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외국인 선수를 뽑느냐가 한 팀의 성적을 좌우한다. 지난해 프로야구 MVP 에릭 테임즈를 배출한 NC 다이노스 운영팀 박찬훈 차장에게 외국인 선수 스카우팅에 대해 낱낱이 물었다.
최근 보편적으로, 한국 프로야구에서 성공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의 수준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포함될 만한 선수.” 동의하나요? 그 수준에 못 미치는 선수는 실패 확률이 높아요. 저희도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 혹은 그 언저리의 선수를 데려오는 편이에요.
메이저리그 30개 팀, 그리고 관련 마이너리그의 모든 선수를 지켜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실력이 출중해도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 뛸 거라는 보장도 없고요. 어떤 수준과 특징의 선수 위주로 관찰하나요? 중요한 건 현장 감독님과 코칭스태프의 의견이에요. 우리 팀 전력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분들이잖아요. 어떤 선수가 필요한가에 따라 미리 갖고 있던 데이터베이스에서 선수들을 추리죠. 그 다음에 직접 가서 경기를 보며 확인하고요. 기록상으론 선발 승을 올린 경기라도 내용은 형편없을 수도 있잖아요.
메이저리그 성적이 한국 프로야구에서의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에요. 특별히 눈여겨보는 기록이 있나요? 대체로 타자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외국인 투수의 경우부터 묻는다면요. 예를 들어 뜬공/땅볼 비율이라든가, 인플레이 타구 안타 확률이라든가. 특정 기록만 보기보다는 전체를 봐요. 지금 예로 든 기록이 모두 포함된 포괄적인 작업을 하죠. 선수의 홈구장이 홈런이 많이 나온다든가, 투수에게 유리하다든가 하는 외부 요소도 체크하고요. 이 모든 수치와 지표를 조합해서 하나의 점수로 만들어요. 몇 점, 이렇게.
가중치를 두는 기록도 없나요? 뭔가에 중점을 둔다기보다는 아예 그 어디에도 중점을 안 두는 쪽에 가까워요. 예를 들어 투수의 경우 승수나 방어율같이 대표적이지만 오류가 많은 기록은 웬만하면 참조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닝당 출루 허용률, 볼넷/삼진 비율같이 결과보단 투구 과정이 드러나는 기록을 챙기는 편이에요.
한 부분에 특출한 선수보단 약점이 두드러지지 않는 선수를 뽑는다는 얘기처럼 들려요. 달리 말하면 성공확률에 대해 기대하기보다 실패 확률을 줄이는데 초점을 맞추는. 맞아요. 야구는 확률의 스포츠잖아요. 어떻게 하면 이 선수가 성공한다, 보다 최대한 실패를 줄이는 쪽으로 생각해요.
지난 시즌 MVP 테임즈가 떠오르기도 해요. 정확한 타격, 파워, 빠른 발을 비롯한 여러 장점이 있는 선수죠. 한 가지 장점이 돋보이는 선수를 뽑았다면 테임즈 같은 선수는 리그에서 보기 어려웠을 듯해요. “실패를 줄이는” 선수 선발의 성공 사례라 볼 수 있을까요?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어요. 실패는 안 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당시 김경문 감독님이 원하던 선수가 중심타선의 슬러거였거든요. 저희에게 몇 명의 옵션이 있었는데, 파워는 다 비슷했어요. 그중 정확도와 선구안이 낫다는 분석 때문에 테임즈를 선택한 거예요.
투수 얘기로 돌아가서, 지난해 한화 로저스의 패스트볼은 다른 불안요소를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압도적이었죠. 기록이 아닌 투수의 성향 혹은 구위로 따져본다면 역시 패스트볼이 주무기인 투수를 주목하나요? 저희 팀은 오히려 선발투수로서 최대한 경기를 길게 책임질 수 있는 선수를 선호해요. 그 다음이 구종이 다양한 선수와 제구력이 좋은 선수. 패스트볼은 가산점을 주는 정도의 요소예요. 물론 요즘 리그의 유행은 패스트 볼이 위력적인 투수가 맞아요. 보통 외국인 선수들이 1선발, 2선발을 맡는데 그 선수들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기선제압이거든요. 상대와 시리즈를 시작했을 때, 타자들을 빠른 공으로 윽박지르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죠.
메이저리그 및 마이너리그에서의 보직은 외국인 투수 영입 시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중간계투로 전문화된 선수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아요. 선발 투수와 구원투수는 투구 방식이 완전히 다르니, 몸의 근육이 발달되는 형태도 달라요. 기본 적으로 선발투수를 하던 선수는 중간으로 돌릴 수 있지만, 중간에서 던지던 선수를 선발로는 돌릴 수 없다고 생각해요.
타자를 뽑을 때도 투수와 마찬가지로 특정 기록을 눈여겨보는 편은 아닌가요? 아무래도 타자는 대부분의 팀이 4번 타자를 원하죠. 그렇기 때문에 파워가 좋은 타자에게 먼저 관심이 가요.
타자의 경우 대부분의 팀이 거포를 원하고 있는 만큼,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진 않나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동양인 선수와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미국이나 중남미 선수들의 파워 차이가 있으니까요. 미국에서 중장거리 타자로 통하던 선수들도 한국에선 홈런 타자로 변모하곤 해요.
