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덜도 말고 이 떡만 같아라. 전국 곳곳에서 찾은 ‘소문난’ 떡과 떡집.
송천 소문난떡집의 송편 강원도 양양군에 가면 송천 떡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떡 찌는 냄새가 나 관광버스가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는 그 마을이다. 마을의 전통은 아주머니들이 부녀회를만들어전통방식으로만 빚은떡을오일장에내다팔면서시작됐다. 소문난떡집은그동네에서도골골이소문이났다“. 몸에안좋은거하나도안넣었어요. 몰라서못넣어요. 그런데 우리 송편은 서울서 파는 거랑 많이 다른데, 먹을 수 있을라나? 콩만 넣었는데….”먹을 수 있다 뿐인가? 설탕과 꿀이 눅진한 송편보다 질리지 않으니 한 소쿠리를 그 자리에서 다 비울 수도 있다. 날름 송편을 코앞으로 가져오니 중지로 꾸욱 찍어서 모양을 낸 것이 보인다. 손 주름까지도 보인다. 참한 반달은 아니지만, 손가락 마디 마디가 차례로 꺾어지면서 꽤 멋진 각을 만들었다. 중지 길이가 에디터보다 짧은 김순덕 할머니가 만든 송편을 한입 넣었다….
진도전통식품의 구기자 흑미 구름떡 매년 이맘때면 떡을 먹지만, 매년‘전국 떡 만들기 대회’가 열린다는 건 미처 몰랐다. 구기자 흑미 구름떡은 진도에 사는 김영숙 씨가 만들어 2001년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대회라는 게 늘 그렇듯, 이 떡도 플라스틱마냥 예쁘기만 하지 않을까? 걱정은 입 속에서 단박에 뭉개진다. 씹는대로푹푹들어갔다가 이내 잇몸에 척척 감긴다. 대추, 콩, 견과류가 오독오독 씹힐 때도 달기는커녕 개운하기만 하다. 울금가루를 넣어 노랗게 만든 구기자떡, 흑미떡, 흰 찰떡을 따로 찐 뒤 한데 뭉치고, 살살 주무른 뒤 자르면이런단면이나온다. 보타이나포켓치프로만들어도될무늬다. 수묵화처럼걸어놓고볼까?“ 원래는날선선할때만이떡을만드는데올해는하도만들어달라는사람이많아서….
잘 변하니까 바로 드세요.”뜨끈뜨끈한 떡을 고속버스에 실어 서울로 올려 보내며 김영숙 씨 아들이 전화로 부탁한 말이다.
의령 남산떡집의 망개떡 경상도에서 가을밤을 보내본 사람이라면 “메밀묵~ 망개떡~”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익숙하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망개떡이 든 유리상자를 어깨에 짊어진 떡장수가 해운대를 누볐다. 망개떡은 편지봉투처럼 곱게 접은 찹쌀떡에 중학생 손바닥만 한 망개잎을 두 장씩 대고 찐 떡이다. 양쪽 잎을 홀랑 까서 입에 넣으면 망개잎 향이 ‘망개망개’ 피어오른다. 거미줄마냥 들러붙지 않는 말랑말랑한 떡, 단맛 없이 고소한 팥소…. 실컷 먹고 남은 건 밥솥에 넣어 데우면 그만이다. 맛있는 건 안드로메다에 가서라도 구해올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독특한 허브 향 찹쌀떡을 놓칠 리 없다. 그래서 요즘 의령군 사람들은 망개나무 생산단지를 늘리느라 바쁘다. 원래 성장이 더딘 종이라 대학교 연구소와 손잡고 육종 개발에도 나섰다. 의령에서 망개떡 장사로 한가닥 한다는 남산떡집에서도 이제 마음껏 망개떡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원조낙원떡집과 종로떡집의 시루떡 전국의 떡집 이름 통계를 내면 1위가 낙원, 2위가 종로일 테다. TV에서는 명절만 되면 낙원동의 분위기를 전했고, 맞은편 종로통의 떡집에서도 손님을 줄줄이 받았다. 그렇게 ‘낙원’은 떡집의 대표 브랜드가 됐다. 여의도에도 낙원떡집이, 부산에도 종로떡집이 문을 열었다. 원조낙원떡집과 종로떡집은 삼일로를 복판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평소엔 차가 막혀 매캐한 구간이지만, 추석이 되면 송편부터 제사상에 올릴 시루떡까지 김을 펄펄 내며 쏟아진다. 90년 전, 고이뻐 씨가 창덕궁 궁녀들에게 떡 만드는 방법을 배워 낙원떡집을 차렸을 때도 비슷한 풍경이었을까? 사진은 호박과 완두콩을 넣고 찐 종로떡집의 고명 시루떡과, 낙원떡집의 단호박 영양떡, 팥 시루떡을 교차로 쌓은 것이다. 금방 쪄서 뜨거울 때 혀를 돌돌 굴리며 먹으면 이보다 더 푸짐한 맛이 없다.
부암동 동양방앗간의 가래떡 “한번 뽑은 가래떡을 또 기계에 넣어서 뽑고, 세 번도 뽑고 그래요. 부드러워질 때까지 해요. 정말 다른 비결은 없는데….”동양방앗간 가래떡이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계속 물었더니, 차옥순 할머니가 보드랍고 연한 서울말로 답했다. 부암동에서만 40년 넘게 산 할머니는 이곳에서 매일 떡을 만든다. 직접 고르고 다듬은 재료로만 만든 수수한 떡이다. 그렇게 만든 떡은 방앗간 문 앞에 펼친 간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조금씩 판다.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나 출근길 회사원들이 간식거리로 가래떡, 증편, 왕송편을 사간다. 모든 떡엔 쌀을 빻고 찌는 방앗간 냄새가 스며 있다. 씹는 맛을 살리려 조금 굵게 뽑아낸 가래떡을 뜨끈할 때 앙물었다. 애인의 입술을 깨물 때처럼 부드럽고 쫄깃하다. 토종꿀에 찍으면더맛있겠다했더니할머니가웃었다“. 떡국을끓여도맛있고, 떡전골도맛있지요.”
종로 비원떡집의 대추 백편 비단을 펼쳐놓듯 나무 시루를 무릎 사이에 끼고 수를 놓듯 천천히 떡 고명을 올린다. 작은 막대로 흩어진 고명의 간격을 하나하나 맞춘다. 세심하게 몇 번을 들여다본 뒤 드디어 떡을 찐다. 안국역 근처 비원떡집에서 60년간 이어온 궁중떡 만드는 법이다. 도구라고 해봤자 사각 나무 시루, 떡 사이에 끼우는 한지, 안친 떡을 한 장씩 뒤집는 나무 주걱밖에 없다. 떡 만드는 과정이 차분하고 단정하다. 60년 전, 궁중떡 비법을 전수하러 궁 밖을 나온 한희순 상궁이 비원떡집의 홍간난 할머니에게만 방법을 일러주며 한 말도 “이집떡이 가장 얌전하다”였다. 대추 백편을 맛보면 그 뜻을 온몸으로 알 수 있다. 대추채, 석이채, 밤채, 잣, 파슬리는 어느 것 하나 잘못 모양난 것이 없다. 얇은 백편 위에 대추의 그윽한 단맛이 소복이 앉았다. 스르르 녹아 내리다가, 또 쫄깃하다. 홍할머니의 명성이 궁까지 소문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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