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쏘다녔다. 저녁 버스를 타고 나갔다가 막차로 돌아오거나 빙판이 있든 없든 담벼락 옆을 걸었다. 모르는 사람 말을 들으면서 ‘아, 오늘은 그랬구나’ 하고, ‘저런 얘기에도 웃네’ 하기도 했다. 대체 왜들 저렇게 다채롭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등이 땀으로 다 젖거나 코끝이 빨갛게 얼 때까지, 계절도 안 가리고 시간도 몰랐다. 그 숱한 밤 속에서 뭔가 찾아낼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도 혼자였음 했다. 왜? 모르는 사람과 엉켜 있던 밤에도 뭔가 찾겠다고 버텼으면서. 그러다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선 홀덴 코필드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그가 영어만 빼고 다 낙제해서 쫓겨난 학교의 배경은 J.D. 샐린저가 다녔던 육군사관학교였다. 규율과 적응, 환멸과 포기, 호기심과 증명…. <호밀밭의 파수꾼>은 13년 전에 딱 한 번 읽었다. 이 원서는 생각날 때마다 아무 페이지나 펼친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홀덴이 호밀밭에 서 있다면 로퍼를 신고 있을 거야. 집에서 한참 책을 읽다 막 나온것같이 좀 어색하게 차려입고.’ 같아지려는 건 아닌데, 나는 왠지 페니 로퍼만 몇 켤레째 사고 있다. 쏘다니지 않아도, 여전히 모두의 비밀을 궁금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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