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지옥의 정원

2013.09.07GQ

채프먼 형제가 루이 비통과 함께 우리를 지옥의 정원으로 초대했다.

형 디노스채프먼(왼쪽)과동생 제이크채프먼(오른쪽).

형 디노스
채프먼(왼쪽)과
동생 제이크
채프먼(오른쪽).

당신 홈페이지에서 ‘Inside the studio cam’을 봤어요. 당연히 CCTV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앵글이 마구 움직였어요. 스튜디오에서 키우는 강아지 목에 카메라를 달아둔 건가요? 맞아요. 우리가 키우는 강아지 카일리에게 부착한 ‘카일리 캠’이에요.

속았다는 걸 알아채는 데 몇 분 걸리지 않았어요. 같은 장면이 반복될 줄이야. 결론적으로, 그걸론 당신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어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었어요? 요즘 하는 일 중 가장 열중하는 건 뭔가요? 옛날부터 해오던, 여전히 같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계속 작업하고 있어요. 탄생, 죽음, 그리고 그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 그것 말곤 없어요.

형제가 함께 작업하는 건 어때요? 특별히 더 좋거나 나쁜 게 있나요? 물론 둘 다 있어요. 장점과 단점들이 함께 모여 그럴싸한 한 편의 가족 호러물이 되죠.

그럼 그 호러물에서 각자가 분한 역할이 따로 있나요? 아뇨, 특별한 정해놓은 역할 같은 건 없어요. 다만 작업실 문 위에 이런 문장을 적어뒀죠. “전날 멍하니 있었거나 인색하게 굴었던 자는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리라. 따라서 그 다음 날은 모든 예술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리라.” 이게 우리 스튜디오의 신조예요. 여기에, 형제라고 해서 베풀어야 할 자비는 없어요.

누구도 멍하니 있거나 인색하지 않은 날, 둘 다 뭔가 해보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지만 마음이 달라서, 각자 다른 예술적 결정을 내리고 싶을 땐 어쩌죠? 보통은 어느 정도말을 나누면 합의에 이를 수 있어요. 가끔 도저히 결론이 안 날 때도 있는데, 그땐 다른 사람에게 결정을 맡기면 돼요. 그럼 모든 게 산뜻해지죠.

아마도 인터뷰를 할 때마다, 1999년 작 ‘Hell’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거예요. 그런데,그 지옥은 대체 어디인가요? 여기가 아닌 그 어딘가겠죠.

‘지옥’이, 실존한다고 믿나요? ‘지옥’을 강조하는 게 재미있네요. ‘실존’이 아니라.

누군가는 지옥이 실제로 있다고 믿지만, 다른 누군가는 지금 여기가 지옥이라고 믿으니까요. 지옥이라는 걸, 계속 반복해서 말하다 보면 아무 의미가 없어져요. 지옥, 지옥, 지옥, 지옥, 지옥, 지옥, 지옥, 지옥…. 어때요? 지옥이 정말 지옥처럼 느껴져요?

네, 지옥 얘긴 그만해요. 당신 작품 속의 소녀들, 얼굴에 성기를 달거나, 마치 샴쌍둥이처럼 몸이 들러붙은 그 소녀들이 신고 있는 신발을 봤어요. 오래된 휠라 농구화, 나이키 에어 맥스나 에어 조던을 신고 있었죠. 사실, 그걸 신긴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요.

그래요?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과 함께 만든 스케이트보드 데크에도 그 소녀들이 있었어요. ‘스트리트 컬처’에 대한 애착 같은 건가, 했어요. 아뇨. 전혀 아니에요. 단지 슬쩍 집어넣기 가장 쉬운 물건을 선택했던 것뿐이죠. 쉽게 볼 수 있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브랜드가 수많은 예술가와 ‘합작’을 하고 있어요. 그 와중에 루이비통과 채프먼 형제의 합작품이 나왔죠. 이 둘이 가장 원한 건 뭐였나요? 너무 사랑스러워 보여서, 자기 눈을 뽑고 싶을 만큼 정말 아름다운 패턴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어요.

왜 루이 비통이었나요? 루이 비통이라면 우리와 함께 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킴 존스와 이 작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순간, 기억나요? 그럼요. 술을 마시고도 똑바로 잘 걸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토론했어요. 다음 술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는 법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죠. 아, 이런 얘기도 했어요. 킴 존스는 아버지인 인디애나 존스를 정말 쏙 빼닮은데다 채찍과 모자를 갖고 있고, 두드러진 그 턱에는 멋진 흉터도 있다고….

채프먼 형제와협업한 착장을입은 모델들이루이 비통의런웨이에 섰다.채프먼 형제는카니예 웨스트와함께 이 장면을지켜봤다.

