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과 원산지에 방점을 찍는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 운동. 이젠 패스트푸드점들도 이 슬로건을 내세운다. 언제부터 음식의 맛보다 식재료의 원산지가 더 중요해졌을까?
음식 칼럼니스트인 나는 한때 이런 장면을 간절히 꿈꿨다. 집 근처 소박한 레스토랑에서, 인근 농장에서 재배한 질 좋은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즐기는 식사 시간. 모든 요리는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아주 살짝만 요리해 거의 벌거벗은 것 같은 맛이어야 하고, 고기나 생선은 올리브 오일의 가벼운 붓 터치만 더해진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내가 먹는 식재료 하나하나가 누가 재배한 것인지 애써 셰프를 취재하지 않아도 알아낼 수 있는 그런 식당에서 한 끼 식사를 끝마치는 일 말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이런 환상을 키우지 않는다.
요즘 셰프들은 모든 요리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가 다 어디에서 온 것인지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걸 좋아한다. ‘로커보어’(로컬 음식만 먹는 사람)라는 신조어로는 이 열풍을 다 설명하기 어렵다. 셰프들은 열풍에 휩쓸리면서도 개념의 차별화를 위해 또 다른 단어를 고민하고 있다. 이제 ‘팜 투 테이블’ 퀴진을 전면에 내세운 사업 계획서를 지참하지 않고는 어느 셰프도 투자자들을 찾아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 단어가 얼마나 흔해졌는지, (좀 짜증나지만) 이런 약어로 불리기까지 한다. ‘F2T’.
특히 최근 들어 이런 풍토가 도를 넘고 있다.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커먼 웰스’라는 레스토랑을 찾았을 때, 그 사실을 뼈져리게 느꼈다. 이 동네는 조명 기기를 만들던 공장지대를 재활성화한 매력적인 곳이다. 불과 10년 전의 레스토랑 인테리어는 벽돌이 노출된 벽을 강조하고, 단단한 목재로 된 바닥에 기계를 박아 넣고, 거친 공업용 전등에 부드러운 빛이 나는 ‘에디슨’ 전구를 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이제는 레스토랑 입구를 가짜 농장으로 꾸며놓고, 과일과 채소가 든 궤짝을 놓아 두고, 로컬 농장 이름들을 적은 칠판을 비치하고, 메이플 시럽 병을 진열해야 한다. 이 식당 역시 벽돌 벽을 조잡한 나무판으로 덮었다. 이런 것들이 주는 효과는 뭘까? 오히려 ‘농장 복장 도착’에 가깝지 않을까? 그리고 심지어 그곳은 근처에 농장도 없다. 낡은 공장들로 둘러싸여 있고, 근처에 구글 사무실도 있다.
맨해튼의 웨스트 빌리지 역시 농촌이 아니다. 한때는 자유분방한 주민이 많아 유명했지만, 지금은 썩 그렇지도 않다. 이곳의 매력을 즐길 주민들은 경제력이 있는 헤지펀드 트레이더 들이고, 그들은 ‘블렌하임’과 같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다. ‘블렌하임’은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전직 디자이너 모르텐 솔버그와 전직 투자 은행가 민예 부부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캣스킬스에 있는 약 20만 평 크기의 ‘스모가스 에코 농장’에서 식재료를 받는다. 역시나 식당 안에는 에디슨 전구, 깨끗한 넓은 판자 벽, 그리고 이 빠진 톱 수십 개와 소가 끄는 쟁기들을 비롯한 농업 박물관 전시물 같은 것들을 갖다 놓았다. 산타 모니카의 골드코스트와 맞닿아 있는 캘리포니아 주 브렌트우드의 ‘팜샵’은 벽 전체에 건초를 말아둔 들판을 배경으로 한 헛간과 곡식 저장 창고의 흑백 사진을 붙였다. 그리고 앞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코끼리 키 높이는 될 옥수수 밭을 걷는 사진을 붙여놓았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이 식당 근처의 부티크 숍에서 쇼핑할 여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팜 투 테이블’의 기원은 고결하다. 1970년대에, 앨리스 워터스가 레스토랑 ‘셰 파니스’의 메뉴에 농장 이름들을 적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음식이란 정말로 농장에서 자라는 거라는 걸 상기시키기 위해서였다. 워터스는 자신이 만드는 음식과 계절 사이의 연결고리를 확립하고 싶었고, 식사의 모든 부분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알려주고 싶었다.
