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스케이팅은 스포츠다. 맞다. 한편 피겨스케이팅은 예술이다. 이 말도 맞다. 피겨는 예술적인 동작에 점수를 매겨 순위를 나눈다. 그 점수는 과연 어떻게 매겨지는가. 그리고 김연아의 피겨는 왜 그리도 아름다울까?
이제 소치 동계올림픽이 열리면 국민들은 4년 전 밴쿠버 올림픽 때의 김연아 선수를 떠올리며 TV 앞으로 모여들 것이다. 사실 스포츠라는 것이 빠르고 강하고 정확한 것을 추구한다는 선입견을 지닌 사람들에게 피겨스케이팅은(이하 피겨) 좀 특이하다. 분명 피겨엔 운동능력을 선보이는 점프라는 요소가 있지만 채점은 그게 다가 아니다. ‘예술성’ 이라고 불리는 PCS (프로그램 구성 요소)가 있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에 관한 평가를 내린다. 그래서 그 평가가 어떻게 구체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피겨는 세계선수권이 열린 1892년부터 2004년까지 112년간 기술적 장점과 예술적 표현의 두 영역을 6.0을 만점으로 0.1 단위의 편차를 두는 상대적 채점법을 사용했다. 즉, 훌륭한 피겨란 “어려운 기술을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했느냐”가 기준이다. 또한 피겨가 아름다운 이유는 신체의 균형을 통한 시각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음악과 같이 어우러지면서 청각까지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피겨 선수는 얼음 위에서 다양한 동작을 활용해 음악이 지닌 이야기나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예를 2013년 김연아 선수의 세계선수권 우승 프로그램인 ‘레 미제라블’에서 보았다. 3시간짜리 뮤지컬에 사용된 음악 일부를 편집해 그 중심 이야기를 표현했고, 관중들은 <레 미제라블>의 스토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One day more’ 마지막 부분에선 그 극적인 마지막 스핀과 음악이 어우러지자 관중은 기립했다. 그런가 하면 이야기가 없는 클래식 음악도 많이 사용한다. 그에 대한 가장 좋은 예도 김연아 선수다. 지난 밴쿠버 올림픽 때 조지 거쉬인의 피아노 협주곡의 음률을 따라 은반 위를 날아다녔다. 이야기가 아닌 음악이 지닌 강약을 기술로 표현해냈고, 그 우아함에 전 세계가 열광했다.
그렇게 피겨에는 여러 가지 문화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피겨의 움직임과 표현은 얼음 위 ‘춤’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일류 스케이터들은 모두 발레 연습과 기타 댄스 연습을 하고 있다. 직접 채점의 대상은 아니지만 의상 역시 이야기나 감정 전달의 도구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한다면 춤을 바탕으로 한 움직임이나 연극적인 마임의 표현 – 표정과 안무 – 도 결국 하나의 커다란 목표를 바탕으로 한다. 그것을 감정 이입(Empathy)이라 부른다. 피겨에서 영화나 뮤지컬, 오페라의 주인공 역할을 하거나 무희가 되어 댄스를 하거나 아니면 추상적인 클래식 음악에 따라 이미지 전달을 하거나 간에, 스케이터는 그 음악에 스케이팅 기술을 결합해 관중과 심판에게 그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해야 한다. 따라서 6.0을 만점으로 하는 채점은 그 프로그램 전체를 하나로 보고 전체에 대해 그 예술성을 하나의 숫자로 평가했다. 만점인 6.0이면 완벽하고, 5.9나 5,8이면 완벽에 가깝다는 의미다. 그래서 올림픽에서 2연패를 한 카타리나 비트는 피겨를 한마디로 정의해달라는 질문에 “피겨는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스포츠(mind-touching sport)”’라는 명언으로 답했다.
