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프로그램이 영 힘을 못 쓴다. 유행어도, 반짝 스타도 사라졌다.
일요일 밤이 되면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차례 로 본 방송을 시작한다. 7시 40분 tvN <코미디 빅리그(이하 코빅)>, 8시 45분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 9시 15분 KBS 2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순으로 채널을 돌려가며 시청했다. 작정하고 TV 앞에 자리를 잡았지만 웃을 수 없었다. 한껏 마음을 열어보았지만 거슬리는 것이 많았고, 개그맨들의 얼굴은 새로웠지만 개그는 새롭지 않았다. 무엇보다 3~4분 남짓의 코너가 줄줄이 이어지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틀 자체가 새삼 어색하게 느껴졌다.
지금 방송국을 통해 꾸려지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은 모두 고전하고 있다. 2011년, <개콘>의 김석현 PD가 tvN으로 이적하면서 야심 차게 선보인 <코빅> 이후 더 이상 새로운 포맷은 등장하지 않고 있으며, 경쟁의 날을 세우던 3사의 프로그램은 동반 하락의 위기에 직면했다.
<웃찾사>는 지난 3월 사실상 <개콘>과 같은 시간대에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초강수를 뒀다.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웃찾사>가 진짜 노린 건 이슈를 통해 일종의 환기를 해보자는 전략으로 보인다. 그리고 1년 남짓 지난 지금, 결과만 놓고 보면 <웃찾사>가 먼저 웃었다. <웃찾사>의 최근 시청률은 닐슨코리아 기준으로 6.6퍼센트, <개콘>은 8.8퍼센트다. 새해 들어 <개콘>의 시청률이 10퍼센트 아래로 떨어지면서 위기론에 불이 붙었고, <웃찾사>는 여전히 시청률은 뒤졌지만 반등의 분위기를 타고 있다. 2003년 무렵, ‘우비 삼남매’가 코너로 오르던 때의 시청률이 30퍼센트를 웃돌았던 걸 생각해보면 지금 <개콘>의 시들시들한 분위기가 더 체감된다.
물론 시청률만 놓고 그때와 지금을 비교할 순 없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의 평균 시청률은 계속 하락 추세다. 요즘 가장 잘나가는 미니시리즈의 시청률도 15퍼센트를 겨우 넘긴다. MBC <무한도전>도 13퍼센트 남짓한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시청률만 놓고 코미디 프로그램의 흥망성쇠를 점치는 건 당연히 무리다. 시청률뿐만 아니라 어느새 생활 속에서도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져버린 게 더 크다.
한때 코미디 프로그램은 유행의 최전선이 었다. 가장 빨리, 가장 강력하게 유행어를 만들었지만, 최근의 “~한다 전해라” 나 “넘나 ~한 것” 은 모두 SNS를 통해서 처음 전파됐다. TV CF에서 코미디 프로그램 코너 속 분장 그대로 등장하는 코미디언이 사라졌으며 라디오 CF에 등장하는 코미디언의 목소리도 들어본 지 오래다. 한때 코미디언 기획사에서는 개그 코너를 통해 인기를 얻은 유행어와 분장의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는 법적인 절차를 마련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 오가기도 했지만, 이젠 그 말이 좀 무색하 다. 오히려 요즘은 백종원이나 이혜정 같은 인물을 개그 코너에 차용하는 쪽이 더 잦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방향키를 놓치고 화제의 중심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미디어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젊은 층은 더 이상 TV를 보지 않고 모바일로 모든 콘텐츠를 소화한다. 물론 코미디 프로그램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그 와중에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마이리틀 텔레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과 <신서유기>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가 살 길을 찾은 것과 달리 코미디 프로그램은 방송사와 무대라는 굳건한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개콘>의 공채와 기수 중심 문화도 여전하다. 그래도 <웃찾사>와 <코빅>은 <개콘>에 비하면 모바일과 SNS 환경에 좀 더 적응한 경우다. 시청률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코너의 화제성이 더 높은 이유는 모바일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콘>의 페이스북 페이지의 팔로워 수는 25만 정도인 반면 <코빅>은 152만이다. 1시간이 넘는 프로그램 전체를 시청하는 사람들보다 모바일을 통해 일부 코너만 확인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 프로그램 제작자 입장에서는 선호하는 개그 스타일도 다르고, 연령층도 확연히 다른 두 가지 플랫폼을 놓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2년 전 만해도 코미디 프로그램이야말로 모바일 환경에서 유리한 콘텐츠라는 생각에 담당자들은 꽤 들떴다. 3~4분 길이의 코너를 개별 게시물로 활용할 수 있고 ‘개그’의 속성 자체가 SNS 유저들을 공략하기 좋은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바일에 최적화된 컨텐츠를 생산한다기보다는 TV로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3~4분이 TV 속에서는 짧은 시간일지 몰라도 모바일 플랫폼에 게재하기에는 이야기가 장황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요즘은 코너를 잘라서 게시하거나 코너의 예고편처럼 클립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공개 코미디’라는 형식 자체가 유지할 만한 것인지 고민이 되는 지점이다.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팟캐스트가 대박을 치는 것을 보면서 코미디언들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지지 않았을까?
