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DITOR’S LETTER – 세 개의 짧은 이야기

2015.04.23이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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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의 심장

가끔 생각했다. 꿈꾸던 삶은 아니지만 나중에 어렴풋이 이 순간을 그리워 할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한순간 모든 게 바뀌었다.

머리 위 뭉게구름을 헤아리며 빨간 정수장 건물 모퉁이를 천천히 걸었다. 4월 하늘은 인공위성에 탄 헬로 키티가 지구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호수는 오후 세 시의 지루한 빛을 받고 있었다. 공원은 로맨틱 코미디류의 남녀와 그 간격을 방해하듯 지나가는 결핍된 인간 무리로 붐볐다.

대충 그린 스케치처럼 흐릿한 포플러 나무 그림자가 청록색 잔물결에 흔들릴 때, 불쑥 4월의 공기가 다른 달과 얼마나 다른지 느꼈다. 계절은 더디 바뀌고 서둘러 끝이 났다. 회색 비둘기가 폐허 위를 맴도는 어느 밤, 식물들은 움츠러들고 곤충들은 껍데기만 남길 것이다. 계절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 간신히 추위를 지운 올 4월엔 더 많은 것이 남았다. 남은 인생이 봄날을 조금은 천국으로 만들어줄 거라는 기대는 애당초 없었다.

가을이 밤하늘에 오리온을 불러오듯이, 봄의 은하수도 별자리로 채워졌다. 시간이 되면 해결된다는 밑도 끝도 없는 말 속에서 달력은 잡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찢겨나갔다. 생명의 등불을 밝혀드는 4월은 상식을 지배하는 폭식가, 남는 것이 없는 다음, 죽음의 미친 재, 새로운 증오로 넘쳤다. 왼손과 오른손이 관 속에서나 가슴 위에 포개질 어떤 마음들이 자꾸 떠올랐다. 은둔하는 새도 날아오르는 4월에 나의 운동화는 비극적인 산성酸性을 띠고 있었다. 자주 그런 상상이 들었다. 브레이크가 고장났다면, 살충제가 씻기지 않았다면, 16층에서 벽돌이 머리 위로 떨어진다면, 나쁜 사람들이 조금만 덜 많았다면. 나는 화가 나고, 피곤하고, 외로웠다. 그날 밤, 병원 로비에 앉아 있는 꿈을 꾸었다. 누군가 검사 결과가 나왔냐고 물었다. 나는 떠오르지 않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억하려고 애를 태우다 꿈꾸는 중이란 걸 알았다. 깨려고 무음의 소리를 질렀지만 눈을 뜬 현실은 아직 꿈속이었다. 낯선 사람이 여전히 내 대답을 기다릴 때 간신히 깨어났다. 오직 꿈속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만 컸다. 한 번의 숨에 모든 것을 나열하며 감정을 병리적으로 정의만 하는 동안 시간이 흘렀다.

인생은 평탄할 수 없고,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 4월 내내 추웠지만 심장은 그대로 두었다. 얼어붙어 썩지 않도록.

 

두 개의 마음

나는 가슴과 머리 사이에서 살았다. 매일 다투는 부부처럼. 몸은 두 팔 가운데서 헤맸다. 사악한 왼쪽 눈과 도덕적인 오른쪽 눈 사이에서. 용맹스럽게 달려들다가도 기둥 뒤에 숨었다. 휴가 떠난 스트리퍼처럼 춤추듯 건들거리는 왼팔과 로마 병정처럼 꼿꼿이 몸통에 달라붙은 오른팔 사이에서. 나는 웃음과 눈총 틈에서 살았다. 양당제처럼 내 자신에게 반대하며. 오른 발을 내려놓을 때 왼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인생을 불러들이는 동시에 걷어차면서. 관습과 제스처, 행위와 반응, 표현과 억제, 피할 수 없는 감각과 조절할 수 있는 감정 사이를 배회했다. 노인의 얼굴로 다시 어린애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하는 동안, 나는 늘 절반이 비어 있었다.

 

난 행복해

어느 날 의사가 물었다. 1부터 10까지 매긴다면 통증은 어느 정도냐고. 그가 기대한 답은 늘 1, 나의 답은 항상 9. 행복은 없다. 꿈은 순식간에 지옥의 열두 번째 문을 두드린다. 매번 차례가 되어 상상도 못했던 펀치가 나를 가격했다. 몇 가지는 내 잘못이 아니었다. 어떤 것들은 자초했을 것이다. 결국 운명에 지고 만다.

지혜로운 책에서 본 대로 빈터에 나무를 심거나, 서로를 용서하거나, 헐벗은 이에게 옷을 입히거나, 일로 가득한 세상을 용감한 팔꿈치로 헤쳐 나가거나, 더 큰 지위라는 월계수 왕관을 쓰거나, 당장의 즐거움으로만 산다 해도 행복은 없다. 쉼 없이 움직이는 심장을 침착하게 만드는 평화의 감각은 10분 만에 깨진다. 원하는 것조차 나를 채우지 못한다면 지옥에선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걸까?

사는 것 자체가 벌 받는 것 같다. 체중도 잘 유지되고, 생각도 못한 데서 돈이 들어오고, 햇볕은 각막을 벗길 만큼 화창하고, 사소한 약속까지 지키고, 좋은 평판이 단지 백만 개에 넘치고, 더 이상 행복에 매달리지 않아도 어느 순간 누군가 내 얼굴을 세게 친다. 모든 건 내일, 10년 후, 다음 30년 안에 일어난다. 대부분 전부 겪는다. 스스로에게 진짜 투지가 있는지 알 시간이 없고, 위험과 보상의 균형을 이해하지 못하며, 파괴된 연애의 방향을 바꿀 수도 없다. 뛰는 법과 미끄러지지 않는 법을 배우고, 펀치를 날리고 받는 법을 익혀도 현재는 즐겁지 않고, 미래는 희망이 없다. 계획한 인생 이외의 것들은 완전히 지쳤을 때 한 번에 일어난다. 거지 같은 직장에 처박히고, 연인은 울며 문 밖으로 뛰쳐나가고, 부모는 암에 걸린다. 절대 안 만날 사람을 신경 쓰는 시시한 삶. 생기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표준화된 대가. 결국 살기 위해 참혹함을 이용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할퀴고 또 할퀴는 수천의 거지 무리에 속하지 않은 데 안도하는 캘커타 뒷골목의 매춘부들처럼. 두려운 건 나보다 센 것들이 아니라 내 자신 안의 연약함. 쾌락은 순간의 노예. 허무는 과거의 시종. 너무 늦어버려 더 이상 이끌어야 할 삶이 없을 때,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지친 한쪽 발을 다른 쪽 앞에 놓는 것, 그것만이 전부일 뿐.

    에디터
    이충걸 (GQ 코리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