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진은 KBS 예능 PD다. 그는 <1박 2일> 시즌 1에서 강호동에게 몰래 카메라를 당했다. 연예인이 아닌 조연출을 위한 최초의 예능이었다. 덕분에 그는 하나의 ‘캐릭터’가 됐다. 이후 6년이 지났고, 이제 <1박 2일> 시즌 3의 메인 PD가 됐다. 그가 만드는 새로운 <1박 2일>은 기존의 예능과 많이 다르다. 이렇게 불편하지 않은 예능 프로그램은 처음이다.
차가 새차 같은데? 산 지 1년 됐다. 항상 회사에만 있으니까 운행 거리가 길지 않다. 보통 이 차는 디젤차를 많이 타는 데 짧은 거리만 움직이면 가솔린이 더 낫다. 난 조용한 차를 좋아한다.
회사생활 몇 년 만에 샀나? 한 5년 정도? (함께 차에 타며) 우리 어디로 가나?
명동이다. 2월 9일 방영 된 <1박 2일> 시즌 3 ‘서울 특집’에서 명동은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김주혁과 그의 아버지(故 김무생)와 어머니를 잇는 장소였다. 서수민 선배(KBS 예능국 CP)가 주혁이 형 어머니께서 다른 사람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귀한 사진을 구해왔다. 명동성당 앞에서 젊은 김무생 선생님과 주혁이 형 어머니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그걸 보니까 서울을 같은 공간, 다른 시간으로 엮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교양 프로그램 같았다. 한편으론 <1박 2일> 시즌 3가 어떤 방향이 될지 알 수 있는 본격 예고편 같았고. 어떻게 만들겠다는 거시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만든 건 전혀 아니다. 스케줄 때문에 설 당일 녹화를 강행해야 했고, 어딜 간다면 길 위에서 녹화가 끝날 것 같았다. 그래서 서울에서 녹화를 했다. 이미 <1박 2일> 시즌 1에서 서울을 멋있게 다뤘기 때문에 새로운 장소를 발굴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공간적으로는 해결이 안 될 것 같아 시간의 축으로 봤다. 시간여행을 통해 동일한 장소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말하는 건 거창하고, 그냥 추억 팔이를 했다. 새로운 멤버들이 합류한 지 얼마 안 됐고 개인사 쪽으로 프로그램을 푼다면 아주 새로운 그림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인터넷에서 사진작가 치노 오츠카가 자신의 어렸을 때 사진에 현재 자신의 모습을 합성하는 작업을 봤고, 그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예능에서 출연자의 캐릭터와 사생활을 분리해야 한다는 제작진도 있다. 철저하게 비밀로 진행한 몰래 카메라니까 멤버들이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만약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통편집할 수 밖에. 다행히 지금 멤버들은 그런 것에 대해 개방적이다. 그리고 내가 그런 걸 좋아한다. 뭐랄까….
설마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나? 진정성이란 단어야말로 정말 진정성 없는 단어 아닌가? 예를 들어 (이)수근이 형이 <우리 동네 예체능> 배드민턴 편이 끝날 때 그렇게 울었다. 굉장히 가식적으로 보일 수 있는데, 난 절대 가식 같지 않았다. 정말 자신이 방송에 도움이 안 되고, 운동도 안 되니까 운 거다. 그건 방송 외적인 눈물이다. 난 그런 게 좋다. 진심이니까. 만약 단지 경기에 져서 펑펑 운다면, 온전히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 어떡해야 하지? 진짜 열심히 해도 잘 안되는데 어쩌지?” 이런 식이면 만드는 사람도 설득 당한다. <남자의 자격> ‘청춘 합창단’도 노래하고 싶은 어르신들의 가족사를 그대로 보여주니까 좋았다. 누군가는 사생활을 판다는 말도 있지만…. 특정 프로그램이나 장르에 대한 비방일 수 있지만 의자를 쫙 깔아놓고 “내가 이때가 제일 슬펐어요” 이런 게 오히려 사생활을 파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켜있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사연을 얘기하는 형태니까. 반대로 제작진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어떤 행동을 하고 그 안에서 방송 밖의 감정까지 나오는 건 가끔씩 보여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매주 우는 것도 아니고.
