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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가 이긴다

2015.10.10GQ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렉서스 신형 RX를 만났다. 역대 최고로 과감한 몸놀림이었다.

2016 Lexus RX 200t 012

렉서스 개혁의 파도가 마침내 RX를 덮쳤다.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취임 이후 누누이 강조해왔다. “가슴 뛰는 차를 만들어 달라”고. 이후 렉서스는 예외 없이 과감한 변화를 서슴지 않았다. 스핀들(방추체) 그릴로 콧날에 힘을 주고 핸들과 서스펜션은 짱짱하게 조였다. RX는 1998년 데뷔 이후 편안한 SUV로 명성을 쌓아왔다. 그래서 이번 진화의 수위에 더욱 관심이 생겼다. 렉서스는 먼저 공식 사진으로 새 RX를 공개했다. 보수적 변화에 그치지 않을까 싶었던 짐작은 보기 좋게 뒤집혔다. 파격 그 자체였다. NX보다 한층 넉넉한 화폭 위에서 선과 면이 긴 호흡으로 미끄러지고 꺾이며 파고들었다. 모습은 어떤 렉서스 못지않게 독기를 품었다. 스핀들 그릴은 RX에서 한층 위압적이다. 이날 여럿이 줄을 맞춰 시승하면서 룸미러를 볼 때마다 괜히 든든했다. 예리한 눈빛과 쩍 벌린 입의 호위무사가 거울을 한가득 메우고 있어서다. 영화 <스타워즈>의 스톰트루퍼 부대를 거느린 다스베이더가 된 기분이랄까?

기본형 스핀들 그릴은 옆으로 납작한 바를 촘촘히 겹친 모양이다. 구석구석까지 입체감이 잘 살아 있다. 뒷모습도 매섭다. 불룩 솟은 눈썹 뼈 아래 날렵하게 다듬은 후미등을 심었다. 상위 트림의 방향지시등은 LED다. 빛이 살아 움직이듯 순차적으로 불이 들어온다. 압권은 옆모습이다. 앞에서 뒤로 갈수록 치켜 올라간 캐릭터 라인과 군데군데 저민 칼집, 휠 하우스 테두리의 검정 몰딩과 검은색 유리를 씌운 C필러를 짝지어 근사한 비율을 완성했다. 심지어 NX보다 한층 납작하고 날렵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나온 렉서스 디자인 가운데 가장 마음이 끌렸다.

[INTERIOR] 렉서스의 인테리어에는 편안과 안락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 승객을 진심으로 환대한다는 그들의 마음이 곳곳에 묻어있다.

실내도 확 바꿨다.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집었다. 매끈하고 부드러운 곡선에서 직선 위주로 반듯반듯 꾸몄다. 역대 RX의 실내는 소재나 디자인 모두 편안함이 핵심이었다. 이제는 정교한 품질과 기능성으로 승부할 참이다. 대시보드는 센터페시아를 ‘ㄱ’자 모양으로 감쌌다. 스티어링 휠은 군살을 쫙 빼서 날씬해졌다. F-스포트는 림에 굴곡을 넣어 손안에 한층 차지게 감긴다. 줄무늬를 새긴 우드 패널로 옵션으로 고를 수 있다. 피아노를 비롯한 악기 제작의 달인, 야마하가 제작해 납품한다. 두께 0.3밀리미터의 알루미늄 판에 앞뒤로 각각 0.2밀리미터의 원목을 씌운 뒤 레이저로 태워 무늬를 새긴다. 서로 다른 소재를 이질감 없이 짝지은 게 핵심이다. 실내 곳곳의 가죽과 플라스틱은 물론 손톱만 한 버튼 하나까지 촉감이 빼어나다. 신형 RX의 고급스러운 감각은 직관적으로 와 닿는다. 손으로 쓰다듬어 단박에 느낄 수 있다. F-스포트 버전의 버킷 타입 앞좌석은 NX와 공유한다.

