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서울의 택시

2017.02.06GQ

승객의 증언과 기사의 토로가 엉키는 불쾌의 골짜기, 서울에서 택시 타기.

서울 시내에 하루 평균 5만5천 대 정도의 택시가 다닌다고 한다. 이용객으로 따지면 하루 1백30만 명 정도가 택시를 탄다. 이 많은 택시의 가장 흔한 목적지는 아침엔 여의도, 퇴근 시간쯤엔 강남과 홍대다. 집에서 사무실로, 맥줏집에서 가라오케로 밤낮없이 달린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가끔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크고, 급하게 택시를 타야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데 택시가 한몫한다면 그건 효율적인 교통수단이라서라기보다는, 택시를 타는 사람의 잡다한 사정에다 차력처럼 무리하는 일상이 곧 서울의 에너지 자체라서겠다.

하지만 아무리 자주 택시를 타도, 택시 기사와의 ‘소통’은 좀체 쉬워지지 않는다. 택시 문을 열 때마다 난감한 것은, 이제 어떤 말을 나눌지 모르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과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좁은 공간을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택시를 타려면 먼저 어떤 사람이 될지 정해야 한다. 기사가 촛불 시위에 대한 의견을 묻기라도 한다면 성실히 답할 것인가? 이 정도 거리에 왜 택시를 타느냐며 볼멘소리를 하면 더욱 사나운 말로 그의 말문을 막아버릴 것인가? 반대 입장에서 마찬가지로 고민하는 기사도 있을 것이다. 다음 손님한테는 오늘처럼 눈 오는 날 트럭에 받혀서 죽을 뻔했던 얘기를 해야지. 이번에는 젊은 손님에게 훈계하기 좋아하는 다른 기사 흉을 봐야지.

얼마 전 KTX 광명역에서 사당까지 택시를 탔다.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 기사는 올해 강남순환로가 개통됐으니까 손님을 태워 드리지, 예전 같았으면 안 갔을 거라고 선수를 쳤다. 질세라 나는 안 그래도 그 길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모레부터 생긴다는데, 오늘은 할 수 없이 탔다고 되받았다. 강남순환로에 대해 검색을 해보고 겨우 알게 된 얕은 지식 한 조각이 도움이 됐다. 그러자 기사는 그 셔틀버스에 대해 광명시가 영 잘못 계산하는 거라고, 수요가 없을 거라고 못 박고 지난번 강남순환로를 타다가 속도위반 딱지를 뗐다며 대화 주제를 능숙하게 자기 앞으로 되돌려놓았다. 그런데 그는 안타깝게도 지난 번에 걸렸다는 바로 그 과속 단속 카메라에 똑같이 걸리고 말았다. 나머지 구간은 침묵. 승객인 나의 민망한 승리쯤으로 정리할 수 있는 경우겠다.

반면 내리고 나서야 승패를 깨닫는, 보다 은근한 기싸움도 있다. 몇 달 전 서울 구경을 온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서촌에서 서울역까지 택시를 탔다. 기사는 친구를 보고 미국 사람이냐 묻더니, 즉각 자신이 십 년 전 텍사스에 갔던 얘기를 시작했다. 자신의 누이가 텍사스로 시집을 갔는데, 그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하다가 결국 누이의 장례식 때에야 가보게 됐다고, 누이가 거기 묻히길 원했지만 꼭 데려오고 싶어서 재 한 줌 갖고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심지어 그가 열어보라는 글러브 박스에는 그 누이를 모셨다는 납골당 사진이 들어 있었다. 승차 시간에 맞추어 자신의 이야기를 정확히 끝내고 미터기를 내리는 타이밍까지 완벽했다. 친구들을 보낸 뒤, 그가 소품까지 준비해 얼마나 많은 손님에게 자신의 스토리 ‘텍사스의 누이’ 구연을 연습했을지 궁금해졌다.