<우리 동네 예체능>을 하던 이수근이 갑자기 안 좋은 일로 사라졌다. 수근이 형이 처음은 아니다. (MC)몽이도 그랬다. 같이 방송하던 연예인이 그럴 때 마다 기분이 너무 안 좋다.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많겠지만 특히 이쪽에 대한 잣대가 좀 높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연예인에게 유독 허들이 높은 것 같다. 똑같은 잘못을 한 사람들도 꽤 많은데.
많은 관심으로 큰 소득을 얻었으니 문제를 저질렀을 땐 많은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다. 일종의 증폭효과다. 좋은 건 크게 좋아지고 나쁜 건 크게 나빠지고. 그걸 모르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같이 일했던 동료이자 친구로서 느끼는 감정일 뿐이다. 객관적인 감정은 전혀 아니다. 근데 도대체 내가 왜 인터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연예인도 아닌데! 하하. 예능을 자주 보나?
꽤 좋아한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찾아보는 예능이 정해져 있다. 최근 일요일에 보는 프로그램이 다시 <1박 2일>로 바뀌었다. 그 정도로 많이? 예능이 그렇게 재미있나?
재미도 있고, 습관이기도 하다. <1박 2일> 시즌 3은 불편한 지점이 적은 예능이라서 반가웠다. 불편이 적은 프로라…. 하지만 난 말할 거리가 많은 사람이 아니다. 심심한 편이다.
어떤 PD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게 많을까? 최근엔 사람들이 나영석 PD에 대해 많이 얘기한다. 글쎄. (나)영석 선배가 어떤 걸 지녔는지 잘 모르겠다. 시즌 1 때와 <인간의 조건> 시작할 때 같이 일했지만 많은 얘기를 해보지 않았다. 자신의 얘기를 잘 안 한다. 술을 먹어도 회사 얘기가 전부다. 사실 형에겐 궁금한 게 많다.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고. 특히 옛날에 연애는 어떻게 했을까? 이런 것이 제일 궁금하다.
지금 상사로 있는 서수민 CP는 어떤가? 자기 얘길 무척 많이 하는 사람이다. 수민 선배는 영석 선배랑 대극에 있다. 수민 선배는 기획적인 사람이다. 인간관계가 폭 넓고 전체적인 그림을 잘 그린다. 이미 만들어진 것에 대해서 예민하다.
이미 만들어진 것? 반 정도 만들어졌거나 누군가가 만들어온 것. 시나리오를 검토하거나, 만들어온 개그 코너의 강점과 약점을 간파하거나 어떤 연예인을 보고 이 사람이 재미있다, 없다를 판단하는 능력이 정말 뛰어나다. PD가 일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사람은 장인처럼 자신이 전부 만들고, 어떤 사람은 편집매장의 MD처럼 일하기도 한다. 수민 선배는 감이나 안목이 좋은 사람이다. 반면에 영석 선배는 장인에 가깝다. 자신이 오랫동안 연구해서 재미있겠다 싶은 부분을 찾아내고, 그걸 자막부터 끝까지 전부 기획하고 만드는 쪽이다.
당신은? 굳이 나누자면 영석 선배 쪽인 것 같다. 난 이미 만들어진 건 다 좋아 보인다. 좋다 나쁘다는 말을 잘 못하는 편이랄까? 차라리 “고생했어, 들어가” 라고 한 다음 다 뜯어 고쳐서 욕 먹는 스타일이다.
