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암 백불은 10년 단위로 입술 색, 액세서리 장식, 머리카락 색이 바뀐다. 이 백불의 과거를 몰라도, 처음 본다 해도, 그 시점부터 또 새로운 의미가 생긴다.
특별히 선호하는 재질의 유물은 없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유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야외 활동은 관심도 별로 없었고, 여름날 겨울날 산속을 걸어 다니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최근 석조 문화재로 빠진 관심을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석조 문화재와의 인연으로 가장 처음 떠오른 건 어린 시절 고향에 있던 판형 고인돌 위에서 뛰어놀던 기억이다. 그 때 신고 있던 운동화 끈을 밟고 넘어져 그대로 앞에 있는 다른 고인돌을 향해 앞이마로 착지 한 적이 있다. 넘어지는 순간 약 20분 정도 기절했고 얼굴은 반파가 되어 어머니는 한동안 상처받을 나를 위해 거울을 보지 못하게 했다. 그날 생긴 고인돌 그 돌덩이와 나의 찌릿찌릿 한 텔레파시 같은 무언가를 석조 문화재 선호 에 대한 변명으로 둘러대기엔 너무 미신적이다. ‘스몰 토크’로 적절할 일화를 제외하고는 떠오르는 일이 아직 없지만 확실한 사실은 내가 석조 문화재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특히 마애불에 말이다.
마애불은 바위에 새긴 불상을 일컫는다. 산행을 좋아하는 가족이나 지인이 곁에 있다 면 산행을 따라갔다가 한두번은 만났던 암벽 불상이다. 설사 마주친 기억이 없더라도 정규 교육 과정에 꼭 등장하는 문화재라 사진을 보면 무엇을 말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인도, 중국, 일본에도 널리 보이는 불교미술 양식이며 한반도에서는 7세기 전반부터 시작됐다. 서산 마애삼존불이 대표적인 마애불로 둥그런 이목구비에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어 ‘백제의 미소’ 로 불리기도 한다.
마애불에서 왜 눈을 뗄 수 없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마애불의 가장 큰 매력으로 소재의 특성을 꼽고 싶다. 마애불은 주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옮기기 어려운 큰 규모의 바위에 새겨졌다. 마애불 가운데 모자를 쓴 듯한 것들이 있는데, 이러한 모자의 떨어져 나온 부분만도 몇백 킬로그램이 넘을만큼 규모가 엄청나다. 그래서 더 신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무겁고 커다란 바위의 탄생을 자연 상태에서 목격하는 인간은 없다. 우리는 주위에서 갓 태어난 아기를 쉽게 볼 수 있고 개의 새끼, 고양이의 새끼, 하물며 고래의 새끼도 마음만 먹으면 영상으로 볼 수 있지만 갓 태어난 바위를 봤다는 사람은 없다. 사실 인류의 그 긴 세월 속에서 갓 태어난 바위 새끼를 목격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에 의해 풍화되는 바위의 변화를 짧은 시간 안에 목도하기도 힘들다. 우리는 그저 “바윗돌 깨뜨려 돌덩이/돌덩이 깨뜨려 돌멩이”하고 시작되는 노래 정도를 불러 바위의 긴 세월을 압축적으로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마애불도 바위라서, 계속 자란다. 물론 삼국시대에 그림이나 도자기처럼 긴 시간 많이 훼손된 유물에 비하면 조각 당시와 꽤 비슷한 상태로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마애불의 모습은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한다. 수학여행으로 자주 만나는 경주 석굴암이 만약 바위가 아니라 모래나 강철 재질로 만들어졌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바뀌었을지 생각해본적 있나? 석조 문화재는 바위라는 소재의 특성이 가진 특유의 속도로 지구에 존재하고 있다. 인간의 시간과도 다르고, 목조 유물의 시간과도 다르다. 따라서 마애불이 가진 소재의 특성은 곧 바위가 가진 시간성의 특성이기도 하다.
마애불의 ‘차밍’ 포인트에 대한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제부터 소개하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옥천암 백불(등록명칭: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은 누구라도 한번쯤 찾아가고 싶은 유물이다. 등록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거대한 바위에 조성된 흰 관음보살은 서울, 그 안에서도 터널만 넘어갔을 뿐인데 유난히 멀리 온 것처럼 한적하게 느껴지는 홍제동 고가 옆에 있다. 실제로 보면 정말 기분이 이상해지도록 크고 하얗다.
불심 깊은 불자가 아니어도, 평소 마애불의 매력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 없어도, 심지어 직접 찾아가 문화재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어느 날 갑자기 신묘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옥천암에 가보길 권한다. 게다가 옥천암 백불은 마애불 입문자에게 딱 좋다.
옥천암 백불은 고려 말경 제작됐다. 조선개국 초 이성계가 서울로 도읍을 정하며 번성을 기원할 때도, 고종의 어머니가 아들의 복을 빌 때도 옥천암 백불은 그들 앞에 있었다. 옥천암 백불이 언제부터 흰 호분으로 칠해져 ‘백불’ 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언제부터 장단색으로 입술을 칠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한국의 모습을 다양한 그림으로 남긴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1925년 그림에는 백불로 등장했다.
그 이후에도 10년 정도의 주기로 덧칠을 하거나 지우는 작업을 반복했는지 2천년대에는 가운데 흰 칠이 벗겨진 모습의 백불이 사진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처음 옥천암 백불을 방문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바로 이 기록 사진을 보고 나서다.
