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OR이란 무엇인가? AOR은 도대체 어떤 음악일까? 요즘 부쩍 시끌벅적해진 일본의 시티팝과는 무슨 관계일까? 2016년 봄, 새삼 AOR에 귀가 솔깃하는 이유를 살핀다.
말이 길어진다. 누군가 AOR에 대해 물으면 그렇게 된다. 70년대 초 AOR이라는 용어가 생긴 이래 특정 장르를 표현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지만, 이제 는 범위가 꽤 넓어져서다. AOR 아래 수많은 장르 음악의 여러 특징이 포함된다. 그래선지 하나의 장르보다는 어떤 인상의 ‘사운드’를 뜻하 는 말에 가깝다. 단순한 팝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대중가요로서의 팝을 지향한 팝이라기보다 여러 장르의 요소를 뒤섞어 팝의 꼴을 갖춘 음악. 편안하고 매끈하게 들리지만, 곡을 해부해 보면 만만찮은 구색이 드러나는.
사실 지금은 AOR이 어떤 단어의 약어인지조차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 ‘앨범 오리엔티드 록’과 ‘어덜트 오리엔티드 록’이라는 의미가 혼용되고 있다. 음악 애호가들이 손수 꼽은 ‘커스 텀 차트’를 만들고 직접 음반을 리뷰하는 집단 지성의 장, <Rate Your Music>은 AOR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전제는 어덜트 오리엔티드 록 이다. “겹겹이 쌓인 풍부한 사운드. 때깔 좋은 프로덕션과 귀에 쏙 들어오는 후렴구. 신시사이저가 중요한 역할을 맡고, 보컬에 화음을 덧입히는 경우도 빈번하다. 곡의 길이는 라디오 친화적으로 짧은 편. 기존 하드록에 비해 멜로디가 두드러지지만, 팝 록만큼 전체적으로 가볍지는 않다.” 웹사이트가 설립된 지 이제 갓 15년이 되었으니, 이 정보 역시 그 사이에 입력된 것일 터. 최근 통용되는 ‘AOR 사운드’에 대한 분석과 거의 일치한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더 한다. “싱글로 발매되지 않은 음반 수록곡을 트는 라디오 형태를 뜻하는, 앨범 오리엔티드 록과는 다른 말이다.”
하지만 70년대에 발간된 록 음악 월간지 <Rock Around The World>의 1977년 3월호엔 좀 다른 얘기가 있다. “요즘 FM에서 나오는 음악은 라디오 종사자들 사이에선 앨범 오리엔티드 록이라 불린다. (중략) TOP 40 위주 선곡에 당당히 맞서는 문화적 대안이다.” AOR이란 말을 거의 처음 사용한 미국의 라디오 프로그램 디렉터 마크 해리슨에 대한 기사다. 그저 라디 오의 형태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거기서 나오는 음악까지 통칭하는 말로 쓰였다.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이렇게 두 주장이 엇갈리는 것은, 이름부터 모호한 AOR이라는 음악 자체가 결국 정확한 꼴을 갖추기도 전에 그 범위가 급격히 팽창했다는 증거는 아닐는지. <Rate Your Music>이 말하는 AOR, 어덜트 오리엔티드 록의 특징은 과연 록 음악의 전형적 특징인가? “때깔이 좋다”거나, “사운드가 풍부하다”라든가 “신시사이저가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는 표현은 그보다는 동시대 모타운의 부드러운 알앤비와 솔, 혹은 70년대 중반부터 쏟아져 나온 재즈 훵크, 재즈 퓨전의 물결 과 더 맞닿아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알쏭달쏭한 채로 지금은 2016년. 불과 3년 전인 2013년, 70년대 브라질 솔의 선봉장 칭 마이아Tim Maia의 조카이자 뛰어난 MPB/훵크 뮤지션인 에지 모타는 이름부터 대번 선언에 가까운 <AOR>이란 음반을 내놓는다. 솔, 팝 록, 약간의 디스코, 재즈 훵크 등을 모조리 넣고 ‘AOR 사운드’라는 믹서로 한 번에 갈아 녹인 듯한 음반.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 올해 2월엔 신보 <Perpetual Gateways>를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이나 자국 브라질이 아닌, 유럽과 일본 최초 발매.