한데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피겨의 주관적 판정에 대한 문제점이 부각되는 사건이 생긴다. 일부 심판들이 주관적 판정을 악용해 특정 선수의 우승을 만들어주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한 심판의 양심선언이 뒤따르며 올림픽 기간 중 가장 시끄러운 판정 스캔들이 되었다. 그 결과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는 국제 빙상 연맹(ISU)에 판정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고안할 것을 권고했고, 그에 따라 2004년부터 소위 신채점제라는 제도가 출발하게 되었다. 신채점제와 6.0 만점의 구채점제 간의 본질적 차이점은 신채점제는 만점이 없고 수행 요소별 채점의 합으로 기술점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점수는 상대성이 아니라 절대적인 기준으로 채점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피겨의 예술성에 해당하는 PCS는 여전히 주관적 채점에 의하지 않을 수 없고 만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PCS는 5개의 구성 요소가 있고 심판들은 이들 각각에 대해 10점 만점의 평가를 0.25를 한 단위로 하여 내린다. 즉, 만점은 10점, 그 바로 아래는 9.75, 9.50 이런 식이다. PCS를 이루는 요소는 스케이팅 스킬(SS), 트랜지션, 연기, 안무, 음악 해석으로 나뉜다. 이 중 스케이팅 스킬은 얼음 위에서 선수가 에지를 이용해 얼마나 균형을 잘 잡으면서 속도감을 살리는가를 말하며, 트랜지션은 요소와 요소 간의 연결 동작을 말한다. 기술 점수의 대상이 되는 점프나 스핀 요소만이 아니라 그 이외의 동작들과 그 수행 요소의 끝처리 등이 얼마나 깨끗하고 깔끔한가 등이 채점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스케이터의 움직임이 음악과 어우러지는 연결이 자연스럽고 다양한 동작으로 이루어지는가를 보는 것으로 이 부분을 여러 선수들이 어려워한다. 해설자들이 가끔 “쉬워 보이는(effortless) 동작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선수가 힘을 다해 ‘영차’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음악에 맞춰 고난도 기술을 표 나지 않게 행하는 것이 피겨의 아름다움이다. 그러니까 쉽게 해낼 때 연기 점수가 높다. 흔히 김연아 선수의 피겨 경기를 일컬어 예술적으로 가장 높은 단계라고 한다. 실제로 김연아 선수는 밴쿠버 올림픽 때도 PCS에서 평균 9점대를 받은 유일한 선수였고, 지금까지도 현역 선수 중 유일하게 9점대 PCS를 기록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김연아 선수의 연기는 흔히 꽉 찬 안무와 다양한 트랜지션이라는 말로 압축된다. 관중이 보기에는 쉽고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슬로비디오로 분석해보면 실은 어느 한순간도 몸이 정지 상태에 있는 일이 없다. 점프를 하고 난 직후도 피겨의 움직임인 턴을 이용해 빠져나가는데 이는 기술적 안정성이 대단히 높지 않으면 구사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기술적인 동작들이 쉬워 보이게 흘러갈 때 관객은 예술적인 자극을 받게 된다. 또한 모든 동작이 주제 음악을 위해 고안된 것들이고, 에너지의 강약이 적절히 배분되어 있어 선수의 표정과 몸짓이 그대로 관객의 심장으로 전달된다. 표정이나 손끝 연기는 그저 연기의 수단일 뿐이다. 중요한 건 주제 음악의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해내는 프리마돈나이자 배우의 역할을 할 때 예술적인 선수라 불리게 된다.
사실 신채점제의 특징인 기술 요소별 점수의 합산이라는 채점법에 따르면 선수들은 각 요소의 기술 구사에 힘쓰게 된다. 문제는 그러다 보면 지금 이 음악을 왜, 어떤 의도로 하고 있는지 불분명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가면 무도회’라는 음악은 주인공이 비극을 감지하면서 마지막으로 무도회에 가는 모습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한데 이것을 열심히 점프, 점프하면서 발랄하게 움직인다면 원곡의 감정은 사라지고 만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렇게 기술에 치우치다가 예술성을 소홀히 한다. 그러나 김연아 선수는 신채점제로 인해 더 높은 난이도가 요구되는 기술 수행을 완벽하게 하고, 예술적 균형을 맞춰 표현하기 때문에 전 세계 전문가의 찬사를 받는 것이다. 다양한 음악에 대한 예술적 표현의 소화력이 우수하며 이런 예는 피겨 120년 역사에 몇 없다고들 한다. 그래서 밴쿠버 때 당시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구채점제 사상 가장 많은 6.0만점(18개 중 15개 만점)을 기록했던 1984 올림픽 아이스 댄스 금메달리스트 토빌/딘과 김연아 선수를 견주기도 했다.
이제 김연아 선수의 마지막 경쟁 경기인 소치 올림픽에서 ‘어릿광대를 보내주오’ 음악을 바탕으로 노회한 여배우의 애잔한 사랑과 삶을 연기하는 김연아 선수를 볼 것이며, 그 다음 날 프리 경기에서 탱고 음악의 전설 피아졸라가 아버지를 위해 만든 헌정곡 ‘아디오스 노니노’를 통해 김연아 선수가 17년간 함께한 피겨, 그리고 그녀를 성원해준 전 세계의 팬들에게 ‘아디오스’를 고하는 마지막 연기를 보게 된다. 김연아 선수의 시니어 8년 차 23번째 국제경기인 올림픽을 통해 피겨의 예술성에 흠뻑 젖어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우리들의 심장에 그녀의 연기가 와 닿기를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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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송두헌(용인송담대 교수, 블로그 ‘해맑은 아찌 수다방’ 운영자) 일러스트/ 심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