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끓여 더 맑은 술을 얻는다. 그래서 증류주는 술 위의 술이다. 우리나라 양조장에서 만든 증류주가 지금 유독 뜨겁다.
Q1 소주와 증류주의 차이는? 증류주는 발효시킨 술을 끓여 기체 상태가 되면 다시 차갑게 식혀 모은 술을 뜻한다. 맥주를 증류한 것이 위스키, 와인을 증류한 것이 브랜디가 되는 식. 원래 ‘소주’라는 단어에 증류한다는 뜻(불사를 소, 술 주)이 있지만, 증류주와 소주는 범위가 다른 단어다. 주세법상 증류주 카테고리는 다시 소주, 브랜디, 위스키, 일반 증류주, 리큐르로 세분화된다. 증류주에 당분이 2퍼센트 이상 남으면 일반 증류주, 2퍼센트 이하는 소주로 분류한다. 우리가 흔히 전통 소주라고 부르는 문배주, 이강주, 감홍로 등은 증류 후 침출 방식으로 약재나 꿀 같은 재료를 더하기 때문에 리큐르다.
Q2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의 차이는? 요즘 주세법상에는 두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2012년 개정안에 따라 ‘소주’로 명칭이 통합됐다. 희석식 소주인 ‘처음처럼’과 ‘참이슬’, 증류식 소주인 ‘화요’와 ‘안동소주’가 같이 묶인다는 뜻이다. 주정을 증류하고 물, 조미료, 향료 등을 섞은 희석식 소주가 증류식 소주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건 사실인데, 이를 소비자가 구분할 방도가 없어졌다. 이 통합 과정을 두고 말이 많지만, 결론은 소비자가 더 좋은 술을 찾아 마셔야 한다는 것. 양조장에서 증류주를 생산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증류기 한 대와 증류 면허만 있으면 된다. 성장에 불이 한번 붙으면 크게 타오를 수 있단 얘기다. 실제로 증류주 시장은 꾸준히 넓어지고 있다.
Q3 왜 지금 증류주일까? 증류식 소주 시장을 이끌고 있는 ‘화요’가 흑자로 돌아선 게 작년 말이다. 출시된 지 10년 만이다. 소비자들이 증류주에 대해 지갑과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해도 좋다. 마침 크고 작은 규모의 양조장에서 증류주를 새로 출시하기 시작했다. 2008년 막걸리의 붐이 일어난 뒤 지금처럼 다채로운 시장이 형성된 것처럼, 장기적으로 볼 때 증류주 시장에도 2016년이 기억할 만한 해가 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막걸리의 ‘아스파탐’이 이슈화됐듯, 증류주의 감미료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릴 필요가 있다. 순수한 증류주에 인공적인 맛이 꼭 필요할까?
Q4 왜 장기 숙성시키지 않을까? 왜 도수가 다양할까? 증류주가 더 발전하려면 위스키처럼 다양한 숙성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내 주세법은 ‘종가세’라 술 가격이 올라가면 세금도 함께 올라간다. 숙성을 통해 술의 고급화를 할 이유가 없어지는 셈. 만약 ‘종량세’가 도입된다면 더 다채로운 증류주를 맛볼 수 있을 테다. 발효주보다 약 3배 정도 비싸게 형성되는 증류주의 가격대도 쉽게 납득할 수 있게 된다. 현재는 알코올 도수를 다양화하는 식으로 제품의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는 실정.
못 보던 요즘 증류주 10 압구정의 뜨거운 술집 ‘백곰막걸리&양조장’의 이승훈 대표가 요즘 나온 증류주 10가지를 평했다.무작 53도. 강원도 홍천. 전통주조 예술 자체 제조 누룩을 사용했고 2년 이상 숙성시켰다. 알코올 도수 53도 답게 중국 바이주처럼 강렬하다. 처음엔 과실 향이 살짝 맴돌고 피니시는 부드럽게 마무리되니 자꾸 마실 수밖에 없는 증류주이자 일체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는 순수한 소주다.
풍정사계 동 42도. 충북 청주. 유한회사 화양 녹두가 들어가는 누룩을 사용해 개성 있는 맛을 끌어낸 증류주다. 묵직하면서도 쨍한 맛이 입 안에 감도는 쌀 소주다. 이 양조장에서는 계절로 이름 붙인 4가지 스타일의 술을 빚는데 이 증류주는 가을이다. 봄은 탁주, 여름은 약주, 겨울은 과하주다.
미르 40도. 경기 용인. 주식회사 술샘 용인 백옥 쌀로 술을 빚고 자체 제조 누룩을 사용해 6개월 이상 숙성시켰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요리책으로 꼽히는 < 산가요록 >의 소주 제조법을 따른 만큼 전형적인 쌀 소주다. 첫 잔부터 강렬함이 목을 타고 넘어오는 소주다.
