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못하게 피로했던 저녁과 모처럼 상쾌했던 아침에 포르쉐 911 카레라 쿠페를 탔다.
팔다리가 녹아 늘어지는 것 같은 저녁이었다. 포르쉐 911 카레라가 출시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엔 정말 계약할지도 모른다” 호언하던 친구를 조수석에 태우고 시승에 나선 참이었다. 호기롭게 소월길에 들어섰는데, 어쩐지 마음 같지 않았다. 내 몸이 무거웠던 건지 911이 더 편해진 건지 알 수 없는 채 어딘가 꼭 막힌 것처럼 운전하고는 주차장에 얌전히 세워뒀다. “원래 시승이 이렇게 시시한 거야? 근데 정말 예쁘다. 정말 계약할까 봐.” 호기심에 눈이 동그래진 친구한텐 “오늘 너무 피곤해서 내 몸이 무거워, 포르쉐가 아니라…” 둘러대고는 말았다. 하지만 잠들기 직전까지도 소월길을 천천히 돌 때의 그 편안함이 잊히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전날밤의 감각을 떠올리며 다시 소월길에 올랐다. 간이 똑 떨어지게 달리기 시작했다. 기세를 몰아 북악스카이웨이까지 내달렸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소월길을 탔다. 그대로 한남대교를 타고 강을 건넜다. 피로는 완전히 회복됐고, 포르쉐 911 카레라는 어제와 전혀 다른 차였다. 2,981cc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의 최고출력은 370마력, 최대토크는 45.8kg.m이다.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시간은 4.4초다. 운전자의 컨디션은 포르쉐 911 카레라를 거의 춤추듯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 911은 운전 감각의 범위를 공격적으로 넓히고 있다. 전에 없이 팽팽하다. 물리법칙 같은 건 그냥 왜곡해버린다. 의심하면 안 된다. 포르쉐 911 카레라한테 정말 중요한 건 운전자의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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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정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