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보수적이며 진보적인 톰 브라운

2012.10.02GQ

보수적인 동시에 진보적인 존재가 되기는 참 어려운 일. 하지만, 톰 브라운은 이미 그걸 해냈다.

톰 브라운은 자아가 강한 남자다. 한마디로 남자 중의 남자다. 게다가 운동선수다. 노트르담 대학 시절에는 수영팀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그는 지금도 매일 달린다. 머리는 항상 짧고 깔끔한데, 군대에서 시행하는 두발 검열도 무난히 통과할 수 있을 정도다. 그는 아주 단정하고 말끔하지만,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다. 전통적인 외모는 특이해 보이기까지 한다. 거리에서 만날 때 누가 봐도 도드라지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충분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 정도다. 보수적인 동시에 아주 진보적인 존재가 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톰 브라운은 이미 그걸 해냈다.

2001년, 톰 브라운이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랄프 로렌에서 경력을 쌓은 후, 자기 이름을 걸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만든 옷들은 참 마음에 들었다. 마음속에 숨어 있던 대학 시절의 감성에 딱 와 닿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때 그 옷을 입을 수는 없었다. 너무 작았기 때문에.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그는 훨씬 더 파격적인 옷을 만들려고 했다.

톰 브라운은 트위드에서 시어서커에 이르는 전통적인 직물을 사용한다. 옷걸이에 걸린 그의 옷들도 꽤 전통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람이 직접 입으면, 아주 특이하고 놀라운 옷으로 바뀐다. 그는 앞부분에 주름이 없는 1960년대풍의 바지를 만들었지만, 발목 윗부분을 굉장히 많이 잘라냈다. (만약 우리 할머니가 봤다면, 바지를 똑바로 입으라고 했을 것이다. 즉, 홍수가 나서 물이 가득 찬 거리에서, 바지 아랫부분을 접어 올린 채 걷는 그런 모습을 연상시킨다.) 구두 위로 간신히 보일 정도 길이의 짧은 양말 때문에 그가 신은 두툼한 윙팁 슈즈도 파격적으로 보였다.

1964년풍 좁은 라펠의 재킷들은 브룩스 브라더스의 전통적인 신사복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총장이 매우 짧아서, 소매가 밑단보다 더 아래로 내려왔다. 소매 역시 셔츠 소매가 더 많이 보일 수 있도록 아주 짧게 만들었다. 재킷은 엉덩이를 덮지 못했다. 마치 케네디가 대통령이었던 시절, 실수로 세탁기에 넣고 빨아서 바싹 줄어든 수트 같았다.

어쨌든, 나는 톰 브라운의 포부와 용감함에 찬사를 보냈다. 소수의 멋쟁이들을 위한 파격적인 테일러로 성공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충격적인 수트가 정말 이만큼 인기를 끌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찬사는 보냈지만, 그의 야망을 과소평가했다는 걸 깨달았다. 마라톤 경주를 완주하는 육상선수같이 끈질기게 노력해서 끝까지 무언가를 이루고 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톰 브라운은 패션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고 있다. 명철한 디자이너라면, 모든 바이어가 외면해도 대중이 열광하는 옷을 만든다. 그래서 모든 패션쇼에는 언론과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한 요소가 있다. 톰 브라운은 그런 요소를 고안하고 구현해내는 데 탁월했다. 스포츠웨어와 여성용 옷에서 가져온 요소를 자기만의 특이한 스타일과 결합시켰다. 그는 남자들에게 플란넬로 싼 누빔 다운 재킷, 버뮤다 쇼츠를 넣은 수트, 가터벨트로 고정한 양말, 모피 스톨, 베일로 덮은 밀짚모자, 속이 비치는 바지, 바닥에 끌리는 옷자락, 스키 마스크, 레그 워머, 맥시스커트 그리고 무릎 패드를 입혔다. 때로는 명암 차이가 극명한 음경 보호기, 망토, 장미 장식을 넣은 옷, 짧은 소매의 수트, 뒤틀린 격자무늬 옷, 그로그램 훌라 스커트, 그리고 수건 소재의 목욕 가운을 입히기도 했다. 사람이 묶여 꼼짝 못하는 모습, 체격이 좋고 근육질인 남자든 마른 남자든 모두에게 입힌, 마치 유아용 수트 같은 옷, 바지나 반바지를 덮은 퀼트 스커트, 작은 도트 무늬 장식이 나란히 붙어 있는 테두리 장식, 가슴받이와 서스펜더가 달린 치마도 있었다. 심지어 램프 갓을 머리에 씌우기도 했다. 이렇게 톰 브라운의 런웨이는 자극적인 환상이 넘치는 쇼가 됐다. 판에 박힌 패션 관습을 흥미롭게 바꾸는 실험,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똑똑하고도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또 하나 놀라운 일은, 1818년에 설립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남성 패션 유통 회사인 브룩스 브라더스가 톰 브라운에게 새로운 컬렉션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사건이다. 심지어 그렇게 만든 블랙 플리스 라인은 크게 성공했다. 블랙 플리스는 1850년 이후 줄곧 브룩스 브라더스의 상표로 쓰인 ‘골든 플리스’와 ‘블랙십’의 합성어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제이슨이 찾아 나섰던 신비로운 날개가 달린 양의 모피를 뜻하는 황금 양털Golden Fleece과 집안의 치욕, 불명예 또는 슬픔을 일으키는 식구를 의미하는 검은 양black sheep의 결합. 톰 브라운의 디자인이 브룩스 브라더스의 전통적인 제품 라인에 논란을 일으킬 만한 놀라운 변화라는 걸 나타내는 완벽한 비유였다. 황금 양털을 뒤집어쓴 검은 양이 주목받을수록, 톰 브라운은 주류 패션 브랜드에 가까이 다가갔다. 독특한 테일러 톰 브라운은 새로운 고객, 패션에 관심을 쏟는 남자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비즈니스 캐주얼이 퍼져 나가고 수트가 더 이상 비즈니스의 필수 도구도, 사무 관리직의 상징도 되지 못하는 시절, 톰 브라운은 패션계에 등장했다. 기업인, 노동자들, 그리고 회사 간부들조차 수트를 입는 시간이 많이 줄어든 이후였다. 마침내 수트는 변호사, 국회의원, 그리고 복사기를 고치기 위해 사무실을 찾는 서비스 직원들이 입는 옷이 되었다. 최고 경영자와 경영진은 그들이 입고 싶은 옷을 입기 시작했고, 수트라는 단어는 ‘옷’뿐만 아니라 동시에 ‘수트를 입는 중간 단계의 샐러리맨’을 뜻하는 말로 변해버렸다. 이런 형국에서 톰 브라운이 떠올린 기막힌 생각은 이제 수트가 오히려 반항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회사원이 캐주얼 팬츠와 티셔츠를 입고 예술가와 얼터너티브 밴드가 수트를 입는 시대에, 톰 브라운은 전혀 새로운 수트를 선보인 것이다.