그렇다면 외국인 투수 스카우트와 외국인 타자 스카우트, 어느 쪽이 더 까다롭나요? 좀 동문서답 같은데, 투수와 타자 모두 과연 이 선수가 한국 야구에 적응할 수 있는지, 어떤 유형의 팀 동료인지 이른바 ‘레퍼런스 체크’를 많이 해요. 아무리 성적이 좋고 기량이 뛰어난 선수라도 네트워크를 최대한 동원해서 2중, 3중으로. 그 부분을 판단하는 게 제일 어려워요. 경기력 측면에선 그래도 투수를 뽑을 때 좀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요. 타자는 한 경기에 서너 타석밖에 안 나오지만, 투수는 선발 등판하면 조기 강판 되지 않는 이상 많은 이닝을 던지니까요.
언론에서도 국내 선수보다 외국인 선수를 평가할 땐 꼭 ‘인성’이라는 요소를 포함시키는 듯해요. 하지만 그것은 수치화할 수 없는 데다 다소 모호한 주관적 기준에 가깝지 않나요? 국내 선수를 뽑을 때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하지만 외국인 선수는 팀의 대표 선수들이니까 더 그런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고요. 또 국내 선수들은 진작부터 한국 야구라는 틀 안에 있던 선수들이니까 이미 파악되어 있다면, 외국인 선수는 와서 뛰어보기 전까지는 정말 모르잖아요.
프로농구의 경우 ‘언더사이즈 빅맨’을 한국형 외국인 선수를 대표하는 특징으로 꼽곤 해요. 이것은 기록과는 상관없는, 선수의 신체 특징에 따른 경기 방식에 대한 얘기죠. 야구선수라면 어떤 유형의 선수들이 해당할까요? 그런 유의 선수를 지칭하는 말이 있어요. AAAA(포 에이) 타입의 선수. 트리플에이와 메이저리그 사이 레벨의 선수들. 아시아 야구 스카우트들이 가장 타깃으로 삼는 선수들이기도 하죠. 물론 단순한 신체 특징이라기보단 야구 실력, 소속팀의 포지션 경쟁 상황, 선수의 인성, 부상 등을 모두 포함한다는 차이가 있죠. 공식 명칭은 아니고 스카우트들이나 구단 프런트에서 사용하는 은어라고 보시면 돼요.
성적을 특정 계산법 등을 통해 예측해보기도 하나요? 지난 시즌이 끝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김현수와 박병호의 올 시즌 예상 성적은 이미 나와 있죠. 아니요. 과거 4~5년간의 데이터를 누적해서 평가하긴 하지만. 예측엔 너무 많은 가정이 포함되기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지거든요.
직전 시즌 성적이 정말 뛰어난 선수와 최근엔 주춤했지만 3~4년간 꾸준했던 선수, 어느 쪽을 선호하나요? 무조건 장기적으로 누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요. 작년, 올해 잘한다고 해서 리포트상에서 갑자기 최고로 올라가는 일은 없어요.
메이저리그나 일본 야구와 비교했을 때, 유독 한국 야구의 특수한 성질로 꼽을 수 있는 부분은 뭘까요? 경기 스타일만 놓고 봤을 땐, 메이저리그와 일본 야구의 정확한 중간이라고 보면 돼요. 외국인 투수들이 이런 얘길 많이 해요. 일본 야구처럼 정교한, 흔히 말하는 똑딱이 타자들이 대부분일 거라 생각했는데, 한국 야구엔 한 방이 있는 선수가 많다고요. 외국인 타자들도 한국 투수들을 까다로워하고요. 구속은 빠르지 않지만 헛스윙을 유도하는 변화구를 잘 던지니까요.
홈구장의 특징도 외국인 선수 영입에 영향을 미치나요? 혹은 10개 구단이 사용하는 구장의 공통적 특징이라든가요. 외국인 투수들은 간혹 “한국 야구장은 마운드가 너무 무르다” 같은 말을 하곤 하죠. 전체 구장의 공통적 특징까지 감안하진 않고요, 홈구장의 성질은 고려해요. NC의 홈구장인 마산 야구장은 상층부에 돌개바람이 좀 불어서 홈런이 생각보다 많이 안 나오거든요. 그래서 피홈런이 많은 투수들을 굳이 배제하진 않죠.
2013년까지 외국인 선수의 몸값 상한선이 50만 달러였어요. 2014년 초 폐지됐고요. 얼마 전 계약을 맺은 한화의 로저스, KIA의 헥터 노에시는 2016 시즌에 1백50만 달러가 넘는 연봉을 받게 돼요. 선발 투수의 1승의 가치, 어느 정도라고 보나요? 1승의 가치보다는 어떻게 던졌는지를 중점적으로 보기 때문에 이런 기준으로 말하고 싶어요. 퀄리티 스타트의 가치. 한 번의 퀄리티 스타트가 4만~5만 달러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특급 외국인 선수의 기준이라 할 만한 1백만 달러를 지급한 타자에게 기대하는 성적이라면요? 타자는 좀 더 쉽죠. 대부분 슬러거를 원하니까 30홈런에 1백 타점.
단도직입적으로, 외국인 선수를 팀 전력의 몇 퍼센트라고 보나요? 세 선수가 각각 1, 2선발과 4번 타자를 맡게 되잖아요. 합치면 50퍼센트 정도?
- 에디터
- 유지성
- 일러스트
- 문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