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신드롬이다. 버스커 버스커를 “좋으니까 좋지” 말고, 몇 가지 다른 관점에서 좀더 생각해봤다.
간단한 실험. 버스커 버스커의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1집과 2집의 곡을 섞어서 들려주면 구분할 수 있을까? 두 음반을 시간순으로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다. 2집을 1집의 동어반복이라 부르는 것 역시 적절하진 않다. 버스커 버스커 2집은 1집의 다음 음반이라기보다 짝을 이루는 음반이다. 버스커 버스커를 결성하기 전에 장범준이 만든 곡 가운데 봄에 어울리는 곡을 1집에, 가을에 어울리는 곡을 2집에 담았다. 매니지먼트 부분을 제외하고 프로듀서부터 믹스와 마스터까지, 크레딧에 표기된 이름이 거의 같다. 표지 디자인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겠지. 두 음반은 따로 출시된 더블 음반 같다. 장점과 단점을 모두 공유하고 있다.
도드라지는 건 곡의 만듦새다. 장범준은 멋 부리려 애쓰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에 가장 어울리는 곡을 쓴다. 수년간의 연습생 신분을 거쳐 ‘완성체’가 되어야 무대에 설 수 있는 가요 시장에서 버스커 버스커의 곡이 주는 매력은 이 풋풋함에 있다. 의문이 가는 부분은 프로듀싱이다. 버스커 버스커는 애초에 <슈퍼스타K>에 출전하기 위해 결성된 밴드다. 매일 합주하고 서로의 성향과 능력을 확인하고 합을 찾아야 할 시간에 <슈퍼스타K>에서 미션을 수행했다. 버스커 버스커는 밴드로서 부족한 부분을 그대로 드러내며 음반을 만들지 않았다. <슈퍼스타K> 생방송 무대의 전문 편곡자로 투입된 배영준에게 부족한 부분을 맡겼다. (W의 배영준과는 동명이인이다.) 버스커 버스커를 가르치며 음반을 만들었다고 얘기하는 배영준은 1집 음반의 편곡과 프로듀싱을 맡았다. 그리고 버스커 버스커의 새 소속사인 청춘뮤직의 음악 프로듀서로 2집을 지휘하고 있다. 배영준의 편곡과 프로듀싱은 군더더기가 없다. 밴드 편성을 제외한 나머지 악기는 모두 있어야 할 곳에서 제 역할을 한다. 실용음악과에서 교재로 삼을 법한 전형적인 가요 음반 프로듀싱이다. 야심이나 도전은 없다. 좋은 가요 음반이 목표라면 굳이 문제 삼을 이유도 또한 없다. 짚고 싶은 건 배영준의 프로듀싱이 버스커 버스커의 풋풋한 매력을 반감시킨다는 점이다. ‘잘할 걸’엔 “어눌한 목소리와 어색한 표정 그 말투는 네게는 익숙해질 그리운 모습”이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버스커 버스커가 음악으로 표현하려는 정서다. 장범준이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린 데모 곡이 더 그 정서에 가깝다.
1집과 <마무리>는 CJ와의 계약 때문에 낸 음반이다. CJ에서 낸 마지막 미션인 셈이다. 이번 음반은 자신들이 선택한 기획사에서 발표한 음반이다. 버스커 버스커는 아직도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미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매스미디어의 수혜를 받았으나, 매스미디어를 활용하지 않으면서, 매스미디어에 잘 어울리는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가 탄생했다. 그들은 ‘버스킹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버스커 버스커다. 글/ 하박국(영기획YOUNG, GIFTED & WACK 대표)
어느새 버스커 버스커는 ‘제대로 된 음악’의 상징처럼 떠오른 것 같다. 개별 곡의 완성도를 떠나 당분간 그들의 음악은 그 자체로 꽤 특이한 지점에 위치할 것이다. ‘버스커 버스커를 듣고 있다’거나 ‘그들의 감수성을 이해한다’라는 행위가, 그 곡의 본질보다 중요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럴 정도로 우리에게 제대로 된 싱어송 라이터가 없었나? 당연히 ‘없지 않음’을 알기에 이 기묘하고, 어찌 보면 불공평해 보이기까지 하는 붐엔 분명 씁쓸함이 동반된다. 버스커 버스커와 닮은 음악을 하는 국내 음악가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음악이 ‘낫다’거나 ‘못하다’는 평가는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으로 매출의 차이, 환호의 차이까지 설명할 순 없다.
