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방 안에 오래 누워 있는다. 가을의 침대에선 더욱 그렇다.
해가 떠 있든 컴컴하든 집에 갈 이유가 없었다. 실내에도 지하에도 길가에도 시내가 다 보이는 탁 트인 옥상에도 음악과 술이 있었다. 대낮부터 밤까지 그런 계절이었다. 거기서 쭉 마시고 땀에 젖어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이거나 둘이거나. 맨살만 봐도 깜짝 놀라는 초여름부터, 몸을 드러내는 데도, 드러난 몸에도 무감각해지는 늦여름까지 그랬다.
그런 들끓는 기분과 가시지 않는 취기야말로 여름일 것이다. 여름의 섹스 역시 야외에서 벌어진 일의 연장선 같았다. 단추를 열고 지퍼를 내리고 신발 끈을 푸는 시간에 앞서 이미 맨살이 닿아 있었다. 더워서 누가 가까이 오는 건 싫어도, 한 번 부딪친 맨살이 쩍 달라붙어 머리카락까지 온몸이 젖는 건 또 다른 쾌감이었다. 서로의 몸에 대해 못 본 척 모르는 척 이미 꽤 잘 알면서, 그 몸에 걸친 옷은 하나씩 벗어 개어놓기보다 훌렁 내팽개쳤다. 여름밤은 느긋하다지만 집에서만큼은 예외. 파티는 방 안에서도 끝나지 않았다.
여름 손님은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아침은 빨리 찾아왔고, 해가 뜨든 매미가 울든 잠이 많은 쪽은 주로 나였다. 내일은 또 다른 파티가 있으니 우리는 또 거기서 만나게 될까? 그래서 그 여자는 무슨 옷을 입었더라? 단출한 옷보단 확실한 몸이 기억에 남는 계절. 상대에게도 마찬가지였겠지. 새 티셔츠 한 장 꺼내 침대 옆에 굴러다니는 반바지를 다시 주워 입고 밖으로 나섰다. 선택은 간편했고, 옷장은 반쯤 비어 있었다.
여전히 영상 15도와 18도의 차이에 대해 잘 모른다. 어느 정도 두께의 옷을 얼마나 입어야 하는지. 그러니 날씨와는 상관없이 달력을 기준으로 옷을 고른다. 혹은 아침마다 창문 밖으로 사람들이 무슨 옷을 입고 나섰는지 내다본다. 곧 창문을 닫아놓고 출근하는 날이 오겠지. 혼자 집에 돌아오면 찬바람이 치는 게 싫어서. 그렇게 에어컨을 돌려도 열기가 후끈하던 방바닥은 이미 식어 있다. 맨발이 닿으면 차다. 저기에 누워 뒹굴면 여름과는 완전히 다른 감각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이제 파티는 주말 밤에만 열리고, 동네 치킨 집은 밖으로 내놓은 테이블과 의자를 전부 접었다. 어슬렁거리다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거나, ‘쿨’하게 떠난 사람을 우연히 다시 만날 가능성은 드물다. 갑작스레 누군가를 집에 맞이했을 때의 핑계가 통하지 않는 날들의 시작. 방 안에 맥주 캔 몇 개쯤 구겨져 있거나, 수건이 여기저기 걸려 있거나, 빨래바구니가 넘치는 게 계절의 낭만이나 변명이 아닌 명백한 게으름이 되고 마는 때.
당장 옷차림부터 그렇지 않나? 입어야 할 옷의 가짓수가 늘어나는 건 물론, 이 옷과 저 옷과 이 양말과 저 신발은 잘 어울리는지, 외투 안에선 꽤 근사해 보이는 셔츠가 실내에서 단벌로 입었을 땐 어떻게 보일지, 이 울 스웨터를 입었을 때 과연 까끌함을 하루 종일 견뎌낼 수 있을 것인지….
뭘 입든 당장 뛰쳐나가 사람들 사이에 섞이고 싶은 기대보다, 한발 물러서 준비하는 것에 가까운 맘. 가습기를 켜고, 부쩍 건조해진 몸통과 다리에 로션을 바르고, 외출 전 거울 앞에 좀 더 오래 서 있고, 이불 커버에 누빈 솜을 집어넣고, 따기만 하면 그만인 캔 맥주 대신 칵테일을 만들 주스와 얼음을 냉장고에 채워놓는 일.
그러면서 섹스에 생각이 닿기도 한다. 아직 보일러를 켜기는 이르니 창문을 열어두는 것만으로도 등판이 꽤 서늘하겠지. 겨울날의 온천 반신욕 같으려나? 또한 후끈하고 끈적한 몸 대신 냉랭하고 미끈해진 서로의 몸. 거기선 어떻게 다른 냄새가 날 것이며 그러다 결정적 순간에 예측불가의 정전기가 팍! 튀기도 할까? 첩첩산중 늘어난 옷은 어떤 순서대로 (서로) 벗기면 가장 부끄럽지 않고 자연스러운 걸까?(나는 어쩌다 최후의 한 벌로 양말만 신고 있을 때면 그게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어서, 선택할 수만 있다면 절대로 바지를 먼저 벗지 않는데.)
확실한 건 이불 속에 더 오래 있게 된다는 것. 해는 짧아졌고, 어둠을 박차고 일어나기엔 신나는 계획이 확 줄었다. 대개 침대 바깥쪽에서 잔다. 눈을 뜨고 매트리스 밖으로 또르르 굴러나가는 대신 반대쪽 옆으로 돌아누우면 바로 여자의 얼굴이 있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곧 다시 밤이 온다.
- 에디터
- 유지성
- 일러스트레이터
- HEN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