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야구선수 출신 단장의 시대

2017.05.12GQ

감독만 야구를 아나?

송구홍, 박종훈, 고형욱, 염경엽, 유영준. 이 다섯 명을 지지한다. 한화, LG, 넥센, SK, NC의 단장들이다. 2017년 프로야구단 단장으로 첫 시즌을 치른다. 모두 야구선수 출신이다. 두산 김태룡 단장까지 10개 구단 중 절반이 넘는 6개 구단이 선수 출신 단장 체제다.

한국 프로야구는 출범 때부터 단장 직함을 뒀다. 하지만 선수 출신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1984년 박종환 롯데 전무(단장), 1998년 이철화 롯데 단장, 2008년 박노준 넥센 단장, 2009년 민경삼 SK 단장 정도다.

단장은 메이저리그의 ‘제너럴 매니저’에 해당한다. 기업경제사 권위자인 알프레드 챈들러 하버드대 교수에 따르면, 미국 기업은 남북전쟁 이후 50년 안에 급성장했다. 이전까지는 아무리 큰 기업도 사장 한 명, 회계책임자 한 명, 근로감독관 한 명으로 운영했다. 프로야구단은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이 구조를 따랐다. 사장이 의사결정 책임자를 맡고, 제너럴 매니저가 구장 운영, 원정, 장비 관리, 입장권 판매 등을 맡았다. 그리고 감독은 ‘필드 매니저’로서 선수단을 경기 내외적으로 감독했다. 미국식 야구단 경영에서 ‘단장’의 존재는 ‘상식’이다.

반면 일본 프로야구 NPB는 패전 이후에야 야구규약과 시스템을 미국식으로 고쳤다. 단장을 둔 구단은 드물었다. KBO 리그에서 창단일이 가장 빠른 구단은 OB 베어스다. OB의초대 박용민 단장은 NPB 세이부 라이온즈로부터 프로야구단 운영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OB가 처음으로 어린이 회원을 모집하고 모자 등 상품을 만든 것도 세이부의 영향이다.

박 단장에게 조언을 한 인물은 세이부의 네모토 리쿠오 관리부장이었다. 그의 역할은 단장과 비슷했지만 직함은 관리부장이었다. 구단마다 편성부장, 본부장 등의 직함으로 단장 업무를 했다. GM으로 불리는 제너럴 매니저는 1994년 지바 롯데의 히로오카 다쓰로가 최초다. 지금도 NPB에서 GM을 두고 있는 구단은 니혼햄 파이터스,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 세 곳뿐이다. 지난해까지 GM을 둔 한신과 주니치는 현재 공석 상태다.

왜 NPB에선 단장 제도가 일반적이지 않을까. 메이저리그 구단은 각 분야 별로 부사장을 둔다. 단장은 선수단 구성, 즉 드래프트, FA 계약, 마이너리그 운영, 트레이드, 선수 강등과 승격 업무를 주로 담당한다. 그런데 NPB에서 이 분야는 전통적으로 감독의 영역이었다.

메이저리그 선수단은 경기에 뛰는 25인 로스터와 메이저리거 신분인 40인 로스터, 그리고 나머지 마이너리그 선수들로 구성된다. 필드 매니저인 감독은 단장이 만들어놓은 25인 로스터 선수 25인을 관리하고 지휘해 경기에서 승리를 따내는 게 임무다. 하지만 NPB 감독들은 오랫동안 단장의 역할까지 해왔다.

KBO 리그에서 연륜과 경험이 가장 풍부한 필드 매니저는 한화의 김성근 감독이다. 한화는 2014년 시즌 뒤 김 감독을 영입하며 구단 운영의 전권을 줬다. 하지만 두 시즌을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박종훈 단장을 선임하며 전권의 일부를 회수했다. ‘육성’ 부문은 프런트의 권한으로 돌렸다.

김 감독은 2017년 프로야구 개막 직후 박 단장과 충돌했다. 4월 3일 2군 선수를 1군에 동행시키고 싶다는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언론을 통해 이를 공개 비난한 것이다. 2군 선수를 1군에 동행시키며 기량을 파악하는 건 김 감독의 오래된 구단 운영 방식이다. 하지만 이 충돌을 감독 개인의 스타일로만 파악하는 건 단견이다. 단순화하자면 감독의 역할과 권한이 메이저리그식 필드 매니저냐, 단장 역할까지 해 온 일본 프로야구식이냐라는 운영 철학이 부딪힌 것이다.

KBO 리그는 출범 초기부터 단장 제도를 뒀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식 GM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단장 직함을 두지 않은 일본 프로 야구와 비슷했다.