취업하기 전부터 예능을 만들고 싶었나? 예능 PD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다. 아무 곳이나 취업하자는 생각에 여기저기에 원서를 넣었지만 전부 떨어졌다. 전자 회사, 중공업 회사 전부. 신문사와 잡지사에도 넣어봤는데 다 마찬 가지였다. 아참, 2007년도엔 도 떨어졌다. 하하. 방송국은 처음엔 교양 PD만 지원했는데 계속 떨어지니까 난 정말 교양이 없는가 보다 하고 포기했다. 그래서 예능 PD로 써봤다. 그게 한 번에 합격했다. 취업 준비할 때도 만약 방송국에서 일하면 ‘안정적으로 돈을 벌면서 뭔가를 소소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방송국은 내가 꿈꿀 수 있는 곳 중에서 가장 월급을 많이 주는 곳이었으니까.
드라마 PD는 지원 안 했나? 안 했다. PD는 교양과 예능만 했다. 사실 KBS와 SBS엔 아나운서로 지원했다. 국방부에서 대북방송 아나운서로 2년 동안 일했는데 아나운서가 정말 좋은 직업이라는 걸 느꼈다. 학교 방송국에 기자도 하고, 음악 방송도 만들고, 방송제도 기획했는데, 아나운서처럼 연기하는 입장은 처음이었다. 방송 시간이 20분이면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만 관련된 공부를 하고 가장 적절하게 읽으면 됐다. 아마 내가 읽은 원고를 쓴 영관급 장교는 하루 종일 조사하고 취재하고, 원고 쓰고, 다듬고, 마감에 쫓겼겠지. 난 그런 게 싫었다. 아나운서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내가 제작할 때의 한 5분의 1 정도의 노력만 하면 됐다. 난 편한 게 좋다. 그래서 아나운서 시험을 봤는데 카메라 테스트에서 전부 떨어졌다. 이 좋은 아나운서를 아무나 하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하하하.
군대를 다녀와서 <마리끌레르>의 객원 에디터로 일했고, 이후 장르 소설 연재 사이트 문피아에서 <플레이어>를 연재했다. 소설은 꽤 많은 인기를 끌어 두 권의 책으로 발간했다. 카피라이터가 되려고 광고 회사에도 지원했는데 다 떨어지고, 내가 쓴 글도 거절을 참 많이 당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게다가 MBC에선 1차 시험인 글쓰기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소설을 썼다. 내가 쓴 글이 재미없을 리가 절대 없다고 믿었다. 문피아에 한 스물 몇 회쯤 올렸을 무렵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기분은 좋았지만 소설이 뒤로 가면서 힘이 없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완결된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쓴 게 아니라 정말 ‘빡이 쳐서’ 썼기 때문이다.
전문 작가가 되고 싶진 않았나?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다. 2008년 경제 위기가 오면서 끝내 취업하지 못할 것 같다는 공포가 있었다. 글 쓰는 일을 하는 회사에 많이 지원했는데 전부 나를 거절했다. 취업 전까지 용돈 벌려고 럭셔리 잡지에 외고를 많이 썼다. 이틀 동안 자료 조사해서 인터뷰하고 정리까지 해서 주면 10만원을 줄까 말까 했다. 그런데 KBS에 들어가서 교육 받는다고 앉아만 있는데도 2백만원이 넘는 돈을 주는 게 정말 신기했다. 뭐랄까 정말 먹고 살려고 PD가 됐다. 날 뽑아준 건 KBS뿐이니까.
우연히 시작했지만 잘 맞는 쪽일까? 여전히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자신이 없다. 고백하자면 PD가 되기 전에 제대로 본 예능 프로그램은 <천생연분>이 전부였다. 그것도 군대에서 봤다. 예능 문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PD가 됐다. 그래서 처음에 굉장히 힘들었다. 회사에서 완전히 버리는 카드였다. 일주일 내내 5분짜리 영상 편집해서 검사 맡으면 잘리고, 45초짜리 블링크 영상이 겨우 방송에 나가는 게 전부였다. 그땐 하루라도 빨리 다큐멘터리 부서로 옮기려고 했다. 그러던 와중에 ‘1박2일’ 일손이 모자라서 투입되었다. 일본 속담에 “고양이 손도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 정도였다. 투입되자 마자 ‘백두산 특집’ 편에서 출연자가 배를 타고 객실로 가는 영상 13분을 만들었다. 이명한, 나영석 선배, 이우정, 김대주 작가 등등의 스태프 앞에서 첫 번째 시사를 했다. 내가 봐도 너무 재미가 없어서 혼날 각오를 하고 있는데 이명한 선배가 자막을 쓰라고 했다. 내가 편집한 그대로 나갔다. 시사를 마치고 영석이 형이 해준 말이 생각난다. “넌 이게 재미없다고 생각하지?”