신형 RX는 이전 세대보다 길이는 150밀리미터, 높이는 5밀리미터, 너비는 10밀리미터, 휠베이스는 50밀리미터 늘어났다. 덩치를 키운 만큼 실내 공간도 좀 더 여유로워졌다. 트림에 따라 뒷좌석은 전동식으로 납작하게 접을 수 있다. 트렁크 도어엔 ‘터치리스 파워’ 기능을 더했다. 리모컨 키를 몸에 지닌 이가 꽁무니의 렉서스 엠블럼에 손을 갖다대면 자동으로 스르륵 열린다. 각종 정보를 파악하기도 한층 좋아졌다. 센터페시아 모니터는 크기를 12.3인치로 키웠다. 위치도 대시보드 위쪽으로 바꿨다. 좌우로 시원하게 펼쳐진 와이드 화면에 다양한 정보를 띄운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개선했다. 화면의 폭을 넓히는 한편 기존의 흰색 이외에 다양한 컬러를 구현한다. 계기판은 최근 렉서스에서 익숙한 디자인 그대로다. 렉서스 신형 RX는 200t와 350, 450h의 세 모델로 나온다. 이 가운데 한국에는 350과 450h가 먼저 들어올 전망이다.

200t는 NX로 첫선을 보인 직렬 4기통 2.0리터 가솔린 직분사 터보 235마력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를 얹는다. 렉서스 RX와 4기통 엔진의 궁합은 이번이 처음이다. 렉서스 측은 “동남아시아에 주력 모델로 투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심장은 V6 3.5리터 가솔린 자연흡기. 형식과 배기량만 보면 이전과 판박이다. 그러나 수석 엔지니어 카츠다 타카유키는 “실린더 블록 외엔 완전히 새로운 엔진”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실린더 헤드를 완전히 새로 설계했다. 렉서스의 주력 기술인 D4S를 녹여 넣었다. 실린더 직분사와 흡기 포트 분사를 변화무쌍하게 넘나드는 시스템이다. 이 엔진은 상황에 따라 공기와 연료의 비율을 다양하게 조합할 수 있다. 그만큼 과거의 간접분사나 최근 유행인 직분사 한 가지만 갖춘 엔진보다 효율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

엔진의 들숨과 날숨을 쥐고 흔들 가변 밸브 타이밍 기구도 흡배기 양쪽에 달았다. 최고출력은 296마력으로 이전보다 20마력 정도 치솟았다. 이 엔진엔 8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린다. RX450h의 파워트레인도 이전과 비슷하다. V6 3.5리터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에 세 개의 전기 모터를 물렸다. 최고출력은 308마력으로 RX 가운데 최강이다. 200t와 350은 앞바퀴 또는 네 바퀴, 450h는 엔진이 앞바퀴, 전기 모터가 뒷바퀴를 굴리는 ‘E-4’ 방식이다. 이날 한국 팀에 배정된 시승차는 사륜구동 방식의 350과 450h였다. 먼저 RX350의 운전대를 쥐었다.

시동 버튼을 누르자 미동조차 없이 타코미터의 바늘만 살짝 떴다. 실내엔 먹먹한 정적만 맴돌았다. “정숙성에 각별히 신경 썼다”는 렉서스의 설명이 새삼 기억났다. 가속은 이전보다 확실히 힘찼다. 렉서스는 이례적으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제원을 밝혔다. 7.7초로 덩치와 무게, 차의 성향을 감안하면 꽤 빠른 수준이다. 8단 자동변속기는 급가속보다 완만히 속도를 높일 때 장점이 빛났다. 기어를 갈아타는 시점을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매끈하고 민첩하다.

핸들은 한층 쫀쫀하다. 노면 정보도 상대적으로 더 풍성하게 전한다. 앞 차 축과 허브 베어링 등 손끝에서 타이어로 이어지는 전 과정의 부품을 세밀하게 매만진 결과다.

옵션으로 가변제어 서스펜션(AVS)과 액티브 스태빌라이저도 고를 수 있다. 이 두 장비는 코너와 요철에서 차가 좀 더 반듯하고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 결과 굽잇길에서 좀 더 공격적으로 운전을 즐길 수 있게 됐다.

RX450h는 350보다 더 은밀하면서 용맹스러웠다. 운전 모드와 손발의 조작에 따라 아득한 정속주행과 긴박한 급가속을 수시로 넘나들었다. 가속페달을 짓이길 땐 인위적으로 키운 흡기 사운드와 전기 모터의 맹렬한 회전음이 합세해 흥분을 부채질했다. 잠깐 RX200t도 운전했다. 그러나 4기통을 바닥까지 쥐어짜는 힘보단 V6의 넉넉한 여유가 더 사랑스러웠다.