짧은 승차시간 동안 상대방을 어떻게 이겨낼지, 접어줄지 내내 재는 상황, 다시는 만날 일 없을 사람끼리 서로 의식하며 누가 갑이고 을인지 스코어를 매기고 있는 상황, 이거야말로 서울살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게 그 짧은 시간을 견딜 줄 몰라서 아닌가. 그저 어딘가로 손쉽게 빨리 가려는 것뿐인 승객에게 시국에 대한 한 줄 평을 묻는 것이나, 여성이나 어린 승객에게 일생일대의 멘토가 된 것처럼 오지랖을 펴는 것이나, 전부 관계를 맺어야 할 것 같은 강박 때문이다.

기싸움을 벌인 택시에서 내리면 후회의 시간이 닥친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아니면 왜 그렇게밖에 못했을까. 그저 자신의 아들이 효자라는 자랑 한번 하고 싶은 기사의 기분을 왜 맞춰주지 않았을까. 여자가 운전을 하는 게 문제라고 중얼대는 기사에게 당신이 문제라고 왜 대꾸하지 않았을까. 내 주위의 젊은 여성들은 아예 전투 모드로 택시를 탄다. 방어막을 끝까지 올리고, 여차하면 한 방 찌를 수 있는 호신술 같은 말을 준비해서 말이다. 트위터에서는 무례한 기사에게 이렇게 한 방 먹였다는 ‘사이다’ 택시 무용담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렇게 피곤하게 싸울 일 없이 누구나 무사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날이 올까?

요즘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자연스럽게 무인 자동차 관련 기사가 떠오른다. 누가 먼저 하느냐의 문제일 뿐, 무인 자동차 시대가 열릴 것임은 이미 기정사실 아닌가. 사람들은 카드 결제가 거스름돈을 주고받는 수고를 없애고 카카오택시가 택시를 마냥 기다리는 고통을 덜었던 것처럼, 무인 택시가 인간 기사와의 관계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어색하고 불편한 순간을 없애줄 거라 기대한다. 물론 일자리를 잃게 될 기사를 걱정하기도 하겠지만, 실제 택시 기사라는 직업이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은 사실상 거의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이 ‘어차피 사라질 것’이라고 정한 것들에 대해 보이는 태도가 대부분 그렇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서울 사람이 운전하는 택시도 방콕의 툭툭처럼 관광 상품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이미 많은 사람이 일본으로 여행을 가면 택시를 꼭 타보지 않는가. 머리를 말끔하게 빗어 넘긴 기사가 승객에게 정중하게 목례하고, 흰 장갑을 낀 손으로 트렁크를 대신 실어주는 경험을 위해 도쿄에 굳이 가고 싶을 정도다. 만약 서울의 택시가 그렇게 살아남는다면, 택시는 아주 특별한 날만 탈 수 있는 비싼 운송수단이 될 것이다. 무인 택시로 인해 설 곳을 잃은 유인 택시가 십 년쯤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가, <응답하라> 시리즈 등의 부름을 받고 나서야 특수한 형태로 부활한다는 가설을 세워 본다. 서울이 이 기대에 부응해준다면, 욕쟁이 할머니 음식점처럼 ‘안하무인 택시’ 콘셉트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아무리 필연적이라도 미래는 미래다. 좋으나 싫으나 현재 서울은 택시로 가득 차 있고, 나는 이기는 사람도 지는 사람도 없는 깔끔하고 은은한 택시 승차를 매번 꿈꾼다. 상수동 사무실에서 출발한 택시가 영등포를 향해 강 위를 건널 때, 남산 위로 뜬 달을 보며 한강진을 지날 때, 기사인 그도 승객인 나도 분명 함께 큰 숨을 들이쉬고 있다는 걸 느낀다. 서울에서 택시기사가 사라지기 전에 몇 번쯤은 그들과 차창을 흔드는 겨울 강바람 얘기를 하고 싶고, 좀 더 욕심을 내어 “기사님도 이 음반 좋아하시나 봐요” 같은 얘기도 한번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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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GQ 피처팀
    포토그래퍼
    표기식
    김괜저(텀블벅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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