웃음 코드가 다른 건가? 그때쯤 <1박 2일> 제작진은 자신들의 도그마에 굉장히 자신이 있었다. 단지 생생하고 대리 만족할 수 있는 날것의 영상이라면, 시청자가 안 웃어도 본다는 확신이 있었다. 찍어온 영상엔 배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청량한 그림이 많았다. 그러니 어떻게 만들어도 웃길 순 없었다. 혼날 걸 대비해서 짐 쌀 준비까지 했는데, 그 드라마틱한 사건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1박 2일> 시즌 1에서 몰래 카메라에 당하면서 하나의 캐릭터로 등장했다. 조연출을 희화화하는 건 이전에도 많이 한 시도였다. 하지만 <1박 2일>은 작정을 하고, 스태프가 방송에 개입한 첫 번째 예능이 아닐까? 어떤 사람은 방송사와 MC의 권력이 전복된 아주 상징적인 프로그램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더 이상 PD는 무소불위의 사람도 아니고, 그냥 ‘원 오브 뎀’이며 심지어는 놀림의 대상이라고.
난 반대로 스태프가 캐릭터가 되었기 때문에 제작진의 권력이 견고해졌다고 생각한다. 시즌 1 때 스태프 그대로 시즌 3까지 이어져 왔으니까 카메라가 갑자기 스태프를 향해도 그들은 노련하게 대처한다. 새로운 멤버들이 허둥댈 땐 제작진을 비출 수 있는 선택지도 생겼고. 맞는 말이다. 시즌 1부터 이우정 작가나 나영석 PD가 가장 중점을 둔 것도 그 점이다. 이 프로그램이 아주 일반적인 사람들도 쉽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방송을 만드는 상황이 시트콤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본래 방송은 촬영하는 사람과 노출되는 사람으로 양분된다. 이러면 결국 ‘쇼’에 머문다. 이미 시청자는 방송을 어떻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가 신선했다. 만약 바람이 너무 불어서 촬영을 못하는 상황이리고 하자. 옛날 같으면 제작진이 부끄러워 할 텐데, <1박 2일>은 ‘그럴 수도 있잖아.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해’ 라는 자세로 방향을 바꿨다. 이전 시즌 2는 반대로 지나치게 통제적이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왜 그렇게 통제적이었을까? 시즌 2 현장에 없었으니 왜 그랬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하지만 PD가 통제를 많이 하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출연자와 제작진 간의 신뢰가 부족할 때다. 그때부턴 제작진은 출연진이 대본대로 연기하길 바란다. 대본은 일종의 안전망이다. 오히려 대본대로 안 될 때 방송은 더 재미있다. 시즌 1 때 선배들은 자주 이런 말을 했다. “대본을 가져가자. 하지만 대본대로 나올수록 안 좋다.” 예능은 드라마와 달라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른다. 제작진은 세팅만 할 뿐, 대사를 적어주지 않으니까. 하지만 출연자가 자발적으로 뭔가를 하려는욕구가 없으면 어떤 돌발 상황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출연자가 돌발 행동을 해도 제작진이 그대로 믿어줘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선순환이 되어 굴러가야지만 출연진과 제작진의 신뢰가 쌓인다. 시즌 1이 엄청나게 성공했던 것도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다며 녹화를 했다. 그땐 다들 약간 미쳐 있었다.
