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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뭘 못하겠습니까

2013.03.18유지성

담백하게 말할 자신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섹스를 위한 말을 꾸미는 게 기술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꽤 있다. 픽업 아티스트니, 연애 카운슬러니 하는 직업적 마초들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오르고 있는 시점과도 맞물린다.

혀를 움직이는 데는 무려 여덟 개의 근육이 관여한다. 혀는 순수한 근육 덩어리다. 단위면적당 힘이 가장 센 근육이라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남자들은 섹스를 잘하기 위해 하체 근육을 단련하고, 시각적 흥분을 위해 복근을 기른다. 물론 말주변 때문에 혀를 단련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화술이 뛰어난 남자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한다.

섹스를 하기 위해 참 많은 말을 한다. 주로 ‘꼬신다’고 표현한다. ‘꼬시다’라는 말은 동사 ‘꾀다’에서 왔고, 사전을 참조해보면, “그럴듯한 말이나 행동으로 남을 속이거나 부추겨서 자기 생각대로 끌다”라고 쓰여 있다. 남자들이 섹스를 위해 하는 말의 속성은 이 정의에 그럴싸하게 들어맞는다. 속이고, 부추겨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성취하는 도구랄까? 물론 남자는 그럴싸한 말이야말로 섹스로 가는 급행열차가 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글쎄.

패션 에디터 A는 며칠 전 술을 마시다 우연히 한 남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남녀는 오랜 친구처럼 보였으나, 남자는 꼭 그렇게만 생각하는 것 같진 않았다. 남자는 딱히 취한 것 같진 않았는데, 불필요한 야한 얘기를 꾸준히 늘어놨다. ‘길이’나 ‘깊이’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다가 여자에게 질문을 했다. “네 취향은 어떻냐”고. 수가 빤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남자가 여자에게 물었다. “나랑 자고 싶지 않아?” 여자의 대답은 다름 아닌 “귀찮아”. 고민하거나, 당황하는 기색 없이 침착했다. 남자는 “참신한데? 파하하”라며 눙쳤지만, 눈까지 풀린 그로기 상태에 가드만 간신히 올린 복서처럼 보일 뿐이었다. 남자가 주변을 빙빙 도는 동안 이미 여자는 대답을 고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담백하게 말할 자신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섹스를 위한 말을 꾸미는 게 기술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꽤 있다. 픽업 아티스트니, 연애 카운슬러니 하는 직업적 마초들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오르고 있는 시점과도 맞물린다. 마치 그들의 말이 교리이며, 숫기 없는 남자들의 구세주처럼 대접받는다니.

얼마 전 유튜브에서 한 동영상이 인기를 끌었다. 자신을 연애 코치라고 소개한 강사는 여자들에게 픽업 아티스트들의 수법을 고발했다. 주제는 픽업 아티스트의 첫 데이트의 6가지 패턴. 표정엔 자신감이 넘쳤다. 픽업 아티스트가 약속을 잡는 시간부터 술자리 유도 멘트까지, 청산유수였다. 여자 방청객들의 얼굴은 심각했다. 동영상의 조회수는 100만을 훌쩍 넘겼다. 여러 게시판이나 커뮤니티에서 일종의 담론이 형성됐다. “이제 여자는 아무도 걸려들지 않을 거다”라는 비장한 댓글, “같은 남자끼리 왜 저러냐”는 남자의 볼멘소리, “넘어가는 여자도 할 말 없다”는 책임론. 연애와 섹스에 얽힌 이야기야 언제나 흥미롭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우스개를 넘어 뜨거운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비유하자면 <봄날은 간다>의 “라면 먹고 갈래?”란 대사를 그저 대사 그 자체로 재미있다고 여기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그걸 그대로 따라하거나, 다른 대사를 연구하고 파헤치는 상황이랄까?

아마 문제의 동영상을 본 건 여자들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남자들은 동영상의 용도와는 별개로 거기서 배운 연애 코치의 말을 똑같이 써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동영상을 본 여자들은 남자를 만날 때 그 남자가 픽업 아티스트의 규칙을 따르고 있는지만 지켜보면 괜찮은 건가? 남자는 여자가 이 동영상을 봤는지부터 체크하고 외워둔 것들을 실행에 옮기나? 만약 남자가 전략을 들키면 에디터 A의 이야기에서처럼 “참신한데?” 하고 넘어가면 되나?

‘말발’ 키우는 걸 마치 몸의 근육을 단련하는 것처럼 여기고 코치에게 맡기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그것이 어떤 담론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 역시. 무의미한 것을 논쟁적으로 만들고 의미를 부여해서 즐거운 건 당신의 성생활이 아니라 어설픈 전문가들의 지갑일 뿐이다.

    에디터
    유지성
    아트 디자이너
    Illustration/ Finger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