미국 남자들은 자기 신체 사이즈 따위는 모르는 것처럼, 수트를 제멋대로 입는다.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최소 한 치수 이상 크게 입는다. 코트 소매는 손가락 관절까지 늘어지고 팬츠는 신발을 다 가려서 원숭이처럼 보이게 한다. 톰 브라운의 수트는 다르다. 몸에 착 달라붙고, 또 그렇게 입어야 멋이 난다. 그의 수트는 몸을 가리기보다는 노출시키는 쪽에 가깝다. 톰 브라운 수트를 고르는 것만으로도 획일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멋쟁이는 게으름뱅이가 아니다. 섬세한 것에 정통한, 복잡한 남자, 그리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의 눈이 아주 빠르게 톰 브라운의 스타일에 적응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반적인 남성 스타일에 영향을 끼쳤다. 톰 브라운 팬츠만큼 짧은 바지는 없지만, 몰래 그가 잘라낸 것의 반 정도만 따라 자르는 디자이너는 많아졌다. 재킷의 길이도 5년 전에 비해 아주 짧다. 실루엣 역시 날렵해졌고, 팬츠의 주름도 사라졌다. 헐렁한 ‘핏’, 1990년대의 유물인 커다란 어깨 패드는 오래전에 자취를 감췄다.

2008년, 패션 저널리스트 팀 블랭크는 톰 브라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당신이 발견할 수 있는 모든 사회 경제적 증거는 그것이 더 이상 지구가 남자만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톰 브라운의 옷은 남성적 무력함을 강조한다.” 요란스러운 트랜스젠터 파티같이 보이기도 하는 그의 컬렉션은, 동시에 풍자적인 면도 갖고 있다. 패션 세계는 경박함을 아주 심각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진짜 멋쟁이는 무엇보다 재치가 풍부한 사람이다. 톰 브라운의 쇼는, 무슨 집회에 온 것마냥 모두가 엄숙한 가운데서도 웃음을 참기 힘들 만큼 재미있다. 그 역시 자기가 재미있다는 것을 안다. 그의 괴팍함은 정말 탁월하다. 톰 브라운의 파격적인 패션과 쇼는 일종의 풍자이고, 동시에 남성적인 시위이며, 개인적 용맹의 표시다. 팀 블랭크는 이렇게 말했다. “톰은 어색함을 좋아해요. (그건 완벽한 데서 오는 지루함을 줄여주죠.)” 그 어색함 덕분에 우리는 남자다움에 대하여 오랫동안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것들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가 시도한 것은, 기존 체제에 대항하고 어려움에 굽히지 않는 것이다. 이는 그가 노린 정확한 대상에게 전달됐고, 지옥 같은 패션 산업 속에서 마침내 성공했다.

인기 의류 회사 ‘멘즈 웨어하우스’의 설립자 조지 짐머는 이렇게 말했다. “‘옷은 그걸 입는 사람을 만든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비즈니스 수트을 두고 한 말입니다. 수트를 입으면 스스로 비즈니스맨처럼 성공한 사람인 듯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것이었죠. 즉, 사람이 많은 메인 스트리트보다 돈이 많은 월 스트리트가 더 중요한 시대였던 겁니다. 그런데 그런 경향이 바뀌고 있어요. 주변을 살펴보세요. 많은 사람이 수트를 입지만, 각각 다양한 개성이 있어요. 중요한 건 이거예요.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어떤 목적 때문에 비슷한 옷을 입을 필요는 없다는 것.” 만약 더 이상 월 스트리트에 수트를 팔 수 없게 된다면, ‘아큐파이 월 스트리트’ 운동 참여자들에게 팔면 그만인 시대가 됐다. 적어도 톰 브라운은, 마지막까지 승자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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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글/ Glenn O’brien (Fashion Journalist)
    일러스트레이션
    Lim Sung 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