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브라더의 데뷔 음반 < 남편 >이 나왔다.
● 이건 11년 전 사진이죠. ‘정소울’이라는 이름으로 < GQ >에 실렸고요. 음악가 정소울에게 묻는다면, 그 동안 뭘 했나요? 스스로 음악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음악가는 어떤 사람인가는 많이 생각했죠. 일을 제외한다면, 아마추어라는 단어의 모든 의미를 좋아해요. 포털 사이트의 외래어 사전은 협소하고, < 어번 딕셔너리 > 정도면 적절하겠네요. 아마추어로서, 음악을 듣고 좋아하고 알고, 알고 있으므로 뭐든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죠.
● 페어브라더는 2002년 캬바레사운드의 컴필레이션 음반에 ‘잎떨어지는넓은잎큰키나무’를 발표한 이후론 감감무소식이었죠. 당시엔 밴드였고요. 군대에 다녀왔더니 친구들이 모두 달라져 있었어요. 다들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달까. 그럼에도 음악을 해보자고 억지를 썼는데 잘 안 됐죠. 그때 저의 가장 강력한 동력은 분노였어요. 어떻게 음악을 안 할 수 있지? 됐어, 나 혼자 할 거야! 라고.
● 그동안 드문드문 디제이 영몬드로 활동한 것 외에는, 음반을 낼 거란 단서도 없었고요. 창작은 늘 손과 발이 늦게 따라오는 의지죠. 하지만 음악을 튼다는 건(제가 전문적인 디제이가 아니므로) 너무나 자연스럽고 즐겁고 쉬운 일이거든요.
● < 남편 >을 듣고 뭘 꼬치꼬치 따지려는 생각을 접었어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악기를 다루는 요령도 그것을 배치하는 방식도 ‘난데없다’는 말이라면 어떨까요? 제대로 들으셨네요. 아주 쉬운 멜로디를 아주 이상한 형식으로 만들어보자는 게 거칠게나마 관점이었죠. 자신도 있었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칠 줄 아는 노래가 없는 사람이 모든 악기를 다룬다면 분명히 이상한 연주를 할 테고, 그 문법을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 레게라는 장르는, 마치 노래를 망치려고 작정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들리거든요.
● 이를테면 선공개한 ‘여름밤’의 끝부분이 그렇죠. 전혀 등장하지 않던 스트링 샘플이 나온다든가. 창의력 수치를 좀 높여보고자 했죠. 모든 샘플링 중 90퍼센트의 출처가 레게인데, 애호가 분들이 그걸 알고 기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 하필 그런데 보컬도, 멜로디언도, 기타도 흐르는 가운데 스틸팬 연주에서만큼은 욕심이 보였달까요? 순전히 ‘Skanking’ 때문이었어요. 군대에서 행군하는 중에 머릿속으로 끝까지 완성한 노래인데, 진짜 스틸팬으로 쳐야만 할 것 같았어요. 미친 가격을 지불하고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주문했습니다.
● 라이브도 염두에 두고 있나요? 랩톱을 쓰지 않으면서도 부끄럽지 않은 무대를 보여줄 만한 형식을 연구하고 있어요.
● 그렇다면 ‘덥’을 구현하는 일이야말로 숙제가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가능하기만 하다면 꽤 새로운 경험일 테고요. 제게 ‘덥’이라는 건 악기의 하나처럼 생각돼서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요. 혼자서 ‘그것까지’ 할 수 있는가가 문제죠.
●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세 번째 들었을 때 더욱 좋았어요. 그 난데없고 낯선 냄새를 경계하지 않고 쭉 받아들이듯. 아주 거칠고 낯선 음악이 저라고 생각한 어린 시절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언제나 한번 들으면 좋은 쉬운 노래를 아껴온 것 같아요. ‘아주 쉬운 멜로디를 이상한 형식으로 만들자’는 이야기의 연장선인데, 저는 편곡이야말로 음악가의 취향, 지식, 이상 등등이라고 생각해요. 친절한 사람이 멍청한 사람일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 그래서 느슨하게 묻자면, 이것은 100퍼센트 레게 음반인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좀 더 BPM을 올렸을 거예요. 지금 세대가 듣기에 이 음악은 확실히 느리니까요.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레게라는 형식에 대한 계몽주의적인 뜻도 있었어요. 이 음반은 틀림없이 성공하지 않겠지만, 몇 명의 친구나마 더 생길 수 있다면 파티를 하든 뭘 하든 더 재밌어질 테니까.
● 직접 쓴 소개 글에서는 음반 이름 < 남편 >을 언급하며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노력”에 대해 말했죠. 음악은 도라에몽 같달까요. 제가 실수하고 좌절하고 망해도, 돌아가면 그 자리에 있어요. 심지어 마법을 보여주기도 하죠. 하지만 음악을 듣지 않을 때의 저는 마법을 믿지 않아요. 도라에몽도 없고, 마법도 없는 세상에 음악이 있었고, 음악을 만드는 건 이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 해야 할 일처럼 느껴졌어요.
● 흔히 ‘레게’ 하면 곧장 떠오르는 유의 그런 사람은 아닌 듯 보여요. 사랑하는 대상을 억지로 흉내 내기보다 멀리 두고 존중하는 쪽의 태도 같달까요. 그게 자연스러우니까요. 제 관심은 백비트, 극도로 낮은 베이스, 아름다운 하모니가 어우러지는 형식이 어떻게 우리를 매혹시킬까고요.
● 비판이든 열광이든 그 대상이 되기 쉽지 않은 음반처럼 들리기도 해요. 시끄러워지기보단 아는 사람들끼리 즐기고 지나갈 것만 같은. 참을성이 많은 편인데, 유독 못 참는 게 시끄러운 거예요.
● ‘남편’이기보다는 분방한 애인의 태도를 취했다면, 좀 다른 음반이 나왔을까요? 분명히 애인의 태도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제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상관없겠다, 스스로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충분히 멋있는 어른을 보고 싶다, 는 생각이 들었고, 남편으로 이어졌죠.
FAIRBROTHER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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