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회사 가는 발걸음이 늦어지는 이유. 내 옆에 있는 남자, 그리고 그의 냄새.
대리님은 담배 냄새를 남기고 얼마 전 인사 이동 후 우리 팀으로 옮긴 B 대리님. 나와 팀을 이뤄 외근하러 다니는 일이 잦다. 대리님의 화려한 언변과 꼼꼼한 인맥관리는 우리 팀 성과를 높여주었지만 나에겐 남모를 고통 또한 안겨줬다. 외부업체와의 미팅 후 줄담배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대리님의 치명적인 버릇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평소에 차 안에서도 담배를 얼마나 피워댔는지 시트는 물론 조수석 손잡이까지 담배 냄새가 배 있어 대리님 차는 거의 화생방 훈련을 방불케 한다. 그 차를 타고 있으면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어질어질해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요즘엔 혹시 몰라 가방에 구토 봉지도 가지고 다닌다. 대리님 덕분에 연말 인센티브는 차곡차곡 적립되고 있지만 내 호흡 곤란은 점점 심화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게다가 대리님과 일을 시작한 이후로 남자친구와의 사이도 이상하게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대리님의 담배 냄새가 내 긴 머리의 모근 끝까지 배어 있는 탓에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아닌지 자꾸 오해를 사는 것이다. 아니라고, 네가 한번 그 차 타보라고! 그나저나 내 걱정은 남자친구와의 관계 따위가 아니다. 나도 모르게 오늘도 인터넷으로 ‘냄새 때문에 질식한 사례’를 검색해본다.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 정태희(가명, 29세, 광고업)
숨길 수 없는 세 가지, 감기, 사랑, 냄새 세상에 숨길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감기와 사랑. 거기에 하나를 추가해야 할 듯하다. 바로 냄새. 다사다난한 직장 생활 중 언제나 가장 의지가 됐던 건 우리 팀 선배 A였다. 그는 다정한 말투, 깔끔한 일 처리, 훈훈한 외모로 회사 내 인기남이었고 나는 종종 그에게 호감을 보이는 여직원들을 질투하기도 했다. 선배가 자취하기 전까진 말이다. 선배를 혼자 서울에 남기고 부모님이 고향으로 내려가신 그 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할만하다. 엄마의 손길을 벗어난 선배는 자유를 만끽하며 하루가 다르게 꼬질꼬질해지기 시작했는데 가장 놀라운 건 쉰내였다. 선배의 옷에 벤 남자방냄새가 칸막이를 넘어 나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복사기 앞에서나 화장실 앞에서나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선배가 온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선배는 단 한 번도 집 환기를 시키지 않은 걸까? 아니, 그 집을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자연스럽게 나와 선배 사이는 소원해졌다. 난 무조건 내 사랑을 숨겨야 했다. 선배는 아마도 절대 모를 거다. 마음속으로 간직했던 짝사랑을 예민한 후각 때문에 울면서 혼자 정리해야 했던 슬픈 사연을. 이효정(가명, 31세, 소셜 마케팅)
신발 냄새 때문에 퇴사한 사람 있나요? 2년간의 취준생 신분을 접고 어렵게 취직에 성공한 나. 이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출근한 지 한 달 만에 애사심은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우리 팀 차장님의 신발 냄새 때문이다. 차장님이 신발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 신는 순간 비위 약한 나는 냄새와의 외로운 싸움을 벌인다. 빨지 않은 꼬질꼬질한 양말들이 몇 년 간 숙성돼서 내는 듯한 그 신발 냄새는 탁한 실내 공기 사이로 히터와 함께 올라와 사무실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 댄다. 냄새를 막기 위해 내 책상 위에 방향제와 커피 가루도 놓아보고 목도리로 얼굴을 친친 감기도 해봤지만 냄새는 어김없이 차장님의 이메일보다 더 빨리 내 코끝으로 배달된다. 한번은 차장님이 일찍 퇴근하신 날, 오랜만에 쾌적한 환경에서 들뜬 마음으로 야근하려는데 사무실에서 생선 썩는 냄새가 나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차장님이 제일 아끼시는 그 신발을 벗어놓고 퇴근하신 거였다. 아니 도대체 왜! 솔직히 그날 그 신발을 갖다 버릴까 말까 백 번은 고민했다. 이제는 집에 가도 차장님의 신발 냄새가 인중에 묻어있다는 착각이 든다. 하지만 소심하고 착한 차장님이 상처 받을까 봐 단 한 번도 내색한 적은 없다. 어렵게 취직한 회사를 신발 냄새 때문에 그만둘 수도 없고 나 어쩌지? 안송이(가명, 27세, 무역업)
- 에디터
- GQ PROMOTION
- 일러스트레이터
- 조성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