첫 번째, 단장이 야구를 잘 몰랐다. 메이저 리그는 대다수 구단이 독립 사업체다. 투자가는 있어도 모기업이 있는 구단은 드물다. 하지만 KBO 리그 구단은 처음부터 대기업 산하로 출발했다. 모기업이 없는 구단은 넥센 히어로즈 하나뿐이다. 단장은 대개 계열사 임원 중에서 발탁했다. 여기에 한국 교육은 학업과 운동을 분리한다. ‘운동부’ 활동은 엘리트 스포츠의 영역이었다. 신임 단장이 야구단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파악하는 데만 1년이 걸린다. 그리고 얼마 뒤 성적이 부진하면 해고 통지가 날아온다. 이렇다 보니 ‘단장’의 역할은 실무와 프런트에서 잔뼈가 굵은 운영부장의 몫이 되고, 단장은 사장과 운영부장 사이에서 다소 어정쩡한 자리가 된다.

두 번째, 그렇다 보니 선수단 운영에서 ‘전문가’인 감독의 역할이 커켰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더 했다. 1980년대 초반 구단주들은 젊은 재벌 2세들이었다.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클 때다. 어떤 감독은 구단주의 학교 동문 선배기도 했다. 감독의 발언권이 컸다. 1980년대 한 감독이 구단주에게 “사장과 감독 중 누가 높은지를 정해달라”고 물어본 건 이쪽에서 이미 유명한 일화다. 여기에 대기업 입장에서 프로야구단은 매출이 극히 미미한 소규모 계열사다. ‘경영’보다는 성적이 더 중요했다. 사장과 단장 이 야구를 잘 모르니 감독의 권한이 커지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감독 중심의 운영 체제가 지니는 한계도 비교적 명확하다. 우선 감독은 단기 계약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적 부진의 희생양이 되기 쉬운 자리다. 감독은 “연봉 절반은 욕을 먹는 값”이라며 자조적으로 웃는다. 그렇다면 조직의 장기 성장보다는 단기적인 성적을 앞세울 가능성이 높아진다. “팀의 미래를 우선하겠다”고 말한 감독이 시즌 중반 부상 선수를 무리하게 출전시키는 사례는 언제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 않나. 지난해 LG의 양상문 감독은 시즌 막판까지 포스트시즌 진출 경쟁을 하면서도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구원 투수를 무리하게 쓰지 않는 운영을 했다. 그런 운영은 구단주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프로야구단의 규모가 커졌다. 육성 선수를 포함해 선수단 숫자는 100명이 넘는다. 이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스카우트와 트레이드도 팀의 중단기 필요에 따라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언젠가 한 루키 감독은 “1군 경기를 치르고 나면 진이 빠진다.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 1군 경기를 치르기도 바쁜 감독이 선수단 전체를 관리하기는 어렵다.

2017년의 ‘선수 출신 단장 6명 시대’는 이런 한국적인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전통적인 감독의 역할을 축소하고 단장의 역할을 강화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역할 분담은 오래전부터 이뤄져왔다. 김응용, 김성근 등 1세대 감독과 그 아래 세대 감독들의 ‘권위’에는 차이가있다. 하지만 단장의 역할을 ‘명실상부’하게끔 하자는게 올해와 그 이전의 차이다. 과거와 같은 계열사 임원 출신보다는 프런트 경험이 있는 선수 출신이 적임자라고 봤다. 이태일 NC 대표는 “선수 출신은 일반 조직 업무에 익숙해지면 프런트에서 성공할 수 있는 여러 장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변화에는 갈등이 따른다. 염경엽 SK 단장은 지난해 넥센에서 구단과 갈등을 빚었다. 모 기업이 없는 넥센은 이장석 구단주가 선수단 운영에 깊이 관여했다. 넥센은 염 감독의 후임으로 프로야구 코치 경험이 없는 장정석 감독을 임명하며 이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넥센은 이런 운영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감독 입장에선 ‘권한 박탈’로 받아들이기 쉽다. 장 감독의 임명에 대해 한 전직 프로야구 감독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선수 출신’은 장점이지만 단점도 있다. 하일성 전 KBO 사무총장과 김응용 전 삼성 라이온즈 사장은 해당 분야에서 ‘선수 출신 1호’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총장과 사장으로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선수 출신 단장’이 “야구단 운영도 역시 전문가인 선수 출신이 맡아야 한다”는 ‘전문가 만능주의’로 귀결돼서도 곤란하다.

송구홍 LG 단장은 “우리가 실패하면 ‘역시 선수 출신은 안 돼’라는 편견이 생길 것이다. 책임이 무겁다”고 말했다. 올해 등장한 여섯 명의 선수 출신 단장들은 KBO 리그에서의 단장 역할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내용을 채워나가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그래서 이 여섯 명을 다시 지지한다.

    에디터
    글 / 최민규(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일러스트레이터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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