짐작대로, 몸놀림과 성능의 변화는 외모만큼 극적이지 않았다. ‘맛’으로 표현되는 감성을 강조하고 수치를 개선했지만 RX는 여전히 편안했다. 바로 거기에 이번 RX의 매력이 있다. 편안함과 고급스러움을 내리물림하되 감각과 감성을 날렵하게 부각시켰다. 그 결과 보는 순간 가슴이 뛰고, 운전하면 신이 나는 SUV로 거듭났다. 도요다 아키오 사장의 주문이 이렇게 통했다.

 

렉서스의 전성기를 이끈 RX

 

2001년은 렉서스에게 의미 깊은 해였다. 렉서스가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를 앞질러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프리미엄 브랜드로 우뚝 섰기 때문이다. 1989년 등장한 렉서스를 언론은 경이로워했다. 하지만 소비자는 마음의 빗장을 쉬 열지 않았다. ‘일본차=대중차’의 뿌리 깊은 편견을 거둬내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극적인 추월의 원동력이 된 모델이 바로 RX300이었다. 당시 렉서스의 유일한 SUV였던 LX의 동생뻘로 1998년 데뷔했다. 프레임 보디의 LX와 달리 RX는 토요타 캠리의 모노코크 뼈대를 썼다. 프리미엄 SUV의 원조인 벤츠 ML만 해도 전통적인 프레임 뼈대를 쓰고 있었다. BMW X5는 5시리즈 베이스의 모노코크 방식이었지만 RX보다 데뷔가 늦었다. 2003년, 렉서스 RX는 2세대로 거듭났다. 덩치는 키우되 최소회전반경을 줄여 운전편의성을 높였다. 디자인은 서구화됐다. 엔진은 3.3리터로 시작해 3.5리터까지 키웠다. 2005년 RX는 업계에 또다시 화두를 던졌다. 하이브리드 버전인 RX400h를 선보였다. RX400h는 한국에서 최초로 판매된 양산 하이브리드카이기도 했다. 2008년 RX는 3세대로 진화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한층 남성적으로 변했다. 근육이 꽉꽉 들어찼다. 바짝 올라붙은 어깨 라인엔 힘이 잔뜩 들어갔다. 실제론 넉넉했지만 꽤 늘씬해 보였다.

 

INTERVIEW
CE_TAKAYUKI  KATSUDA (4)

지난 세대의 RX보다 변화의 폭이 크다. 그 배경은? 1~3세대까지 RX는 일관성 있는 디자인 테마를 유지하며 진화해왔다. 그러나 이번 4세대는 디자인 팀에게 더 큰 자유를 허락했다. 보다 과감한 변화를 위해서다. 물론 디자인에 좀 더 힘을 줬을 뿐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RX의 본질은 고스란히 계승했다.

3열 시트를 더한 7인승 RX를 출시할 계획은? 이번 RX는 이미 3세대보다 휠베이스를 늘렸다. 추가로 3열을 얹을 계획은 아직 없다.

SUV인데 너무 도심 주행에 치중한 건 아닌가? 렉서스 RX 고객 대부분이 도심에서 탄다. 때문에 매끈하게 포장된 도로 주행에 집중해 개발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험로 주행성능도 이전보다 높였다.

450h의 경우 ES처럼 2.5리터 엔진을 얹으면 연비가 더 좋지 않았을까? 우리가 해당 차종에 맞는 엔진을 결정할 땐 차의 무게와 성능, 균형 등을 모두 고려한다. V6 3.5리터가 가장 잘 맞는다고 판단했다.

NX는 시장에 따라 두 가지 범퍼를 달았다. RX는? 북미 시장에서는 SUV로 분류되려면 어느 수준 이상의 접근각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래서 북미용 NX는 아래턱을 좀 더 가파르게 깎았다. 반면 RX는 최저지상고가 상대적으로 넉넉해 북미용을 따로 디자인할 필요가 없었다. 전 세계에서 같은 모습으로 판다.

    에디터
    김기범 (컨트리뷰팅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