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해체한 걸 그룹의 숨은 명곡

2017.06.15나지언

걸 그룹 음악의 새 역사를 개척했던 원더걸스, 투애니원,  포미닛, 그리고 씨스타가 해체했다. 당신은 그들의 어떤 곡을 가장 좋아했나? 그들의 숨은 명곡을 골라봤다.

씨스타의 ‘Good Time’ 생각해보면 씨스타의 음악 속 남자활용법은 묘한 구석이 있었다. 이렇게 괜찮은 나를 두고 다른 여자를 훔쳐보는 너,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화를 보고 날 울고 불게 만드는 너.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애달프게 부르는 ‘너’는 구체적 형상을 띤 존재라기보다는 나의 드라마를 완성시키기 위한 요소 같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것도 내가 화려한 주연을 맡은. 사랑보다는 치정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덥고 끈적한 히트곡의 숫자가 결코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원하고 경쾌한 이미지로 씨스타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은 건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Good Time’은 그런 씨스타 이미지의 정점에 위치한 노래들 가운데 하나다. 2015년 본격 씨스타표 여름 앨범을 표방하며 발표된 < SHAKE IT >에서 ‘Good Time’은 전체 5 트랙의 한 가운데인 3번 트랙에 자리를 잡고 앉아 진한 여름 냄새를 풍긴다. 지난 사랑 따위는 훌훌 털어버리고 다가올 새로운 만남을 꿈꾸며 친구들과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 추는 금요일 밤. 구질구질했을지언정 결코 뒤돌아보지 않는 단호함과 거침 없는 자신감은 씨스타의 7년을 지탱해준 가장 큰 힘이었다. 더없이 쿨하고 유쾌했던 네 사람이 없는 여름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 김윤하(음악평론가)

 

원더걸스의 ‘Baby Don’t Play’ 원더걸스의 < Reboot >는 한마디로 좋은 앨범이었다. 80년대의 신스 팝, 록이나 일렉트로 훵크를 이렇게 잘 소화해낸 주류의 팝 가수들은 적어도 한국에선 드물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악기를 든 원더걸스를 보며 ‘밴드의 진정성’을 얘기하며 앨범을 지나쳤고, 통통 튀는 드럼 머신 소리나 반짝반짝 빛나는 신시사이저 소리 때문인지 평자들은 80년대에 활동했던 음악가들의 이름을 한가득 대는 것으로 앨범 얘기를 끝맺은 느낌이다. 좋은 곡이 많지만, 그 중 앨범을 시작하는 ‘Baby Don’t Play’는 직선적으로 질주하는 리듬과 사운드, 그리고 그것을 더욱 명확히 전달하는 보컬의 톤과 리듬감이 탁월한 곡이다. 어떻게든 랩을 넣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없이 부드럽게 넘어가는 간주도 좋다. 80년대의 장점과 케이팝의 장점을 잘 결합한 음악으로, 후에 어떤 디제이나 프로듀서에 의해 ‘리부트’되는 일이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2015년의 원더걸스는 이전의 원더걸스와 작별을 고한 듯한 새로운 원더걸스였다. ‘밴드 컨셉’ 때문에 실제 연주할 실력이 되느냐 안되느냐를 따져 묻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원더걸스라는 4명의 음악가와 그 조력자들이 만들어낸 음악에 더욱 집중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2016년에 등장한 ‘Why So Lonely’는 ‘오랜 미국 생활과 공백기, 그리고 밴드로의 변신’이라는 어찌 보면 무척 고단했을 몇 년간의 여정을 통해 좀 더 단단해진 그들 자신의 목소리와 창작력이 만들어낸 최상의 결과였다. 그것이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끝이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김영혁(‘김밥레코즈’ 대표)

 

투애니원의 ‘Pretty Boy’ 그 전에 S.E.S.가 있고 핑클이 있었다. 원더걸스가 ‘Tell Me’로 세상을 바꾸어놓았고, 소녀시대가 원더걸스와 걸 그룹의 패권을 놓고 겨루던 참이었다. 그때 투애니원이 등장했다. ‘Pretty Boy’는 전통적인 걸 그룹의 곡들, S.E.S.의 ‘I’m Your Girl’이나 핑클의 ‘내 남자친구에게’와는 반대 지점에 있었다. 투애니원은 등장 자체로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볼을 두드리며 귀여운 척하지도 않고, 각선미를 자랑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예쁘거나 섹시해 보이기보단 멋있게 보이기를 원했다. 늘 수동적인 입장에서 남성이 원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았던 그때까지의 걸 그룹과 달리 자신들이 원하는 남성상을 말하며 예쁘장하기만 한 남자에겐 좀 더 노력하라고 말한다. 음악 역시 거친 느낌이 드는 힙합과 일렉트로닉을 차용했다. 그걸 가능하게 한 건 씨엘의 존재감이었다. 어느 그룹이나 독보적인 멤버는 있었지만 씨엘만큼 랩을 소화하며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연출해내는 멤버는 없었다. “(예쁘장하기만 한) 넌 어딘가 가벼워 따분해”라고 랩을 할 줄 아는 씨엘이 있어 테디의 비트가 빛날 수 있었다. “똑같은 여자라 착각하지 마 내가 누군데”라는 ‘Pretty Boy’의 가사는 투애니원이라는 전혀 다른 걸 그룹이 등장했음을 알리는 멋진 출사표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투애니원 같은 그룹은 투애니원밖에 없다. 김학선(음악평론가)

 

포미닛의 ‘간지럽혀’ 2016년 포미닛 해체 후 < Crazy > 같은 앨범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탄식했다. 요즘 걸 그룹의 추세 대로라면 다른 걸 그룹이 등장하더라도 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앨범의 태도는 마지막 곡 ‘추운 비’를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미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첫 곡 ‘미쳐’ 후 제목만 들어도 내용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1절만 하시죠’를 지나 ‘간지럽혀’가 등장한다. 곡은 걸 그룹의 노래 소재 중 가장 흔한 ‘썸’과 ‘연애’ 사이의 감정을 다룬다. 대다수의 걸 그룹은 이 감정을 ‘두근두근’, ‘설렘’ 그리고 ‘네가 내게 이렇게 해준다면’ 하고 가정하는 문장으로 표현한다. 포미닛은 이를 ‘간질간질’하다고 표현한다. 가사를 직접 들여다 보자. ‘미치겠어 널 더 안고 싶어서 조금 덥네 날씨가 이 코트 좀 벗을까’, ‘애써 그렇게 달콤할 것 없어 충분히 괴로워 매일 밤’, ’밤마다 미쳐 간질간질 Hey 고백하고 싶게 막 근질근질해’. 포미닛은 상대가 다가오길 기다리는 대신 자신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상대를 유혹할 방법을 찾는다. 이로도 모자라 직접 고백할 계획까지. 미끄러운 디스코 리듬 위로 포미닛은 한 번도 주저하지 않고 랩 하고 노래 부른다. 더욱 놀라운 건, 포미닛의 막내 권소현이 이 노래를 작사했다는 거다. 하박국(레이블 영기획YOUNG,GIFTED&WACK 대표)

    에디터
    나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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