대중은 ‘유명인’의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봄바람 휘날리며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두근대는” 올봄의 노래들은 모두 이미 ‘유명한’ 가수가 히트시켰다. 만약 똑같은 노래를 ‘재야의’ 밴드가 불렀다면? 모르긴 몰라도 그 노래들은 차트의 강물에 다 떠내려가 버렸을 것이다. ‘음악 스트리밍 시대’에 사람들의 귀를 붙들자면 단단한 말뚝이 필요하다. 그건 기존의 지명도일 수도 있고, 새롭게 조명 받은 캐릭터나 화제성일 수도 있다. 이제 대중음악가들에게 중요한 건 ‘자신의 음악을 설명할 수 있는 캐릭터를 충분히 확보했는가’다. 건강한 시장이라면 신인들이라 해도 객관적인 음반 차트와 그에 반응하는 미디어를 통해 충분히 조명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
수많은 음악 페스티벌의 출연자만 봐도 우리에겐 젊고 재능 있는 싱어송라이터가 많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음악을, 아니 자신의 얼굴이라도 알릴 수 있는 주류의 무대는 거의 전무하다. 심야시간에 편성되는 소극장 스타일의 음악 방송을 제외하면 그들의 입지는 ‘제로’에 가깝다. 그나마 그런 프로그램조차 날이 갈수록 아이돌 가수나 양산형 발라드 가수들에게 무대를 내주고 있다. 어쩌면 ‘재야의’ 음악가들이 가장 확실하게 자신의 음악을 알릴 수 있는 기회는 <무한도전> 같은 버라이어티쇼에 나가 개그맨의 파트너로 출연하는 길이다. 계절을 노래하려면, 먼저 농담을 잘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건 참 양립하기 어려운 일 같다.
지금은 업계의 감성이 아닌 개인의 감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그리고 그런 개인 감성의 다양성이야말로 지금 우리 음악에 결핍된 영양소를 공급해줄 수 있다. 그러나 매스미디어는 원석 상태의 음악가를 발굴해낼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버스커 버스커의 ‘외로운’ 돌풍이 천재 음악가의 등장이라는 미담이기보다 굶주린 시장의 기갈처럼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글/ 류호진(KBS 예능 PD)
첫 음반의 완성도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다. 편곡은 몰개성적이고 안 좋은 의미에서 ‘가요적’인 접근법이 자주 드러나며, 자신들이 잘할 수 없는 부분에서 노련한 척 군다는 인상을 준다. 그럼에도 이 음반은 잘 만든 음반과 사랑 받는 음반 사이의 차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벚꽃 엔딩’은 아마 내년 봄에도 음원 차트에 오를 것이다. 좋은 노래를 만드는 건 흔치 않은 재능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멜로디’가 귀한 시절에는 더 그렇다. 어쩌면 대중음악가에게는 그 재능 하나만 있어도 충분할지 모른다.
만약 첫 번째 음반을 산과 골짜기 같다고 할 수 있다면, 버스커 버스커의 두 번째 음반은 부드럽게 출렁이는 (아마도 여수) 밤바다처럼 들린다. 산골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영화의 테마처럼 단정하고 말끔한 연주곡인 ‘가을밤’이 지나면 청명하게 울리는
기타 스트로크가 분위기를 주도하는 낭만적인 포크송 ‘잘할 걸’이 등장한다. 여전히 소박하지만 전작과 비교하면 훨씬 깔끔하게 다듬어졌다. 4분 남짓한 시간에 드라마틱한 전개를 보여주는 ‘처음엔 사랑이란 게’를 기점으로 후반부의 곡들은 속도와 분위기를 살짝 달궈 올리는데, 전작의 ‘이상형’이나 ‘골목길 어귀에서’ 등과 비교해 더 ‘프로페셔널’하게 자신들의 음악을 이끈다. 보다 안정적이고 능숙하다.
