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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말고 누나

2014.02.24유지성

그러니까 “연상의 여자는 섹스 중에 남자를 리드하는 모습이 섹시하다”는 식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지난 1월 12일에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 사회를 맡은 여배우 티나 페이와 에미이 포일러는 산드라 블록을 놀렸다.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오른 <그래비티>는 조지 클루니가 동년배 여자와 일 분을 같이 있느니 우주에 떠돌아다니다 죽겠다는 얘기를 그린 작품이죠.” 화면은 자연스레 그 ‘동년배 여자’를 비췄다. 올해로 쉰하나. 산드라 블록은 흰머리가 가득한 조지 클루니보다 세 살 어리다.

<그래비티>의 카메라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넓고, 천천히 움직였다. 우주를 훑어야 하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산드라 블록의 몸만큼은 유독 가까이서 잡았다. 우주를 살필 때처럼 천천히. 가까스로 정거장에 탑승한 산드라 블록이 우주복을 거칠게 벗어 던지는 순간이 시작이었다. 우주복이 그렇게 쉽게 벗을 수 있는 옷인 줄은 몰랐지만, 산드라 블록은 기다렸다는 듯이 장비를 해체한 뒤 짧은 바지와 슬리브리스만 입고 몸을 띄웠다. 좌우로 긴 스크린이 몸으로만 꽉 찼다. “3D 아이맥스, 큰 화면으로 꼭 봐야 한다”는 권유의 당위를 산드라 블록의 몸에서 찾을 줄이야. 그녀는 유영하며 몸을 부드럽게 굽히고 또 폈다. 발을 딛고 꼿꼿이 선 것도 아닌데, 허벅지와 바지의 경계부터 가는 발목 끝까지 갈라진 선이 선명했다. 파란 지구, 시뻘건 태양, 새카만 우주를 건강한 여자의 피부색이 이겨내는 기분마저 들었다면 과장이 심한 걸까? 하물며 산드라 블록이 우주정거장에 들어서기 전까진 별보다 살이 더 희귀한 영화였으니까. 안경만 벗으면 미녀가 된다거나, 요조숙녀 같은 옷 안에 발칙한 속옷을 입었다는 설정보다 스케일이 몇 배는 더 큰 여자의 재발견. 그렇게 <그래비티>엔 놀라운 특수효과만큼이나 상상의 범위를 팽창시키는 연상의 여자가 있었다. 비행기에서도 섹스를 절대 금지하는 마당에, 우주에서의 섹스는 어떤 기분일까. 삽입한 채 공중제비도 돌 수 있을 텐데. 실제로 1999년 포르노 배우 실비아 세인트와 닉 랭은 상공 약 3천3백 미터에서 20초간 무중력 섹스에 성공했다.

산드라 블록의 몸에 반응하는 것이 어떤 의외성을 바탕으로 한다면, 그래서 누나가 도저히 누나처럼 보이지 않아 좋은 거라면, 명백히 연상인 여자를 통해 섹스가 떠오르는 경우도 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두 주인공 엄정화와 감우성의 나이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한 감우성과 결혼을 앞둔 엄정화란 설정, 침대에서 저돌적인 엄정화의 모습 등은 그녀를 연상의 여자란 관점으로 바라보게 한다. 더군다나 당시 배우보단 뮤지션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엄정화는 무대에서 누구보다 과감하고 자의적인 여자였다. 무엇보다 영화 속 엄정화의 “(페니스가) 빠졌다”거나 “다 벗지 말고 지금 넣어” 같은 말은 누나들의 말에 훨씬 가깝게 들렸다. 그것은 그저 섹스 중의 추임새라기보다, 남자를 완전하게 무장 해제시킬 수 있는 촉매로 기능했다. 뭔가 자신이 모르는 부분까지 알 것 같고, 돌발 상황이 생겨도 당황하지 않을 것 같으니 눈치를 볼 필요도 없는데다, 묻거나 주저하는 대신 자발적으로 뭔가 해낼 것 같은 여자. 간단히 말해 욕망에 솔직해질 수 있는 구실이 생겨 좋다면 너무 이기적인 걸까? 아무리 섹스 중에 정신을 반쯤 잃는다 해도 좀 더 야한 말을 해도 괜찮을까, 이런 체위는 괜찮을까에 대한 고민이 없을 리 없다. 연상과의 연애를 즐기는 한 30대 남자에게 물었더니 “누나인데 경험이 적으면 싫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기타리스트고 누나가 드러머라고 쳐요. 만약 드러머가 경력이 많으면 같이 합을 맞추다가 박자를 잠시 놓치거나 제가 좀 맘대로 치고 나가도 괜찮잖아요.” 그러니까 “연상의 여자는 섹스 중에 남자를 리드하는 모습이 섹시하다”는 식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오히려 연상의 여자는 남자에게 섹스의 완벽한 자유를 선물할 수도 있다.

한편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유하 감독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김부선을 ‘판타지’의 대상으로 활용했다. 엄정화가 간접적이라면 김부선은 노골적이었다. 물론 그녀는 영화 안에서 누나가 아닌 “아줌마”로 불리지만, 고등학생들은 그녀를 보며 야한 농담을 스스럼없이 한다. 김부선이 권상우에게 키스를 퍼붓는 신은 유튜브에 그녀의 이름을 입력했을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영상이다. 거기엔 ‘섹시 밀프’란 이름이 붙어 있다. 밀프MILF란 원래는 ‘Mother I’d Like to Fuck’(섹스하고 싶은 엄마)이란 낮 뜨거운 표현의 약자지만, 요즘은 나이에 비해 젊고 매력적인 여성을 뜻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포털 사이트 사전에도 “A Sexually Attractive Middle-Aged Woman”(섹시한 매력이 있는 중년 여성)이란 뜻으로 등재됐다. 유튜브 댓글로는 “나도 저런 경험이 있었다면”, “(또 다른 주인공인) 이정진과 아줌마는 한 건가?”등이 쓰여 있다. 섹시한 연상의 여자는 복장 페티시처럼 분명히 존재하는 판타지의 한 영역이란 말이다.

작년엔 TV만 틀면 ‘연상연하 커플’이 나왔다. 맥락은 보통 비슷했다. “나이 차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로맨스.”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은데. 누나가 의외의 모습이라 섹시하거나, 자신이 자유로워질 수 있어 좋거나, 성적 환상이거나, 혹은 다른 구체적인 이유이거나. 실비아 세인트와 닉 랭이 약 3천3백 미터까지 올라가 섹스를 한 이유는 다름 아닌 포르노 영화 촬영 때문이었다. 거룩한 사명 같은 건 생각지 않았을 테고, 아름다울 건 더더욱 없었다. 그저 구체적인 소재를 이용하면 재미있으리라는 흥미와 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에디터
    유지성
    스탭
    Illustration/ Finger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