의도는 좋았지만, 전 세계 셰프들이 이 콘셉트에 뛰어들면서 여기저기에서 탄원서만큼 긴 이름이 들어간 메뉴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이게 좀 어색해졌다. “볼리나스의 워렌 웨버가 스타 루트 농장 라디치오 구역 세 번째 줄에서 키운 트레비소.” 양들은 풀밭을 뛰어다니고, 거세한 소들은 황산화 성분이 풍부한 잔디를 먹고, 닭들은 천연 사료를 먹는다. 네일 건으로 쏘아 죽이기 직전까지 말이다. 당신은 실제로 먹고 있는 게 뭔지는 알 수 없을지 몰라도, 누가 재배 했는지, 누가 키웠는지, 누가 잡은 건지는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메뉴에 관심이 높아진 덕에, 농장들은 셰프의 경쟁력을 위해서 제공했던 재료들을 일반인에게도 팔기 시작했다. 그러자 셰프들은 강점을 잃었다.
“짜증나죠.” 캘리포니아 퀴진의 전성기 때 스타스의 셰프였고,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꽤 잘나가는 레스토랑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고 있는 로레타 켈러가 말한다. “예전에는 우리만 얻을 수 있었던 것을 시장에서 사람들이 쉽게 살 수 있게 됐으니 거들먹거릴 수 있는 권리를 잃은 셈이죠. 우리는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그 무엇을 다시 얻기 위해 경쟁해야 했어요.” 그러면 일반적으로 두 가지 방향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농부들에게 친밀하고 독점적인 계약을 맺자고 우겨 ‘팜 투 테이블’을 계속하거나, 메뉴에 간결한 다섯 단어짜리 설명만 달고 손님들이 알아서 생각하게 하거나.
더 나쁜 것은, 이 운동의 언어와 이미지를 대기업들이 교묘히 차용했다는 점이다. 애초에 이 운동은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대안으로 떠올랐는데 말이다. 이런 현상을 ‘농장 세탁’이라고 부른다. “농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말끔한 외모의 농부 사진이 등장하는 이 광고 시리즈는 “어머니의 사랑은 농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따위의 카피를 전달한다. 광고주가 누구냐고? GMO 종자의 글로벌 공급자이자 GMO 종자를 거부하는 농부들에겐 재앙인 식품회사 ‘몬산토’다. 가공식품이 비만의 원인이라 생각하는 대중들이 보내는 미심쩍은 눈길 때문에 난처해진 맥도날드는 점점 강해지는 경쟁자 ‘치포틀’까지 신경 써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치포틀은 윤리적 공급자들에게서 납품을 받는다는 주장으로 시장 점유율을 키워왔다.(이것도 사실인지 계속 의심받고 있다.) 4년 전 맥도날드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캠페인을 시작했다. 고객들이 메뉴에 들어가는 고급 재료들에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2년 후, ‘팜 투 포크’ 캠페인에는 감자, 쇠고기, 양상추 농부들이 등장해 실제로 자기 땅에서 키운 생산물들을 보여주었다. 맥도날드는 구식 트랙터와 행복한 해바라기의 흑백 사진을 빌보드 크기로 프린트해서 대형 트럭에 붙이고 영국을 오가도록 했다. 거기에 들어간 광고 카피는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1만7천5백 명 이상의 영국과 아일랜드 농부들이 우리에게 재료를 공급합니다.” 햄버거 봉투에 그려진 일러스트는 농부들이 쓰는 사료 자루에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농장 분위기가 그럴싸하게 느껴지는 디자인이었다.