외형적인 형식을 떠나, 코미디 프로그램의 내실은 과연 여문가? 요즘 <개콘>과 관련된 검색어에서 ‘노잼’이라는 평가가 줄줄이 발견되는건 왜 일까? 아이러니하게도 10년이 넘게 이어 져온 <개콘>의 정통성이야말로 지금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회의와 검사를 통해 개그를 다듬는 노하우,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방식의 팀워크, 하나의 형식을 짜놓고 매주 소재만 조금씩 달리하는 코너 운영 등이 너무나도 공고한 나머지, 그 스타일이 변할 줄을 모른다. 전체적으로 기존 코너의 변주만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연애할 때 발견되는 남녀의 인식 차이, 외모나 성격이 다른 사람을 조롱하는 내용, 엉뚱한 말장난, 인터넷 게시물이나 댓글에서 화제가 됐던 내용을 다시 설명해주는 식의 개그가 끊임 없이 반복된다. 신생아를 보고 “아이가 잘생겼네. 장군감입니다” 하면 “딸입니다” 하는 개그도 불과 몇 주 전에 방송됐다. 최근에 새로 시작한 ‘횃불 투게더’라는 코너 속에서는 시대를 읽는 날카로움마저도 놓쳐버렸다. 이마에 빨간 띠를 두르고 시위를 하는 군중이 나오는 이 코너에서는 누군가의 절실한 요구를 ‘떼 부리기’로 해석하고 희화화하는 아슬아슬한 모습도 보인다. 이것을 그저 코미디로 웃고 넘길 수 없는 건 코너를 만든 이들도, 보는 이들도 “개그인데 이게 뭐 어때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일요일 저녁은 다가오는 월요병의 스릴을 느끼면서도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웃음을 흘리는 날이었다. 그런데 코미디 프로그램을 둘러싼 환경이 변했고, 코미디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도 발전하지 못하고 안주했다. 웃으려고 TV 앞에 앉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시절이 바뀌어 시청자들이 변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이유다. 아직도 코미디언 오나미가 등장하는 코너에선 그녀 옆 남자인 친구가 “(못생겨서)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말을 던지듯 뱉는다. 아직도 대부분의 코너 속에서 뚱뚱한 여자는 거칠고, 돈 없는 남자는 무능하고, 여자친구는 남자친구를 쉽게 부려 먹으며, 술 취한 여자는 손쉬운 연애 작업의 대상이고, 남자는 늘 바람피우고 싶어 하는 존재이며, 여자는 꽤나 의리가 없는 존재다. 모바일에서 잘 통하고, 젊은 층이 선호한다는 ‘생활밀착형 개그’라는 것이 실은 이런 편견의 집합체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또 다시 공고해지고 마는 편견들….
최근 코미디 프로그램을 비롯해 예능계 전반에서 여자 코미디언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남자들만 남은 예능의 세계에선 이국주나 장도연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굳이 ‘페미니즘’이나 ‘젠더 감수성’ 같은 단어를 끌어들이지 않아도, 편견이 고착화된 개그 앞에서 맘 편하게 웃음을 터뜨릴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개그는 개그일 뿐 오버하지 말자”는 말이 오히려 더 폭력적으로 들리는 요즘이다. 대중을 편하게 웃기고 싶은 사람이야말로 대중보다 더 예민하고 엄격한 잣대로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 그래야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웃을 수 있다.
코미디언을 인터뷰할 때마다 느낀 바, 그들은 늘 하던 대로 하는 걸 싫어한다. 어떻게든 다른 생각, 다른 말투, 다른 유머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한다. 이런 코미디언 기질이야 말로 지금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살릴 수 있다. 숱하게 위기설이 돌았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끝끝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사람들이 극화된 코미디를 즐기기 때문일 테다. 고민과 고심 끝에 얻은 새롭고 신선한 코미디를.
- 에디터
- 손기은
- 일러스트
- 문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