출연자가 돌발 행동을 하도록 말로 설득하는 게 PD의 능력인가? 아니, 말로 설득하는 건 의미가 없다. 다른 어떤 것보다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당신이 그렇게 막막한 짓을 했는데 이렇게 웃기잖아. 방송 결과로 계속 피드백을 줘야 한다. 데프콘 형이 수염을 깎았는데, 재미가 없으면 다시 수염을 깎으려고 할까? 어쩌면 처음엔 운일지도 모른다. 신뢰의 수레바퀴가 돌려면 좋은 일들이 몇 번은 계속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수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출연진도 좀 더 무모하게 움직이고. 그런 무모함을 제작진도 믿게 된다. 그러면 한 발짝, 한 발짝 살 얼음판 위를 걸어갈 수 있다. 그래야 방송이 재미있다.
하지만 그런 모험이 KBS 예능 전반의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KBS가 다른 방송사가 만들어놓은 포맷을 그대로 베낀다는 주장이 있다. 새로운 시도를 한 프로그램들이 히트를 하거나 화제가 되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 <불후의 명곡> 시즌 1은 나름 오리지널리티가 있다고 생각한다. <안녕하세요>도 소소하지만 KBS가 원하는 방식의 예능이기도 하고. <컬투쇼>를 베꼈다고 말하면 얘기가 다르지만….
2000년대 초반, <해피 투게더> 쟁반노래방이나 <MC대격돌 위험한 초대>(쿵쿵따) 시절엔 KBS가 모든 예능에서 앞서 있었다. 그 시절이 KBS 예능의 황금기였다. 확실히 KBS는 토크 프로그램이나 예능과 교양을 합쳐 놓은 ‘쇼양’을 잘한다. 그러니까 <아빠! 어디가?> 같이 파괴력이 있는 리얼 버라이어티는 잘 안 나오는 것 같다. 리얼 버라이어티풍으로 제작을 많이 안 하기도 하고. <아빠! 어디가?>도 오리지널리티를 얘기하면 결국 <1박 2일>과 맞닿아 있는 면이 있다. 세세하게 따지면 복잡하다. 서로 돌려 먹는 건데…. 사실 <마마도>가 큰 문제였다. 외주 제작사가 만든 거긴 한데…. 그래도 <마마도>는 너무 심했다. 그건 자존심이 없는 거다. 내부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도 논란이 있었다.
논란이 있지만 강행하는 이유가 있을까? 해명하자면 우리는 채널이 두 개니까 방송으로 메워야 할 시간이 길다. 말하자면 막을 프로그램이 많다. 채널 하나에서 교양, 스포츠, 보도를 나누는 게 아니라 채널 두 개를 운영하니까. MBC 예능 프로그램은 지금 열 개 정도지만 KBS는 스물다섯 개다. 반면에 제작팀 규모는 MBC와 똑같다. 새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건 결국 사람이고 보통 젊은 PD들이 많이 한다. KBS 예능국은 기획팀이 상시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음악 프로처럼 좀 더 여유로운 PD가 새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식이다. 기획을 전업으로 하는 팀이 따로 없다. 그러다 보니 외주 제작사도 들어오고, 기획이 헐거운 프로그램도 생기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개그 콘서트>는 KBS 예능의 상징이 아닐까? ‘개콘’이야말로 연구 대상이다.
버라이어티는 적어도 1시간에 정도 출연하는데, ‘개콘’에선 5분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개콘’에서 성공하면 어떤 버라이어티 출연자보다 광고를 많이 찍는다. 광고는 상업적으로 중요한 척도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개콘’은 시스템이 잘되어 있다. 그곳에 누가 간다 해도 잘할 수 있다. 이미 작가와 PD, 개그맨의 삼각구도가 탄탄하다. 신인 발굴 능력도 대단하다.