소규모 패스트푸드점도 비슷한 전략을 사용한다. 뉴잉글랜드에서 햄버거 레스토랑 18곳을 운영하는 체인 레스토랑 ‘비굿b.good’은 홈페이지에 농부 사진을 올리고 ‘진짜 프라이’와 ‘진짜 음식’을 내세운다. 매장이 다섯 군데 있는 남동부의 한 체인은 풀을 먹여 키운 쇠고기를 메뉴에 올리고 레스토랑 이름을 ‘팜 버거’라고 지었다. 또래들의 성향을 읽은 젊은 조지타운 졸업생 네 명이 함께 만든 레스토랑 ‘스위트 그린’은 매장이 서른 군데가 넘고,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스위트그린 지점에는 어딜 가나 농장 사진이 있고, 그날 납품한 농장 이름을 적은 큰 칠판이 있다. 후광 효과를 노리는 슈퍼마켓들은 자신들과 거래하는, 잘생겼지만 피부가 햇볕에 거칠어진 농부가 등장하는 커다란 배너를 건다. 하지만 훨씬 더 많은 양을 공급하는 거대한 생산 업체 배너는 걸지 않는다.
이제 ‘팜 투 테이블’ 운동은 은퇴할 때가 됐다. 한때 이 말이 가졌던 진정한 의미는 모두 사라졌다. 심지어 셰프들도 지겨워하고 있다. 찰스턴과 내슈빌에서 레스토랑 ‘허스크’를 운영하는 션 브록 셰프는 옛 요리책과 신문을 성실히 연구해서 이 지역 전체의 음식 문화를 부흥시켰다. 그는 자신의 PR 담당자에게 처음부터 그 어떤 홍보 자료에도 ‘팜 투 테이블’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명령했다. 케임브리지에 새로 생긴 인기 레스토랑 ‘올던 & 할로우’의 마이클 스켈포 셰프에게 의도된 ‘팜 투 테이블’ 브랜딩으로 보이는 메뉴에 대해 묻자, 다시는 그렇게 부르지 말라며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최대한 사려 깊게 식재료의 원산지를 고른다는 걸 고객들에게 광고하지 않기 위해 늘 주의하고 있어요. 고객들을 위한 거죠. 농장 이름을 늘어놓고 고객들을 을러댈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그가 내는 음식들은 고기가 많이 들어간 강렬한 것으로, 농장이 아닌 셰프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처음으로 ‘팜 투 테이블’에 진정한 믿음을 가졌던 레스토랑들마저도 이젠 거의 그 단어를 메뉴판에서 뺐다. 1979년에 ‘젠 센터’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문을 연 ‘그린스’는 채식주의 음식을 한 단계 격상시킨 곳이다. 그린스에서는 농장 이름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메뉴에서 온갖 설명을 보자면 지쳐요.” 그린스의 셰프 애니 소머빌이 최근 내게 말했다. “우린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린스의 꾸밈없는 샐러드와 채소는 지금도 아주 훌륭하고 사 먹을 가치가 있다. 사실 이런 음식을 만들어내려면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보기 드물게 훌륭한 요리다.
이제 ‘셰 파니스’는 메뉴에 농장 이름을 최대한 적게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 셰파니스는 오래전부터 농부 밥 캐너드의 수확물 전부를 구입하고 있다. “패스트푸드가 ‘팜 투 테이블’을 가져가서 정말 화가 나요.” 워터스는 얼마 전 나와 함께 아스파라거스가 들어간 파 파르델레, 크렘 프레슈, 프로슈토, 민트(메뉴에 농장 이름은 없다)를 먹으며 이야기했다. “이 운동에 무임승차한 격이죠.”
지역 농장의 이름을 주렁주렁 기록한 칠판은 정말 사라질까? 워터스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몇몇 셰프는 그 칠판을 보면서 이런 의문을 품는다고 한다. 사장이 정말 농장에 가봤을까? 이름을 늘어놓는 것이 껍데기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오가닉 농부였다가 농장 컨설턴트가 된 애틀란타의 코리 모서는 최근 ‘FarmToFable.net’ 주소를 구입했다.(fable은 우화, ‘꾸며낸 이야기’라는 뜻이다.) ‘독립적으로 확인한 식재료 원산지에 얽힌 거짓 주장 사례’들을 올리기 위해서다. 밀러 유니언 레스토랑으로 애틀랜타의 ‘팜 투 테이블’을 주도하는 스티븐 새터필드는 입구에 칠판을 두긴 하지만 메뉴에서는 농장 이름을 강조하지 않는다. “입에 올릴 거라면 행동으로 보여줘야죠.”