그렇다. 일본. 전작 <AOR>에 대한 열렬한 반응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일본의 젊은이들은 일본 고유의 장르, 시티팝을 듣는다. 시부야의 상징 같은 레코드 가게 HMV에는 시티팝 코너가 따로 있고, 70~80년대 오리지널 시티팝 LP 와 싱글 재발매가 줄을 잇는다. 일본의 영자신문 <The Japan Times>엔 2015년 7월 5일자로 시티팝 리바이벌 유행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필자의 말에 따르면 시티팝은 “70~80년대 서구 팝 신의 최신 조류를 받아들인 당시의 슈가 베이브, 오타키 에이치 등의 음악을 뜻하며, 시장에 도회적인 재즈와 알앤비 사운드를 소개한” 음악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함께 포함된 인터뷰에 있다. “요즘 시티팝이란 딱지가 붙은 뮤지션들의 음악엔 공통점이 없어요.” 시티팝 리바이벌의 중심에 있는 밴드 오섬 시티 클럽의 보컬 아타기 히로시의 말이다.
시티팝 또한 AOR처럼 모호하기 때문은 아닐까?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도시의 팝 음악’ 이라니, AOR처럼 벙벙하기 짝이 없다. 그런 한 편 시티팝과 AOR은 많은 음악적 특징을 공유한다. “도회적인 재즈와 알앤비 사운드”는 AOR 에도 충분히 적용시킬 수 있는 요소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에선 70~80년대부터 유독 AOR 뮤지션들이 큰 인기를 누렸다. 일예로 (사용자 기반 음반 데이터베이스 웹사이트 디스코그스의 정보에 따르면) 미국의 AOR 뮤지션 네드도 헤니의 음반 <Hard Candy>는 1976년 미국에 서 단 한 차례 시판됐을 뿐이지만, 일본에선 무려 9차례 재발매됐다. 2014년 영국의 비위드 유 레코즈가 이 음반을 공식 재발매하기 전까지, <Hard Candy>는 일본에서만 유명한 음반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년째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시티팝 유행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버블경제 시대에 대한 향수? 70~80년대 오리지널 시티팝을 즐기던 세련된 중장년층이 일으킨 일본식 ‘세시봉’ 열풍? 혹은 단순히 젊은 세대 사이에 돌아온 ‘레트로’? 어쩌면 이런 배경보다는 그 음악 자체의 모호함이야말로 무한히 확장 가능한 ‘시티팝 사운드’를 더욱 탐구하게 만드는 매력이 아닐까.
따져보면 고전 AOR이 그렇게 ‘쿨’한 장르는 아니다. 성인 취향의 록. 지금 한국에서 성인 가요라는 말이 쓰이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당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흔히 AOR 뮤지션이라 칭하는 토토, 에어 서플라이, 마이클 프랭스 등의 이름에서 대단한 궁금증이 생기진 않는다. 그때의 ‘쿨’한 젊은 이들은 록으로 한정하자면 차라리 펑크를 듣지 않았을까? AOR을 두고 그저 록의 형태를 띤 빤한 팝이라 말해버리면 그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주변엔 가늠할 수 없이 많은 AOR의 잔가지 혹은 줄기가 있다. 다양한 장르의 필요한 재료만 쏙쏙 사용해, 어떤 식으로든 변용이 가능한 은근한 실험. 영화 < 토요일 밤 의 열기 >가 모든 디스코 문화를 대변할 수 없고, 힙합 애호가에게 무작정 건들건들 “요! 맨!” 을 외치는 것이 어떤 식으로는 무례함일 수 있는 것처럼, AOR처럼 덩어리가 큰 음악에는 그 방대한 주변부 혹은 드러나지 않은 이면이 분명히 있다. 더군다나 그 큰 덩어리가 미국 음악 시장에만 머물지는 않았을 터. 그것을 듣고 자란 당대의 수많은 뮤지션은 각기 다른 도시에서 서로 다른 AOR을 제 식대로 만들어왔다. 어림잡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잡을 수 없는 이 음악을 단박에 정리한다거나,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이야말로 ‘난센스’ 아닌가? 그런 흩어진 조각을 맞춰가는 재미와 함께, AOR에 관한 탐구는 더욱 넓고 깊어질 것이다.
- 에디터
- 유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