고운달(자기 숙성) 52도. 경북 문경. (주)제이엘 오미자 와인 ‘오미로제’로 유명한 이종기 대표의 새 증류주. 역시 오미자로 빚었고, 자기와 오크통 두 가지 방식으로 숙성시켰다. 살짝 과실 향이 감돌고 52도의 강렬한 알코올 향 속에 단맛이 스쳐 지나간다. 기분 좋게 부드러운 증류주다.
문경바람(오크통 숙성) 40도. 경북 문경. (주)제이엘 고운달과 함께 이종기 대표가 생산한 사과 증류주다. 고운달처럼 자기에 숙성시킨 술도 있지만 사진 속은 오크통에 숙성시켜 황금빛이 돈다. 젖은 나무 향이 나며 달콤쌉싸래한 맛이 전반적인 맛을 지배한다. 민트 향도 살짝 느낄 수 있다.
허벅술 순 25도. 제주. (주)한라산 제주도의 대표 희석식 소주인 한라산소주를 만드는 회사에서 만든 증류식 소주. 35도 허벅술과 25도 허벅술 순으로 제품이 나뉘어 있는데, 후자가 2013년에 출시됐다. 쌀과 보리를 증류했고 알코올 맛이 혀를 스친다. 피니시에 살짝 단맛이 감돈다.
영광 톡한잔 소주 30도. 전남 영광. 대마주조 영광산 찰보리를 사용한 보리 소주다. 영광의 지역 술인 ‘토종’을 모태로 한 술로 평이한 느낌의 쌀 소주와 달리 보리 특유의 개성이 증류주에서도 확실히 느껴진다. 구수한 향이 은은하게 입에 감돌고 감칠맛이 기분 좋을 정도로 옅게 느껴진다.
로아 19도. 경기 화성. 배혜정도가 올해 초 출시된 배혜정도가의 신제품이다. 쌀과 배를 사용해서 만든 증류주로 서양의 슈냅스(곡물이나 사과 같은 과일을 발효시킨 뒤 증류한 가향 증류주)를 차용해 술을 개발했다. 쌀 소주의 부드러움에 달콤한 배의 향이 더해졌다.
이도 42도. 충북 청주. 조은술세종 우리나라 유일의 유기농 쌀로 빚은 증류식 소주로 2015년에 출시됐다. 세종대왕의 이름에서 술 이름을 따왔다. 쌀 소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전형적인 특징을 모두 지녔다. 좋은 재료로 정직하게 만들어 깔끔한 느낌이 끝까지 이어진다.
전가네 61도 61도. 경기 포천. 술빚는 전가네 우리나라에서 양조 허가가 난 술 중 가장 알코올 도수가 높은 제품이다. 두 번의 증류를 통해 알코올 도수를 61도까지 높였다. 쌀 소주의 깔끔한 맛에 지초의 향과 색을 더했다. 높은 알코올 도수답게 쨍하게 내리꽃는 듯한 맛이 특징이다.
토끼소주와 두 마리 토끼 뉴욕발 토끼소주 열풍에 한반도가 들썩였다. 지난 5월, 블룸버그 통신을 타고 뉴욕에서 만든 ‘토끼소주’ 소식이 전해졌다. 알코올 도수 23인 이 소주의 라벨에는 한글로 ‘토끼소주’라 적혀 있다. 이 깜찍한 소주는 한국에서 전통 소주 양조법을 배워간 브랜 힐 대표가 브루클린의 ‘반 브런트 스틸하우스’에서 만들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이 술을 맛보고 싶어 한반도가 들썩였는데, 기어이 구해서 마셔본 몇몇 술꾼들의 표현에 따르면 독특한 과일 향과 부드럽게 숙성된 맛이 특징이라고 한다. 이 술이 이토록 화제가 되는 건 ‘소주의 세계화’에 대한 기대도 있겠지만, 세련되고 트렌디한데 맛까지 좋은 소주를 갈망하는 마음이 더 큰 건 아닐는지? ‘토끼소주’ 덕에 국내 소주도 자극을 받아 판이 격렬히 흔들리길 기대해본다.
증류주와 요리 두 접시 강력하고도 우아한 펀치가 있는 증류주 문배술에 음식을 맞춰보았다. 증류주에 음식을 곁들이는 건 쉬운 듯 어려운 일이다. 문배술은 애주가들이 사랑하는 전통 증류주 중 하나로 향이 강렬하다. 이 술과 기똥찬 조합을 보여준 두 가지 요리가 있다. 삼성동 중식당 ‘차이린’의 ‘구수계(사진 오른쪽)’는 문배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뗄 수 없는 한 쌍이라는 평을 얻었다. 서촌의 유러피언 식당 7PM과 ‘막걸리학교’가 손잡고 시도한 전통주 페어링 행사에서 맛본 돼지고기 요리도 일품. 흑돼지 목살구이에 안초비와 마늘을 이용한 이탈리아 소스 바냐 카우더를 곁들이고 꽈리고추로 방점을 찍은 한 접시였다.
- 에디터
- 손기은
- 포토그래퍼
- 정우영
- 도움말
- 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 백곰막걸리&양조장 이승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