반면 허를 찌르는 면은 줄었다. ‘처음엔 사랑이란 게’는 나쁜 곡이 아니다. 하지만 이 곡 후반의 격정적인 애드리브는 꼭 있어야 하는 감정의 토로라기 보단 불필요한 낭비다. 안 좋은 의미에서의 ‘가요적’인 접근법이란 이런 순간이다. 전작에서도 이런 과장되고 진부한 지점이 여럿 있었지만 곡들이 가진 매력으로 상쇄했다. 그런데 신보의 수록곡들은 그만큼 좋지 않다. 내년 봄에 ‘벚꽃 엔딩’을 듣듯이 가을에 이 노래를 또 차트에서 만날지 확신할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내년 가을은 정말 좋지 않은 작황일지도 모른다.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고 있지만, 버스커 버스커의 음반은 ‘안정적인’과 ‘좋은’ 사이 어딘가에 있는 전형적인 ‘소포모어’다. 첫 음반에서 개성을 한껏 드러내고 두 번째 음반에서 개성을 줄인 대신 테크닉을 다듬었으니, 세 번째 음반에서는 어떤 방향으로건 ‘완성형’을 만날 수 있을까? 글/ 최민우(대중음악웹진 편집장)
버스커 버스커 노래는 실시간이다. 그 노래는 장고 끝에 완성해서 마침내 부르는 것이라기 보다, 생각난 듯 바로 시작하는 노래다. 혼자서 흥얼거리거나, 전화를 걸어 너에게 들려주고 싶다거나. 장범준은 SNS를 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는데,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가 취하는 방식은 곧장 ‘스마트폰 시대’의 결을 따른다. 이런 생각은 가사와 그 표현법을 살펴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가장 크게 히트한 ‘벚꽃엔딩’과 ‘여수밤바다’만 봐도 대번 알 수 있다. 그건 ‘지금 여기서’ 하는 노래다. 벚꽃이 흩날리는 지금 여기, 밤바다를 걷는 지금 여기. 말하자면 거기엔 과거가 없다. 대개의 서정적인 가사들이 취하는 방식으로서 “우리 처음 만난 그 바닷가를 기억하니? 그때 우리 참 좋았지. 하지만 이제 이렇게 헤어지고 나서야 깨달았어…”하는 식으로 정리한 과거(감정)가 없다. 지금 생각났다면 지금 생각난 대로 바로 말한다. 문자메시지로 보내듯이, 트위터에 올리듯이, 문맥이 조금 어색하거나 거칠어도 상관없다. ‘지금 이 느낌’을 표현하기에 ‘지금 당장’보다 선명한 순간은 없을 테니까.
당연하게도 그 말은 결론이 아니다. 일단 말하고 본다. 그러다 말문이 막히면 허밍을 한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다가 별 이유도 없이 말줄임표를 찍듯이, “허어어~” 하거나 “랄랄라~” 한다.
그렇게 버스커 버스커의 가사가 택하는 건 언제나 유보다. 뭔가를 미루는 것이다. 그런 채 노래한다. “하여간, 난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어, 허어어~ 예에에~.”
최근 내놓은 노래 ‘처음엔 사랑이란 게’ 가사에도 이런 버스커 버스커식 ‘실시간’이 있다. 우선 지금 거리를 걷는 ‘내’가 있다. “거리에 오 겹쳐진 그녀 모습 속에는 / 오 난 그 어떤 그리움도 찾아볼 순 없군요 / 거리에 일렁이는 그녀 모습 속에는 / 오 난 그 어떤 외로움도 찾아볼 순 없군요” 처음 이 가사를 듣고 약간 헷갈렸다. “그 어떤 외로움이나 그리움을 찾아볼 수 없는” 게, 자신의 마음이 그렇다는 건지, 겹쳐진 그녀의 모습이 그렇게 보인다는 건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렇다고 느꼈다면 ‘내 마음이 변했다’는 뜻이겠고, 겹쳐진 그녀의 모습이 그렇게 보였다면 ‘그녀의 마음이 변했다’는 뜻이 된다. 그렇게 듣기에 따라, 정반대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귀를 낚아채듯이 꽂히는 멜로디가 바로 뒤를 잇는다. “처음엔 사랑이란 게 참 쉽게 영원할 거라 그렇게 믿었었는데, 그렇게 믿었었는데~” 혼란을 줬던 가사는 이쯤해서 아무 상관이 없어진다. 오문이자 악문이지만, 따질 것 없이 흘러가는 대로 들으면 그런 대로 이해할 수 있는 말. 지금 막 생각난 대로 하는 말.
이런 식의 가사는 곧장 가수의 태도로서도 기능한다. 기존의 노래가 마침내 들려주는 노래였다면, 버스커 버스커는 일단 부르고 보는 노래로 가수의 태도를 바꾼 셈이다. 그리고 그건 노래를 대하는 요즘 젊은 세대의 패턴이나 태도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말하자면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는 젊은 세대들에게 ‘일상’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준다. 내 얘기다. 좋아하는 이유만으로 공연히 눈치가 보이기도 하는 기획사 아이돌이 아니라, 음악성 있어 보이는, 밴드다. 게다가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좋아한다는 공공연한 대중 시대의 안도감까지. (부모님도 “이 노래는 좋다”고 말한다.) 버스커 버스커는 그렇게 지금 젊은 세대를 실시간으로 대변한다. 그걸 뭐라 칭하면 좋을까, 1992년에 서태지는 ‘문화대통령’이었는데…. 2013년 가을, 지금 이 시각 버스커 버스커 노래를 실시간으로 듣거나 따라부르는 청춘은 과연 몇만 명 단위일 지도 모르겠다. 에디터/ 장우철
- 에디터
- 장우철
- 일러스트레이션
- 김상민
- 기타
- 글 / 하박국, 류호진, 최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