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이 산으로 가면 으르렁, 저 산으로 가면 럼펌펌펌

2013.09.06GQ

지금 기획사 아이돌의 최전선은 f(x)와 EXO다. 모두 교복 같은 걸 입고 있다. 그리고 둘 다 SM이다. 과연 기획이야말로 아이돌의 핵심이자 모든 것이다.

핑크색 VHS 비디오 테이프, 그리고 견출지를 덕지덕지 붙인 졸업 앨범 같은 스프링 제본. 에프엑스f(x)의 2집 <Pink Tape>와 엑소EXO의 1집 <XOXO>은 각각 그렇게 생겼다. 음반을 음반 같지 않게 과장시켜 포장하는 건 팬덤을 겨냥하는 고전적인 방식이지만, 이 둘은 좀 다르게 살필 필요도 있다. 그저 뭔가 특이하게 보이려는 걸 떠나서, 정확하게 조준한 결과의 집대성이라는 인상 때문이다. SM은 대체 뭘 조준한 걸까?

SM은 처음부터 일본의 유명 아이돌 회사 쟈니스를 적극적으로 참고했으니, 핵심은 바로 ‘기획’이다. 그건 90년대 H.O.T부터 2013년 엑소까지 단 하나의 굵은 뿌리로서 힘을 키웠다. ‘아이돌’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며, 어디를 향하는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시각적 대답으로서 SM은 아예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냈다. 그걸 흔히 ‘SMP(SM Music Performance)’라 칭한다. 대표적인 이미지는 화려하게 꽉 짜인 군무를 연출하는 무대다. 그리고 엑소의 최신곡 ‘으르렁’은 현재까지 선보인 가장 최신 버전의 SMP이자 SMP의 절정이라는 평이다.

엑소는 모두 열두 명, 게다가 신인. 이들이 한 무대에 나란히 올라 한 소절씩만 나와 맡는다 해도 카메라는 물론 보는 사람도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으르렁’ 뮤직비디오는 ‘배틀’이라는 설정을 통해 아예 3차원으로 끌고 간다. 여섯 명씩 나뉘어 대결을 펼치는 구도를 상대방의 시각에서 출렁출렁 화면에 담는다. 카메라맨도 함께 춤을 추면서 찍었다고 하는데, 전체가 한 번의 테이크로 끝난다. 그 아름다운 생동감은 SMP의 집대성이라는 측면을 떠나 국내 뮤직비디오 역사상 가장 진보한 영상이라 해도 좋을 만큼이다.

한편 에프엑스는 한국 아이돌 판에서 꽤나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 축약하자면 힙스터와 대중에게 모두 어필하는 아이돌이랄까? 사실 국내에서 ‘아이돌’이라는 개념은 남자 아이돌에 한정시키는 편이 낫다. ‘걸그룹’이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다. 에프엑스는 걸그룹 중에서도 가장 분방한 정서를 표방해왔고, 현대시와 외계어가 ‘쌍끌이’하는 가사는 대표적 요소였다. ‘첫 사랑니’ 역시 사랑니가 화자로 가사를 이끈다는 점에서 맥을 잇는다. 게다가 무엇보다 ‘첫 사랑니’가 중요한 것은 에프엑스가 이제 걸그룹과 여자 아이돌이라는 경계를 무색하게 만들 만큼 판의 확고한 중심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SMP가 아이돌의 무대 위 정체성이라면, 앞서 말한 앨범 포장이며 가사며 무엇보다 멤버의 캐릭터 설정은 아이돌의 무대 밖 정체성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아이돌 팬덤을 견인하는 대대적인 기획의 결과물일 텐데, 엑소와 에프엑스는 겨냥점을 달리 하면서도 확실한 한 방을 향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특히 엑소는 SM이 발전시켜온 ‘아이돌’ 전략의 결정판이다. 일본 아이돌 판까지 꿰뚫고 있는 팬덤 일각에서 엑소야말로 ‘SM의 적자’이며 ‘한국 아이돌의 완전체’라는 말이 나온다. 전제는 단순하다. 남자 아이돌은 여성 팬덤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 되면 된다. 교복을 입어서 아직 ‘성인’이 아님을 드러내는 것든, 슬쩍 공개하는 사진이나 에피소드를 통해 ‘커플링’이라는 개념을 흘리는 것이든, 다양한 매력을 지닌 멤버를 조합시켜 뜻밖의 구도를 팬덤 스스로 만들어 즐기도록 유도하는 것이든, 엑소는 아이돌의 핵심 기획을 정확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자, 이제 YG에서 곧 승리와 지드래곤과 태양이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그 무대를 통해, 한국의 아이돌판은 좀더 명확히 구분될 전망이다. 즉, 아이돌은 더욱 아이돌다워질 것이다.

    에디터
    장우철
    일러스트레이션
    김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