굳이 다 말하고 떠들 필요는 없다. 어떤 셰프들은 오랫동안 ‘팜 투 테이블’ 정신을 지켜왔으면서도 말은 하지 않았다. 시카고의 ‘프론테라 그릴’과 ‘토폴로밤포’를 운영하면서 요리책, TV 쇼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지역의 음식 문화 자체를 일으킨 릭 베이레스는 수십 년 동안 시카고 주위의 농장들을 지원하고 농장 개장을 돕고 있다. 하지만 그의 정체성은 예나 지금이나 멕시코 음식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소개하는 데 있다. 애나 소턴은 자신이 연구한 터키와 지중해 동부 음식을 케임브리지와 보스턴 근처의 서머빌 지역에 있는 레스토랑 몇 군데에서 내며 전국적인 팬을 얻었다. 그녀는 남편 크리스커스와 함께 시에나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시에나 농장은 그의 식당에서 사용하는 재료 대부분을 재배한다.
지금 가장 ‘트렌디’한 것은 이런 것이다. 농장을 가지고도 크게 떠벌리지 않는 것. 댄 바버 셰프가 운영하는 뉴욕 웨스트 빌리지의 ‘블루힐’ 레스토랑은 블렌하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농장 이름을 따서 명명한 최초의 야망있는 도시형 레스토랑이었다.(바버의 할머니가 소유하고 있는 버크셔의 농장이다.) 블루 힐은 넓고 깔끔한 현대적인 인테리어를 구현했고 농장 이미지는 없다. 웨스트체스터 스톤 반스에 있는 훨씬 큰 블루 힐도 마찬가지다. 두 곳 모두 바버가 최근 저서 < 세 번째 접시The Third Plate >에서 제안한 내용을 실천하고 있다. 셰프들은 일 년 내내 농장 전체를 접시에 담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썩 좋지 않은 부위, 뿌리, 채소에서 보통은 버리는 부분까지도 말이다. 처음부터 그의 음식은 실험적이고 야망 넘쳤고 프랑스와 스페인의 최신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절대 얌전하거나 괴상하지도 않았다.
‘만레사’ 레스토랑은 실리콘밸리의 로스 가토스 다운타운의 작디작은 몰들이 모인 오래된 거리 틈에 숨어 있다. 미국, 아니 전 세계의 셰프들은 일식을 주제로 한 복잡한 요리를 내는 데이비드 킨치 셰프를 존경한다. 신시아 샌드버그가 소유한 산타크루스의 러브 애플 농장의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는 킨치를 질투한다. 나 역시 킨치의 독창성을 높이 산다. 하지만 내가 정말 우러러보는 점은 이것이다. 셰프들 사이에서는 킨치의 이름은 ‘그 사람은 자기 농장을 가지고 있어’와 동의어 일지 몰라도, 막상 가보면 손님은 그 사실에 대해서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레스토랑의 모습은 일본풍이 가미 된 캘리포니아 공예 같다. 벽에 낫이나 쇠스랑은 없다. 진지한 웨이터들은 농장에서 가져와 요리에 사용하는 스위트 터닙, 국화, 꽃 핀 고수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전복, 은대구, 원양에서 잡은 아귀 간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내가 먹은 가장 인상적인 요리는 일본에서 수입한 와규를 작게 잘라 프랑스에서 가져온 신선한 블랙 트러플 조각과 함께 일본풍 다시에 넣은 것이었다.
근사한 식당에 앉아 여남은 가지 코스에 1백98달러(약 20만원)를 쓰고 기뻐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재료 중 상당수가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좋아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농부에 대한 이야기, 혹은 농부가 키우는 돼지가 몬테소리 유치원에 다닌다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들을 필요가 없다. ‘팜 투 테이블’의 미래는 이래야 한다. 어디서 온 것인지 말해줄 필요 없는, 음식 스스로 말을 하는 음식 말이다.
- 에디터
- 글 / 코비 커머(Corby Kummer, 음식 칼럼니스트)
- ILLUSTRATION
- MUN SU 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