 심벌이 박힌 모든 것이 상품이 됐고, 기호의 집단적 축제는 대성공을 이뤘다. 우리는 옷을 사서 입고 어떤 모습이 된다. 곧 어떤 곳에 속하거나, 스스로 속하는 듯한 기분을 누리게 된다. 기호를 통해 만들어진 마치 파벌 같은 패션의 개념은 결국 스포츠웨어가 만드는 스포츠팀의 동질성을 흉내 낸 것이다.
아마도 디자이너들은 모든 사람이 자기 브랜드의 옷만 입는 이상적인 세상을 항상 꿈꿀 것이다. 마치 전체주의를 강요하거나 열망하는 것처럼. 분열된 세상에서 하나의 경향을 창조하겠다거나, 불안한 산업 속에서 거창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겠다는 바람은 패션 디자이너의 덕목과도 같다. 그렇게 패션의 힘과 조화, 그리고 ‘브랜드’가 만들어진다. 여기서 로고의 마력이 시작된다. 사람들이 빠르게 인지할 수 있도록 만든 기호인 로고는 어떤 회사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클럽, 학교 또는 협회 등도 나타낼 수 있다. 더 나아가 로고는 이념이나 생각을 표현하기도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로고가 당신이 얼마나 멋진지를 나타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런던 길거리에서 탄생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타일리스트이자 후기 모더니즘 패션의 황제라고 할 수 있는 레이 페트리는 로고의 미학,즉 스포츠웨어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마음껏 차용했다. 군용 복식, 테일러링, 미국식 그리고 영국식 전통, 카리브해풍의 의상,그리고 스포츠웨어를 융합하고 변화시켰다. 카 코트와 같은 기본적인 남성 복식과 로고로 장식한 활동적인 옷가지들을 서로 충돌시켰는데, 정말이지 아름답고 완벽했다. 그는 각기 다른 모든 요소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패션 역사에서 새로운 미적 이론을 창조했다. 각각의 옷들은 전형적인 이미지를 고스란히 갖고 있었지만, 페트리는 그것들을 왜곡하고 분해했을 뿐만 아니라 다시 혼합해서 새로운 패션 언어를 창조했다.
1980년대는 우리에게 고급 패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 영광의 시대다. 하위 문화, 성별과 계층의 혼합, 흐릿함에 대한 재해석으로 런웨이를 해체시켰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칸사이 야마모토, 장 폴 고티에와 스테판 스프라우스에 이르는 전위적인 시대가 이어졌다. 그 다음 등장한 차세대, 라프 시몬스, 꼼 데 가르송, 마틴 마르지엘라, 그리고 미구엘 아드로버를 중심으로 무너질 수 없을 것 같던 이분법을 허물기 시작했다. 옷의 용도와 영역만으로는 패션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모든 것은 익숙해졌다. 단단한 야구 모자, 트랙 수트와 대학교 스포츠팀 재킷, 헐렁한 반바지는 이제 무식한 운동선수를 혐오하는 패션 애호가들의 기본적인 유니폼이 됐다. 그들이 운동복의 영역을 기피해온 것이 육체적인 무관심 때문만이 아닌 비주류에 대한 적개심 때문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참 역설적인 일이다.
- 에디터
- Siki Im
- 포토그래퍼
- 이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