그 사진에서 본 채색 상태가 내 마음에 꼭 든 건 아니었지만, 직접 찾아간 홍제동에서는 생각보다 신선하고 기분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백불이 너무 멋지고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일단 백불이 위치한 주변 풍경이 너무 아름답고 서울이 아닌 듯, 별 세계에 온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기 때문인 것 같다. 광화문을 방금 넘어왔는데도 믿을 수 없이 고요해서 마음을 평화롭게 만든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마애불을 흰색으로 칠하는 이유는 표면의 풍화를 어느 정도 막고 손상 부위를 가리기 위해서다. 명소로서 이목을 끌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채색의 긍정적인 면이 하나 더 있다. 흰색으로 덧칠하는 과정을 통해 마애불의 얼굴이 조금씩 변화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마애불의 얼굴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저장해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수도 있는 일이다.
백불을 가만히 뜯어보면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인상인 건 분명하다. 서양 미술사에 화풍의 유행이 있는 것처럼 부처의 얼굴을 표현하는 방식도 작지만 분명한 유행이 있다. 물론 그 작은 차이가 격정적인 변화로 느껴질 수도 있다. 립스틱 색깔 하나만으로도 메이크업의 흐름이 뒤바뀌는 시대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옥천암 백불은, 요즘 식으로 설명하자면 10년 단위로 입술 색, 액세서리 장식, 머리카락 색까지 다양하게 바뀌고 있는 셈이니 늘 똑같아 보이는 전통 불교 도상에서도 큰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봐준다면….
문화재나 유물을 관람할 때 사람들이 가장 크게 오해하는 부분은 ‘이 물건을 보면서 과거 선조들의 생활을 이해해야 하고 내가 알 수 없었던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이 과정이 없으면 문화재 관람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즐거움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만 유물과 문화재를 관람하는 일은 결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계산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유물의 ‘팩트’나 얽힌 이야기를 다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유물을 관람하는 일은 과거의 시간을 함께 겪고 느끼는 일이다. 그리고 그 유물을 관람하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조차도 그 유물의 역사가 된다. 같은 유물을 여러 번 관람할 때마다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물리적으로도 그 유물은 정확히 같은 상태의 물건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옥천암 백불처럼, 생각보다 짧은 주기에 모습이 조금씩 변하는 석조 문화재라면 관람의 재미가 더 커진다. 몇백 년간 변해온 상태를 하나하나 파악하고 있지 않더라도, 직접 방문해 ‘내 최초의 옥천암 백불’을 기억하게 된다면 그 자체로도 세상에 의미가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세상에 큰 의미가 없더라도 괜찮다. 관람한 자신에게 이미 데이터가 쌓였기 때문에 그 다음을 기대하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유물로 삼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홍은동 옥천암 백불을 ‘애정이 가는 유물’로 삼기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24시간 대중에게 개방되어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도 관람이 가능하다는 점인데, 밤낮으로 나눠 방문해보면 또 다른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원한다면 언제고 방문해 백불의 무릎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주변 풍광은 또 다른 위안거리다. 아름답고 맑고 조용한 홍제천이 흐르고 있고, 물가엔 이름 모를 개인들이 공을 들여 쌓은 석탑이 무리지어 있다. 서울이 조금 지겹고 지루하고 소란스럽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딱이다. 승용차로 방문하는 경우라면 유물 관람 코스에 북악 스카이웨이 드라이빙 코스도 함께 넣어보길 권한다.
문화재도 우리처럼 현재를 살고 있다. 주변을 보면 박물관 관람을 유독 어르신들의 유흥으로, 그저 고리타분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굳이 그럴 일인가? 또 홍제동 옥천암 백불을 찾아간다고 해서 전형적인 태도로 유물을 관람할 필요도 없다. 부모님 세대처럼 유물 앞에 딱 붙어 서서 차렷 자세로 사진을 찍을 이유도 없고, SNS에 해시태그 ‘#백불’, ‘#고려시대’, ‘#문화재사랑’이라고 붙일 이유도 없다. 본인이 보고 즐거웠다면 괜찮다.
나 역시 개인적인 취향을 기준으로 유물을 관람하고 다니는 중이다. 유물이라면 거의 다 좋아하지만, 석조 문화재를 두루 즐기고, 그중 마애불을 좋아한다. 고리타분한 것을 싫어하고, 지루함도 쉽게 느끼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옥천암 백불은 질리지 않는다. 요즘처럼 미세 먼지 없이 맑은 날이 이어질 땐 나들이 가듯 이곳을 방문한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있는 마애불이 너무 멀어 찾기가 힘들다면 성북구 안암동에 있는 보타사 마애보살좌상도 추천한다. 옥천암 백불과 같이 고려 때 조성된 마애불이다. 은평구 진관사에 있는 마애불도 좋다. 단, 북한산 산행을 어느 정도는 결심해야 한다. 이 세 곳 모두 강원도 너와집 자유롭게 촬영도 가능하다. 옥천암의 경우 기도를 위해 방문하는 불자가 많아 관람 시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한국은 “전 국토가 박물관” 이라던 유홍준 교수의 말은 여전히 유효할까. ‘유치’와 ‘개발’ 플래카드 앞에서 과거는 남루할 뿐이고 ‘(문화유산)지정’ 표어가 나붙어도 실은 앞날을 계산하기 바쁜 시절. 번듯한 관광지가 아니어도, 맛집을 골라줄 순 없어도 직접 발품을 팔아 답사해 차라리 호주머니에 넣은 듯이 간직한 개별의 문화유산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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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글 / 김서울(‘유물즈’ 작가, 박물관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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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서울