그 인력을 버라이어티로 돌릴 수는 없을까? 개그맨이 끼가 많고 재미있는 사람들 같지만, 소심한 면도 있다. 각자의 콤플렉스가 있고. 그런 콤플렉스를 희극 에너지로 발산하는 사람이 많다. (정)준영이가 왜 버라이어티에서 잘하냐면 콤플렉스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데프콘 형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도 뭔가 엄청 힘든 상황을 자신 나름대로 극복하거나, 숨기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출연자들은 얼음판 위에서 한 발짝 나아가는 걸 좀 덜 두려워한다. 어떠면에선 좀 욕 먹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야 용기를 낼 수 있다. 대본에 익숙하면 대본이란 안전망에만 익숙하게 되고, 그 밖의 영역에서 웃기기 쉽지 않다. 개그맨이지만 버라이어티에선 죽어도 웃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귀책이 없는 곳에선 굉장히 웃긴데 카메라 앞에선 겁이 나서 잘 못한다. 카메라가 앞에 있어도 공포없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메인 PD로서 가장 큰 공포는 뭘까? 너무 많다. 그냥 지금 이 고난을 무사히 빠져나갔으면 좋겠다.
TV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지는 않나? 나도 나만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적어도 버라이어티에선 아니다. 그냥 운 좋게 잘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일하게 돼서 감사하고 이 시련을 빨리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 확실히 검증은 못했지만 난 글 쓰는 게 좋다. 글 쓸 때 제일 편안하다. 뭔가를 표현한다면 사진과 글의 조합이 제일 좋다.
그건 잡지인데? 잡지일 할 때 정말 좋았다. 다만 내가 원하는 매체에서 나를 정규직으로 채용을 안 해줬을 뿐이다. 나는 사진과 활자가 방송보다 더 좋다. 그쪽에서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내러티브를 가진 영상은 내 능력 밖이다. 영화나 예능, 드라마 전부를 포함해서. 영상 만드는 건 너무 어렵다.
평생 가장 좋아한 책은 뭔가? <몽테크리스토 백작>.
주로 소설을 좋아하나?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제대로 쓰지를 못할 뿐이다.
이미 인기를 끌어 책도 냈는데? 그건 내 나름의 방법이 있었다. 이야기를 만들 때의 몇 가지 원칙인데, 내러티브를 비행기라고 생각한다. 비행기는 추력이 없으면 떠오르지 않고, 계속 날지 못한다. 양력은 추력을 통해서 나오니까. 결국 전진하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근데 전진은 단순히 사건 전개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싸구려 방법일 수 있지만 독자는 결국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한다는 전제를 세우면 주인공이 지금보다 나아질 때 좋아하게 된다. 돈이나 일신의 안락, 성적인 충족, 복수의 성사, 친구나 인맥 확보, 주변의 인정들이 있다. 그러니까 인간이 원하는 욕망 중에 전형적인 욕망들을 그냥 계속해서 충족시킨다. 대신 계속 충족되는 이야기는 아무도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아주 최소한의 충족을 시키면서 주인공의 전체적인 상황을 계속 안 좋게 떨어뜨린다. 전체적 국면으로선 주인공을 하강시키되, 사람들이 버거워하지 않게 자잘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나락으로만 떨어지지 않게. 주인공에게 마이너스 힘만 주지 않으면 어느순간부턴 주인공이 스스로 떠오르게 된다. 이런 식으로 자맥질하듯이 얘기를 만든다. 소설을 쓰면서 계속 체크했다. 주인공의 섹스에 대해 얘기를 했나? 돈에 관련된 얘기를 썼나? 누군가에게 복수를 성공했나? 그런 식으로 하나씩 충족시킨다. 엄청 단순한 방법이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제대로 정돈이 안 돼 있는 글이다. 지금 보면 마(빈틈)가 많다.
TV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건 어떤가? 유명해지는 건 재미있나? 그건 좋고 나쁜 걸 떠나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다시 <1박 2일> 시즌 1 때로 돌아가서 몰래 카메라에 당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할까? 얼굴이 노출되는 것을 막을 것인가? 아니. 막지 않겠다.
- 에디터
- 양승철
- 포토그래퍼
- 김참
- 스탭
- 스타일리스트 / 박지석,헤어, 메이크업 / 이가빈,어시스턴트 / 이채원, 정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