채프먼 형제와
협업한 착장을
입은 모델들이
루이 비통의
런웨이에 섰다.
채프먼 형제는
카니예 웨스트와
함께 이 장면을
지켜봤다.

그 와중에 ,‘지옥의 정원’이라는 이번 협업의 주제에 대해서도 얘길 나눴다고 들었어요. 이번에도 다시, ‘지옥’이네요. 설마 지옥 얘길 또 하자는 건가요? 지옥의 정원이 우리 작품과 연관된 건 거의 없어요. 지옥이라는 같은 단어를 썼다는 것 정도?

다이애나 브릴랜드도 자기 아파트를 지옥의 정원이라고 불렀다죠. 그 아파트에도 화려한 무늬의 벽지와 소파가 가득했어요. 우리도 런던 남부의 페캄에 살 때, 우리가 사는 아파트를 ‘지옥의 아파트’라고 부르곤 했어요.

사실 화려한 패턴은 지금 패션계의 큰 ‘트렌드’이기도 해요. 그래서 수많은 브랜드에서 독창적이고 화려한 패턴으로 만든 옷과 액세서리를 내놨죠. 킴 존스와 당신이 만든 이 패턴은 뭐가 다르죠? 부엉이가 있다는 정도? 몇 가지의 동물들이 더 있는데, 모두 멸종했어요. 지옥의 정원에서 사는 아름다운 동물 중에서, 여전히 살아남은 건 하나도 없죠. 히말라야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차이가 궁금했어요. 사람들은 예술가의 작업물을 대할 때, 의식적으로 어떤 의미든 보태려고 하니까요. 하지만 이 패턴은 별다른 의미를 더하지 않고도 충분히 아름다워요. 그거면 그만 아닌가요? 누군가가 당신과 루이 비통이 만든 아름다운 재킷, 로브, 가방을 사는 것으로 뭘 더 얻길 바라나요? 어쨌든, 사람들은 어떤 감정이든 느끼게 될 거예요. 행복, 기쁨, 우주의 안녕, 때로는 지치고 아픈 감정일 수도 있겠죠.

많은 사람이 채프먼 형제를 말할 때, 프란시스코 고야에 대해 얘기하더라고요. 그가 채프먼 형제에게 어떤 영향을 줬나요? 글쎄요.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요? 프란시스코 고야에게 직접 물어보는 거예요. 그게 가능하기만 하다면.

사실 지난 작품을 보고, 역시 프란시스코 고야의 판화집 <변덕>이 떠올랐어요. 고야는 그 판화집이 “인간의 과오와 악덕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했다고 했는데, 당신도 뭘 비판하고 싶어요? 한마디로 답할 수 있어요. “아니요.”

그 판화집은 내놓은 지 10일 만에 회수됐어요. 종교재판소에서 문제를 제기할까 두려워서였죠. 당신도 어떤 비판이든 받았겠죠? 물론 받았죠. 대부분 우리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했어요. 누군가는 즉시 이런 작품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고도 했어요.

고야가 남긴 말이 생각나요. “예술의 자유는 경제적 자립 여부에 달려 있다”. 오랫동안 예술과 상업 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큰 화두가 된 말이죠. 이 말엔 동의할 수 있어요? 우리에게 돈은, 불에게 물이며, 소금에게는 후추, 벼룩에게는 카펫과도 같은 거예요.

그런 예술가라면, 지극히 상업적인 패션 브랜드와 함께 작업하는 게 남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어요. 뭐가 달랐나요? 다른 건 이것뿐이었어요. 여기저기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것.

그 다음, 또 다른 협업을 해볼 생각이에요? 그럼요. 우리는 매우, 매우, 매우 비싼 F1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어요. 조만간 번갈아가면서 시험 운전을 해볼 예정이고요.

킴 존스 혹은 루이 비통이 또다시 협업을 제안해도 할 건가요? 물론이죠.

곧 한국에서 당신의 전시가 열릴 거예요. 뭔가 기대하는 게 있나요? 사람들이 각자 나름의 생각을 굳히고 전시장을 떠났으면 좋겠어요. 혹은 어떤 단단한 결심을 한다면 좋겠죠.

사실, 당신이 그린 히말라야 눈표범을 보고, 한국의 민화 속 호랑이가 떠올라서 깜짝 놀랐어요. 혹시 한국의 민화를 본 적 있어요? 없다면, 다음에 꼭 보여줄게요. 고마워요, 그 약속 꼭 지키세요.

    에디터
    박태일
    포토그래퍼
    ELFIE SEMOT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